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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6601

    지당(池塘)과 샘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靑皐洞)에 옛날 조그마한 못(池塘)이 있었는데 전해오는 전설(傳說)에 의하면 마을의 지세(地勢)가 용(龍)의 모양으로 뒷산은 용의 몸체이고 못은 입(口) 또는 눈(目)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 못에서 조금 떨어진 왼쪽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출처 : 유교넷
  • 326602

    지당(池塘)위에 자리잡은 지품(池品)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이 마을은 옛 못(池塘)터에 세워진 자연부락으로 원남면 기양(基陽) 1리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은 매화천(梅花川)이 흐르고 서쪽은 소령산(小靈山) 지맥(支脈)인 망방산(望芳山) 마을 뒷산이 된다. 이 마을은 1658년경 평산신씨(平山申氏)가 개척한 마을이라 전해
    출처 : 유교넷
  • 326603

    진화봉(鎭火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울진읍 읍남면 토일봉 남쪽 산봉우리에 옛날부터 토병(土甁) 1개를 묻어 놓고 넓은 돌로 뚜껑을 덮어 놓은 곳이 있었다. 이 봉우리를 진화봉(鎭火峰)이라 한다. 어느 시대부터 행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1894년(조선조 고종(高宗) 31년)까지는 매년 10월에 군수가
    출처 : 유교넷
  • 326604

    천량암(天糧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전국에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하던 중 잠시 행곡리 천량산에 자리를 잡아 절을 짓고 수행하였다. 그 곳은 마치 병풍을 둘러쳐 놓은 듯한 암석 구멍에서 조석(朝夕)으로 쌀(米)이 나와 수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한다. 그 후 원효대사가 이곳을
    출처 : 유교넷
  • 326605

    천작(天作) 남대문(南大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남대문(南大門)은 북면 나곡리 석호동(石湖洞)과 나실동(羅室洞)간 해안이 접한 곳에 있으며 이문(門)은 해안 서편 양쪽 암석이 칼로 자른 듯이 천작(天作)으로 이루어진 큰돌문(大石門)이다. 이 큰돌문은 두 사람이 줄지어 마음대로 지나갈 수 있는 통로(通路)로 길이
    출처 : 유교넷
  • 326606

    천제당(天祭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서면 덕거리(德巨里) 대봉전(大鳳田) 마을 앞산 독미산에 천제당(天祭堂)을 짓고 동네에서 3년마다 한번씩 전동민(全洞民)이 모여 천신(天神)에게 제사(祭祀)를 올리는데 동민(洞民)의 태평무사(太平無事)와 풍농(豐農)을 기리고 재앙(災殃)이 없기를 기원(祈願)하는 천제
    출처 : 유교넷
  • 326607

    천지(天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근남면 구산(九山) 3리 굴구지 마을 뒷산에 못이 있어 이 못을 천지(天地)라 불러왔다. 이 마을을 개척(開拓)한 지(池)씨가 부자(富者)로 살았는데 어느 날 노승(老僧)이 찾아와서 시주(施主)를 청할새 지씨(池氏)는 퇴비장에 가서 거름을 퍼주면서 내쫓아내니 노승
    출처 : 유교넷
  • 326608

    천지소(天地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신화 2리 화동(花洞) 서쪽 산꼭대기(山頂)에 위치한 소(沼)로 일명 “쇠물탕수”라 부른다. 이 소(沼)의 물은 사시(四時)에 마르지 않으며 해발(海拔) 500m의 높이로 면적은 약 200평이며 생성연대(生成年代)는 알 수 없으나 전설(傳說)에 의하면 옛날
    출처 : 유교넷
  • 326609

    최사룡(崔士龍) 진사(進士)와 몽조(夢兆)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최진사는 1564년(명종 17년 申子) 3월 15일 울진군 북면 덕천리 마분동 팽나무 거리 촌에서 최윤택(崔潤澤)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진사는 자(字)는 사룡(士龍 : 일명 四龍으로 호(號)는 몽와(夢窩)이며, 대사간(大司諫) 복하(卜河)의 후손이다. 조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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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0

    칠보산(七寶山)의 유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북면 부구 1리에 위치한 칠보산은 매봉산(鷹峰山) 한 줄기 끝에 동해(東海)로 바라보는 옛 흥부장터의 뒷 동산이다. 이 산은 매가 보배를 안고 막 하늘로 나는 형국(形局)을 이루고 있어 이 산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은 동해 일출을 맞는 “매방울”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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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1

    만개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만개헌집(晩開軒集) 晩開軒 權遇準의 문집. 石印本, 跋: 權正諡(1978),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22.2×15.3㎝, 有界, 10行 24字, 註雙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 29.1×18.0㎝. 후손 權泰元‧權宗華‧權五成 등이 힘을 모아 1978년에 간행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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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2

    西遊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丙子唱榜日陪仁政殿親臨,謝恩日入侍熙政殿,十月日以新恩趨訪楊州牧使李(勉求)留宿臨別贐之以帽次錢四鏹銅因吟,丁丑三月日覲春邸(後追尊翼宗)入太學因吟咏聖化, 南谷權公以丙丁節義因多士上疏贈吏議縉紳章甫莫不賦詩聯什而余於泮中曾寫遺稿一秩步韻敬次,泮長李(勉求)設陞補初杪行相揖禮余參曺司因吟一律,丙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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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3

    湖西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利川店舍逢李(鳳來)爲具酒肴勸余飮之醉後因以拙吟,登二樂樓下登濯纓臺因以愚夫之感感吟, 過忠州彈琴臺吟一絶, 贈敦山主人李(寅騏), 和贈權(守經)思慕堂韻二句, 登白華山(壬辰六月濡滯泰冊聞白華山之勝而値熇遇潦未之矣日雲開靑出遂與益姪扶策理屐上太乙菴陟御風臺放于峯臺則山之最高巓也少選休憩從容聘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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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4

    關東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次水晶錦江亭韻(今次原韻本是退溪先生錦江亭韻而於晶翁越中之行翠竹翁乃步老先生韻以贈之又足六絶于(水晶)下晶翁自越委在袖示之而信宿請和先次原韻而次次步韻), 附原韻(水晶), 次六絶韻, 附原韻, 次淸冷浦, 附原韻, 次渡錦江(水晶), 附原韻(水晶), 次奉審莊陵, 附原韻, 次拜忠臣壇, 附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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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5

    南鄕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立春,老先生文集中有壬戌立春韻而適當是歲故因以敬次,夏五月日大旱後大雨沙汰挽古所無而又大旱地主行祈雨祭於太白山聞以感吟, 秋夜喜晴, 冬至日咏邵康節冬至吟因以敬次, 臈雪, 守歲吟, 守歲夜咏燈火, 謹次李府伯(勉求)贈從祖父韻,丙子恩行日到河上隅吟, 送靑松閔妹婿幼貞歸家, 雨夜見茅屋滲漏蹶起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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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6

    上權內翰(敦仁)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藝文館 權敦仁(1783~1859)에게 올린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전한 내용이다. 중중의 친척들이 大寒 시절에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내지만 형제들이 별 탈 없는 것이 위로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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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7

    上李待敎(裕元)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예문관대교 李裕元(1814~1888)에게 올린 편지이다. 이유원은 본관이 慶州, 자는 景春, 호는 橘山·默農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급제, 검열·대교를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명망 있는 직책에 선발된 것을 축하하며, 남도의 관찰사로 부임하기를 기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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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8

    答醉竹宗丈(思浹)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權思浹(1753~1832)에게 답한 편지이다. 권사협은 본관이 安東, 자는 士善‧說甫, 호는 醉竹, 奉化 닭실[酉谷]에 거주하였으며,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선조의 墓道文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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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19

    答漱石李丈(野淳)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李野淳(1755~1831)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야순은 본관이 眞城, 자는 健之, 호는 廣瀨, 李滉의 9세손이다. 용궁 향시에 응했으나 과장이 문란함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고, 瀨石亭을 중건하여 이황의 저술들을 수집하여 연구하였다.경기전참봉‧국장도감감조관‧장악원주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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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0

    答山齋琴丈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琴養純(1752~l833)에게 답한 편지이다. 금양순은 본관이 奉化, 자는 善吾, 호는 羅月山齋이고, 奉化에 거주하였다. 李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깊어 사우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이 편지는 桐山祠 제향식에 왕림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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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1

    答芝厓金丈(是瓚)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金是瓚(1754~1831)에게 답한 편지이다. 김시찬은 본관이 光山, 자는 黃中, 호는 一一齋이다. 金坽의 후손으로 1792년(정조 16) 경모궁 전례에 관한 일로 영남 유생들과 같이 상경하여 소를 올렸다. 이 때 왕이 김령의 6대손임을 알고 특명으로 동몽교관에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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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2

    答後溪李丈(頤淳)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後溪 李頤淳(1754~1832)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이순은 본관이 眞城, 자는 穉養, 호는 後溪, 安東에 거주하였다. 1780년(정조 4) 사마시에 합격하고, 효릉참봉‧선공봉사‧군자감직장‧의금부도사‧정릉직장 등을 역임하였다. 1806년(순조 6) 은률현감에 임명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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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3

    答鶴棲柳丈(台佐)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鶴棲 柳台佐(1763~1837)에게 답한 편지이다. 류이좌는 본관이 豐山, 자는 士鉉, 호는 鶴棲이다. 정조의 명으로 ‘너는 나를 도우라’는 뜻으로 ‘이(나 台)좌’로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문과에 급제한 후 부여군수‧안변부사‧김해부사‧가선대부‧오위도총부부총관‧한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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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4

    答俛齋李丈(秉運)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俛齋 李秉運(1766~1841)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병운은 본관이 韓山, 자는 際可, 호는 俛齋, 李象靖의 손자이다. 家學을 이었으며 순조 때 현감을 역임하였고, 청백리로 이름이 있었어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이 편지는 先祖遺事의 序文을 써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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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5

    上定齋柳先生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定齋 柳致明(1777~1861)에게 올린 편지이다. 류치명은 본관이 全州, 자는? 誠伯, 호는? 定齋이다. 남한조의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수찬‧대사헌‧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장헌세자의 추숭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가 대사간 박래만의 탄핵으로 평안도 상원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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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6

    答權水晶(1828)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權載大(1778~1859)에게 답한 편지이다. 권재대는 본관이 安東, 자는 汝車, 호는 晶山이고, 奉化 닭실[酉谷]에 거주하였다. 1795년(정조 19) 참봉으로 제수되고, 선전관을 거쳐서 1851년(철종 2) 공조참판에 올랐다. 이 편지는 편지와 시를 보내준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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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7

    又答(1829)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權載大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 준 시는 집사의 평소 충정이 장편에 모두 드러나 있으니 매우 훌륭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시에 和韻하여 올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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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8

    答琴正言(詩述)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正言 琴詩述(1783~1851)에게 답한 편지이다. 금시술은 본관이 奉化, 자는 繼聞, 호는 梅村이다. 李野淳의 문인으로 1844년(헌종 10)에 문과 급제, 감찰과 전적을 거쳐 1851년(철종 2)에 정언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 주셔서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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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29

    答權參奉茶山翁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參奉 權載鈺(1783~1852)에게 답한 편지이다. 권재옥은 본관이 安東, 자는 文相, 호는 茶山이다. 1822년(순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여러 번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것과 從孫이 관직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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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0

    與權疎軒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疎軒 權載綸(1785~1844)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재륜은 본관이 安東, 자는 聖能, 호는 疎軒이다. 학덕이 높이 유림의 추앙을 받았다. 저자의 仲兄이 서울에서 관직생활하면서 연이어 번을 들고 있기 때문에 새해가 되어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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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1

    答李顯可(彙絅)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李彙絅에게 답한 편지이다. 부탁한 일을 海底와 沙村의 친구 金모에게 부탁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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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2

    答李正言心叟(彙圭)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正言 李彙圭(1786~1854)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휘규는 본관이 眞城, 자는 心叟, 호는 西溪이다. 1831년(순조 31) 문과에 급제하여성균관전적‧통례원통례‧병조좌랑‧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홍문관교리‧집의‧동부승지 등을 거쳐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아우가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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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3

    答金承旨(建銖)公立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承旨 金建銖(1790~1854)에게 답한 편지이다. 김건수는 본관이 義城, 자는 公立, 호는 晩悔이다. 1830년(순조 30)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부사‧승지 등을 지냈다. 先祖의 碑誌文을 써서 보내준 것은 매우 감사하여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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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4

    答金進士(輝鍾)宗得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進士 金輝鍾(1788~1862)에게 답한 편지이다. 김휘종은 자가 宗得, 호는 山淵, 본관은 宣城이다. 1825년(순조 2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아이들이 홍역을 앓고 있고, 마을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사방이 참혹하다고 하였다. 서울 소식을 듣지 못해 매우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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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5

    與權守眞翁學肇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守眞翁 權命夏(1792~1856)에게 보낸 편지이다. 딸의 혼례로 날마다 골몰하여 세상 사는 재미가 없고, 합근례에 쓰이는 잔은 古家의 보물이니 잘 쓰고 온전하게 돌려 드리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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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6

    與金正言穉淸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正言 金鎭河(1786~1865)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진하는 자가 穉淸, 호는 篁巖, 본관은 咸昌이다. 1841년(헌종 7)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남선생의 문집을 간행하여 반질하였다고 들었는데,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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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7

    答金進士平叟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進士 金正銖(1799~1860)에게 답한 편지이다. 김정수는 본관이 義城, 자는 平叟이다. 1827년(순조 2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편지를 받고 그쪽의 안부를 듣게 되어 고맙다는 것과 자신은 늙고 쇠약하여 겨우 살아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先祖가 追贈된 것이 영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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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8

    與權大而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權邦度(1798~1876)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방도는 본관이 安東, 자는 大而, 호는 蠹窩이고, 奉化에 거주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많은 저술을 남겼다. 晶山 權載大(1778~1859)와 定齋 柳致明(1777~1861)이 유배에서 풀려난 것을 축하하고, 아울러 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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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39

    答金承旨德樞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承旨 金德樞에게 답한 편지이다. 大宗舍를 중건하는 일은 매우 큰일인데 조만간 완공할 것이라 하니 축하드린다고 하였다. 자신은 늙고 쇠약한 몸으로 그럭저럭 지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仲兄이 오랫동안 관직에 있다가 체직되어 돌아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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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0

    賀宜寧倅洪應汝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洪應汝가 宜寧縣監으로 부임한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유념해서 선정을 베풀어 명관으로 이름이 남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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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1

    與金長城(祖淵)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長城으로 부임하는 金祖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임을 축하하며 직접 전별하려고 하였으나 至親의 喪事를 당하여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평소 보살펴 주심을 생각할 때 더욱 죄송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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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2

    與李注書(象敬)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注書 李象敬에게 보낸 편지이다. 성균관에서 이별한 후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을에 돌림병이 있어서 매우 조심하느라 오랜 여행의 피곤함도 모를 지경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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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3

    與李進士(兢淵)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進士 李兢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로 이사한 곳은 좋은 곳을 얻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우와 더불어 祠堂을 짓느라 골몰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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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4

    與李義興(龜遠)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義興현감으로 부임한 李龜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쪽 고을로 부임하게 된 것을 축하하고, 한 번 찾아 주어서 회포를 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올해가 선친의 甲年인데 집사가 또한 同甲인 것을 생각해 보니, 효도를 하지 못하는 마음이 슬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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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5

    答李經歷(景彦)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經歷 李景彦에게 답한 편지이다. 서도의 수령으로 부임한다는 것을 듣고 축하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곳은 옛 宮城이 있는 도회지로 중국 사신이 왕래하는 길가에 있고, 犧人이 제공하는 것과 기녀들에게 빠져서 방탕해지기 쉬우니 마음을 확고하게 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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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6

    姜山陰延諡日通告後奉賀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山陰현감 姜延에게 보낸 편지로 강연의 선조 姜恰(1602~1671)이 諡號를 받게 된 것을 축하하는 편지이다. 강흡은 호가 潛隱이고, 병자호란 때 三田渡의 치욕을 당하자 太白山 아래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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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7

    答陵洞通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太師始祖 묘소가 豪雨를 입어 사태가 났기 때문에 보수공사를 하려고 각처에 부조를 청하기 위해 陵洞에서 보낸 通文에 답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하였다. 통문을 받고 마땅히 달려가서 성묘를 해야 하지만 집안에 喪事가 있어서 갈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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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48

    答鶴山洪(始衍)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鶴山 洪始衍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준 시에 和韻을 하여 보내지만 淸案을 더럽힐까 두려우니 한 번 보고 항아리 덮개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6649

    旺巖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봉화에 있는 旺巖에 대한 기록으로, 산도 바위로 되어 있고, 계곡도 바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旺巖이라 한다고 하였다. 위치는 동서로 태백산과 소백산이 있고, 문수산의 북쪽이며 학가산의 남쪽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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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650

    石溜亭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준
    石溜亭을 지은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의 6대조 부호군공이 터를 잡은 후 여러 대를 지나면서 정자를 지을 뜻은 있었으나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몇 칸을 지었는데, 정자의 규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어서, 당나라 사람의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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