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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稷壇祈雨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당숙부인 柳敎祚(1812~1881)를 대신하여 지은 기우문다. 당시 류교조는 청송도호부사로 재직 중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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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遯山祈雨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청송의 대둔산, 즉 周王山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글이다. 청송도호부사였던 류교조를 대신해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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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光山祈雨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방광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글이다. 방광산은 청송 관내에서 조금 북쪽에 자리 잡은 산으로, 청송의 主山이자 鎭山이다. 청송도호부사였던 류교조의 부탁을 받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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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水壇祈雨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용수단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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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鄕校宮鄕飮酒禮題名錄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1893년에 상주목사 윤태원이 상주향교에서 개최한 향음주례의 제명록 서문이다. 향음주례 실시의 동기와 진행과정 및 내용, 한말 유림의 현실인식과 대응책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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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坡漫言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菊坡 金奎錫(1828~?)의 시문집인 菊坡漫言에 쓴 서문이다. 이 책은 모두 2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자가 1908년에 서문을 지었다. 김규석의 本貫 商山, 자는 斗應, 호는 號 菊坡, 金憲의 후손으로 柳疇睦과 鄭民秉의 문인이다. 1859년 增廣試 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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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仁契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에게서 공부를 배운 후학과 제자들이 會仁契를 조직한 후, 계첩을 만들게 되었다. 그 계첩의 서문을 부탁받고 지어준 글이다. 그는 이 모임이 헛된 문구로만 귀결되지 않고 성심으로 스승을 높이는 義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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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正契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류도석이 그의 손자가 친구 10여 명과 함께 하는 모임의 이름과 계첩의 서문을 부탁하자, 지어준 것이다. 저자는 周易의 “어린아이를 바른 도리로써 키운다[蒙以養正].”에서 뜻을 취하여 모임의 이름을 ‘양정’이라고 지어 주었다. 그리고 ‘양정’이라고 명명한 이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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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西厓先生遺愛碑移建時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1906년 6월 28일 장마로 인해 서애 류성룡의 비각과 비석이 훼손되었다. 그것을 1907년 7월 19일에 다시 세우면서 지은 기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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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川亭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柳川 柳初(1584~1658)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에 대한 기문이다. 유천정은 현재 문경시 산양면 존도리 남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1905년 柳道祐에 의해 건립되었다. 정자는 모두 3칸인데, 좌우가 온돌방이며, 가운데가 마루이다. 왼쪽 방에는 ‘思敬齋’, 오른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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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菴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通菴 裵晉曦(1824~1886)가 집에 ‘통암’이라는 편액을 걸고, 그 기문을 저자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배진희 자는 旭汝이며, 류주목과 허전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그는 易에 밝았으며, 김해 출신 학자인 허인‧안민중‧노수용‧안석원과 더불어 鄕風을 크게 진작시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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履之軒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履之軒은 龜城의 羅紗山의 아래 明德村 위에 있는데, 李舜瑞가 건립하였다. 이순서의 요청으로 기문을 지은 것이다. 저자는 기문에서, 늙었다고 스스로 나태해지지 말고 날마다 이곳에서 경전을 외고, 아들과 손자를 가르치면서 더욱더 삼가고 힘써 講學의 시초를 열어놓고,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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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守愚堂先生實紀重刊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지은 수우당 최영경(1529~1590)의 문집인 守愚堂先生實紀 重刊本에 대한 발문으로, 1910년에 지은 것이다. 최영경의 글을 어렵게 모아 초간본을 간행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널리 배포하지 못했으며, 또한 2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 때 최영경의 志節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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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松灣先生逸稿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松灣 金憲(1566~1624)의 시문집에 쓴 발문이다. 김헌의 저작물이 많았는데,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후손들이 다른 사람의 문집과 집안의 古蹟 중에서 약간의 시와 글을 수습하였다. 이렇게 수습한 글과 師友들이 준 글과 後賢들이 지은 글을 묶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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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花樹三榦帖後 1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柳宣睦(1849~1925)이 先世의 遺墨을 모아 묶은 첩자에 이름 붙여준 사연을 적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花樹三幹이라 명명하였다. ‘花樹’는 친족의 모임인 花樹會에서 따온 것이고, “三幹”은 河上‧生物‧柴里(愚川) 3종파를 의미하는 것이다. 류선목의 본관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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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福徐公墓所山訟時外裔諸家名帖跋 15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동북현감을 지낸 徐運의 묘소를 둘러싸고 전개된 산송의 기록을 모은 帖子에 써준 발문이다. 서운의 묘소는 龍宮 佳野의 정남향 언덕에 있었는데, 1780년(정조 4) 全熙禹가 그 가까운 곳에 범장하였다. 서운의 후손들이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되자, 그의 외손들이 힘을 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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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孺人遺事 16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金慶鎭의 부인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그의 부인은 길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禹錫이다. 그녀는 20세에 전염병으로 시부모와 남편을 잃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자식 교육에 정성을 쏟았고, 집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선행을 기록하기 위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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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叔父文憲公洛坡府君墓誌(代宗姪作) 17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가 류도석을 대신해 쓴 류주목의 묘지이다. 그의 일생과 학문하는 자세, 효성스러웠던 인품 등을 기록하였다. 류주목의 言行‧政事‧盛德‧大業 등을 글재주가 없어 그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해 안타깝다는 심정과 함께 行狀과 碑碣에 상세하게 기록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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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姪縣監公墓誌 2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류주목의 아들인 류도석의 묘지이다. 류도석의 家繼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그의 효성을 칭찬하고 있다. 또한 형제간의 우애, 즉 두 동생이 요절한 후 그들의 아들을 맡아 자신의 아이들과 차별하지 않고 길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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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眞軒鄭公杏亭遺墟碑銘(幷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龜巖 李楨의 문인인 鄭仁平이 지은 정자, 즉 杏亭 자리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기록한 글이다. 이 정자는 晉州의 진성리에 있던 것으로 정인평이 직접 나무를 심고 거닐던 곳이라 한다. 퇴계 이황과 芝山 曺好益이 일찍이 이곳에 들러 禮를 강론하였으며, 雙州 鄭泰元과 后山 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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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同福縣監徐公墓碣銘(幷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동북현감을 지낸 徐運의 묘갈명이다.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이전의 비갈이 부서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다시 세우게 되었다. 이 때 저자가 묘갈명을 써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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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兄大司諫公墓碣銘(幷序) 25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대사간을 역임했던 柳致睦(1771~1836)의 묘갈명이다. 그의 일대기와 관력 그리고 학문 자세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그는 豐安君 柳相祚와 鶴棲 柳台佐와 함께 풍산류씨 문중 3대부로 칭해진 인물이다. 류치목의 자는 定吾, 호는 厓雲이다. 1814년 문과에 급제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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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隱朴公墓碣銘(幷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李麟佐亂(일명 戊申亂) 때 黃道熙‧尹重邦과 함께 선산의 金烏山에서 의병으로 활약했던 朴啓佑의 묘갈명이다. 저자는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면서 忠‧孝의 실천을 높게 평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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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堂營建時通告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오산서당을 영건할 때 통고한 글로서, 재정적 지원을 호소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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檄一鄕文(1894,代宗姪道奭作) 3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1894년 갑오농민운동 당시 상주지역의 민보군 대장으로 추대된 류도석을 위해 써 준 격문이다. 당시 상주는 경북북부지역에서 갑오농민운동의 거세게 전개되었던 지역이었으며, 농민군과 민보군과의 충돌이 극심하였던 곳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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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淸凉山錄 34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1894년 4월 3일부터 20일까지 柳謹睦‧柳舜睦‧柳畯睦‧李中稙‧金世洛 등과 함께 청량산을 유람한 기록이다. 저자는 청량산을 퇴계 이황의 사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꼭 찾아봐야 할 곳이라고 하였다. 그는 청량산이 옛날에는 仙敎와 佛敎 때문에 알려졌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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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저자의 족손인 류창식이 지은 것이다. 저자의 일대기를 정리한 것이다. 류창식의 자는 奇玉, 호는 錦圃이다. 孝陵參奉·奉敎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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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3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族曾孫인 柳永佑(1850~1934)가 1931년에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가계와 인품, 학문, 행적, 일화 등이 기록되어 있다. 류영우의 자는 賢弼, 호는 鍾溪로 驥榮의 아들이다. 1882년 增廣試 2등으로 생원에 합격하고, 參奉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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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7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鄭東轍이 「행장」을 토대로 1936년에 지은 묘갈명이다. 그는 저자가 “높이 솟은 관과 거친 베옷을 하시고 寔席 사이에서 요량하셨고, 훌륭한 말씀과 곧바른 언론은 문자상에 정통하였으니, 창연히 옛사람의 儀節이 있었고, 엄연히 덕망 있는 어른의 풍모가 있어서, 위대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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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2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李鉉汶, 孫永鷹, 張永奭, 李炳善, 進士金肅 源, 魚命周, 高世林, 權應僖, 鄭建鎬, 張永恪, 孫學秀, 崔憲植, 金萬源, 李時采, 孫文秀, 侍生趙尙衍, 侍生金有源, 李慶善, 金直源, 侍敎生金在源, 金相說, 族孫悳榮, 柳東濬, 柳道均, 族孫東夔, 洸植 등이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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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進士金肅源, 族曾孫參奉, 黃在慤, 高永贇, 三從孫參奉 萬植, 參奉 高永贊, 族姪道均, 侍敎生琴德淵, 九淵, 金在源, 外甥申漢植 등이 저자를 그리며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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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류흠목재종질인 류도승이 1938년에 쓴 발문이다. 류도승의 호는 果齋이며, 尋春의 증손이다. 東史摭實·?邦禮大儀를 저술하였으며, 嶠南書社·?新編妙方을 편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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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집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금남집(錦南集) 錦南 朴奎陽의 문집. 木版本, 跋: 朴勝振(1927),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20.1×16.2㎝,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2.4×20.8㎝. 從姪 勝振이 쓴 跋文을 보면, 스승이기도 했던 저자의 遺文을 저자의 동생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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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村秀輩請疑題閱中庸拈工字, 次夏寒亭門會時韻, 戱作招釰詩, 病中有感, 偶吟, 謹次族大父月圃公(桂壽)晬席韻,藍石瀷髮,觀卜齋金公(麒獻)輓, 次金侯(啓鎭)釋菜時韻, 哀李統制忠武公(幷序),敬次西厓先生哀李統制韻, 謹次族祖菊泉翁(明壽)蓮花亭韻, 謹次月圃公僑居韻, 謹次影江亭板上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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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宗丈判書(弘壽)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判書 朴弘壽에게 올린 편지이다. 아들 承宣公이 세상을 떠나 슬픔이 얼마나 크시겠느냐고 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동안에도 나이가 같아서 서로 깊이 사귀게 되었는데, 인품이 매우 뛰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끝으로 추위가 심한 계절이니 특히 건강에 주의하시기를 바란다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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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洪侯(秉燾)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洪秉燾에게 올린 편지이다. 본인은 성격이 꽉 막혀서 능히 수시로 俯仰할 수 없는데, 이 고질병이 더욱 심해지지나 않을지 두렵다고 하면서 합하가 古道로 행차하고자 하시니 달려가 사죄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병으로 인해 나아갈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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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賢民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柳道獻(1835~1909)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몹시 어리석어서 일의 輕重을 알지 못하여 賢士들과 교류의 즐거움을 나눌 기회를 또 다시 잃어버릴 것 같다고 하면서 병으로 인해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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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應瞻(輝軾)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輝軾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름난 정자에서 좋은 주인과 어진 벗들이 서로 마주하고 여름을 보낸다는 것은 物外의 淸閑한 복이라고 하면서 홀로 神仙의 맛을 향유하는 것도 역시 無聊한 것으로 여겨져서 복숭아 50개를 보내드리니 한 번 맛보시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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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應由 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輝轍(1842~1903)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미 두렵고 당황하여 슬프거나 원망하는 마음은 그 다음 이었다고 하면서 校塾을 지키고 선비를 기르는 일과 관련하여 몇 차례 사양했던 것은 실재로 부득이 하여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니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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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應由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輝轍에게 보낸 편지이다. 최근 痰症으로 움직이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고 하면서 閣을 세우는 일은 이미 정해진 것 같으니 刻石의 일은 泗川 위의 큰 돌에 크게 세 글자를 새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견해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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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應由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輝轍에게 답한 편지이다. 廟祔의 의식에 대하여 3일간 간략하게 酒果를 진설하여 元位에 고하는 것이 합당할 것 같고, 妣位는 이미 同廟에 합사하였으니 따로 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儀禮는 반드시 古今의 要得을 참작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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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建伯(弘植)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弘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芝村 金邦杰(1623~1695)의 遺文이 세상에 전해진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나 살펴보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고 전하면서 받아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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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姜景韶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姜景韶에게 보낸 편지이다. 聖과 凡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하는 分辨에 대하여 만약 心을 形質로 여겨서 성과 범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면 형질은 理 밖의 하나의 사물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견해는 반드시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원래는 다름이 없이 서로 같은 것이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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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聖習(學銖)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黃學銖에게 답한 편지이다. 벗 사이의 사귐에 있어서 좋은 것은 힘쓰게 하고 미치지 못하는 것은 서로 경계하도록 하는 것이니 오직 정직하고 성실함이 있을 뿐이라고 전하면서 거처하는 곳이 芙蓉과 龍鳳이 있는 勝地이니 近日에 얻은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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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聖欽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聖欽에게 보낸 편지이다. 陶山書院와 관련하여 올리고자 하는 疏에 대하여 언제 올릴 것인지를 어디에서 결정할 것인지를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金在鼎(1785~?)이 먼저 上京하였다고 들었는데, 춥고 먼 旅程에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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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林寧海(秉斗) 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林秉斗(1845∼1909)에게 보낸 편지이다. 열흘 동안 觀魚臺와 月松亭 주변을 돌아보자는 의견에 대한 답변을 전하면서 지난 번 여행을 마음 속에서 아직 잊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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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宋德敏(學永) 1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宋學永(1851∼1928)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으로 늘 고생하면서 마땅히 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면서 平心으로 調養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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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序 / 기록자료>일기류 / 미상大山先生尸祝之論。肇發扵丧畢之辰。及门先輩各自草䟽以為待時之具。而事體鄭重。囙循未遑。中间有一再西上之舉。而拘扵時義。旋卽撤還。迄于今六十年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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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壬子十一月十五日 / 기록자료>일기류 / 미상<공간정보>義城</공간정보> <공간정보>孺子亭</공간정보> 。即川沙金公遺亭。都有司<인물정보>金魯進</인물정보> 會貟<인물정보>金養休</인물정보> <인물정보>金養植</인물정보> 以下百餘員。聯名通諭於<공간정보>魯林書院</공간정보> 。盖㪅發治䟽呌 閽之論也。其文曰云云扵是院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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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月十二日 / 기록자료>일기류 / 미상開座於<공간정보>崇報堂</공간정보> 。搢紳章甫會者一百三十餘員。時積雪路塞。獰寒慄烈。而遠邇之如是。齊會者可見尊衛之誠。同出於彛好也。薦出公事員幼學<인물정보>李瓚</인물정보> 進士<인물정보>金正銖</인물정보> 曹司幼學<인물정보>權秉淵</인물정보> <인물정보>金弘洛</인물정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