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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7251

    行狀(1928) 1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朴勝振이 쓴 저자의 行狀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252

    家狀(1927) 14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族弟 斗淵이 쓴 저자의 家狀이다. 行狀보다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327253

    墓碣銘(幷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李中轍(1848~1934)이 쓴 저자의 墓碣銘이고,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327254

    墓誌銘(幷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權相翊(1863~1935)이 쓴 저자의 墓誌銘이고,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327255

    挽詞 22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金魯銖‧黃範鱗‧權世淵‧朴周大‧成周永‧李晩煃‧徐相奎‧從叔士緝‧族弟斗淵‧族從載黙 등이 쓴 挽詞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256

    哀辭 25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權經夏가 쓴 哀辭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257

    祭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門下生權相台‧門下生黃載璋‧族孫相麟 등이 쓴 祭文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258

    / 기록자료>고도서 / 안호연
    黃永祖‧再從弟 珬淵 등이 쓴 跋文이 실려 있다. 아들인 永鎬가 裒錄해 두었으나 불행하게도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손자인 承胤에 이르러서야 간행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259

    동정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동정유고(東亭遺稿) 東亭 李炳鎬의 문집. 石印本, 跋: 李善求‧金思鎭(1934),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21.7×16.4㎝,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向黑魚尾; 32.0×21.0㎝. 서문은 없고, 발문은 제자인 再從姪 李善求와 西洲 金思鎭이 19
    출처 : 유교넷
  • 32726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花府路中, 聽蟬, 錦仙亭, 黃池, 贈崔聞天(鳴河)權叔政(在顯), 輓崔聖謨二首, 同社兩友各有取益喜賦古體, 輓愚軒金丈(養鎭), 輓黃道凝(基道),寒水亭與郭俛宇(鍾錫)金渭瑞(秉璜)權繼若(有淵)共賦二首,贈別金渭瑞三首, 杜谷道中口呼, 玉溜菴次板上韻, 謙菴亭次河回圖韻,金軒弼(啓相
    출처 : 유교넷
  • 327261

    答族祖龍山先生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龍山 李晩寅(1834~1897)에게 답한 편지로, 喪禮와 관련한 세 가지 사항과 祭禮와 관련한 한 가지 사항에 대한 논변을 담고 있다. 상례 중 첫째는 禫祭에서 網巾의 색깔에 대한 문제이고, 둘째는 小祥 뒤에 上食哭을 하는지 마는지에 대한 문제이고, 셋째는 承重喪에
    출처 : 유교넷
  • 327262

    上龍山先生(1895)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외세의 침탈에 의해 우리 고유의 衣裳과 體髮이 오랑캐의 것으로 변해가는 세태를 통탄하고, 자신은 이러한 시속의 태도를 따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63

    與石湖柳丈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豊山人 石湖 柳道性(1823~1906)에게 답한 편지로, 당시 儒林 사이에서 큰 논란이 된 일에 대해서 개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264

    答黃丈(範鱗,1899)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黃範鱗에게 답한 편지로, 학문에 뜻을 두기는 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성취한 것이 없음을 자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65

    與雲圃族叔(中麟,1892)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雲圃 李中麟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은 網巾의 색깔과 中脯의 문제로, 위의 「答族祖龍山先生」에서 말한 것과 유사하다.
    출처 : 유교넷
  • 327266

    與郭俛宇(鍾錫,1899)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俛宇 郭鍾錫(1846∼1919)에게서 온 郭徽承(字 聖緖)과 洪淳一(字 巨源)이 心卽理說에 대해 말을 전하자, 저자가 이에 의심을 품고서 그 발언의 진위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67

    與郭俛宇(1903)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먼저 郭鍾錫이 조정의 명을 받아 출사했다가 돌아온 일을 애석하게 여겼는데, 곽종석은 1903년(광무 7)에 通政大夫에 이르고 秘書院丞에 제수되었다. 말미에서 저자가 새로 터를 마련한 舊校洞에서 노년을 마치려고 하는데, 이에 대한 글을 지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출처 : 유교넷
  • 327268

    答朴應魯(奎陽)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潘南人 錦南 朴奎陽(1840~1903)에게 답한 편지로, 陶山書院의 위패가 분실된 변고에 대해 말했다. 儒生들의 上言으로 지난달 24일에 奉常寺로부터 慰安祭를 지내라는 명을 받아 이달 18일에 의식을 봉행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출처 : 유교넷
  • 327269

    答族祖順則(晩煃)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柳川 李晩煃(1845~1921)에게 답한 편지로, 저자의 자질구레한 집안 상황을 늘어놓았다.
    출처 : 유교넷
  • 327270

    與丁而建(大稙,1895)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1894년(고종 31)에丁大稙(1847~1933)은安峽縣監이 되어 伊川縣監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이 글은 그 이듬해에 저자가 고을살이를 하는 그에게 보낸 편지이다. 시대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산중에서 벗들과 古制를 강구하면서 소일하는 정황을 전했다.
    출처 : 유교넷
  • 327271

    與丁羲宅(震燮,1887)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丁震燮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72

    與金君奭(㙽,1906)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陶山諸子錄의 간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아쉽게 여기고, 太古翁이 수집한 글 중에 諸子의 狀碣文字가 있을 터이니 보내드리는 목록 중에서 해당되는 글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저자는 이것들을 수집하여 陶山淵源錄을 만들려고 하였다. 이 편지의 수신자인 金㙽(
    출처 : 유교넷
  • 327273

    與丁舜衡(大穪,1892)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丁大穪의 조카가 15세가 되어 冠禮를 치르게 되었는데, 저자가 관례 의식에 필요한 笏記를 마련하여 보냈다. 홀기 중에 禮賓 조목이 소략한 것은 簡易함을 따르고자 하는 뜻이고, 幣物이 구비되지 못했으면 紙筆 등의 물건을 써도 무방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74

    答朴成弼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외래 문물과 사상의 유입으로 인륜이 무너지고 유학의 도리가 쇠미해지는 상황을 탄식하면서, 朴鎬陽(字 成弼)에게 이를 扶持해 줄 것을 면려하는 답장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75

    與洪時應(洛鍾,1899)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中庸󰡕에 대한 자신의 공부가 깊지 못함을 자책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76

    答洪時應(1902)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朱子書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질구레한 문자에 心力을 쏟느라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음을 한스러워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77

    與金文顯(世洛,1899)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豊山人 古巖 金世洛(1854~1929)에게 보낸 편지로, 立秋가 지난 뒤에야 움직일 수 있겠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78

    答金輔應(弼奎,1899)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宣城人 可隱 金弼奎(1853~1908)에게 답한 편지로, 그의 조카가 독서에 힘쓰지 않고 있음을 걱정하였고, 저자는 선현의 遺躅이 서려 있는 泉庵에 와서 독서하면서 유익함이 많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79

    答丁賢必(奎悳,1895)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丁奎悳 아들이 벗할 만한 인물이 저자가 있는 곳에 있으니, 그곳에 머물면서 󰡔大學󰡕을 강독하면 도움이 될 것임을 알렸다.
    출처 : 유교넷
  • 327280

    答姜國卿(1895)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疫病이 돌고 있는 와중에 제사의 거행 여부에 대한 답변이다. 저자는 집안에 역병이 돌고 있는데 神主를 모셔내어 제사를 거행하는 것은 미안하므로, 신주 대신 紙牌를 써서 행하되 축문을 읽고 三獻을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다. 수신자인 姜鑌(1858~1911)은 호가
    출처 : 유교넷
  • 327281

    與孫外兄致久(最秀,1893)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月城人 孫最秀(1851~?)의 고을에 儒風이 진작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저자가 사는 곳에서도 朔講과 飮禮가 시행되므로 유학의 도가 크게 흥성하게 될 것이라고 소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82

    與丁表弟羲明(离燮,1886)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丁离燮의 叔祖가 돌아가신 일을 애통하게 여겼으며, 마땅히 주간해야 할 일을 소략하게 지나쳐 버리는 그의 잘못을 깨우쳤다.
    출처 : 유교넷
  • 327283

    答柳繼八(昌植,1900)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全州人 晩山 柳昌植(1858~1912)에게 답한 편지로, 그가 󰡔小學集註󰡕의 오류에 대해 論訂한 글에서 저자의 견해와 다른 점이 있기에 표시를 해서 보낸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84

    答柳季諴(鼎佑,1899)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두 아들의 교육에 더욱 힘을 쏟아서 훗날 집안을 이끌어갈 동량으로 만들기를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85

    答柳體仁(德榮)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산속에 거처하여 학문을 토론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린 뒤, 회포를 서술한 詩를 지어 보내니 보고서 가르침을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86

    答李俊汝(潤秀)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저자가 아들의 冠禮를 치르고 며느리를 맞게 된 일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87

    答李文玉(郁成,1902)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永春人 李郁成(1840~1904)에게 보낸 편지로, 자제 교육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88

    與郁錦黃氏門中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郁錦의 平海黃氏 문중에 보낸 편지이다. 聖泉菴은 錦溪 黃俊良(1517~1563)이 학문을 닦던 곳인데, 황준량의 스승인 李滉이 그 터를 수호하여 자제들에게 독서하도록 하였다. 世敎와 儒風이 쇠퇴하고 있는 요즈음에 황씨 문중의 자제들이 그 곳에서 열심히 학문을 닦아서
    출처 : 유교넷
  • 327289

    答李德進(敎成,1903)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일면식도 없는데 멀리서 편지를 보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90

    答族姪聲彦(赫淵,1902)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좋은 자질을 타고났고 학문에도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 族姪을 격려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91

    答族祖希曾(晩輿)別紙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鳳岡 李晩輿(1861∼1904)가 朱子의 글에 언급된 心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해 세 조목에 걸쳐서 질문을 하자, 저자가 답변한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92

    答族祖希曾別紙(論許舫山薰書)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舫山 許薰(1836~1907)이 李滉의 󰡔聖學十圖󰡕 중 여섯 번째인 「心統性情圖」를 중심으로 반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 李晩輿로부터 아홉 조목에 걸친 질문을 받고서, 저자가 李滉의 학설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견해를 제시하였다. 雜著의 「與許舫山(薰)講心統性情圖義」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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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293

    與丁學初(奎弼)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어떤 사람이 전적으로 옛날 교육 방법으로 지금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을 하자, 저자가 배움에는 早晩과 古今의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던 일을 전하고는, 丁奎弼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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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294

    答丁學初大學問目(1887)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大學󰡕에 관한 네 조목의 물음에 답한 편지로, 聖人과 衆人의 차이, 學者에게 人君의 敎導가 필요한 이유, ‘修齊’章에서 말해야 할 恕를 ‘治國’章에서 말한 이유, 治平의 일에서 禮樂과 刑政을 말하지 않은 이유 등이 그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295

    答族弟士勛(秉鎬,1899)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大學󰡕 ‘正心’章에 관한 물음에 대해, 朱子와 李滉의 언급을 빌어 설명한 뒤에 ‘정심장에서 存養을 함께 말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큰 잘못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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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296

    答族叔肅卿(敎承,1898)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李滉의 󰡔聖學十圖󰡕와 󰡔古鏡重磨方󰡕의 내용을 편집하여 󰡔吾家錄󰡕이란 이름으로 만들어 마음을 다스리고 이치를 밝히는 자료로 삼았는데, 卷3의 「吾家錄跋」을 참조하라. 李敎承에게는 󰡔近思續編󰡕의 간행을 독려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97

    別紙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大學󰡕에 관한 세 조목에 대해 질의하고 답변한 글이다. 8세에 󰡔小學󰡕에 들어간다는 말이 「內則」에서 外傅에게 배운다고 할 때의 나이와 다른 이유, ‘知止’에 이미 8조목의 의미가 들어있다는 점, ‘致知’의 초기에 선악을 먼저 살펴야 하는데도 章句에 명확한
    출처 : 유교넷
  • 327298

    答李夏卿(泰亨,1892)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근세 학자들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한 공부만 하는 것을 개탄하면서, 李泰亨에게 󰡔小學󰡕의 ‘明倫’과 ‘敬身’을 통해 인격을 도야할 것을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299

    答權士尹(成佐,1889)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근본이 서지 않은 사람이라면 학자라고 할 수 없으니, 丁奎弼(字 學初)‧丁敦燮(字 伯崇) 등과 切磋琢磨하기를 충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00

    答鄭敬伯(承禹,1891)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독서를 하면서 의심나는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깊이 사색을 해야 의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면려하였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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