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47451
임자년 9월 이승락(李承洛)이 친척 숙모인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이승락임자년 9월 1일, 이승락(李承洛)이 친척 숙모인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소 고결한 인격미와 아름다운출처 : 유교넷 -
347452
을미년(1835) 5월 이치인(李致寅)이 친척 숙부(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치인을미년(1835) 5월 2일, 이치인(李致寅 : 1759∼1837)이 친척 숙부(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망자와 자출처 : 유교넷 -
347453
아버지가 시집을 가서 죽은 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부아버지가 시집을 가서 죽은 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아버지가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아픔을 간절하게 표현하였다. 특히,출처 : 유교넷 -
347454
경술년(1910) 11월 이승보(李承普)가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보경술년(1910) 11월 6일, 이승보(李承普 : 1880∼1958)가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출처 : 유교넷 -
347455
을묘년 2월 이진호(李晉浩)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이진호을묘년 2월 7일, 이진호(李晉浩)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가문 배경과 빼어난 인품을 추모하면서 평소 자출처 : 유교넷 -
347456
을미년 3월 안정교(安廷敎)가 고모부 처사 완산이공(處士 完山 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안정교을미년 3월 21일, 안정교(安廷敎)가 고모부 처사 완산이공(處士 完山 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고모부의 가문이 대대로 의리출처 : 유교넷 -
347457
계유년 10월 이용현(李用賢)이 완산이씨댁으로 시집을 간 고모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질 용현계유년 10월 25일, 조카 이용현(李用賢)이 완산이씨댁으로 시집을 간 고모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평소 고모출처 : 유교넷 -
347458
계사년 5월 권흥도(權興度)가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권흥도계사년 5월 4일, 사돈관계에 있으며 나이가 어린 권흥도(權興度)가 처사 완산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80년출처 : 유교넷 -
347459
신해년(1911) 9월 이승보(李承普)가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보신해년(1911) 9월 1일, 이승보(李承普 : 1880∼1958)가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의 여성다운출처 : 유교넷 -
347460
종숙이 조카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노종숙종숙이 조카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조카가 질병을 이기지 못한 채 운명한 점을 애통하게 여기며 슬픈 마음을 표현하였다. 평소 그와출처 : 유교넷 -
347461
신해년 9월 김규철(金奎哲)이 외할머니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김규철신해년 9월 1일, 김규철(金奎哲)이 외할머니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가 자신을 보살펴 준 아출처 : 유교넷 -
347462
정유년 3월 김종환(金瑽煥)이 아내의 할머니인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손서 김종환정유년 3월 11일, 손녀 사위인 김종환(金瑽煥)이 아내의 할머니인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의출처 : 유교넷 -
347463
기해년 1월 이세필(李世弼)이 종숙모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이세필기해년 1월 29일, 이세필(李世弼)이 종숙모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이세필은 어려서부터 부인의 현숙한 덕행을출처 : 유교넷 -
347464
갑인년 2월 이석기(李錫耆)가 삼종숙부(三從) 숙부(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석기갑인년 2월 7일, 이석기(李錫耆)가 삼종숙부(三從 : 8촌) 숙부(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70년 생애를 회고하며출처 : 유교넷 -
347465
경술년(1910) 11월 이승돈(李承暾)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돈경술년(1910) 11월 6일, 이승돈(李承暾 : 1887∼1967)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의 온유한출처 : 유교넷 -
347466
을미년(1835) 5월 이치덕(李致德)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치덕을미년(1835) 5월 2일, 이치덕(李致德 : 1787∼1845)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망자의 순수하고 온화한출처 : 유교넷 -
347467
갑오년(1834) 2월 이우연(李愚淵)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증손 참쇠인 우연갑오년(1834) 2월 26일, 상주인 이우연(李愚淵 : 1812∼1851)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80년 생애를출처 : 유교넷 -
347468
경술년(1850) 11월 이승우(李承宇)가 당숙모(堂叔母)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우경술년(1850) 11월 6일, 이승우(李承宇 : 1886∼1953)가 당숙모(堂叔母 : 5촌 숙모)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347469
갑인년 2월 김경추(金景秋)가 명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김경추갑인년 2월 7일, 김경추(金景秋)가 명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태백산의 남쪽에 빼어난 정기를 받아 망자가 아름출처 : 유교넷 -
347470
기유년 3월 부친이 아들 승우(承禹)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기유년 3월 2일, 부친이 아들 승우(承禹)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아버지가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슬픔을 곡진하게 표현했다. 아출처 : 유교넷 -
347471
경술년(1910) 1월 이승달(李承達)이 종숙부(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승달경술년(1910) 1월 13일, 이승달(李承達 : 1863∼1942)이 종숙부(從叔父 : 5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출처 : 유교넷 -
347472
을미년(1835) 2월 이치상(李致祥)이 재종숙부(再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치상을미년(1835) 2월 26일, 이치상(李致祥 : 1768∼1837)이 재종숙부(再從叔父 : 7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출처 : 유교넷 -
347473
갑인년 2월 금영흡(琴永翕)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금영흡갑인년 2월 7일, 문하생인 금영흡(琴永翕)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의출처 : 유교넷 -
347474
을미년(1835) 2월 이석구(李錫耉)가 삼종(三從)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석구을미년(1835) 2월 26일, 이석구(李錫耉 : 1812∼1880)가 삼종(三從 : 8촌)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출처 : 유교넷 -
347475
갑인년 2월 이하연(李夏淵)이 사종(四從) 숙모(叔母)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종질 하연갑인년 2월 7일, 이하연(李夏淵)이 사종(四從 : 10촌) 숙모(叔母)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고결한출처 : 유교넷 -
347476
을미년(1835) 2월 이석인(李錫寅)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석인을미년(1835) 2월 26일, 이석인(李錫寅 : 1806∼1857)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자신의 선대 조상과의출처 : 유교넷 -
347477
갑오년(1834) 2월 이석우(李錫愚)가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석우갑오년(1834) 2월 26일, 이석우(李錫愚 : 1814∼1890)가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를 잃은 가문의 슬픔을 간출처 : 유교넷 -
347478
신해년(1911) 9월 이승오(李承吾)가 당모(堂母)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오신해년(1911) 9월 1일, 이승오(李承吾 : 1890∼1945)가 당모(堂母 : 5촌 숙모)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347479
갑인년 2월 배흥주(裵興周)가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배흥주갑인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았던 배흥주(裵興周)가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
347480
홍유가 고종 4촌 형인 명와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홍(土+宙)홍유(洪(土+宙))가 고종 4촌 형인 명와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다시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이별의 아쉬움을 간절출처 : 유교넷 -
347481
을미년 2월 이석기(李錫耆)가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석기을미년 2월 26일, 이석기(李錫耆)가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기질이 순수하고, 덕행이 고결했던 점을 추모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347482
갑인년 2월홍환청(洪煥鯖)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홍환청갑인년 2월 7일, 홍환청(洪煥鯖)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출처 : 유교넷 -
347483
계축년 2월 송지엽(宋之燁)이 명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송지엽계축년 2월, 송지엽(宋之燁)이 명와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망자와 자신의 선대 조상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출처 : 유교넷 -
347484
이승만(李承萬)이 종숙(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승만이승만(李承萬 : 1853∼1914)이 종숙(從叔 : 5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망자와 자신의 선대 조상과의 관계릉출처 : 유교넷 -
347485
경술년 1월 이치덕(李致德)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기복인 이치덕경술년 1월 13일, 상주인 이치덕(李致德)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근실하고 어진 면모를 회고하출처 : 유교넷 -
347486
경술년(1910) 11월 이승헌(李承憲)이 종숙모(宗叔)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승헌경술년(1910) 11월 6일, 이승헌(李承憲 : 1849∼1918)이 종숙모(宗叔 : 5촌 숙모)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347487
기해년 1월 이면용(李冕容)이 친척 제수씨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제 이면용기해년 1월 29일, 이면용(李冕容)이 친척 제수씨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시집 온 이래, 가정과 가문출처 : 유교넷 -
347488
갑인년 2월 이석구(李錫耉)가 삼종숙부(三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석구갑인년 2월 7일, 이석구(李錫耉)가 삼종숙부(三從叔父 : 9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고결했던 면출처 : 유교넷 -
347489
임술년(1862) 2월 이석우(李錫愚)가 종조형(從祖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경제 석우임술년(1862) 2월 16일, 이석우(李錫愚 : 1814∼1890)가 종조형(從祖兄 : 4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출처 : 유교넷 -
347490
을묘년 2월 이인주(李演周)가 친척 할아버지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연주을묘년 2월 7일, 이연주(李演周)가 친척 할아버지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출처 : 유교넷 -
347491
기사년 1월 이하연(李夏淵)이 제수씨인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형 이하연기사년 1월 16일, 이하연(李夏淵)이 제수씨인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아우가 아내를 잃은 입장을 두고, 매우출처 : 유교넷 -
347492
계사년 5월 김동욱(金東郁)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동욱계사년 5월 4일, 가르침을 받은 자인 김동욱(金東郁)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고결출처 : 유교넷 -
347493
임술년 2월 이익호(李翼鎬)가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익호임술년 2월 16일, 가르침을 받은 이익호(李翼鎬)가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집안의출처 : 유교넷 -
347494
기해년 1월 이두섭(李斗燮)이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증손 제쇠인 두섭기해년 1월 29일, 상주인 이두섭(李斗燮)이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평소 망자의 빈소를 찾아가서, 슬픈 마음출처 : 유교넷 -
347495
신유년 4월 이정호(李鼎鎬)가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이정호신유년 4월 3일, 이종제(姨從弟 : 이종 4촌 동생) 이정호(李鼎鎬 : 본관 진성)가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347496
을묘년 2월 허운세(許橒歲)가 사장(査丈)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허운을묘년 2월 7일, 허운(許橒 : 본관 하양)가 사장(査丈 : 사돈 어른)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347497
기해년 1월 주인 이희동(李羲東)이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죄족손 희동기해년 1월 29일, 상주인 이희동(李羲東 : 전주)이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출처 : 유교넷 -
347498
을묘년 2월 이석상(李錫商)이 종숙부(宗叔父)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석상을묘년 2월 7일, 이석상(李錫商 : 전주)이 종숙부(宗叔父 : 5촌 숙부)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347499
을미년(1835) 2월 병연(李秉淵)이 명와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증손 병연을미년(1835) 2월 26일, 이병연(李秉淵 : 1790∼1837)이 명와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어려서부터 망자에출처 : 유교넷 -
347500
신해년 9월 이명상(李明相)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종손 명상신해년 9월 1일, 이명상(李明相)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서두에서부터 간절하게 표현하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