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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6951

    哭仲子鼎鎭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1882년(고종 19) 둘째아들 朴鼎鎭의 발인 전날에, 자식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비통한 심경을 읊은 비교적 긴 분량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26952

    別洞 尹祥(1373~1455)의 행장이다. 윤상의 자는 實夫이고, 호는 別洞이며, 본관은 예천이다. 初名은 哲이고, 父는 善이다. 1392년(태조 1)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396년(태조 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421년(세종 3)에 大司成兼博士로 세자 文
    출처 : 유교넷
  • 326953

    睡軒權先生遺事輯畧 2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睡軒 權五福(1467~1498)의 일대기를 모아서 간략히 기록한 글이다. 권오복의 자는 嚮之이고, 호는 睡軒이며, 본관은 예천이다. 父는 善이고, 母는 韓山李氏이다. 권오복은 經書와 諸子書를 두루 익혔고, 弱冠의 나이에 문장이 뛰어났으며 學行은 高潔하였다. 1486년
    출처 : 유교넷
  • 326954

    茅庵張公行狀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茅庵 張瑱(1635∼1707)의 행장이다. 장진의 자는 君玉이고, 호는 茅庵이며, 본관은 仁同이다. 父는 元慶이고, 母는 안동권씨이다. 1645년(인조 23) 11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堂叔 菊巖 張裕慶에게서 수학하였다. 1665년(현종 6) 문과에 급제하고, 16
    출처 : 유교넷
  • 326955

    四勿齋宋公行狀 3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四勿齋 宋相天(1766~1804)의 행장이다. 송상천의 자는 敬一이고, 호는 四勿齋이며, 본관은 礪山이다. 父는 洪奎이고, 母는 平山申氏로 申弘岳의 딸이다. 1766년(영조 42)에 醴泉에서 태어났다. 9세 때 󰡔堯典󰡕을 읽고 ‘朞三百’을 연구하여 ‘日月九道辨’을
    출처 : 유교넷
  • 326956

    訥窩處士柳公行狀 4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訥窩 柳岡祚(1769~1834)의 행장이다. 류강조의 호는 訥窩이고, 본관은 풍산이다. 父는 宇春이고, 母는 豊穰趙氏이다. 그는 臨汝齋 柳(1730~1808)에게 나아가 家學의 요체를 듣고, 선기옥형[璣衡]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으며, 󰡔中庸質疑󰡕에 대해 질의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6957

    承政院右承旨尤溪朴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尤溪 朴守緖(1567~1627)의 행장이다. 박수서의 자는 景承이고, 호는 尤溪이며, 본관은 咸陽이다. 父는 芝이고, 母는 密陽朴氏이다. 박수서는 숙부에게서 처음 수업을 들었다. 1588년(선조 21) 弱冠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
    출처 : 유교넷
  • 326958

    從先祖工曹參判遯愚堂公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從先祖 遯愚堂 朴廷薛(1612~1693)의 행장이다. 박정설의 자는 汝弼이고, 호는 遯愚堂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玲이고, 母는 安東權氏이며, 生父는 瑛이고, 生母는 慶州李氏로 李榮門의 딸이다. 11세 때 浪叟公 璨에게 글을 배우고, 15세 때 道南書院에서 󰡔
    출처 : 유교넷
  • 326959

    崇禎處士守黙齋朴公行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守黙齋 朴成敏(1603~1666)의 행장이다. 박성민의 자는 聖叟이고, 호는 守默齋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榮先이고, 母는 晉州姜氏이다. 그는 독서를 하기 시작하면서 고인의 학문에 뜻을 두고, 깊이 연구하면서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636년(인조 14) 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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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0

    司諫院正言閒睡堂朴公行狀 1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閒睡堂朴趾慶(1716~1784)의행장이다. 박지경의 자는 美餘이고, 호는 閒睡堂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朴成采이고, 母는 驪興李氏로 李湜의 딸이다. 그는 仙溪 權墉에게서 수학하였고, 1762년(영조 38) 문과에 급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시된 한림소시[翰
    출처 : 유교넷
  • 326961

    仙洞處士朴公行狀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朴民慶(?~1782)의 행장이다. 박민경의 자는 善有이고,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成玉이고, 母는 安東權氏이다. 그는 남야 박손경의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매우 공손하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繼母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어느 날 서울에 한 벼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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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2

    昌陵參奉退寢軒朴公行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退寢軒 朴漢東(1734~1807)의 행장이다. 박한동의 자는 伯宗이고,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孫慶이고, 母는 豊山柳氏이다. 그는 遺逸로 천거된 南野 朴孫慶의 아들로, 家學의 요체를 이어받았고, 독서를 좋아하여 간혹 먹고 자는 것을 잊을 지경이었다. 1782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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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3

    贈通訓大夫軍資監正智堂朴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智堂 朴萬興(1678~1742)의 행장이다. 저자는 지당 박만흥의 후손 朴基元의 부탁으로 행장을 짓는다고 하였다. 박만흥의 자는 興汝이고, 본관은 密城이며, 父는 英玉이고, 母는 月城金氏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濂閩의 성리서가 아니면 책을 읽지 않았고, 騈儷文에 능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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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4

    成均進士荷叟先生家狀 3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荷叟 朴箕寧(1779~1857)의 가장이다. 박기녕의 자는 穉承이고, 본관은 함양이며, 父는 漢龍이고, 母는 豊山柳氏이다. 그는 宗叔 退寢軒 朴漢東에게 나아가 󰡔논어󰡕를 배웠다.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고, 1819년 (순조 19)에 성균관에서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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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5

    先考僉知中樞府事府君家狀 1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아버지 朴弼寧(1796~1872)의 가장이다. 박필영의 자는 康叟이고, 호는 後齋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漢遇이고, 母는 永川李氏이다. 그는 宗叔 退寢軒 朴漢東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일찍이 古人의 ‘인은 상서로운 바람타고 날고, 덕은 온화한 기와 함께 노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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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6

    先妣淑夫人豊山柳氏行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어머니 柳氏(1792~1842)의 일대기를 적은 글이다. 류씨의 아버지는 西厓 柳成龍(1542~1607)의 후손 柳貞祚이고, 어머니는 義城金氏이다. 류씨는 겨우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류씨를 길렀다. 19세 때 朴弼寧에게 시집왔다. 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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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7

    悉直郡王祭壇碑銘(幷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이 글은 悉直郡王陵을 개축하고 제단을 세우면서 지은 글이다. 悉直郡은 오늘날 삼척지역을 말한다. 저자는 悉直郡王의 후손 金興一의 부탁으로 이 글을 짓는다고 하였다. 이 글은 800년 이상의 오랜 세월에 실직군왕과 왕비의 봉분을 잃어버린 사실과 후손들이 삼척의 史直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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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8

    長陵參奉杏堂張公墓誌銘(幷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杏堂 張萬杰(1654~1717)의 묘지명이다. 장만걸의 자는 器彦이고, 호는 杏堂이며, 본관은 仁同이다. 父는 裕慶이고, 母는 함양박씨이다. 그는 어려서 󰡔소학󰡕을 익히면서 의문 나는 부분을 자주 질의하였고, 항상 새벽마다 향을 사르고 󰡔朱子書󰡕를 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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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69

    德陵參奉慶州李公墓碣銘(幷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德陵參奉 李昌孝의 묘갈명이다.저자는 이창효의 덕과 행실은 후세 전할 만하지만, 난리를 겪고 세월이 오래되어 징험할 수 없다고 하고, 이에 선대와 자손들의 이름과 관력만을 기록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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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0

    成均進士三稀堂李公墓碣銘(幷序) 2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三稀堂李張英(1612~1686)의묘갈명이다. 이장영의 자는 直卿이고, 호는 三稀堂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父는 碩坤이고, 母는 公州李氏이다. 1612년(광해 4)에 태어나서, 1682년(숙종 8) 70의 나이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이장영은 70세까지 산 것과 7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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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1

    贈童蒙敎官全孝子(震光)墓碣銘 3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至誠으로 신명을 감동시킨 일로 童蒙敎官에 증직된 全震光(1685~1756)의 묘갈명이다. 그의 字는 東滿이고, 本貫 竺山이며, 父는 聖源이고, 母는 達城徐氏이다. 전진광이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신 일을 서술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매일 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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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2

    朴訥(1448~1528)의 墓碣後識이다. 박눌의 자는 如愚이며, 호는 杏亭이고, 본관은 함양이다. 父는 紹宗이고, 母는 安東權氏이다. 저자는 박눌의 다섯 아들 모두가 과거에 급제한 일과 중종이 賜祭한 일을 서술하고, 아울러 후손의 이름과 관직을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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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3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權相翊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326974

    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李中均이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다.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326975

    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柳東濬이 지은 저자의 묘지명이다.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자세하다.
    출처 : 유교넷
  • 326976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만사를 남긴 사람은 張錫龍, 權人夏, 權璉夏, 金輝鳳, 權大紳, 趙朋遠, 李㙫, 黃蘭善, 宋浩淵, 柳止鎬, 李晩寅, 李絧在, 內弟 柳道稷, 權經夏, 黃肇夏, 邊相勳, 李炳商, 李晩洙, 內從弟 柳道禼, 張禹鎭, 蔡周馨, 朴鼎基, 權敦淵, 朴禧壽, 安昌烈, 門下生 李善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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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7

    後叙 4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權相圭(1874~1961)가 지은 후서이다. 박주종의 遺文이 간행되지 못한 지 45년 만에 간행된다고 하였다. 박주종의 문장은 典雅하고 꾸밈없으며, 학문은 요‧순 이래로 송‧명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서적을 두루 관통했다고 하였다. 三政을 논한 대책문은 국가를 경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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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8

    後叙 4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族孫 朴衍洙가 지은 후서이다. 내용은 권상규가 지은 후서와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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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79

    後叙 4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주종
    1956년에 族孫 朴禧洙가 지은 후서이다. 내용은 권상규가 지은 후서와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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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0

    동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동소집(桐巢集) 桐巢 金重夏의 문집. 木版本, 跋: 李載基(1904),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9.3×15.4㎝,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0×20.3㎝. 1904년 그의 손자 秉吉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李載基의 발문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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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泮中九日吟(1848), 偶直景慕宮有感, 送趙上舍(鼎五)還鄕, 又步前韻, 豊安君柳公(相祚)輓, 輓李之敬, 次族祖上舍(相鏞)壽席韻, 次族叔上舍(宗煜)壽席韻, 輓族叔上舍(宗熙), 輓申景承(光烈), 甲辰生朝次書巢族叔(宗烋)韻, 輓金丈(永儉), 立春謾詠(1851), 輓族叔上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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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2

    辭敦寧府都正疏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돈녕부도정에 임명되자 사양하며 올린 상소이다. 저자는 관직에 오른 지 수십 년이 되었으나, 한번도 文陛에 나가 충성을 다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돈녕부도정에 제수되었으니, 즉시 사은숙배하고 정성을 다해 관직을 살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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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3

    與權參判(載大)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영광으로 귀양 가는 권재대(1778~1859)를 위로하며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唐介가 殿中侍御史로 재직할 때 당시의 재상인 文彦博과 척신 張堯佐를 비판하다가 英州 別駕로 유배당했다. 이때 梅堯臣과 李師中이 시를 지어 그를 격찬했던 일’을 인용하면서 시를 지어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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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4

    與族弟仲車(重載)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족제인 김중재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자기 일족들이 과거에 오르고도 관직을 제수 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이어 성묘가 지연되고 있는데, 이는 날씨도 춥고 옷도 얇아 어쩔 수 없는 사정이니 기한에 연연하지 말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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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5

    答李憲可(得魯)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사위인 이득로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득로가 四勿箴書法을 빌려달라고 했던 것에 대해, 마을의 누군가가 빌려가서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외손자가 서울에 간 뒤로 소식을 알 수 없으니 알려 달라는 것과, 조만간 梧川 文接을 열 계획이니 손자가 참석했으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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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6

    寄季兒奎獻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과행에 오른 아들 규헌에게 보낸 편지이다. 과거 공부에 전념하되, 헛되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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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7

    又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과거에 급제한 아들 규헌에게 보낸 편지이다. 과거에 급제한 것은 축하할 일이나 현재 큰 흉년이 들었으니, 과거급제를 축하하는 행사를 최대한 간략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과 서울에서 고향인 美洞에 도착하는 길일을 뽑아 알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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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8

    朔日謁廟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삭일과 망일에 謁廟하는 데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저자는 삭일에는 주인이 예복을 갖추고 사당에 들어가 감실과 床卓을 청소하고, 분향 展拜하는 것이 좋으며, 망일에는 예를 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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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89

    忌日行祀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는 기제사를 지낼 때, 제주가 초헌을 올리고 나서 곡을 하고 주위 모두 곡을 하는 것이 혹 조상신이 불편해 할 것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신주를 내고 강신할 때와 신주를 還安할 때 곡을 하는 것은 좋지만, 초헌 이후에는 애도와 곡성을 억제하여 조상신이 편하게 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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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0

    烈孝鷄說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의성 사족의 집에서 기르던 닭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사족의 집에서 수탉 1마리와 암탉 3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이웃집 수탉이 와서 그 집 수탉을 죽이고 암탉을 차지하려고 하였다. 이에 암탉 2마리는 그 수탉을 따라 갔으나, 다른 1마리는 수탉을 따라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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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1

    一尊聖道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유학을 존숭했던 사례를 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태조가 소를 제물로 바치는 태뢰로서 공자에게 제사지낸 일이나, 당나라 태종이 국자감에 행차하여 석전제를 구경하고 공영달에게 󰡔효경󰡕을 강연케 했던 일 등 중국 역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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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2

    二崇儒術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유학을 장려했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고조 때 육가가 󰡔新語󰡕를 저술한 사례에서부터, 무제가 오경박사를 설치했던 일, 성제가 태학생도를 3천명까지 늘렸던 일등을 사례로 들고 있다. 이어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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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3

    三勵名節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명예와 절의를 드높였던 인물들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고조가 丁公을 참수한 일, 朱雲이 난간을 부러뜨리면서까지 황제에게 직간한 일, 董宣이 공주를 모욕했던 일 등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다. 이어 名節의 선비가 危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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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4

    四納諫諍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간쟁과 충언, 건의 등을 받아들였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고조가 戍卒의 말을 받아들어 轉圜을 행했던 일, 한나라 문제 때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와도 싫증내지 않고 받아들일 말은 받아들이고 채용하기 어려우면 덮어두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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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5

    五崇節儉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검소한 삶을 尊崇했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고조 때 蕭何가 未央宮을 화려하게 지으면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궁궐을 짓고(그 때문에 더 화려하게 짓기 어렵다는 의미), 후세로 하여금 이보다 더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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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6

    六愼選擧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관리 임용에 신중했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文帝 때 河南守 吳公이 賈誼를 천거하자 관례를 깨고 太中大夫라는 높은 관직을 제수했던 일, 무제가 현량과를 시행하여 동중서를 등용하고 후대하는 한편, 郡國에 조서를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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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7

    七定賦稅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시행했던 조세제도 중 중요한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문제가 30분의 1세를 시행한다는 조칙을 내렸던 일, 무제가 국가재정이 고갈되자 염철 전매를 시행했던 일, 宣帝가 서울에 상평창을 설치하여 穀價를 조절했던 일, 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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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8

    八敎儲貳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태자를 교육했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광무제가 東海王 陽을 태자에 봉하고 그 사부를 신하들에게 천거하게 하자 모두 태자의 외삼촌을 거론하였다. 이에 張佚이 정색하며 반대하자, 이를 가납하고 장일을 太傅에 임명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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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999

    九親宗族 5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宗室을 대우했던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장제 때 北海王 睦이 황궁에 조회하러 가는 사자에게 자신이 음악과 여색, 사냥을 즐긴다고 대답하게 한 일, 劉宋의 문제 때 彭城王 義康을 領尙書事에 임명하면서 근신하고 절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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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00

    十擇輔相 5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중국 역사에서 재상 임용과 관련한 사례를 들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다. 즉 한나라 고조가 蕭何를 相國으로, 혜제가 曹參을 승상으로 등용했던 일, 효문제가 황후의 동생인 竇廣國을 재상으로 삼고자 하다가 혹 私恩으로 오해받을까 봐 신도가를 임명했던 일, 東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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