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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7051

    答張剛彦 1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척족인 張鎭錫이 보내온 편지에 답한 내용이다. 喪事에서 成服하는 절차와 處變하는 절목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2

    答金上舍文瑞 1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金文瑞가 보내온 편지에 답한 내용이다. 단란하게 독서했던 일과 여름동안 더위를 만나 고생스럽게 지낸 근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3

    與權孟善(錫元)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權錫元(1798~1871)에게 준 편지이다. 한 달전 만난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몸이 좋지 않아 宣城의 시회에 참여하지 못할 거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4

    與金孟實(光壽)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晩愚亭의 강회에 참석한 金光壽에게 준 편지이다. 그 정자에서 함께 공부한 柳致任‧李晩慤 등의 소식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 때 지어진 시문도 보여주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55

    與徐際應(雲烈) 13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徐雲烈의 편지를 받아보고, 1854년(철종 5)에 저자가 徐雲烈에게 준 편지이다. 徐昌載의 󰡔梧山集󰡕의 詩와 朱熹가 외손자에게 준 獅子詩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6

    上趙侯(永和)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군수 趙永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忠僕인 萬石을 위해서 旌閭閣을 짓고 상량문을 의뢰한 것에 대해 아직 글이 완성되지 않아 말미를 더 주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7

    答宋仲極(蘅)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친구 宋蘅이 자신의 叔祖께서 돌아가신 訃告를 보내오자 애통해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근래에 읽고 있는 무엇인지 물어보고, 자신은 七旬동안 병을 앓고 있어 정신이 혼미하다고 근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58

    序芙蓉臺續會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芙蓉臺는 直剛州 서쪽 5里에 있는 臺로서 1555년(명조 34) 退溪 李滉이 고을의 여러 선배들과 명사들을 거느리고 詩會를 열었던 곳이다. 그 뒤에 그런 행사가 없어졌다가 저자가 주관하여 그 모임을 續繼하여 퇴계선생의 ‘濟民樓’시와 ‘伊山書院觀物臺’시에 창수하였고,
    출처 : 유교넷
  • 327059

    壽宋中立六十一歲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1853년(철종 4)에 저자의 친우인 宋中立의 회갑잔치를 기념하여 축수하여 지은 글이다. 그 내용은 宋中立의 아버지인 牧溪 宋公의 나이가 89세여서 父子가 장수한 것을 특별히 축하하고 있다. 宋中立은 회갑이 되었으나 老萊子처럼 아버지를 위하여 비단옷을 입고 재롱을 피
    출처 : 유교넷
  • 327060

    三一居士自敍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거처하는 집에 걸어놓은 경계의 글이다. ‘三一’에서 ‘三’은 敬을 논한 宋나라 성리학자들의 警句를 말한다. 즉 程頤가 주장한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위를 삼가는 것이 우선이다[整齊嚴肅 威嚴恪爲先]’와 謝良佐의 ‘항상 깨어 있는 방법[常惺惺法]’, 尹焞의 ‘공경이
    출처 : 유교넷
  • 327061

    四友齋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영주지역에 權孟善이 살고 있는 映江亭 내의 齋室에 대해 지은 것이다. ‘四友’란 종이, 붓, 먹, 벼루 등 네 가지 도구를 말하는 것으로, 저자는 독서하면서 의심이 나면 반드시 기록하고 터득함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한다는 뜻을 부연하였다. 특히 ‘友’라는 것은 曾子가
    출처 : 유교넷
  • 327062

    江棲軒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영주 낙동강가 檢浦에 살고 있는 江棲 李海鷹(1783∼1871)의 정자에 대해 지어준 글이다. 李海鷹의 字는 楊叟이고, 本貫은 載寧이며, 父는 宇均이다. 갈암 이현일의 가학을 계승하였고 諸子書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性理全書󰡕를 깊이 탐독하여 안으로 수양하고 밖으
    출처 : 유교넷
  • 327063

    嫮笑窩記 2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친족인 朴喬年의 집에 걸려있는 ‘嫮笑窩’ 세 글자를 보고 그 뜻을 부연하여 지어준 건문기이다. 저자는 역대 웃음에 관련된 前古를 열거한 뒤에 朱子의 시의 “백 년 동안 풍우가 지나치더라도 마땅히 웃어야지 울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부연하여, 박교년이 詩禮의 가르침을
    출처 : 유교넷
  • 327064

    錦陽亭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친족인 朴宗良(1804~1876)의 錦陽亭에 대하여 지어준 記文인데, 지금은 錦坡亭이라 불리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다. 박종량이 이 亭子에서 겨울과 여름에 자제들의 공부와 孝悌의 수행을 가르친 사실에 대해 기술하고 주변 산수의 아름다움과 잘 꾸며진 정
    출처 : 유교넷
  • 327065

    書龜江書院印出時日記後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龜江書院에 소장된 󰡔嘯皐集󰡕과 栢巖 金玏의 󰡔栢巖集󰡕을 1831년(순조 31)에서 1832년(순조 32)까지 2년간 兩家에서 간행하여 그 시말을 기록하고, 이후 1833년(순조 33)에 추가로 8부를 간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총 20帙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66

    書德洞齋舍贍學所謄錄後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영주지역 저자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 놓은 德洞齋舍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齋舍에서는 안동과 영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족들이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친목을 도모하였다. 또한 제수 및 강학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贍學所謄錄을 만들고 그 전말을
    출처 : 유교넷
  • 327067

    書言敬撮要書後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손수 ‘敬’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敬彙󰡕를 만들고, 定齋 柳致明 선생에게 편목을 질정을 받은 뒤에 後識를 받았다. 저자는 질정받은 책을 가지고 감히 다른 종이에 등사하지 않고 부표로 편목을 표시하고 수정하였다. 그리고 1845년(헌종 11) 冬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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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68

    嘯皐先祖簡帖遺墨跋 2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9대조 嘯皐 朴承任의 서간첩을 1832 년(순조 32)에 저자의 친구 金樂崇으로부터 받아서 본 跋文을 짓고 집안에 소장하였다. 박승임은 영주지역에서 퇴계선생의 높은 제자로 이름이 났으며, 성리학과 시문학에 뛰어나 집안을 일으켰다.
    출처 : 유교넷
  • 327069

    書先祖醉睡公鄕序堂樑頌跋 2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8대조 醉睡公 朴漉이 1588년(선조 21)에 지은 ‘鄕序堂上樑文’에 대하여 저자가 1862년(철종 13)에 발문을 지은 것이다. 鄕序堂은 당시 영주지역의 濟民樓를 말한다. 제민루는 榮州郡守 潘渚公이 1437년(세종 19)에 건립하여 당대까지 남아 있었다.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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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0

    書退溪先生敬說後 28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퇴계선생이 金就礪에게 답한 편지를 필사하고 그 뒤에 後識를 쓴 것이다. 그 편지 내용은 퇴계의 敬에 대한 학설은 朱子의 학설에 근본하고, 朱子의 학설은 程子에 근원하는데, 세 군자들이 敬에 대하여 논한 논지가 분명함이 하나의 도장으로 찍어낸 듯하다. 程頤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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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1

    謹書何叔京說能存其心是之爲敬說 29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朱子가 제자 何叔京에게 그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敬이 된다는 학설에 대하여 저자가 부연 설명한 것이다. 저자가 󰡔朱子書󰡕를 탐독하면서 敬을 언급한 편지 가운데 오직 敬만이 그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는 논의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소학󰡕과 󰡔대학󰡕의 敬에 대
    출처 : 유교넷
  • 327072

    長孫齊赫醮禮時禮狀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장손이며 朴堂壽의 장남인 朴齊赫이 대대로 세의가 있는 宣城金氏 金永璜의 딸과 혼례를 올릴 때 지은 글이다. 선성김씨의 선조 栢巖 金玏(1540~1617)은 저자의 9대조 朴承任의 제자가 된다.
    출처 : 유교넷
  • 327073

    勇怯說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가 朱子와 제자 蔡季通 사이에 오간 ‘勇怯’에 관한 내용을 차록하여 그의 뜻을 미루어 연역하여 自省의 자료로 삼고자하는 뜻으로 지은 글이다. 朱子는 󰡔晦庵集󰡕卷44, 「答蔡季通」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행동이 중요하고, 환란을 예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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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4

    日梳箴(並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평생 신체를 잘 관리하여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이 孝의 시작인데, 젊은 시절 신체를 함부로하여 노년에 머리가 많이 빠져서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날마다 작은 빗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단정히 앉아 마음과 기운을 맑고 밝게 하여 정신과 생각을 전일하게 하여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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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5

    式好箴(書揭座右使兒輩常目警省)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세속에서 財利의 탐욕으로 형제간의 恩義를 상하는 일이 많은데, 저자는 이를 경계하면서 󰡔詩經󰡕‧「常棣」에서 아가위꽃을 매개로 형제간의 은혜를 보존하여 사이가 좋은 것을 노래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형제보다 친한 이 없다[凡今之人 莫如兄弟]”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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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6

    臨屨箴(書揭座右使兒輩常目警省)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詩經󰡕‧「小旻」에 나오는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는 전고를 취하여, 매사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처신한다는 내용을 四言의 銘으로 작성하여 자성의 자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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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7

    整窩銘(幷小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거실에 걸어둔 3개의 銘과 三一堂의 유래에 대하여 小序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저자가 伊川 程頤·上蔡 謝良佐·和靖 尹焞·晦庵 朱熹의 ‘敬’에 대한 학설을 모아서 자신이 거처하는 방에 걸어놓은 銘들로서, 남쪽에는 整窩銘, 동쪽은 惺庵銘, 서쪽은 收齋銘이라고 명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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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8

    惺庵銘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惺庵銘은 謝良佐의 “敬은 항상 깨어 있게 하는 방법[敬是常惺惺法]”을 취하여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하지 않고 한 생각이라도 느슨하게 하지 않아 항상 검속하여 惺하여 다시 惺을 회복하는 것을 부연설명하고, 四言으로 銘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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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79

    收齋銘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收齋銘은 尹焞의 “공경이란 그 마음을 잘 거둬들여서 한 가지 사물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이른 말이다[其心收斂 不容一物].”를 취하여 方寸의 마음이 만 가지 변화를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거두는 요체는 敬에 있다고 하였으며, 또한 󰡔書經󰡕의 欽明과 󰡔周易
    출처 : 유교넷
  • 327080

    丌銘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丌銘은 저자가 사용하는 책상에 대하여 四言으로 명을 지은 것이다. 책상은 독서하는데 유용하고 그 모양도 방정하고 곧아서 거기에서 성현의 책을 읽으면 곧 성현을 대하는 듯하여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내용을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327081

    方山書院廟宇上樑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이 글은 方山書院의 廟宇를 짓고 지은 上樑文이다. 방산서원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관직을 버리고 영주 휴천에 낙향했던 休溪 全希哲(1425~1521)을 모시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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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82

    晩愚亭上樑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스승인 定齋 柳致明이 거처한 晩愚亭을 짓고 올린 상량문이다. 안동부 臨河面에 있는 만우정의 주변의 산수에 대하여 기술하고, 특히 퇴계의 학통을 이은 柳致明의 강학활동과 도학이 더욱 표창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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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83

    忠奴萬石旌閭閣上樑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영주지역에 주인을 위해서 충성한 忠奴 高萬石에게 하사된 旌閭閣을 짓고 지은 상량문이다. 그 내용은 嘯皐 朴承任(1517∼1586)의 7대손 士人 朴師閔의 딸 烈婦朴氏의 원한을 쟁을 울려 관청에 호소한 忠奴 高萬石의 행적과 그것으로 인한 풍속교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084

    龜灣書院養浩樓重修上樑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慶北 奉化郡 奉化邑 花川里 436에 龜灣書院이 있다. 進士 松溪 琴軔(1510~1593), 進士 三松堂 南夢鰲, 都承旨 水西 朴善長(1555~ ?), 參奉陶隱 權虎臣(1558~1629) 등이 배향된 龜灣書院의 養浩樓를 重修하고 지은 上樑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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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85

    祭定齋先生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定齋 柳致明(1777~1861)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86

    祭古溪李令公(彙寧)文(代伊山儒生作) 1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古溪 李彙寧(1788~1861)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87

    祭黃進士(淵漢)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進士 黃淵漢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88

    祭從先祖忍庵公(緬禮時)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朴珩의 아들이자, 박승임의 셋째형인 忍庵 朴承侃의 묘를 移葬할 때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89

    祭伯氏可庵公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朴時源의 長男이자 저자의 형님인 可庵 朴宗喬(1789~1856)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90

    祭亡女金氏婦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金氏에게 출가한 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7091

    槐軒金公(瑩)墓所安石時告由文(代本家作) 2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槐軒 金瑩의 묘소에 상석할 때 지은 告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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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2

    伯氏可庵公(宗喬)家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형님 庵公 朴宗喬의 일생을 기록한 家狀이다. 공의 高麗 右文館 直提學 文正公 朴尙衷의 후예이고, 조선에 와서는 퇴계선생의 고제자인 嘯皐 朴承任의 9대손이고, 醉睡翁 朴漉과 三樂堂 朴樅茂는 각각 공의 7대조, 8대조가 되고, 고조부 朴烚은 󰡔朱書簒彙󰡕를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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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3

    故室宜人宣城金氏行畧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첫째부인 宣城金氏 金永祏의 딸의 행적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 부인은 1792년(정조 16)에 태어나 15세 때 자신에게 시집을 와서 1808년(순조 8)에 질병으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55년이 지난 후 행적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기록을 남겼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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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4

    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는 金光壽, 金樂崇, 柳致任, 趙時成, 李海鷹, 金鎭河, 李庭德, 柳致游, 金騏獻, 柳致淑, 徐在愚, 再從叔 朴時樞, 族侄 朴松壽, 金樂鍾, 金輝濬, 權錫元 등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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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5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는 李淵浩, 金樂洸, 張鎭錫, 外孫 李晩愿, 女壻 徐在正, 許炫, 全秀學, 金龍秉, 女壻 金德奎, 再從叔 朴時樞, 從子 朴庚壽 등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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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6

    成均生員惺庵朴公(宗垕)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박종후
    저자의 일생을 기록한 行狀으로 조카 朴禧壽가 지은 「遺事」를 바탕으로 西山 金興洛이지은 것이다. 내용은 저자소개에 자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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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7

    소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인하
    소헌집(素軒集) 素軒 權人夏의 문집. 木版本, 6卷 3冊: 四周雙邊, 半郭 19.5× 16.0㎝, 有界, 10行 20字,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29.0×20.8㎝. 卷1에는 詩가 98편, 卷2에는 편지가 51통이고, 卷3은 雜著로 通文과 南草說 등이 6편, 序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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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8

    1. 가산리 마을제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이재곤
    가산1리는<HXMLSUP ID="001"></HXMLSUP>박씨(朴氏)터전에 이씨(李氏)골매기라 하며 구미(龜尾)에는 신목(神木)으로 수령 3백년 정도 되는 소나무가 있으며 마을 앞 들 <HXMLPIC ID="001"></HXMLPIC>가운데는 약 150년 되는 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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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099

    2. 갈천리 마을제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이재곤
    갈천1리<HXMLSUP ID="003"></HXMLSUP> 신목(神木)은 배나무이며, 당집이 있다. 제일(祭日)은 정월 15일 자시(子時)이며 제의(祭儀)는 헌작(獻酌), 소지(燒紙)등이며 축문은 없다. 갈천2리 일모실(日暮室) 동제(洞祭)는<HXMLSUP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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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100

    3. 미곡리 마을제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이재곤
    미곡1리(돌밭, 양지말) 마을제당은<HXMLSUP ID="005"></HXMLSUP>들 가운데 있으며 제당 안의 신상(神像)은 나무로 “T”자형의 신체이며 기둥에 종이와 왼새끼를 감았으며 정씨(鄭氏)터전에 신씨(申氏) 골매기라 하며, 주위에 수목이 둘러 있다. 제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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