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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7001

    淸澗堂唱和詩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청간당창화시󰡕에 붙인 서문이다. 청간당 金鼎元(1655~1735)은 생전에 봉화 오록골에 청간당을 짓고 친우들과 어울려 시를 지어 노니는 것으로 불우하고 더러운 세상을 피하였다. 그리고 이때 지은 시들을 모으고 그림을 그려 책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세월이
    출처 : 유교넷
  • 327002

    南極錄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남극록󰡕에 붙인 서문이다. 저자와 친우 12인이 함께 계를 하기로 하고, 계원이 서로의 성명과 생년월을 기록한 작은 첩을 만들어 󰡔남극록󰡕이라고 하였다. 계를 만들면서 나이가 같지 않음을 꺼려하는 이가 있으나, 󰡔남극록󰡕이라는 이름에 이미 나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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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03

    春睡堂重建記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權(1576~1651)가 지은 춘수당을 중수하고 쓴 기문이다. 춘수당이 허물어진 지 100년 뒤에 권주의 후손인 錫溫이 중수하고 저자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저자는 권주와 자신의 선조인 金榮祖의 교분을 저버릴 수 없어 기문을 쓴다고 하였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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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04

    文川瀑㳍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문천폭포를 보고 쓴 기행문이다. 저자는 평소 文丹에 사는 김군이 쓴 문천폭포기를 읽고, 그 문장의 아름다움에 반해 실제 폭포를 보고 싶었다. 그러다 韶川接會에 갔다 인근에 폭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4, 5명의 친우와 문천폭포를 보러갔다. 돌 사이에 잘 드러나
    출처 : 유교넷
  • 327005

    靈芝堂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영지당을 중수하고 쓴 기문이다. 저자의 부친은 젊었을 때 과거 준비를 하였으나, 연이어 喪故를 당한 후 과거공부를 폐하고 말았다. 그리고 벽에 주자의 感懷詩 16자를 적어놓고 평생을 지내면 부모를 그리며 살았다. 그런데 중간에 시를 적어놓은 당에 불이 나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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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06

    梧川居接後小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梧川書院에서 鳳南接會를 마치고, 참가했던 이의 姓貫, 名字를 쓴 同苦錄에 붙인 소지이다. 20여 인이 오천서원에 모여 나이를 잊고 학문과 토론을 즐겼던 이 모임이 매우 盛事라고 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07

    外王考平庵府君遺事後識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외조부인 평암 權正忱(1710~1767)의 遺事에 붙인 소지이다. 저자는 임오화변(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 이후 두문불출하고, 일체의 유문을 수습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런데 외조부의 사손인 권영하가 과거에 급제한 연으로 유사를 편찬하게 되
    출처 : 유교넷
  • 327008

    安東權氏派譜後識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안동권씨의 외손인 저자가 영천 안동권씨의 派譜에 붙인 소지이다. 영천의 안동 권씨 파보를 간행한 지 120년이 지난 을묘년에 새로 파보를 만들어 追遠敦族의 의리를 알게 했으니, 장한 일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09

    丹城朴氏家牒後識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단성박씨 가첩에 붙인 소지이다. 저자는 박제상과 그 부인의 충렬, 그리고 단종 복위운동을 폈던 박도 등 7의사의 행적을 말하며, 단성박씨가 충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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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0

    世譜續刊圖跋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풍산김씨 세보를 속간하고 그 전말을 기록해 붙인 발문이다. 1722년 풍산김씨 세보를 간행한지 70여년이 지나 족보에 누락된 후손이 많이 생겨, 유연당에서 종회를 열고 기존의 구보는 그대로 두고, 새로 활자인으로 신본을 간행하게 된 사정을 말하고 있다.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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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1

    祭權肅汝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權顯相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는 권현상과 양양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과 훗날 저자가 과거에 오른 후 권현상을 찾았을 때 환대받았던 기억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빼어난 능력으로도 끝내 벼슬에 오르지 않고 布衣로 지낸 그의 삶에 대한 아쉬움,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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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2

    祭柳氏妹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4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여동생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서로 의지하면 지내던,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총명하고 차분했던 여동생의 모습을 추억하며 애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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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3

    祭外舅黃公(心漢)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장인인 황심한의 練祭에 쓴 제문이다. 40여 년간 그 문하에 출입하며 받은 사랑, 그리고 황심한의 평소 인품 등을 추억하며 그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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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4

    祭李聖輔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李宜相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명문가의 주손으로 일찍 종통을 이어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려 애쓰던 모습, 오록골까지 저자를 찾아와 함께 시를 唱和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그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다. 특히 부인상을 당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그가 죽음에 그
    출처 : 유교넷
  • 327015

    祭金參奉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金在振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는 김재진이 맹자가 말한 寡欲, 이광정의 恬退를 모두 갖췄으며, 스스로 효를 실천하여 문중 전체가 효를 행하게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40년을 해로하며 천수를 다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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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6

    祭權參判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외육촌인 權泳夏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는 권영하의 과거 급제를 인연으로 외조부인 권정침이 신원되었던 사실을 아주 크게 다루고 있으며, 저자가 일찍 모친을 여읜 후 외조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친동기간처럼 지냈던 정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80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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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7

    祭朴正言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朴龍天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嘯皐 朴承任의 후손으로 학문에도 능하고 벼슬에도 연연하지 않았으며, 저자와 평생 文友였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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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8

    祭金逸老(永逸)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김영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영남 명문가 자제로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형제간에 우애 돈독하고, 가문의 문장을 이었으며, 저자와 평생 좋은 벗으로 지냈는데 이렇게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매우 서글프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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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19

    祭族祖(相鏞)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집안 族祖 김상용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가 관례를 지낸 이후 오록골로 이사하면서, 그가 나이도 많고 항렬도 높았지만 기꺼이 허교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동이 트면서부터 인경 칠 때까지 함께 공부도 하고, 때로 바둑도 두고, 명승지 유람도 하면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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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0

    祭叔父藏六府君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叔父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는 덕을 쌓은 자신의 가문인데, 어찌하여 백부와 중부가 일찍 돌아가신데 이어, 숙부마저 돌아가셨는지 안타깝다는 말로 제문을 시작하고 있다. 이어 평소 효성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직접 실천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배웠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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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1

    祭長子婦金氏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맏며느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 집에 시집온 지 40년 세월 동안, 7대 제사를 지내는 번잡함, 자식들 시집보내는 어려움, 시집오자마자 화재가 일어나 가산이 사라져 빈곤한 삶에서도 婦道를 다했던 맏며느리가 저자보다 먼저 죽으니 매우 슬프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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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2

    祭從弟穉吉(重軾)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종제 김중식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나이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고향에서는 文酒의 모임을 함께 했고, 또 서울에 함께 과거보러 가서는 5개월 동안 밥상과 이불을 함께 했던 사이였음을 회상하고 있다. 특히 자신은 탈락했음에도 저자가 과거에 급제하자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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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3

    祭三從弟士通(重衡)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삼종제인 김중형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말이 어눌해 영리하지 못한 듯하나, 평소 부모를 섬김을 보면 진정한 효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함께 공부하고 놀았던 정의도 애틋하고, 연배도 비슷한데, 그가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데도 저자가 아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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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4

    祭族弟德老(重器)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족제 김중기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와 연배가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해, 가장 친한 친우처럼 지낸 사이였다. 40년 동안 함께 공부하고 놀이도 하며,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아쉬워할 정도로 친했었다. 이제 그대가 없으니 의심나는 것이나 가사의 중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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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5

    祭李氏妹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가 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는 어머니를 여읠 때 겨우 5, 6세에 불과했던 막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이 비통한 심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하면서 그 애틋함을 표현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시집가자마자 남편이 병에 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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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6

    先考成均生員府君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선친인 金宗鳳의 유사이다. 본관은 豊山, 자는 仲德이다. 망와 김영조의 7대손이다. 부친은 相鎬, 모친은 義城金氏이다. 1763년(영조 39)에 태어나 1823년(순조 23)에 졸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형과 함께 직접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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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7

    外王考平庵府君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외조부인 權正忱의 행장이다. 본관은 安東, 자는 子誠, 호는 平庵이다. 충재 권벌의 7대손이다. 부친은 藎, 모친은 全州柳氏이다. 1710년(숙종 36)에 태어나 1767년(영조 43)에 졸하였다. 7, 8세 때 학문을 익혔고, 족숙 恥庵公이 天皇氏로 부를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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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8

    曾王考漆溪居士府君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증조부인 金宅源의 행장이다. 본관은 豊山, 자는 幼安, 호는 漆溪居士이다. 부친은 瑞輯, 모친은 全州柳氏이다. 1726년(영조 2)에 태어나 1805년(순조 5)에 졸하였다. 10여 세 때 觀行堂 權謨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평생 󰡔주자서절요󰡕를 비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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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29

    生曾王考成均生員梧隱府君行錄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 생가의 증조부인 金行源의 행장이다. 본관은 豊山, 자는 思則, 호는 梧隱이다. 忘窩 金榮祖의 5대손이다. 부친은 瑞應, 모친은 安東權氏이다. 생부는 瑞鵬, 생모는 完山 李氏이다. 1713년(숙종 39)에 태어나 1778 년(정조 2)에 졸하였다. 평생 성리학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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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0

    再從祖進士公行錄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 재종조인 金相儒의 행장이다. 본관은 豊山, 자는 震甫이다. 藏庵 金昌祖의 6대손이다. 부친은 浚源, 모친은 漢陽趙氏이다. 1734년(영조 10)에 태어나 1784년(정조 8)에 졸하였다. 성품이 온화하고 종친 보호에 앞장섰다.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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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1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頤齋 權璉夏(1813~1896)가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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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2

    墓碣銘(幷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性齋 許傳(1797~1886)이 쓴 묘갈명이다. 내용은 순서만 다를 뿐 행장과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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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3

    家狀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저자의 아들 奎運(1801~1881)이 쓴 가장이다. 내용은 순서만 다를 뿐 행장과 거의 같다.
    출처 : 유교넷
  • 327034

    跋(1904)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중하
    李載基가 쓴 발문이다. 동소가 과거에 오른 지 26년 동안 단 하루 관직에 나아갔을 뿐 평생 권력과 관직을 탐하지 않았음을 높이 평가하고 진절한 高節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史論十條」는 국가를 운영하는 大法인데, 당대에 쓰이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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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5

    성암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성암유고(惺庵遺稿) 惺庵 朴宗垕의 문집. 木版本, 4卷 2冊:四周雙邊, 半郭 19.0 ×15.9㎝, 有界, 10行 19字, 註雙行,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0.6×20.7㎝. 서문과 발문을 수록하고 있지 않아 구체적인 간행상황을 알 수 없다. 卷1에는 詩 17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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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杏下謾詠, 燈夕, 三槐, 憫早, 贈金聖春(樂烋), 余平生患思慮身心全未收斂頃見勿巖詩有曰沈黙心方定嘯皐曾授吾不覺三復警省因感題一絶, 寬柔詩, 次金聖春望月韻, 蓮花山, 金友聖春贈詩有願聽警覺鍾之語忘拙構思以博一粲, 流頭月少晦聽烏, 歲旱宿龜院夜逢喜雨戲題, 川上風浴贈金慶章(樂雲),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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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7

    東遊錄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余於丁未晩春以爲日後觀覽之資,道中戲贈舜五兼懷喬年,登方峴,二十九日發屯村, 三十日發川前錄江行十里,過浮浦望見剡村三山感舊述懷,寒谷後峴,長葛峴,暮迫竹邱具祖源款迎夜話,贈李生薰韶,聞金彛彦(龍秉)過竹邱悵然賦懷,剡村蒼壁,將向首比訪族人士明(昌壽)忽於鷹棧路上邂逅因聯步打話,楸峴,李石溪先生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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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8

    曠感錄(184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是歲七月之念止吟永一絶,暮抵德街,夜雨朝霽, 楸石洞, 茶野店買魚喚酒, 暮宿院谷,途中九日有感,學峴宗丈宗烋氏時宰寧越城因呈一絶, 登子規樓奉讀御藻不勝感愴,觀風樓,彰節祠, 莊陵祇謁, 奉讀莊陵誌, 靈泉,次禁夢菴板上韻,淸冷浦謁端廟遺墟碑仍吟數絶,渡頭有一漁翁贈鱖魚沽酒膾鮮, 錦江亭, 敬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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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39

    上定齋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스승인 定齋 柳致明에게 理氣論과 讀書論에 대해 질문을 하고, 선인이 훈계한 “戰兢臨履” 4글자를 가지고 처세의 요체로 삼으려고 그 뜻을 청하고 있다. 또 朱熹와 李滉이 논해 놓은 敬에 대한 자료를 초록해서 몇 권으로 만들고 질정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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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0

    上定齋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心經󰡕을 읽고 퇴계와 문인들이 논변한 내용의 의문점을 여러 주석서와 비교하면서 스승인 定齋 柳致明에게 질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번에 올린 󰡔敬彙󰡕의 問目에 대해서 질정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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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1

    上定齋先生 3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는 최근 스승의 凶禍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하고, 손수 편집한 󰡔敬彙󰡕에 발문을 써준 것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계속 공부에 매진하기를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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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2

    與李謹休(晩慤)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李晩慤(1815~1874)에게 준 편지로서, 󰡔大山集󰡕을 편찬하는 일을 질문하고 있다. 관련된 인물은 柳致游·徐士剛·金德文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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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3

    答李謹休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李晩慤이 보내온 편지에 답한 내용으로, 先兄의 祭文과 齋記 그리고 봉정사에서 강의한 기록 및 한시 등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근래 󰡔退書節要󰡕를 부지런히 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고 있다. 또 󰡔敬彙󰡕의 書名에 대해서도 질정을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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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4

    答李楊叟(海鷹)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李海鷹(1783~1871)이 江樓軒의 기문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아직 글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좀 더 말미를 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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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5

    與柳上舍少游(致游) 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柳致游(1811~1871)에게 준 편지로, 詩會를 열고 지은 詩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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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6

    與柳參奉濯叟(致皜) 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柳致皜(1800~1862)에게 준 편지이다. 그 내용은 敬공부에 관련된 程頤가 말한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위를 삼가는 것이 우선이다[整齊嚴肅 威嚴恪爲先]’와 謝良佐의 ‘항상 깨어 있는 방법[常惺惺法]’, 尹焞의 ‘공경이란 그 마음을 잘 거둬들여서 한 가지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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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7

    答伊山書院會中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영주에 있는 伊山書院에서 보내온 편지에 대하여 감사의 답장을 보낸 것이다. 서원에 관련 일은 다른 龜溪書院의 절차와 비교해서 처리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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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48

    與寒井閔氏門中 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戚族인 閔氏門中의 묘소에 관한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49

    答張剛彦(鎭錫) 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척족인 張鎭錫이 보내온 편지에 답한 내용이다. 독서와 敬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심지를 굳게 가지고 부지런히 학문에 매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0

    答張剛彦 1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척족인 張鎭錫이 보내온 편지에 답한 내용으로, 특히 朱子가 편지에서 붕우들이 함께 공부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과거공부를 할 때,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토론하며 이끌어주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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