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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7351

    答孫叔靜(晉濂)大學問目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大學󰡕에 관한 10조목의 짤막한 문답이다. 絜矩에 대해서 朱子가 ‘仁을 구하는 공부’라고 한 이유를 묻자, 仁은 以己及物이요 恕는 推己及物이니 혈구는 恕의 일이기 때문에 ‘仁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답한 조목이 있다. 孫晉濂은 저자의 고종사촌인 孫最秀의 셋
    출처 : 유교넷
  • 327352

    答權聲之(鍾遠,1900)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孝悌의 근본을 수립한 뒤에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움으로써 古人들이 敎學하던 뜻을 구하라고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3

    與權聲之(1904)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火災에 혹시 서책이 불타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4

    答族孫德純(漢杰,1901)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제자이자 족손인 慄齋 李漢杰(1880~1951) 에게 답한 편지로, 자기 수양에 힘을 쏟지 못한 저자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5

    答權洛汝(宅永,1903)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독서하는 여가에 집안 살림에도 신경을 쓰라고 충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6

    答李敬哉(學基)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大學󰡕에 정열을 쏟아 공부한 다음에 다른 책을 보도록 권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7

    答族叔德儒(中基,1896)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東齋에 머물면서 선현의 글을 읽고 선현의 체취를 느껴보라고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8

    與李和伯(用華)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함께 講磨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59

    答全重三(在錡)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외물에 치달아 뜻을 빼앗기지 말고, 眞實處에서 공부하도록 충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0

    答金錫祚(永鎭)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서로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1

    與金德卿(仁培)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鄕飮酒禮에 참석했던 일을 알렸다.
    출처 : 유교넷
  • 327362

    答族弟元卿(祥鎬)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改葬할 적에 飯含이나 幄手 등의 물품까지 갖추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일렀다.
    출처 : 유교넷
  • 327363

    答族孫舜韶(鏞杰)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晦山 李鏞杰(1883~1964)에게 이미 학문의 방향이 섰다면 굳이 먼 곳까지 가서 배움을 청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4

    答李仁叟(根春,1903)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明倫과 敬身을 통해서 孝悌의 도리를 깨치지 못한 상태에서 󰡔大學󰡕을 읽는 것은 기초가 없는 집과 같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5

    부모님께 안부를 드리고, 찾아온 벗을 접대한 뒤에도 독서할 시간은 많이 있으므로 집안에서 독서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6

    答金惠卿(1903)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國恤 중 私家의 祥祭는 날짜를 미루어 행해야 하며, 練祭와 祥祭와 禫祭는 한 달 안에 한꺼번에 행할 수 없다고 알렸다.
    출처 : 유교넷
  • 327367

    答姜仁可(膺鎭,1903)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선비 나이 20세는 농부가 부지런히 일할 오뉴월에 해당하므로, 이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풍성한 가을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8

    與黃軒伯(冕鎭,1903)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촌음을 아껴가며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69

    答權致中(宗斗)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中庸󰡕은 읽기 어려운 책이니, 숙독하여 그 의미를 상세히 음미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70

    與李君書(洛均,1903)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志學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학문을 제대로 익히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71

    答李鳴振(圭鐸)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3년에서 5년 사이에 經書를 다본 뒤에 󰡔小學󰡕과 󰡔大學󰡕을 읽으려고 하는 李圭鐸의 독서 방법을 질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72

    答孫德夫(厚翼,1905)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晦堂 張錫英(1851~1929)의 문인인 孫厚翼에게 󰡔周易󰡕 「坤卦」 象辭의 ‘후한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厚德載物]’는 말에서 德夫라는 字를 명명했다고 그 연유를 일러주었다.
    출처 : 유교넷
  • 327373

    答崔鉉禹問目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靜中之動과 動中之靜은 靜 가운데 動의 이치가 있고 動 가운데 靜의 이치가 있다는 말이지 실제로 動靜이 있다는 것은 아니며, 「太極圖」에서 陽動陰靜이라고 한 것은 음양이 저절로 動靜함은 아니며, ‘壽夭貴賤’은 氣로 말할 수 없고 理이다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74

    答姜士行(道熙,1906)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제자인 靜思齋 姜道熙(1888~1954)에게 답한 편지로, 事親 敬長 隆師 親友의 도리에 힘쓰라고 권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75

    別紙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小學󰡕에 관한 문답으로, 知仁聖義忠和의 六德 중 知가 仁 앞에 있는 이유, 「明倫」편의 王蠋의 일을 「稽古」편으로 옮기는 것, 「稽古」편의 衛靈公夫人과 高允의 일에 대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76

    上從叔父(1877)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외조부의 상을 당한 일과 從叔母의 병환 소식 등을 알렸다.
    출처 : 유교넷
  • 327377

    答再從姪正佑(善求,1905)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時文 功利에 힘쓰지 말고 四書六經을 통해 근본을 확립하라는 충고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78

    答家弟(覲鎬)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從叔父가 유배지에 도착했고, 날이 풀이면 沙村으로 인사드리러 가겠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79

    童子問答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만물을 낳는 것은 理이고 陰陽五行은 만물을 이루는 도구임을 밝힌 뒤에, 性은 元亨利貞의 理로 사람에게 있어서 仁義禮智의 體가 되는데 이는 靜할 때를 말함이요 惻隱 羞惡 등의 情은 動할 때를 말함이라 하였다. 또 心과 性은 하나이지만 心發과 性發의 차이가 있고, 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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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380

    與許舫山(薰)講心統性情圖義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李滉의 「心統性情圖」에 대해서 저자와 許薰이 문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저자가 心의 宗旨는 中圖에 있는 것으로 본 반면에 허훈은 下圖를 山의 結血處에 비유하면서 하도를 종지로 보았다. 5조목에 걸친 문답을 서술한 뒤에, 마지막에 가서 저자의 총평을 제시하였다. 그
    출처 : 유교넷
  • 327381

    講社節目(1895)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講課를 실시할 때 조목을 정한 것으로, 학문은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함이 근본으로 誠敬을 위주로 할 것, 행실은 孝悌를 우선할 것, 愛敬으로 붕우의 도리를 다할 것, 중단 없이 공부할 것, 尊華攘夷의 정신을 지킬 것, 文詞 技藝를 일삼지 말 것, 字學󰋼須知‧
    출처 : 유교넷
  • 327382

    世蹟攷疑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眞城李氏는 본래 靑松이 貫鄕이었는데, 저자의 집안은 安東으로 이거한 뒤에 진성을 관향으로 삼았고, 昌城에 살던 이씨는 청송을 그대로 관향으로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또 謙菴 柳雲龍(1539~1601)이 썼다고 하는 12대조 僉正公의 行狀 내용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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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383

    雲陶雅選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雲陶雅選󰡕은 저자가 朱熹(雲谷)와 李滉(陶山)의 詩 중에서 性情을 도야하는데 절실한 것들을 모아서 상하 2권 1책으로 편집하고, 諸家의 주석을 부록으로 곁들인 책이다. 저자는 두 분의 시를 ‘冲遠醇和 淸麗典雅’라는 말로 평하였다. 발문은 제자인 畏齋 丁泰鎭이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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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384

    四禮撮要序(1898)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儀禮󰡕를 근본으로 하면서 󰡔家禮󰡕를 참고하며 時俗에서 통행되는 禮로 절충하고 先子와 諸儒의 설을 인용하여 행하기에 간편하도록 告辭도 포함하여 󰡔사례촬요󰡕를 만든 경위를 밝혔다. 이 禮書는 告辭와 祝式 및 笏記 등을 갖춘 실행을 전제로 하는 간편한 要約類
    출처 : 유교넷
  • 327385

    可隱記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榮州 可興에 살던 金弼奎(字 輔應)가 서재 이름을 ‘可隱’이라 하고 기문을 청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86

    忍拙齋余公遺集跋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효행과 우애가 뛰어났던 忍拙齋 余杠(1696 ~1773)의 유집에 쓴 발문으로, 후손 余進源이 청탁하였다. 여강의 字는 濟卿, 본관은 宜寧으로, 玉川 趙德隣(1658∼1737)을 師事했으며, 晩谷 趙述道(1729~1803)가 行狀을, 俛宇 郭鍾錫이 墓誌銘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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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387

    陰晴錄識(1880)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저자가 30세 되던 해에 자신의 起居, 飮食, 酬酢 등에 바르지 못한 행실이 있을까 경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날마다의 일상을 기록한 책에 쓴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88

    吾家錄跋(1888)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학문은 이치를 밝히고자 함이고 이치를 밝힘은 마음을 다스리려는 것이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聖學十圖󰡕‧󰡔古鏡重磨方󰡕‧「屛銘」의 교훈을 바탕으로 󰡔吾家錄󰡕을 편집한 경위를 서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89

    遊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少時에 이리저리 다니며 마음대로 노닐었던 것을 경계하고 仁義와 禮法을 닦으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90

    名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명예를 탐하지 말고 안빈낙도하며 사람된 도리를 지키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91

    矜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謝良佐의 가르침에 따라 자랑함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92

    知非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과거의 잘못을 알았으면 바르게 고치도록 힘쓸 것이다. 이상의 箴 네 편은 저자의 나이 50세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327393

    自警銘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날이 항상 부족하니 날마다 학문과 수양에 힘쓰라는 16자의 銘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94

    戰兢齋銘(1902)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저자의 벗인 李成叔이 曾子가 임종할 때 ‘내 손발을 열어보라[啓手足]’고 했던 뜻에서 자신의 서재를 戰兢齋라 명하였고, 저자가 여기에 銘을 지어 孝行의 요체를 밝혔다. 저자는 여기에서 자신의 호를 一嵒이라 하였다. 郭鍾錫의 「東亭三銘」(1897)에 따르면, 저자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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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395

    龍硯銘(爲姜公溥作)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梅谷 姜鐓(1848~?, 字 公溥)의 龍硯에 쓴 銘이다.
    출처 : 유교넷
  • 327396

    祭龍山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族祖인 龍山 李晩寅을 위한 제문으로, 李滉이 터득한 心學의 요지를 계승하여 衛道의 공이 지대하였음을 칭송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7397

    祭朴成弼文(1901)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곧고 믿음직한 벗인 朴鎬陽을 위한 제문으로, 권1에 그에 대한 輓詩가 있다.
    출처 : 유교넷
  • 327398

    祭權繼若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權有淵(1852~1896)을 위한 제문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뜻도 맞았던 벗으로 가까운 곳에 살면서 詩도 주고받고 학문도 토론하면서 유익함이 많았다고 회상하였다. 권유연은 奉化의 寒水亭에서 저자를 비롯하여 郭鍾錫, 金秉璜과 시를 지은 바 있으며, 그의 墓表는 郭鍾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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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399

    祭姜文叔(在琦)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姜在琦(1858~?)를 위한 제문이다. 저자가 鶴山에 우거할 때 찾아왔고, 梧山에 있을 때 두 아들의 교육을 부탁했고, 舊校洞에 집을 마련했을 때는 情意가 도타웠다.
    출처 : 유교넷
  • 327400

    祭再從姪(仁求)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
    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李仁求를 위한 제문이다. 아래의 「再從姪石屋君壙識」에 생애가 자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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