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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致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朴遇賢(1829~1907)에게 보낸 편지이다. 1873년(고종 10) 大院君의 실정을 탄핵하는 疏를 올리고 戶曹參判에 오른 崔益鉉(1833~ 1906)이 다시 대원군을 攝政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소를 올려 대원군이 물러나자 成均館 유생 들이 시위를 하였는데, 이로 인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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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德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金碩奎에게 보낸 편지이다. 산천과 풍토가 악한 서쪽 지역으로 임지를 명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염려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면서 몸을 잘 돌보기 바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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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永孝 6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金祖永에게 보낸 편지이다. 변방인 함경도 安邊으로 임지를 명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염려하면서도 스스로 노력하여 선비로서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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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啓衍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李晩正(1830~1902)에게 답한 편지이다. 봄에 처소로 돌아왔으나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고 전하면서 이별한 뒤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人事의 변천이 이와 같으니 애석해 하는 마음이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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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參判(啓魯)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參判 李啓魯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朝野가 서로 다를 수 없다고 하면서 반드시 적을 깨트릴 수 있는 膽力이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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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子靜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李炳商(1830~1895)에게 답한 편지이다. 家門이 불행하여 양친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비슷한 슬픔을 지니게 되어 同病相憐의 아픔을 느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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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季擬(南植)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趙南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鳳樓에서 이별한 뒤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하면서 王維나 賈島 등의 작품과 같은 시를 얻었는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당대의 서로 排斥하는 풍토를 염려하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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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祖源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權世淵(1836~1899)에게 답한 편지이다.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한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몸을 잘 보살피기 바란다고 하면서 돌아온 뒤로 두문불출하고 앉아서 종일토록 말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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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祖源 9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權世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얼마 전에 廣倉會에 가는 길에 모진 추위를 만나 몸이 불편하다고 전하면서 碣文을 고치는 일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최근 士林에서 잘못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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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祖源 9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權世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이 더욱 심해지기는 하였으나 서양인들의 소요에 맞서기 위해 창의하였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생기가 더해진다고 하면서 자식을 포함하여 지역의 많은 젊은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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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洪彝叟(鍾善) 10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洪鍾善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양인들의 소요로 軍營에 참여하여 분투함이 마땅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처지가 한스럽다면서 탄식하면서 자식이 書記의 소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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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成汝翼 11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成灐에게 보낸 편지이다. 雲齋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몇 차례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苟且의 警戒가 있기는 하지만 정세가 좋지 않으니 所任을 맡은 자도 처신하기가 실로 어렵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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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成縉叟 11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成發敎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고 전하면서 小白山 산행에 대한 약속이 어긋난 것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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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啓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朴周大(1836~1921)에게 답한 편지이다. 「黃花什韻」이 지극히 淸雅하다고 전하면서 小白山 산행에 대하여 어찌 그렇게 깊이 고려하느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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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搢卿 1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李公에게 보낸 편지이다. 大溪遺稿가 이미 校勘을 거친 일을 언급하고, 曾祖 應晦의 挽詞가 집안에 전하고 있다고 하면서 湖上令公의 喪事를 듣고 매우 슬펐다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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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文興 1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安鎬重(1828~1895)에게 답한 편지이다. 先祖의 實紀 重刊에 대한 내용을 전하면서 이미 백여 년이 지나 「長城」 등 일부 詩가 실기에는 누락되어 있는 등 부분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니 대면하여 결정하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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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恒叟(秉久) 13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李秉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먼 곳에서 書翰을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전하면서 혹 인맥을 동원하여 나를 돕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그만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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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宋元伯 1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宋殷成에게 답한 편지이다. 六經과 四書는 우리 유학자들이 이미 힘써 배우는 바이라고 전하면서 春秋에 대한 배움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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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景弼(商濬) 1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金商濬에게 답한 편지이다. 함께 여행했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遊山錄의 기록에 대하여 의견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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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黃文玉(相鉉) 15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黃相鉉에게 보낸 편지이다. 족보 편찬과 관련하여 각 파별로 후손이 없는 경우나 族姪 사이의 繼序 등 족보 편집의 체제에 대한 견해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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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致三(相圭) 15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權相圭(1874~1961)에게 답한 편지이다. 花府에서 먼저 창의하였다고 하면서 令伯께서 이미 함께 따르며 돕고 있으니 집에서 공부하며 기쁜 승리의 날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니 지나치게 염려하지는 말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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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順可 16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安昌烈(1847~1925)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 해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마침내 一麾의 직책을 맡아서 위로는 명을 받들어 城을 지키고 아래로는 闔門의 기대를 받게 되었으니 더욱 더 삼가 뜻을 저버리지 말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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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順可 16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安昌烈에게 보낸 편지이다. 剛州로 任地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더욱 淬礪하여 鄕隣 師友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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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順可 1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安昌烈에게 답한 편지이다. 歙谷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지금 가면 楓嶽의 뛰어난 경치를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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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啓心(沃) 1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安沃에게 보낸 편지이다. 맏아들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으며, 자질도 뛰어나다고 하고는 ‘學步邯鄲, 反失古步’라는 옛 사람의 말을 전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이 잘못되지는 않은 것인지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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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肯庵李公文(敦禹) 1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肯庵 李敦禹(1807~1884)에게 올린 祭文이다. 字는 始能이고, 號는 肯庵이며, 本貫은 韓山이다. 安東 출신이며, 李象靖의 玄孫이자 李秀應의 아들이다. 柳致明의 문인으로 1850년(철종 1) 과거에 급제하여 承文院正字가 되고, 正言·敎理·同副承旨 등을 거쳐 188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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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山泉齋朴公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朴周鍾(1813∼1887)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字는 聞遠이고, 號는 山泉이며, 本貫은 咸陽이다. 曾祖는 雲山郡守 重慶이고, 祖父는 通德郞 漢通이며, 부친은 僉知中樞府事 弼寧이다. 학행이 순수하고 독실했으며, 문장은 박학하고 웅장하였다. 여러 번 향시에 합격은 하였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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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海東翁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海東翁 金稱銖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학문에 남다른 성취를 이루고, 특히 고금의 시가에 뛰어나셨다고 하면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까지 상의를 하였는데, 수개월 소식이 없더니 이렇게 슬픈 소식이 전해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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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公(庭蓂)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李庭蓂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변함없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七旬에 이르도록 함께 하였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니 슬픔이 너무나도 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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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伯陽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金復林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생전에 典籍에 대한 연구가 精微하여 후인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슬픔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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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戚叔趙公(家相)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戚叔 趙家相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타고난 품성이 두텁고 효애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늘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모습이었던 생전의 모습을 회상하면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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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重表兄洪公(重厚)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重表兄 洪重厚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형님이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풀이 돋는 봄이 되니 떠나보낸 슬픔이 더욱 크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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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黃護軍(鱗燮)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護軍 黃鱗燮(1808~1884)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字는 致雲이며, 副護軍을 재수받았다. 늘 경계하기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덕은 세상에 비할 바가 없었다고 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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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竝崙)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李竝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부모를 성심으로 봉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형제 사이에 우애도 남들과는 달랐으며, 이웃에서 가까이 살펴보니 제사를 모시는 데도 그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어서 이웃의 모범이 되었다고 전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이 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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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大父同樞公(廷佐)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再從大父 同樞公 廷佐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성품이 고요하고 돈후하였을 뿐만 아니라 八旬에 이르도록 壽하셨으며, 효성스러운 아들과 어진 며느리를 두었다고 하면서 세상을 떠난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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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正言公(致黙)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從叔 正言公 致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1868년(고종 5) 몇 백 년 동안 寂寥하던 우리 집안에 출생하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어느 가문에 어떤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을 크게 일으키신 분이라고 하면서 叔姪 사이에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고 늘 가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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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處士公(義黙)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從叔 處士公 義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伯叔께서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從叔을 잃는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제 그 의지할 바를 잃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미 冠禮를 치르고 혼례를 올린 아들이 있어서 후사를 잇게 된 것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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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進士公(斆黙)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從叔 進士公 斆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두 분 叔父께서 돌아가시고 많은 의지가 되었는데, 이제 從叔마저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니 슬픔이 더욱 크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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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通德郞公(處黙)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再從叔 通德郞公 處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생전에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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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近黙)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族叔 近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서로 기대고 의지가 되었다고 하면서 도움을 받아서 정말 감사했던 순간들을 떠올라 그 슬픔이 더욱 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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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宗黙)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族叔 宗黙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詩經의 「伐檀」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내용처럼 생전에 늘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하셨다고 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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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妹朴孺人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再從妹 朴孺人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작년 여름에 愚溪를 가는 길에 만났던 일을 회상하면서 부여받은 命이 길이 못하여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몹시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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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舖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5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朴而恒을 만나서 林居의 즐거움을 논하면서 대나무로 둘러싸인 ‘竹舖’라는 곳에서의 생활을 듣고 ‘죽포’의 의미에 대하여 적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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逸窩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거처에서 직선거리로 8~9리 쯤 되는 거리에 ‘逸窩’라는 편액을 걸어두고 살고 있는 江陵 金公을 만나 당호를 그렇게 정한 까닭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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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譜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1868년(고종 5) 京鄕 각지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종족들의 자료를 모아 族譜를 정리하였으나 당시에 누락된 부분이 없지 않고 5‧6년이 지난 지금 자손들도 더 번성하였으니 보충하여 수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續刊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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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稧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분파된 이후로 17대 400여 년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자손들이 번성하여 1861년(철종 12) 논의를 거쳐 宗契를 설치하기로 하고, 花樹會를 마련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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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氏杏亭移建詩帖後叙 5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高麗시대 版圖正郞을 역임한 秦公의 杏亭을 移建하고 지은 詩帖의 後叙이다. 龍巖이 동쪽을 鳳凰臺라고 하며, 봉황대 아래 주변에 촌락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옛날의 거처라고 하면서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자손들이 魯里로 이거하게 되어 정자가 훼손되기 때문에 이건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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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閭壇碑閣重建上樑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鄕閭壇碑閣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道學의 연원을 번창시킨 晦軒선생이 만년에 인재를 배양하던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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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山書堂重修上樑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龍山書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용산에 지어진 서당이 지붕이 기울고 주춧돌의 기초가 다하여 중수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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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慕庵重建上樑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永慕庵을 重建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嘉靖연간에 지은 것이 오랜 세월로 훼손되어 중건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