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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叔靜(晉濂)大學問目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大學에 관한 10조목의 짤막한 문답이다. 絜矩에 대해서 朱子가 ‘仁을 구하는 공부’라고 한 이유를 묻자, 仁은 以己及物이요 恕는 推己及物이니 혈구는 恕의 일이기 때문에 ‘仁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답한 조목이 있다. 孫晉濂은 저자의 고종사촌인 孫最秀의 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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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聲之(鍾遠,1900)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孝悌의 근본을 수립한 뒤에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움으로써 古人들이 敎學하던 뜻을 구하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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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聲之(1904)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火災에 혹시 서책이 불타지 않았는지 걱정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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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孫德純(漢杰,1901)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제자이자 족손인 慄齋 李漢杰(1880~1951) 에게 답한 편지로, 자기 수양에 힘을 쏟지 못한 저자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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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洛汝(宅永,1903)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독서하는 여가에 집안 살림에도 신경을 쓰라고 충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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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敬哉(學基)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大學에 정열을 쏟아 공부한 다음에 다른 책을 보도록 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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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德儒(中基,1896)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東齋에 머물면서 선현의 글을 읽고 선현의 체취를 느껴보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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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和伯(用華)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함께 講磨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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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全重三(在錡)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외물에 치달아 뜻을 빼앗기지 말고, 眞實處에서 공부하도록 충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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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錫祚(永鎭)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서로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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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德卿(仁培)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鄕飮酒禮에 참석했던 일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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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元卿(祥鎬)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改葬할 적에 飯含이나 幄手 등의 물품까지 갖추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일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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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孫舜韶(鏞杰)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晦山 李鏞杰(1883~1964)에게 이미 학문의 방향이 섰다면 굳이 먼 곳까지 가서 배움을 청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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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仁叟(根春,1903)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明倫과 敬身을 통해서 孝悌의 도리를 깨치지 못한 상태에서 大學을 읽는 것은 기초가 없는 집과 같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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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聖佐(賢佑)金惠卿(世相)金霔汝(普榮,1898)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부모님께 안부를 드리고, 찾아온 벗을 접대한 뒤에도 독서할 시간은 많이 있으므로 집안에서 독서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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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惠卿(1903)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國恤 중 私家의 祥祭는 날짜를 미루어 행해야 하며, 練祭와 祥祭와 禫祭는 한 달 안에 한꺼번에 행할 수 없다고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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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仁可(膺鎭,1903)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선비 나이 20세는 농부가 부지런히 일할 오뉴월에 해당하므로, 이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풍성한 가을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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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黃軒伯(冕鎭,1903)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촌음을 아껴가며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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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致中(宗斗)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中庸은 읽기 어려운 책이니, 숙독하여 그 의미를 상세히 음미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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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君書(洛均,1903)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志學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학문을 제대로 익히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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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鳴振(圭鐸)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3년에서 5년 사이에 經書를 다본 뒤에 小學과 大學을 읽으려고 하는 李圭鐸의 독서 방법을 질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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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德夫(厚翼,1905)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晦堂 張錫英(1851~1929)의 문인인 孫厚翼에게 周易 「坤卦」 象辭의 ‘후한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厚德載物]’는 말에서 德夫라는 字를 명명했다고 그 연유를 일러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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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鉉禹問目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靜中之動과 動中之靜은 靜 가운데 動의 이치가 있고 動 가운데 靜의 이치가 있다는 말이지 실제로 動靜이 있다는 것은 아니며, 「太極圖」에서 陽動陰靜이라고 한 것은 음양이 저절로 動靜함은 아니며, ‘壽夭貴賤’은 氣로 말할 수 없고 理이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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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士行(道熙,1906)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제자인 靜思齋 姜道熙(1888~1954)에게 답한 편지로, 事親 敬長 隆師 親友의 도리에 힘쓰라고 권면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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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小學에 관한 문답으로, 知仁聖義忠和의 六德 중 知가 仁 앞에 있는 이유, 「明倫」편의 王蠋의 일을 「稽古」편으로 옮기는 것, 「稽古」편의 衛靈公夫人과 高允의 일에 대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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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從叔父(1877)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외조부의 상을 당한 일과 從叔母의 병환 소식 등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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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再從姪正佑(善求,1905)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時文 功利에 힘쓰지 말고 四書六經을 통해 근본을 확립하라는 충고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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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家弟(覲鎬)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從叔父가 유배지에 도착했고, 날이 풀이면 沙村으로 인사드리러 가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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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子問答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만물을 낳는 것은 理이고 陰陽五行은 만물을 이루는 도구임을 밝힌 뒤에, 性은 元亨利貞의 理로 사람에게 있어서 仁義禮智의 體가 되는데 이는 靜할 때를 말함이요 惻隱 羞惡 등의 情은 動할 때를 말함이라 하였다. 또 心과 性은 하나이지만 心發과 性發의 차이가 있고, 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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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許舫山(薰)講心統性情圖義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李滉의 「心統性情圖」에 대해서 저자와 許薰이 문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저자가 心의 宗旨는 中圖에 있는 것으로 본 반면에 허훈은 下圖를 山의 結血處에 비유하면서 하도를 종지로 보았다. 5조목에 걸친 문답을 서술한 뒤에, 마지막에 가서 저자의 총평을 제시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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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社節目(1895)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講課를 실시할 때 조목을 정한 것으로, 학문은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함이 근본으로 誠敬을 위주로 할 것, 행실은 孝悌를 우선할 것, 愛敬으로 붕우의 도리를 다할 것, 중단 없이 공부할 것, 尊華攘夷의 정신을 지킬 것, 文詞 技藝를 일삼지 말 것, 字學須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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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蹟攷疑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眞城李氏는 본래 靑松이 貫鄕이었는데, 저자의 집안은 安東으로 이거한 뒤에 진성을 관향으로 삼았고, 昌城에 살던 이씨는 청송을 그대로 관향으로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또 謙菴 柳雲龍(1539~1601)이 썼다고 하는 12대조 僉正公의 行狀 내용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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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陶雅選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雲陶雅選은 저자가 朱熹(雲谷)와 李滉(陶山)의 詩 중에서 性情을 도야하는데 절실한 것들을 모아서 상하 2권 1책으로 편집하고, 諸家의 주석을 부록으로 곁들인 책이다. 저자는 두 분의 시를 ‘冲遠醇和 淸麗典雅’라는 말로 평하였다. 발문은 제자인 畏齋 丁泰鎭이 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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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禮撮要序(1898)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儀禮를 근본으로 하면서 家禮를 참고하며 時俗에서 통행되는 禮로 절충하고 先子와 諸儒의 설을 인용하여 행하기에 간편하도록 告辭도 포함하여 사례촬요를 만든 경위를 밝혔다. 이 禮書는 告辭와 祝式 및 笏記 등을 갖춘 실행을 전제로 하는 간편한 要約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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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隱記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榮州 可興에 살던 金弼奎(字 輔應)가 서재 이름을 ‘可隱’이라 하고 기문을 청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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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拙齋余公遺集跋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효행과 우애가 뛰어났던 忍拙齋 余杠(1696 ~1773)의 유집에 쓴 발문으로, 후손 余進源이 청탁하였다. 여강의 字는 濟卿, 본관은 宜寧으로, 玉川 趙德隣(1658∼1737)을 師事했으며, 晩谷 趙述道(1729~1803)가 行狀을, 俛宇 郭鍾錫이 墓誌銘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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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晴錄識(1880)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저자가 30세 되던 해에 자신의 起居, 飮食, 酬酢 등에 바르지 못한 행실이 있을까 경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날마다의 일상을 기록한 책에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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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家錄跋(1888)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학문은 이치를 밝히고자 함이고 이치를 밝힘은 마음을 다스리려는 것이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聖學十圖‧古鏡重磨方‧「屛銘」의 교훈을 바탕으로 吾家錄을 편집한 경위를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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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少時에 이리저리 다니며 마음대로 노닐었던 것을 경계하고 仁義와 禮法을 닦으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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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명예를 탐하지 말고 안빈낙도하며 사람된 도리를 지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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矜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謝良佐의 가르침에 따라 자랑함을 경계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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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非箴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과거의 잘못을 알았으면 바르게 고치도록 힘쓸 것이다. 이상의 箴 네 편은 저자의 나이 50세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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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警銘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날이 항상 부족하니 날마다 학문과 수양에 힘쓰라는 16자의 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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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兢齋銘(1902)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저자의 벗인 李成叔이 曾子가 임종할 때 ‘내 손발을 열어보라[啓手足]’고 했던 뜻에서 자신의 서재를 戰兢齋라 명하였고, 저자가 여기에 銘을 지어 孝行의 요체를 밝혔다. 저자는 여기에서 자신의 호를 一嵒이라 하였다. 郭鍾錫의 「東亭三銘」(1897)에 따르면, 저자는 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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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硯銘(爲姜公溥作)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梅谷 姜鐓(1848~?, 字 公溥)의 龍硯에 쓴 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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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龍山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族祖인 龍山 李晩寅을 위한 제문으로, 李滉이 터득한 心學의 요지를 계승하여 衛道의 공이 지대하였음을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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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朴成弼文(1901)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곧고 믿음직한 벗인 朴鎬陽을 위한 제문으로, 권1에 그에 대한 輓詩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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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繼若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權有淵(1852~1896)을 위한 제문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뜻도 맞았던 벗으로 가까운 곳에 살면서 詩도 주고받고 학문도 토론하면서 유익함이 많았다고 회상하였다. 권유연은 奉化의 寒水亭에서 저자를 비롯하여 郭鍾錫, 金秉璜과 시를 지은 바 있으며, 그의 墓表는 郭鍾錫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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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文叔(在琦)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姜在琦(1858~?)를 위한 제문이다. 저자가 鶴山에 우거할 때 찾아왔고, 梧山에 있을 때 두 아들의 교육을 부탁했고, 舊校洞에 집을 마련했을 때는 情意가 도타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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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姪(仁求)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李仁求를 위한 제문이다. 아래의 「再從姪石屋君壙識」에 생애가 자세하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