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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6551

    북싯골 처녀(處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싯골이라 함은 북수골(北水谷)을 일컫는 말로 마을 북쪽에서 물이 흐르는 곳의 마을을 말함이며, 어느 고을이나 한 두 곳에 북수골(北水谷)이 없는 곳이 없으며 이런 마을들을 북싯골(北水谷)이라 부른다. 이 고장의 북싯골은 원남면 덕신 2리를 북수동이라 칭하는데 옛
    출처 : 유교넷
  • 326552

    뽀뽀바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마을을 수호(守護)하는 뽀뽀바위가 <HXMLPIC ID="001"></HXMLPIC>미륵같이 생겼다 하여 일명 미륵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는 서면 삼근 1리(三斤이본) 소재로 동네 입구 국도변(國道邊) 아래 광천(光川) 냇물변 약 4m의 높이 바위로 그 생김새가
    출처 : 유교넷
  • 326553

    사기막(沙器幕)큰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사계 1리(沙溪 1里) 속명(俗名)은 사기막(沙器幕)이라 부른다. 이 마을의 자연부락(自然部落)인 평지마을 뒷산 원줄기인 용(龍)에 큰 묵묘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양자리(陽子里) 이씨묘(李氏墓)라 전해지고 있으나 매년(每年) 벌초(伐草)를 하지 않는다 전해
    출처 : 유교넷
  • 326554

    사동골댁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기성면(箕城面) 사동리에 소재한 황의석(黃義錫)씨 집은 그 집의 택호(宅號)가 “골댁”이므로 ‘사동골댁집’이라고 하는데 이 집터는 풍수(風水)들이 강릉(江陵) 이남에서는 제일 좋은 집터라고들 한다. 지금부터 약 400 수십 년 전 세종대왕(世宗大王)때 정선군수(旌
    출처 : 유교넷
  • 326555

    산촌(山村) 학장(學長)과 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1801년(조선조 순조(純祖) 1년) 울진현령 구진(具縉) 때 울진군 서면 통고산 중턱에 67가구의 농가가 세상을 등지고 화전(火田)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한적한 이 마을에도 뜻있는 사람이 있어 마을 사람들과 의논 한 끝에 10여명의 학동(學童)을 모아 서
    출처 : 유교넷
  • 326556

    간물단지산(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하당리 중단(中壇) 마을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설(風水地理設)에 의하면 이 산이 화산(火山)이라 하여 동네에서는 화재위험을 없애기 위하여 산 정산(頂山)에 질그릇 단지를 땅에 묻고 그 안에 간물(海水)을 동네 부녀자들이 동해(東海)바다로 가서 간물
    출처 : 유교넷
  • 326557

    산수(山水)가 노래하는 박금(拍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울진읍 정림(井林) 2리에 있는 박금(拍琴)은 1510년경 영양남씨(英陽南氏)가 처음 개척(開拓)한 곳으로 동구(洞口)밖에 낮게 가로놓인 산(山)이 거문고를 타는 형국(形局)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일설(一說)로는 마을 앞을 굽어 흐르는 냇물소리가 흡사(恰似) 거문
    출처 : 유교넷
  • 326558

    살인(殺人)고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온정면 소태(蘇台) 3리 하암동(河岩洞)은 마을 앞 냇가에 있는 바위가 깨끗한 화강암으로 펼쳐져 있어 하암리(河岩里)라 불러지게 되었다. 동네 앞에 크고 흰 바위가 마치 배돛대와 같은 형태라하여 돛대바위라 불렀는데 옛날 안동권씨(安東權氏) 한 사람이 이 바위를 절
    출처 : 유교넷
  • 326559

    삼봉(三峯)의 전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면 전곡리 원곡(元谷) 마을에 밥봉(飯峯), 죽봉(粥峯), 떡봉(餠峯) 세 봉우리가 있다. 옛날 조선조 때 이곳 원곡리는 귀양지(定配地)로 영천이씨 이수선(李修撰) 선비가 유배(流配)를 당하여 이곳에 와서 살았다. 이 분이 돌아갈 때 소유(所有)했던 많은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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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0

    삼산리(三山里) 느티나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 느티나무는 나무 나이가 370수년이며, 나무높이 30m이며 가슴둘레는 5.7m로 이 늙은 큰 나무는 사계(沙溪) 이영발(李英發)의 묘(墓) 우측 백호등(白虎嶝)이 짧아 묘가 덜 쌓였다는 풍수지리설(風水地理設)에 따라 사계선생의 아들 5형제가 각각 느티나무 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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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1

    샛재(鳥嶺) 성황당(城隍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하당(下塘)을 거쳐 말래(斗川)를 지나면 내륙지방(內陸地方)으로 통하는 12령(十二嶺)의 하나인 샛재(鳥嶺)가 있는데 그 고개에 성황당(城隍堂)이 있다. 목조건물(木造建物)인 이 당(堂)은 110여 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울진 흥부시장과 봉화시장을 왕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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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2

    서당골(書堂谷)바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당골 바위는 북면 신화 1리 소재로 1703년(조선조 숙종 29년 癸未)에 진사(進士) 전구원(田九畹)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서당(書堂)이 있어 그 골을 서당골(書堂谷)이라 부른다. 서당골 앞산에 큰 암반 같은 바위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바위의 크기는 가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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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3

    서모제(鼠毛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나곡(羅谷) 3리 나실(羅室)마을 동해안(東海岸)에 있는 귀중한 서모제(鼠毛劑)는 인적(人跡)이 접근치 아니한 암벽(岩壁)에 이끼종(種)으로 번식한다는 것으로 쥐털과 같아서 서모제(鼠毛劑)라 하여 옛 왕실(王室)에서 사용한 귀중한 약제기록(藥劑記錄)에 있다 한다
    출처 : 유교넷
  • 326564

    설매묘(雪梅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주인없는 대묘(大墓) 하나가 북면 부구 3리 뒷산에 하나 있다. 옛날 어느 부자(富者)가 추운겨울 설중(雪中)에 매화낙지형(梅花洛之形)을 찾아 이곳에 와서 묘(墓)를 썼는데 그 당시 얼마나 큰 묘를 썼는지 인부(人夫)의 쌀밥을 씻은 물이 1km되는 흥부천(興富川)까지
    출처 : 유교넷
  • 326565

    북면 상당리(上塘里) 속명(俗名)이 원당(元塘)마을이다. 이 마을은 사방으로 산봉우리(山峯)이 솟아 있고 부락 앞에는 구수계곡(九水溪谷)물이 모여 울진 남대천(南大川)으로 흐른다. 1600년경 고(高)씨, 추(秋)씨 라는 성을 가진 두 선비가 마을을 개척(開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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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6

    쇠도리깨 장군 김언륜(金彦倫)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장군은 임란 때 창의 의병장으로 1565년(조선조 명종(明宗) 20년 乙丑)에 북명 고목리 지장골에서 출생하니 골격이 장대하고 기상이 비범하여 한학 수학을 틈타 병서(兵書)를 탐독하고 활쏘기와 칼쓰기를 좋아하더니 나이 20세가 되면서부터 “쇠도리깨” 쓰는 법과 승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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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7

    고려장(高麗葬)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기성면 삼산리(三山里) 골마 마산(麻山) 동남쪽으로 약 1.5km지점 삼산리 산 1번지와 인접된 산(山)에 연대(年代)는 미상이나 구전(口傳)되어 오기를 고려 때 고려장(高麗葬)터라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 고분군(古墳群)이 넓게 형성(形成)되어 있어 산위에 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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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8

    수토기담(授討奇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기 511~1896년 갑오경장 이전 울릉도 첨사(僉事) 평해군수나 혹은 월송 만호(萬戶)가 겸임하여 삼년마다 한차씩 토벌(討伐: 반란자와 도둑을 지킴)하러 갈 때는 의식을 장엄하게 갖추어 구산동사(邱山洞舍)에서 바람을 기다려 동북간으로 향해 출발하여 순풍(順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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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69

    십이령(十二嶺) 바지게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바지게」꾼이라 하면 전설(傳說)로 흥부장(興富場)을 보는 바지게꾼이 「바지게」라는 지게에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 고기, 미역 등 해산물(海産物)을 싣고 흥부장에서 출발하여 십이령(쇳칫재-세고개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젖은텃재-작은넓재-큰넓재-꼬채비재-멧재-배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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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0

    안일왕성(安逸王城) 장군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면 소광(召光)리 안일왕성(安逸王城) 장군터는 부족사회국가(部族社會國家) 시대에 실직(삼척) 안일왕(安逸王)이 피신하여 산성(山城)을 토석(土石)으로 축조할 때 당시 장군이 살았다하여 후(後)에 장군터라 불러왔는데 전설(傳說)에 의하면 삼척김씨(三陟金氏)가 거주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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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1

    열두소야(12蘇野)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소곡 1리(蘇谷 1里)는 자연부락(自然部落)이 12개소가 형성되어 있어 인근마을에서 “열두소야”라 부른다. 또한 한 마을에 자연부락도 많지만 민간신앙(民間信仰)인 성황당(城隍堂)도 3개소가 있어 정월 대보름이 되며 이 마을 저 마을 각각 자기가 믿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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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2

    염전(鹽田)이 있었다는 상천전(上川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 마을은 근남면 행곡(杏谷) 3리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이 마을까지 바닷물이 20리나 밀려 올라와서 호(湖)를 이루고 이 해수(海水)를 이용하여 소금을 구었다 하여 일명 해염리(海鹽里)라 불러졌다 한다. 지금도 이 마을 마수산(馬首山) 아래 “모래등질”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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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3

    오노촌(五老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오노(五老) 마을은 근남면 노음(老音) 1, 2리의 옛지명으로 1450년경 영양남씨(英陽南氏) 상유(尙有), 순하(舜夏) 등 다섯명의 노인(老人)이 촌장격(村長格)으로 마을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고을 원님이 순시(巡視)할 때 다섯 노인의 이름을 몰라 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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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4

    올챙이를 기억 못하는 개구리의 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전내마을 안에 “노른가리”라는 깊은 산골짜기에 게딱지만한 오두막이 하나 있다. 이 집에는 화전(火田)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이 농부는 매우 부지런하게 농사를 지었지만 얻어지는 수확은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여 어느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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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5

    와가(瓦家) 뜰보 속의 인골(人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울진군 북면 나곡리 북단마을 고포동(姑浦洞)에 최씨가 소유하고 있는 고(古) 기와집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설화이다. 이 마을은 조그마한 도랑(細川)을 경계로 남쪽 마을은 경북 울진군 고포동이고, 북쪽 마을은 강원도 삼척시 고포동으로서 함께 부르는 동명(洞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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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6

    왕피리(王避里)의 이설(二說)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면 왕피리(王避里) 이름은 두가지 전설(傳說)이 있다. 첫째는 935년경에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왕자(王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손씨(孫氏) 모후(母后)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 왔다가 모후(母后)가 이곳에 와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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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7

    용암(龍岩)과 용정(龍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평해읍 직산 1리 자연부락 저장리(楮場) 마을 북쪽에 큰 바위가 있어 이 바위는 용(龍)이 바위에서 등천(登天)하였다 하여 용암(龍岩)이라 불러지고 등천할 때 꼬리를 쳐서 큰소(大沼)가 생겼다 하여 마을 이름을 용정(龍井)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부락은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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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8

    고산성(古山城)의 전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고산성(古山城)은 1556년 조선조 명종(明宗) 11년에 울진읍성(蔚珍邑城)으로 그 후 재차(再次) 읍을 옮긴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병(倭兵)이 내침(來侵)하여 수일동안 공격하였으나 실패하니 계획적으로 산성(山城) 건너편 마을 가원동(佳原洞)에서는 노래판을 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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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79

    용혈(龍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나곡(羅谷) 3리 라실(羅室) 마을에 있는 용혈(龍穴)은 동해(東海)에 접한 암석(岩石)이 해발(海拔) 20m 서쪽으로 갈라져 절벽(絶壁)을 이루고 있는데 그 암석(岩石) 하부에 폭(幅)이 3m나 되는 구멍(穴)이 있어 그 깊이는 측정(測定)할 수 없고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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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0

    1827년(조선조 순조(純祖) 27년) 원남면 기양1리 지품동에 태어난 장무신(張武臣)은 용모도 순수하고 호협한 성품이 있어 일찍이 관아(官衙)에 들어가 이방으로 있을 때 세금을 모아 나라에 7월 상납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당시 상납(上納)은 전답결세(田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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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1

    웅웅 소리가 나는 쌍전리(雙田里) 배나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면 쌍전리 산 146번지에 서 있는 참배나무는 현 소유자인 곽금호씨댁 뒤뜰에 있으며 대대로 관리하고 있지만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령은 약 5백년에 달한다고 한다. 봄철에 가끔 이 나무에서 웅웅소리가 나면 나라에 큰 일이 생긴다 하며, 배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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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2

    원님과 말래(馬來)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두천리(斗川里) 두천(斗川)이란 지명(地名)은 옛날 이곳은 한양(漢陽)으로 오는 길인 12령 길목으로 이 마을을 경유하여 간다. 옛날 고을 원님이 부임(赴任)할 때는 반드시 이 통로(通路)를 거쳐가는데 어느 날 원님이 말(馬)를 타고 지나가다가 날이 저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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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3

    이심소(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심소의 위치는 근남면 구산 3리 굴구지 탑평(塔坪) 마을 건너편 왕피천 중류에 물이 깊어 소(沼)를 이루고 있다. 1780년경 탑평(塔坪) 마을에 사는 지동지(池冬至)라는 분이 아침식사 전에 소(沼) 맞은편에서 건너다보니 인척이 있어 소리치며 갔더니 암반(岩盤)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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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4

    이울(李蔚)과 이울(以蔚)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울”은 한글 또는 발음이 동명(同名)으로 전자(前字)가 맞니 후자(後字)가 맞니 서로 의견이 상반되는 마을로 원남면 신흥(新興) 2리 자연부락(自然部落)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이대인(李大仁)이란 현령(縣令)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마을을 개척(開拓) 당시에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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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5

    인현왕후와 양성법사(養性法師)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조선조 숙종대왕의 왕후인 인현왕후 민씨(閔氏)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따님으로 30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인경왕후의 다음 왕비로써 대비전에 친지 중전으로 간택한 왕후이며 가례를 지낸지 6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으므로 크게 걱정하여 스스로 왕께 후궁을 간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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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6

    일출봉(日出蜂)과 황장군의 묘(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일출봉(日出蜂)은 평해읍 오곡리와 월송리를 경계로 한 우뚝 솟은 산이다. 해발 131미터의 높이로 산봉우리가 상양하고 아담하며 동쪽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어 예로부터 “해뜨는 산” 또는 “달보는 산”이라 칭한다. 동쪽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월송정을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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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7

    임란(壬乱) 때 생긴 지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덕천리 마분동은 임진왜란 때 전쟁터로 생긴 지명이 전래되고 있다. 분투골(奮鬪谷) 1593년 조선조 선조 때 영동지방에서 가장 치열했던 임란 의병전적지로 당시 김언륜 장군이 왜적과 역전분투로 싸워 분하게 전사한 장소로 분투골(奮鬪谷)이라 한다. 벌이개(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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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8

    입석동(立石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울진읍 신림리마을 입구 도로 옆에 양쪽으로 큰 바위가 있고 두 개의 바위 가운데 조그마한 돌이 뾰족하게 서 있어 입석(立石)이라 하는데 즉 돌이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는 뜻으로 입석동(立石洞)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옛날 전설(傳說)에 의하면 이 뾰족한 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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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89

    고파목(古坡峴)·구만리(九萬里)·청고개(靑皐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임진(壬辰)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癸巳)에 울산(蔚山)으로부터 상륙한 왜병의 전초병이 울진현성(蔚珍縣城) 고산성(古山城)으로 가는 고파현(古坡峴) 길 산모퉁이에서 어떤 노파(老婆)에게 길을 물으니 그 노파가 대답하기를(당시 기상이 안개가 자욱했음) 실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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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0

    장고진사댁(長鼓進士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조선조 헌종(憲宗)때 영양남씨(英陽南氏) 남응대(南應大), 남응협(南應夾), 남응태(南應泰) 3형제가 모두 총명하였고 학문이 뛰어났다 한다. 그중에서도 둘째인 남응협(南應夾)이 더욱 뛰어 났는데 3형제가 같은 해 진사시(進士試)에 모두 응시(應試)하였는데 형(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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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1

    장군바위(將軍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기성면 방율리 감율(甘栗) 마을 골짜기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자태(姿態)가 웅장하고 바위 위에 말발자국이 선명(鮮明)하게 찍혀 있다. 옛날 매년(每年) 여름철이면 이 동네 소 등 가축(家畜)들이 많이 죽어 속수무책이던 중 동네 동수(洞首)의 꿈에 한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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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2

    장대룡(張大龍)장군의 충절과 개남총(介南塚)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장대룡(張大龍)장군은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출생하였으며, 1618년 이조 광해군 10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관으로 삼척첨사와 경흥 방어사로 지내셨다. 장군은 1636년 인조 대왕이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아래 삼전도에서 청태종(淸太宗)에게 항복하고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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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3

    장수(將帥)바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 장수바위는 원남면 매화(梅花) 1리 부락 동쪽산등(東向山嶝)에 위치한 바위로 옛날 시기미상(時期未詳)이나 한 장수(將帥)가 목이 말라서 샘물을 찾던 중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하여 이 바위를 장수바위라 전래(傳來)되는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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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4

    잿골과 우암(尤庵)安先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잿골은 북면 부구 2리 마을(中興富)을 개척할 때 처음 개척했던 지명(地名)으로 옛날 흥부역(興富驛)이 주재했던 중심지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선생이 1671년에 거제(巨濟)에 유배당하여 동해안을 지날 때 이곳 “잿골” 역소(驛所)에서 관(官)들의 호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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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5

    저승으로 가는 길목(저승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면 전곡리에 저승골이라고 하는 매우 험한 골짜기가 있다. 울진군과 봉화군이 경계하는 협곡 중간쯤에 위치하고 협곡으로 흐르는 냇물은 굽이굽이 돌아 낙동강으로 이어지면서 절경을 이룬 곳이다.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저승골을 마주하는 강 건너 언덕배기에 다 쓰러져가
    출처 : 유교넷
  • 326596

    저울대 형국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저울대형 마을은 북면 고목 3리 시목동(柿木洞)으로 지형과 주위가 좋아 뒤와 옆으로 큰 들이 있고 행로가 앞에 놓여 교통이 적합한 마을로 감나무가 많아 시목동(柿木洞)이라 부른다. 이 마을은 동산을 가운데 두고 동편에는 담양전씨(潭陽田氏)가 수백 년 동안 집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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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597

    적송(赤松)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울진에서 자생(自生)하는 적송(赤松)은 일명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른다. 적송(赤松)은 일반 소나무와 달리 자생분포(自生分布)가 한정된 희소목(稀少木)으로 1992년 울진군목(蔚珍郡木)으로 지정(指定)된 소나무이다. 1682년 조선조 인조(仁祖) 6년 병진(丙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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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성세(朱星世)가 대호(大虎)를 생포한 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주역사(朱力士)는 울진군 북면 소곡 1리 소야마을(蘇野村) 출신으로 강릉 부사(江陵 府使) 의(懿)의 후손으로 태어나자마자 방안을 걸어 다니고 삼칠(21일)이 지난 뒤에는 빨랫돌을 들어 옮겨 놓을 정도로 기운이 셌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잘 먹지 못하여 타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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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대(酒泉台)와 소고산(小孤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근남면 행곡리(杏谷里) 주천대(酒泉台)와 소고산(小孤山)은 옛날 한줄기 산맥이 이어져 있었고 마을 앞 냇물을 셈시마을 쪽으로 돌아 흘렀다 한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651년 신라(新羅) 진덕왕(眞德王) 5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불영사(佛影寺)를 창건할 때 절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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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포(姑浦)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 마을은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로 국도(國道)가 가로놓여 있는 갈령(葛嶺) 아래 동해안(東海岸)에 접(接)한 마을로 중앙(中央)에 흐르는 도랑을 경계(境界)로 하여 북쪽은 강원도, 남쪽은 경상북도로 한마을을 갈라 각각(各各) 17호(戶)의 가구(家口)를 가진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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