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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1911) 9월 이기상(李箕相)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재종손 기상신해년(1911) 9월 1일, 재송손인 이기상(李箕相 : 1884∼1964)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어려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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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1932) 10월 이완상(李完相)이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완상임신년(1932) 10월 25일, 종손 이완상(李完相 : 1903∼1969)이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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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921) 10월 이승탁(李承鐸) 이 사종숙부(四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승탁신유년(1921) 10월 15일, 사종질인 이승탁(李承鐸 : 1878∼1953) 이 사종숙부(四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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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금귀탁(琴龜鐸)이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금구탁을묘년 2월 7일, 문하생인 금구탁(琴龜鐸)이 처사 명와(明窩)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가문의 전통을 이어 유교적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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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834) 2월 이병연(李秉淵)이 증대부(曾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증손 병연갑오년(1834) 2월 26일, 증손인 이병연(李秉淵 : 1790∼1837)이 증대부(曾大父) 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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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1월 이교인(李敎寅)이 처사 전주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이교인신해년 1월 13일, 사위인 이교인(李敎寅)이 처사 전주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사망한 지 25개월이 되어 영영 사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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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4월 김규익(金奎翼)이 외삼촌인 처사 완산 이공(李公)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질 김규익신미년 4월 14일, 김규익(金奎翼)이 외삼촌인 처사 완산 이공(李公)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망자의 가문 내력을 언급하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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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4월 이은상(李殷相)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이은상신미년(1931) 4월 14일, 조카인 이은상(李殷相 : 1886∼1933)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영원한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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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4월 이승오(李承吾)가 6촌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승오신미년(1931) 4월 14일, 6촌 아우인 이승오(李承吾 : 1890∼1945)가 6촌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후덕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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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1930) 4월 이완상(李完相)이 5촌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완상경오년(1930) 4월 14일, 조카 이완상(李完相 : 1903∼1969)이 5촌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죽음이 너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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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이재교(李在敎)가 처사 전주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재교경오년 4월 14일, 이재교(李在敎)가 처사 전주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추모했다. 그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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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강정규(姜鼎奎)가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강정규을묘년 2월 7일, 조카인 강정규(姜鼎奎)가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집안 고유의 전통과 아름다운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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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금우탁(琴禹鐸)이 명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금우탁을묘년 2월, 금우탁(琴禹鐸)이 명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고풍스러운 면모와 우아했던 자태를 회고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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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1855) 2월 이학연(李學淵)이 친척 대부(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학연을묘년(1855) 2월 7일, 친척 손자인 이학연(李學淵 : 1815∼1876)이 친척 대부(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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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금영흡(琴永翕)이 명와(明窩)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생 금영흡을묘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았던 금영흡(琴永翕)이 명와(明窩)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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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권재인(權載仁)이 처사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권재인을묘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재인(權載仁)이 처사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머리글에서 망자의 어진 인격미를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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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4월 이용현(李用賢)이 고종 4촌 아우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형 이용현기사년 4월 14일, 이용현(李用賢)이 고종 4촌 아우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고모가 이렇게 불행을 당한 점에 대해 슬픈 심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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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1855) 2월 이긍연(李兢淵)·이철연(李喆淵)이 사종대부(四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긍연·철연을묘년(1855) 2월 7일, 이긍연(李兢淵 : 1821∼1864)·이철연(李喆淵)이 사종대부(四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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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1920) 10월 이완상(李完相)이 종대부(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완상경신년(1920) 10월 15일, 이완상(李完相 : 1903∼1969)이 종대부(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이미 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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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1920) 10월 이승범(李承範)이 사종숙부(四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승범경신년(1920) 10월 15일, 이승범(李承範 : 1890∼1963)이 사종숙부(四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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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1월 강주원(姜胄元)이 처사 완주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강주원기미년 11월 18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가르침을 받은 강주원(姜胄元)이 처사 완주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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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4월 김수종(金秀宗)이 처사 완주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김수종신미년 4월 14일, 김수종(金秀宗)이 처사 완주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빼어난 가문 전통과 고귀한 인품에 대해 강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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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금구탁(琴龜鐸)이 명와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생 금구탁을묘년 2월, 가르침을 받았던 금구탁(琴龜鐸)이 명와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의 오십 년 교유 모습을 회상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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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1월 정조영(鄭祚永)이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정조영기미년 11월 18일, 가르침을 받았던 정조영(鄭祚永)이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타고난 성품이 어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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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5월 이정진(李鼎鎭)이 삼종대부(三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정진을미년 5월, 삼종손(三從孫) 이정진(李鼎鎭)이 삼종대부(三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맹자의 내용을 들어, 망자의 인격과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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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0월 이승필(李昇弼)이 8촌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승필기미년 10월 15일, 8촌 아우인 이승필(李昇弼)이 8촌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아름다운 모습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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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1920) 10월 이승우(李承宇)가 당중숙부(堂仲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우경신년(1920) 10월 15일, 종질(從姪) 이승우(李承宇 : 1886∼1953)가 당중숙부(堂仲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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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승활(承活)이 사종숙부(四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승활신유년 10월 15일, 사종질(四從姪)인 승활(承活)이 사종숙부(四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함께 이웃에 살았던 기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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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김중섭(金重燮)이 사형(査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첨제 김중섭경오년 4월 14일, 아우 뻘인 김중섭(金重燮)이 사형(査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자신의 형편이 어려움을 회고하면서 망자를 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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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김규준(金奎準)이 외삼촌 전주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김규준경오년 4월 14일, 외생(外甥)인 김규준(金奎準)이 외구(外舅) 전주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단아하고 고결했던 선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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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이교인(李敎寅)이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정우 이교인경오년 4월 14일, 벗인 이교인(李敎寅)이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문학적인 비유를 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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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4월 김창도(金昌道)가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김창도신미년 4월 14일, 아우 뻘인 김창도(金昌道)가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유족들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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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4월 이주상(李周相)이 사종숙(四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주상신미년(1931) 4월 14일, 사종질(四從姪) 이주상(李周相 : 1988∼1959)이 사종숙(四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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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4월 이승보(李承普)가 재종(再從) 우현(禹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형 승보신미년(1931) 4월 14일, 재종형(再從兄) 이승보(李承普 : 1880∼1958)가 재종(再從) 우현(禹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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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4월 이용혁(李用赫)이 고종 4촌 동생의 우현(禹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형 이용혁기사년 4월 14일, 고종 4촌형 이용혁(李用赫)이 고종 4촌 동생의 우현(禹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의 지난 시절을 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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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강주원(姜胄元)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정제 강주원경오년 4월 14일, 벗인 강주원(姜胄元)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세월이 쉽게 흘러 간다고 탄식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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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서병희(徐丙禧)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서병희경오년 4월 14일, 대대로 알고 지내는 서병희(徐丙禧)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우수한 가눈 전통과 충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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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1930) 4월 이승영(李承暻)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담제인 승경경오년(1930) 4월 14일, 8촌 아우이며 상주인 이승경(李承暻 : 1892∼1964)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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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4월 이회익(李會益)이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질 이회익경오년 4월 14일, 내종질(內從姪 : 5촌)인 이회익(李會益)이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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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4월 권태상(權泰像)이 누이의 남편인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권태상신미년 4월 14일, 처남인 권태상(權泰像)이 누이의 남편인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팔 십 평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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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4월 강원창(姜遠昌)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말 강원창신미년 4월 14일, 벗인 강원창(姜遠昌)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사십 년 동안 함께 지냈던 모습을 회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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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이승렬(李承烈)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승렬신미년(1931) 친척 아우인 이승렬(李承烈 : 1909∼1982)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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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4월 이기상(李箕相)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기상신미년(1931) 4월 14일, 재종질(再從姪 : 7촌)인 이기상(李箕相 : 1884∼1964)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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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4월 김용한(金龍漢)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형 김용한신미년 4월 14일, 이종 4촌 형인 김용한(金龍漢)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를 곁에서 부르는 것처럼 표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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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1931) 4월 이승돈(李承暾)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형 승돈신미년(1931) 4월 14일, 재종형(再從兄)인 이승돈(李承暾 : 1887∼1967)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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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1910) 11월 이승규(李承圭)가 백모(伯母) 야성송씨(冶城宋氏) 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승규경술년(1910) 11월 6일, 조카인 이승규(李承圭 : 1888∼1929)가 백모(伯母) 야성송씨(冶城宋氏) 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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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894) 2월 이치암(李致巖)이 숙부인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치암갑오년(1894) 2월 25일, 조카인 이치암(李致巖 : 1816∼?)이 숙부인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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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1932) 10월 이승우(李承宇)가 당숙모(堂叔母)인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우임신년(1932) 10월 24일, 조카인 이승우(李承宇 : 1886∼1953)가 당숙모(堂叔母)인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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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10월 김학모(金學模)가 당숙모(堂叔母)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돈계유년 10월 25일, 사돈 관계에 있는 이승돈(李承暾)이 당숙모(堂叔母)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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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관계에 있는 김학모(金學模)가 처사 완산 이우현(李禹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생 김학모사돈 관계에 있는 김학모(金學模)가 처사 완산 이우현(李禹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죽음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