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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6451

    友巖亭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蔡翁이 山陽川 부근 숲과 암석이 어우러진 곳에 정자를 짓고 기문을 청한 데 응해 글이다. 채옹이 정자의 창을 열어 남쪽의 바위를 가리키는 데 나란히 바라보고 있는 형태를 따라 兄弟巖이라고 지었다고 하고, 그들 형제의 전원 역시 서로 바라보는 곳에 나란히 있기에 형제란
    출처 : 유교넷
  • 326452

    臨淵亭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문경과 상주 그리고 괴산에 걸쳐 있는 靑華山에 있는 임연정의 기문이다. 청화산은 북쪽으로 문경의 佳隱에 이르러 10여 길 높이의 석벽을 이루는데, 흐르던 물이 그 석벽에 이르러 깊은 연못을 이룬다. 그곳에 南聖功이 정자를 지었다. 남성공은 스승인 남한조 선생의 후예로
    출처 : 유교넷
  • 326453

    沙眞軒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金彦濟의 沙眞軒을 위해 지은 기문이다. 작년에 聞韶의 錦沙村에 가서 선친의 문하생이었던 김언제의 새로 지은 집을 방문했다. 금사촌의 옛 이름이 沙眞이라며 나에게 기문을 청하여 기문을 짓는다. 김언제가 말하기를 이 집은 지은 것은 그의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했는
    출처 : 유교넷
  • 326454

    望章書堂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선산에 있는 망장서당의 기문이다. 선왕의 법도에는 나라에 학교를 설치하는데, 州에는 序를 설치하고 향당에는 庠을 설치하니, 庠은 오늘날의 서당과 같다. 영남지역에는 유학의 가르침을 익히기 위해 서당을 설치하고 반드시 어진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서 訓長이라고 부르고 자제
    출처 : 유교넷
  • 326455

    南垂晩家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歸湖公이 충주의 大鄕山 남쪽에 집을 짓고 옛 시에서 취하여 ‘南垂晩家’라 이름 했으며, 그 동쪽과 서쪽의 집을 각각 ‘惕庵’과 ‘好窩’라 이름하고 가운데 집을 ‘夕陽’이라고 이름 부쳤는데, 이는 모두 山에서 취한 것이다. 옛 성현들은 모두 만년에 이르러 경지를 얻었으
    출처 : 유교넷
  • 326456

    書金大臨隱逸圖帖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요즘 세상에는 隱逸이 없는데, 이 그림을 그린 이는 그 마음에 실로 세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뜻이 있었던 듯하다. 金大臨이 은일을 그린 그림 8폭을 얻어서 작은 병풍으로 만들어 나에게 글을 청했는데, 나는 그림 가운데의 사람들이 모두 옛날의 은일인지는 모르지만 평생
    출처 : 유교넷
  • 326457

    書李孟儀梅菊圖帖後 2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사물은 天機가 중요하다. 그런데 매화와 국화는 땅에서 자라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과 꽃이 세월이 지나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天機인가, 아니면 비단 화폭에 옮겨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 天機인가? 매화의 귀함은 섣달에 꽃을 피우는 데 있고 국화의 귀함은 가을에 꽃을
    출처 : 유교넷
  • 326458

    題仙人圖 2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요즘 세상에는 선인이 없는데 누가 보고서 그림으로 그렸는가? 만물을 만들어 냄은 無 가운데서 有를 만들어 내는데, 누가 그렇게 한 것인가? 그림을 그린 이는 이 뜻을 보았던 것이니 신선을 본 것이리라.
    출처 : 유교넷
  • 326459

    玻瓈篆章贊幷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1812년(순조 12) 봄 文山에 들어갔다 산 아래에서 광채 나는 기이한 물건을 얻었는데, 玉石에 전각하는 취미가 있어 거기에 이름을 새기고 서문을 썼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26460

    琴說 2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나에게 우울증이 있자 의사가 琴에 대해 이야기 했다. 琴은 소리가 맑고 조화로워서 산수 간에서 담박하게 연주하면 사람의 마음을 안정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南漢醇에게 琴을 달라고 청하여 얻었다. 이웃에 박씨 노인이 있어 琴을 연주할 수 있다고 하기에
    출처 : 유교넷
  • 326461

    靑舍梁頌 2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정상관이 愚溪의 동쪽에 7칸의 집을 짓고 ‘靑舍’라 이름붙인 후 지은 상량문이다. ‘靑舍’라고 한 것은 집이 甲方을 등지고 있는데, 甲은 동쪽이고 동쪽은 푸른색이고 방향으로는 巽에 해당되며 巽은 나무에 해당된다고 했다. 나무는 본래 푸른데다 우리나라의 이름이 ‘靑丘’
    출처 : 유교넷
  • 326462

    大黑所銘 2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검음[黑]이 지닌 작용과 의의의 위대함을 기린 명이다. 白에 비해 黑이 더 크고 위대하다면서 사물의 겉 모습이 밝음에서 드러나면 그 본질은 어둡고 어둠에 있으며, 道는 黑에서 자라난다고 했다. 사람들이 말 많음으로써 화를 부르는 것은 지나치게 밖으로 밝음을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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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63

    讀馬史上 3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사마천의 사기를 읽은 감상을 적은 글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세상에서 불운함을 당하여 물러나 󰡔춘추󰡕를 지었고, 좌구명은 󰡔춘추전󰡕을 지어 240년의 일을 기록했으며 사마천은 위로 요순 때의 일로부터 1,100년 아래로 秦漢의 일까지를 기록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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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64

    讀馬史上 3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班固는 사마천 열전을 지으면서 사마천이 경전을 두루 파헤치고 고금상하 수천 년의 시간을 치달았는데 그 是非는 성인에게 오류를 범했고 大道를 논함에 있어서는 黃老를 앞세우고 육경을 뒤로 돌렸으며, 遊俠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奸雄을 내세우고 處士를 뒤로 밀쳤으며, 貨殖에
    출처 : 유교넷
  • 326465

    危言上 3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군자와 소인의 구분에 대해 논한 글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인의 立言은 말을 하면 천하의 표준이 되고, 성인의 立敎는 가르치면 천하의 악을 막게 된다. 천하의 표준이 되기에 군자는 항상 그것에 의거하고, 천하의 악을 막기에 소인은 항상 두려워한다. 성인의 말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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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66

    危言下 3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춘추와 맹자의 사적을 통해 정통과 이단의 구분에 대해 논한 글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적들을 두려워하게 하는 방법은 공정함[公]을 견지하는 것이고, 이단의 邪說을 막는 방법은 올바름을 견지하는 것이다. 노자가 나타났지만 주나라 말에 막을 수가 없었고, 양주와 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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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67

    蓬壺第一史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문경의 曦陽山과 속리산을 유람한 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희양산 유람은 갑인년(정조 18, 1794) 2월 저자의 스승인 남한조가 저자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희양산을 유람할 것을 말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이는 두 사람이 오래전 약속 한 것이라고 했다. 편지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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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68

    蓬壺第二史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1812년(순조 12) 겨울 한양에서 열린 廷試에 참여하는 길에 서울과 개성을 둘러본 기행문이다. 여정의 채비에는 󰡔노자󰡕와 󰡔장자󰡕 抄本 각 1권, 󰡔참동계󰡕 1권, 사마천의 글 1권, 인장 1개, 붓 2자루, 먹 3개 등이 포함되었다. 저자의 형이 함께
    출처 : 유교넷
  • 326469

    蓬壺第三史 3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1816년(순조 16) 태백산의 동쪽 주왕산의 서쪽에 있는 臥龍山을 찾아 병자호란 이후 청에 반대하고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아 崇禎處士로 불리는 瓢隱 金是榲(1598∼1669)의 사적을 돌아본 기록이다. 숭정처사유허비와 김시온의 선조 대에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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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0

    昊天篇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이 글은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立齋 鄭宗魯(1738~1816)의 일대기를 적은 글이다. 저자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아버지의 삶, 즉 師友들과 학문을 익힌 일, 관직에 나가서 백성을 다스린 일, 부모님의 초상에서 정성을 다한 일 등을 두서없이 나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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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1

    損齋南先生遺事總述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損齋 南漢朝(1744~1809)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다. 남한조의 字는 宗伯이고, 號는 損齋이며, 本貫은 宜寧이다. 父는 必容이고, 母는 義城金氏이다. 9세에 고아가 되자, 어머니가 그를 외가로 보내어 글을 배우게 하였다. 당시 그는 󰡔左氏傳󰡕‧󰡔朱子綱目󰡕
    출처 : 유교넷
  • 326472

    本生外曾王考松厓李公遺事 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外曾祖父 松厓 李遂大(1675~1709)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다. 이수대의 字는 就而이고, 號는 松厓이며, 本貫은 全州이다. 그는 뜻이 크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經術에 두루 통하였다. 어려서부터 예속에 얽매이지 않았고, 특히 打毬와 씨름을 즐겨하였는데 대적할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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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3

    本生先妣淑人遺事 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어머니 淑人李氏(1736~1803)의 일대기를 적은 글이다. 이씨는 숙종 때 蔡彭胤‧吳尙濂과 함께 당시 三文章으로 일컬어졌던 松厓 李遂大(1675~1709)의 손녀이고, 外祖父 李民顯의 딸이다. 淑人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다른 자제들이 글을 읽으면 한 번 듣고 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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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4

    生父의 外祖인 素谷 洪德華의 神主를 무덤 앞에 묻을 때 지은 고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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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5

    祭損齋南先生墓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損齋 南漢朝(1746~1809)의 묘에 올리는 글이다. 남한조의 자는 宗伯, 호는 損齋, 본관은 宜寧이다. 저자는 선생의 학문은 純厚하여 斯道의 정수요, 여러 유학자들의 설을 집성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랜 세월 뒤에 요행히도 선생의 가르침을 입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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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6

    祭內舅李公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內舅인 李公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공이 사망한 뒤 저자의 外王母(외조모)는 팔순의 나이에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이에 저자는 공이 외왕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나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士大夫의 기풍이 공에 세상을 떠난 지금은 사라진 것 같다면서 자신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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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7

    祭龜窩金公文(代家親作) 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龜窩 金㙆(1739~1816)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김굉의 자는 子野, 호는 龜窩, 본관은 義城이다. 저자는 김굉이 陶山의 嫡統을 이었고 학문과 事蹟이 영남사림의 종주로 숭앙받았으나, 하늘이 그를 남겨두지 않고 앗아간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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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8

    祭正齋黃公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正齋 黃公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공은 자질이 교우들과는 남달랐으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주 부친에게 질문을 하여 가문의 기대를 받았다. 뒤에 학문으로 세상에 알려져 조정에 천거되었을 때는 조정의 명사들과 斯道를 함께 이끌어왔으니, 우리 사류들은 더욱 더 존모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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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79

    祭南公敬明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敬明 南某를 추모하는 제문이다. 저자와 공은 서로 교유하며 독서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고 흉금을 논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기량을 만개하지도 못하고 요절한 것에 대해 슬퍼하면서, 이에 짧은 글을 지어 薤歌로 삼는다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6480

    又小祥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小祥 뒤에 다시 지은 제문이다. 저자는 공의 평생의 친구로 敬明 南某를 장사지낼 때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한 슬픔을 돌아보았다. 친구를 보낸 뒤, 공이 韓愈와 蘇東坡의 글을 읽을 때의 모습과 또한 같은 문하에서 배울 때를 회상하면서 공의 孝心으로 부모가 壽를 누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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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1

    祭姑叔吳奉事文(代家親作) 1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姑叔(고모부)인 奉事 吳某를 추모하는 제문이다. 저자는 이글에서 꼿꼿한 지조와 침착한 면모를 소유하였고, 옛 글과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간 姑叔 吳某를 先考와의 일화를 통해 회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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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2

    祭本生叔父通德郞府君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生叔父인 通德郞 부군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부군은 상을 당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고, 일상생활에서부터 병을 조심하고 양생하는 방도를 실천하여 壽를 누렸다. 교유하는 騷人들과 시를 지음에 있어서도 묵묵히 있으면서도 분위기를 이끌었고 가족들과 부모에 대해서도 소홀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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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3

    祭本生叔母孺人光山盧氏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生叔母인 孺人 光山盧氏를 추모하는 제문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叔考와 叔母, 生考가 세상을 떠났고 올해는 生叔母까지 사망하였으니 최근 몇 년은 우리가문에게는 원수 같은 해라고 하고는, 전에는 生叔母의 온화하고 돈독한 덕에 자식들은 의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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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4

    祭亡妹李室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亡妹 李氏를 추모하는 제문이다.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11월에 小祥을 지내니, 저자는 이에 처음으로 가서 곡하고, 장사를 지낼 때 글을 지어 자신의 애틋한 정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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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5

    祭光山李公文(代從叔作) 2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光山 李公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저자는 공은 집안에 있을 때는 嚴親의 가르침을 공손히 받들었고, 동생과는 우애가 두터웠다라고 하면서 또한 광산 김씨 가문의 명성으로 공이 음덕을 입어 벼슬을 한 것이 아님을 자신은 인척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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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6

    祭臨池子金穉行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臨池子 金穉行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저자는 김치행이 병에 걸려 벌벌 떨며 누워 있을 때 가서 본 것을 말하는 한편, 이미 세상을 떠난 김치행이 이곳에 있고 김치행도 또한 나를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노라고 하였으니, 보고는 싶은데 볼 수 없는 한탄스런 마음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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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7

    祭女婿金鳴祖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사위 金鳴祖(?~1818)를 추모하는 제문이다. 저자는 사위가 1818년(순조 18) 10월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애통해하면서 사위가 죽은 뒤 자신은 3년 동안 눈물이 마르지 않고 이 때문에 눈병이 걸려서 눈이 잘 안보이게 되었으며, 얼굴에도 주름살이 생기고 정신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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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8

    尹尙書誄四章 2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세상을 떠난 大司空 尹光紹(1708~1786)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 저자는 윤공이 영남의 鄕飮酒禮를 주관할 때 자신은 鄕書로 일했다 하였고, 학문과 경륜으로 조정에서 명망이 높았지만 등용되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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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89

    李學士(善相)誄一章 2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學士 李善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 李善相은 1812년(순조 12) 과거에 급제하였다. 저자는 공의 빼어난 기개와 기량은 나라의 후진들에게 중망을 받을 만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것을 아쉬워하면서 공과의 추억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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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0

    申質夫哀詞 2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質夫 申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 공은 독서를 좋아하고 성품이 강직하였다. 이따금 저자의 집에 찾아와 머물렀는데, 대하기가 마치 친자식이나 동생과 같아 허물이 없었다. 저자는 불행하게도 공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배우는 자에게 선생의 경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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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1

    柳宣則哀詞 2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族弟 柳魯文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 柳魯文은 자는 宣則, 본관은 全州로 柳通源(1715~1787)의 아들이다. 저자는 弱冠의 나이로 공보다 1살이 많았으나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었고, 당시에 安東都護府使에 부임한 공의 부친과 저자의 스승이 금강산 유람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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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2

    李幼善哀詞 2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幼善 李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 李某는 일찍이 達城의 鄕飮酒禮에서 저자가 御史大夫 공을 뵙기로 하고 가서 뵙던 도중에 공의 곁에서 공손히 인사하던 아이로 장래를 매우 기대하였으나 요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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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3

    秋風操 3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저자가 가을에 거문고를 타던 중에 權載華가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상심하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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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4

    谷口園記後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저자는 生父인 鄭宗魯(1738~1816)의 문하에 들어가 글을 배우며 八籍을 家業으로 여기고 六藝를 茶飯으로 삼아 공부에 진력하였다. 그 후 谷口山 속에서 40여 년 동안 살면서 天地와 日月의 운행과 風雨霜露의 변화와 江山嶽의 形勝과 鳥獸草木蟲魚의 아름다움을 살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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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5

    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李升培, 黃磻老, 李秉鐸, 再從兄 象履, 柳鼎文, 南漢普, 李秉運, 朴光錫, 金弼熙, 趙星復, 李宅運, 李秉天, 姜世白, 李野淳, 趙根復의 만사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6496

    祭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南漢皜, 黃磻老, 金熙周, 柳栻, 李秉進, 李秉遠, 鄭昌運, 金弼熙, 權顯相, 南漢佐, 朴光錫, 黃泰鉉, 權玉相, 金是珩, 南漢模, 李秀億의 祭文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6497

    行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저자 사후 21년 뒤인 1840년(헌종 6) 再從兄 象履가 쓴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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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498

    墓誌銘 3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조카 척암 金道和가 저자 사후 6년이 되던 1825년(순조 25)에 지은 묘갈명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장난하고 노는 것을 본 어머니가 학문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이렇게 제멋대로 놀다가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책의 말을 듣고서 깨달은 바가 있어 아버지에게 가
    출처 : 유교넷
  • 32649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
    曾孫 東範이 쓴 識이다. 내용은 행장과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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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00

    항와집 / 기록자료>고도서 / 홍종구
    항와집(恒窩集) 恒窩 洪宗九의 문집. 石印本, 序: 鄭東轍, 跋: 洪範禹,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8.8×14.3㎝,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 31.0×21.0㎝. 권두에 晉陽鄭氏 鄭東轍의 序文이 있고, 권말에 門後孫 洪範禹의 跋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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