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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建叟(壽極)哀辭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절조가 곧고 깨끗했던 柳壽極이 부모형제와 遺腹子를 남긴 채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을 애석해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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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叔一初(中執)哀辭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響山 李晩燾(1842~1910)의 次子로 才志가 있었지만 요절한 李中執의 죽음을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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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宅中(書洛)誄辭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晩圃 金奎一의 次子인 豊山人 金書洛이 22 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김서락의 형 金厚洛도 冠禮를 치른 뒤 얼마 되지 않아 요절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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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孫公壙銘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月城人 孫友永(1829~1901, 字 敬學)의 일대기를 적은 글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校理를 지낸 孫相馹의 아들로, 1858년(철종 9)에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과거에 대한 뜻을 끊고 봉양과 교육에 힘썼으며, 葬禮 때 閭巷의 부녀자들까지 통곡할 정도로 어진 명망이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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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姪石屋君壙識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李滉의 14세손인 石屋 李仁求(1858~1895, 字 元五)의 일대기를 적은 글이다. 省齋 李命鎬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頤齋 權璉夏(1813~1896)의 딸이다. 어려서 저자의 부친 李中英에게 배웠으며, 詩에 뛰어났다. 임종할 때 저자에게 ‘郭鍾錫을 평소 존모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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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溪郭公墓誌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苞山人 柳溪 郭涌(1578~1616, 字 汝達)의 묘지명이다. 寒岡 鄭逑(1543∼1620)와 樂齋 徐思遠(1550∼1615)의 문인이며, 慕堂 孫處訥(1553∼1634)과 愚伏 鄭經世(1563∼1633)와 교유하였다. 心性命에 대한 저술이 있고, 36세에 사마시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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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訓郞軍資主簿忍窩晉公墓誌銘(幷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호南原人 忍窩 晉大鳳(1594~1658, 字 國祥)의 묘지명이다. 郡守를 지낸 晉敬源과 德水李氏 사이에서 출생하여 1615년(광해 7)에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병자호란 이후 출세의 길을 접고 旅軒 張顯光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639년(인조 17)에 부친상을 당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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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계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락구계유고(龜溪遺稿) 龜溪 金榮洛의 문집. 石版本, 序: 李忠鎬(1936), 跋: 李守漢(1912)‧高彦虁‧柳東濬‧高永贊(1936)‧鄭用洛‧柳承佑‧權相圭(1937)‧李常久‧金載畯(1936), 2卷 1冊: 四周雙邊, 半郭 21.4×16.3㎝, 10行 20字, 註雙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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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극암집(克菴集) 克菴 柳欽睦의 문집. 石印本, 跋: 柳道昇(1938),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20.5×17.0㎝,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二葉花紋魚尾;29.5×20.2㎝. 이 책은 1938년 柳道徵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문집의 구성은 먼저 序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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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癸未立春題軒上, 讀書有感, 屛院獨宿, 又, 敬次先祖西厓先生集中韻, 吾山堂與諸益共賦, 敬次愛日堂板上韻, 次花山書堂修契韻, 道南八景(幷序), 次洪應三幽居韻, 登不知巖精舍, 道南壇所築牆後宋聖鍾以一律識其事因次其韻, 次而悳從松亭韻(幷序), 柳川亭敬次先祖西厓先生集中韻贈箕先(寅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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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倅(晩胤,1894) 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1894년 11월에 상주목사로 부임한 李晩胤(1834~1906)이 보낸 글에 답한 편지이다. 당시 상주는 갑오농민군의 무장 봉기가 겨우 진정된 상태였다. 저자는 이만윤에게 상주가 갖는 행정상 어려움을 환기시키고 상주를 안정시킬 방책에 대해 물어보는 내용이다. 이만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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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拓菴(道和,代宗姪道奭作) 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척암 김도화(1825~1912)가 보낸 글에 재종질 류도석(1828~1908)을 대신해 답한 편지이다. “이후로 피차가 서로 권면하여 예전의 좋았던 관계를 회복시켜, 진실로 보내셨던 편지 말씀대로 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라는 사연으로 보아 屛虎是非와 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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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月湖 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北川壇所의 계를 만드는 일과 관련하여 月湖 金志遠(1841~1906)에게 보낸 편집이다. 저자는 단소의 계를 만드는 일은 그 책임이 오로지 상주지역의 사림들에게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저자가 가난하고 병든 신세라서 그 소임을 제대로 이행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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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從都正(宇睦,代門中作) 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문중을 대신해 류우목(1811~1886)에게 보낸 글이다. 류성룡의 둘째 아들 柳의 후손인 生物道巖派 종손이 요절하여 그 후사를 얻는데, 협조를 구하는 내용이다. 류우목의 본관은 豐山, 자는 穉孝이다. 1848년 增廣試 1등으로 생원에 합격하고 敦寧府都正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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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龍山(晩寅,1897) 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이만인(1834~1897)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양자를 얻어 혼례를 치렀다는 내용, 공부를 하는데 심력이 갈수록 모자라서 발전이 없다는 내용, 愚山의 일이 걱정된다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다. 이만인의 본관은 本貫은 眞城, 자는 君宅, 호는 龍山이다. 향리에서 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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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姪石湖翁(道性) 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족질인 석호 류도성(1823~1906)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도성이 관직에 나가게 된 것과 승차한 것에 대한 축하 내용과, 관직을 제수받게 된 것은 가문의 배경이 아니라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류도성의 본관은 豊山, 자는 善汝, 호는 石湖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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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田園(道獻) 5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병호시비와 관련하여 족질인 류도헌(1835 ~?1909)에게 답한 편지로, 保合 논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70년 동안 아주 작은 부분도 보합하지 못했던 것은 호론이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位次의 遷動문제, 湖上의 위조된 판본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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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高元仲(彦亨) 6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의 처남인 고언형(1835~1907)에게 보낸 편지이다. 禮說을 편집하는 일로 그를 溪亭으로 청하였다. 또한 狀德文에 참고가 될 만한 책을 부탁한 내용이다. 고언형의 본관은 開城, 자는 元仲, 호는 泰庵이다. 柳疇睦·李敦禹의 문인이다. 대흉년에 전답을 팔아 진휼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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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高元仲 7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고언형에게 답한 안부 편지이다. 처남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동몽교관으로 推恩된 것에 대한 축하와 實記 간행을 위한 계모임에서 만났으면 좋겠지만, 저자가 병에서 완쾌되지 않아 참석할 수 없다는 것, 江村의 정형이 갑자기 죽으니,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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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魚元方(命周,1910) 8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어명주의 안부 편지에 답하는 글이다. 그의 편지를 받아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손자에 대한 인상을 적고 있다. 저자는 어명주의 손자를 날마다 어엿한 사람으로 성장할 기품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는 한편, 혼란스러운 세상이니 본성을 잃지 않도록 보살피라는 당부의 내용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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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畏堂(炳葉) 8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이병엽의 글에 답한 안부 편지이다. 몸이 좋지 않다는 편지를 받고 걱정을 많이 했다는 내용, 그 와중에 아들을 얻었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을 가졌다는 내용, 그리고 병에서 완쾌되어 안심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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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盧丈天老(載厚) 9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사돈인 노재후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장수를 누리시는지, 자제분은 즐겁게 봉양하고 있는지, 저자의 여식 내외는 모두 질병이 없는지, 손자들을 잘 자라 아침저녁으로 재미를 드리고 있는지 등의 궁금한 내용과 함께, 쇠약증에 걸려 거동이 힘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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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河上宗中(1898) 9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龍山本의 교정지를 받았는데, 인근의 동학들과 함께 검토하고자 했으나, 새해가 된 이후에야 가능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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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愚山鄭氏門中(1897) 10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우산의 진양정씨 문중에 보낸 편지이다. 서면이나 방문을 통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우산문중이 「同春本」을 가지고 정경세의 연보를 중간하는 작업을 끝낸 사실에 대해 유감을 표하였다. 또 연보의 범례에 師門을 諡‧別號로 정한 것이 다른 문집의 예와 다르다고 자인하면서 송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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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進士南一(斗源) 1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屛虎是非와 관련하여 한두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서애와 학봉의 序次를 정함에 있어, 벼슬로 차례를 정하는 것은 賢人의 차례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검제[金溪]의 언설이 黨이 갈린 후 80년 이래로 처음 있는 것이라 규정하였다. 서애가 학봉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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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校理荷士 1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정하사가 보낸 글에 답한 편지이다. 답장을 늦게 보내게 되어 송구하다는 내용과 도의를 담론하고 역사와 현실을 토론해 준 점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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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迺休(奎欽,1897) 1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홍규흠(1846~1903)의 글에 답한 편지이다. 군위 부계에 있던 陽山書院 터에 陟西亭을 중건한 일에 대해 경의의 뜻을 담은 내용이다. 양산서원은 1786년(정조 10)에 洪魯‧洪貴達‧洪彦忠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군위군 부계면에 설립되었다가, 1868년(고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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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古菴(世洛)(1901) 1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김세락(1804~1873)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주목의 全禮類輯 간행에 김세락의 도움을 요청한 글이다. 저자는 김세락이 尙州 南長寺의 營刊所에 왕림해서 이 책을 판각할 수 있도록 교열을 봐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세락의 본관은 月城이고, 자는 汝淑, 호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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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孟淵(中華)希徵(晩輿) 1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도산서원 상덕사의 퇴계 위패 도난 및 월천 위패 훼손 사건이 해결된 이후 갖게 될 위안제에서 一獻禮를 쓸 것인지, 三獻禮를 쓸 것인지에 대한 이중화와 이만여(1861~1938)의 물음에 답한 글이다. 선례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현일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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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進士聖有(昇衍) 1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조승연(1856~?)이 보낸 편지에 답한 글이다. 조승연이 저자의 학문을 칭송하자, 그것에 대한 민망한 마음을 적은 내용이다. 저자는 涵養이 모자라고, 나태한 자세로 인해 학문적 성찰이 미진하다는 겸양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익 다툼을 좋아하고 책 읽고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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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上舍命海(肅源) 15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김숙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월 초열흘께 바람 없는 날을 택해 종형제분들과 함께 저자의 집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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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6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김숙원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김숙원의 셋째 아들 장례에 대한 슬프고 애석한 마을을 전한다는 내용과 함께 김석원의 안부를 묻고 있다. 또한 퇴계선생의 祠版이 花川壇所로 잠시 옮긴 소식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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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6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사돈인 김숙원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김숙원의 둘째 형의 大祥에 사람을 보내 위문하려고 했지만, 장마가 길어지고 강이 넘쳐 마음만 먹고 이루지 못해 송구스러웠다는 내용과 함께 5월 초에 풍기와 영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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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敬猷(相翼) 17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이상익의 편지에 답한 글이다. 道南壇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전하고 있다. 도남단소에서 문익공 이원정(1622~1680)의 외선조 사당을 건립하기 위해 뜻을 모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 산양에서 講契에서 매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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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韓東五(奎源,1903) 18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한규원이 보낸 편지에 답한 글이다. 한규원의 막내 아들이 참봉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는 내용, “시비에 간섭치 말라”는 한규원의 충고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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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重表弟李悅卿(泰榮) 18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이태영에게 보낸 편지이다. 喪중인 이태영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친척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 柳畯睦과 함께 위문할 예정이라는 내용, 도남단소의 講學契에 참석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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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孫呂卿(文秀) 19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손문수에게 보낸 편지이다. 손문수의 둘째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내용, 애도하는 마음을 일찍 전하지 못해 송구하다는 내용과 함께 다른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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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汝聲(在慤) 2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사돈인 황재각의 안부 편지에 답한 글이다. 황재각의 둘째 아들이 저자의 사위이다. 황재각이 저자의 딸이 셋째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한 것에 대한 감사 내용과 함께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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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徵兒 2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의 양자인 류도징(1876~1950)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도징의 건강과 손자의 안부를 묻는 내용, 柳川集 교감 작업을 곧 마무리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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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父洛坡府君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종숙부인 류후조(1798~1876)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가 류후조의 은덕으로 오늘을 보전할 수 있었지만, 엉성하고 용렬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류후조의 덕행 가운데 배울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능력이 부족하여 제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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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石湖翁文(代李中華作) 2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이중화를 대신해 류도성에 대한 제문을 지은 것이다. 이다. 다른 제문과는 달리 시로 그를 기리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의 죽음으로 저자를 깨우치고 인도해 줄 사람이 없으며,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이단 잡설을 정리할 사람이 없게 됨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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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高元仲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처남인 고원형에 대한 제문이다. 처남의 천성은 온화하고 선량하였으며, 무엇보다 효성스러워 繼母를 모시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자매와 친척을 敬의 마음으로 대하는 등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생을 살았다는 내용이다. 또한 몸이 불편하여 장례 때 참석하지 못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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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母贈貞敬夫人延安李氏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류후조의 부인인 연안이씨에 대한 제문이다. 연안이씨의 효성스럽고 자식을 위한 극진한 마음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손자와 증손 가운데 훌륭한 선비로 우뚝한 사람들은 모두 연안이씨의 효도와 공경에 대한 보답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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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堂伯兄溪堂先生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의 스승인 류주목에 대한 제문이다. 다른 제문과는 달리 시로 그를 기리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는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모친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擧義하였다. 의병장으로 출전한 류주목의 출처에 대해서 “집상을 고례대로 하셨으니, 남들 질시가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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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公漢之文(代作) 27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이한지의 제문을 부탁받고 지은 것이다. 노모를 봉양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하직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 저자의 집을 자주 찾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에 대한 회상, 장례때 찾아뵙지 못한 송구한 마음을 함께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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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徐參奉舜八(錫元)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의 매제인 徐錫元(1852~1893)의 제문이다. 젊은 나이에 제사를 받들 아들도 없이 객지에서 죽은 것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부음을 제대로 전해 받지 못하였고, 소식을 접한 뒤에도 난리와 가뭄 그리고 병으로 제때 찾지 못해 송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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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申公賁吉(命哲)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신명철에 대한 제문이다. 그가 죽은지 2년이 지났지만, 저자가 더욱 비애를 느끼는 것은 서로 공경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말은 어눌하나 행동은 민첩하며,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떳떳한 윤리에 독실함은 늘 저자에게 가르침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寢門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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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娣氏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진성 李晩時(1814~1875)에게 시집간 저자의 누나에 대한 제문이다. 삼남매의 절절한 삶이 잘 드러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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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齋鄭先生墓所䜿碣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입재 정종로(1738~1816)의 묘소에 비갈을 세우는 것에 대한 고유문이다. 정종로는 영남 유림의 사표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종로의 본관은 晉陽, 자는 士仰, 호는 立齋‧無適翕으로 鄭經世의 6대손이며, 李象靖의 문인이다. 어릴 때 가학을 전수받았으며, 영남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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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宅告由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새로 집을 짓고, 재앙이 없기를 염원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