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2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47501
갑인년 2월 이정진(李鼎鎭)이 친척 숙부인 처사(處士)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정진갑인년 2월 7일, 이정진(李鼎鎭 : 전주)이 친척 숙부인 처사(處士)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출처 : 유교넷 -
347502
갑오년 2월 금구탁(琴龜鐸) 등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자 금구탁 등 3인갑오년 2월 26일, 금구탁(琴龜鐸 : 본관 봉화) 등이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봉화 금씨 문중을 대표하여, 망자출처 : 유교넷 -
347503
경술년 1월 이용혁(李用赫)이 사장(査丈)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이용혁경술년 1월 13일, 이용혁(李用赫 : 선성)이 사장(査丈 : 사돈 어른) 처사 완산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진 인출처 : 유교넷 -
347504
신해년(1911) 9월 이현상(李賢相)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손 참쇠인 현상신해년(1911) 9월 1일, 상주인 이현상(李賢相 : 1891∼?)이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의 어질고출처 : 유교넷 -
347505
을묘년 2월 전성길(全聖吉)이 스승인 처사 명와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학동 전성길을묘년 2월 6일, 가르침을 받았던 전성길(全聖吉)이 스승인 처사 명와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바다와 같은 스승의 은혜를 갚출처 : 유교넷 -
347506
임술년 2월 이명연(李明淵)이 재종숙부(再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명연임술년 2월 20일, 이명연(李明淵 : 전주)이 재종숙부(再從叔父 : 7촌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후덕한 인심과 고출처 : 유교넷 -
347507
계축년(1853) 4월 이긍연(李兢淵)이 사종숙부(四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긍연계축년(1853) 4월 4일, 이긍연(李兢淵 : 1821∼1864)이 사종숙부(四從大父 : 10촌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347508
갑인년 2월 금정익(琴禎翼)이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금정익갑인년 2월, 가르침을 받았던 금정익(琴禎翼 : 본관 봉화)이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는 유림들의 지출처 : 유교넷 -
347509
갑인년(1854) 2월 이석장(李錫璋)이 백부(伯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석장갑인년(1854) 2월 7일, 이석장(李錫璋 : 1828∼1883)이 백부(伯父 : 맏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출처 : 유교넷 -
347510
갑인년 2월 홍시문(洪始文)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홍시문갑인년 2월 7일, 홍시문(洪始文 : 본관 남양)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출처 : 유교넷 -
347511
을묘년 2월 금영소(琴永韶)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금영소을묘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은 금영소(琴永韶 : 본관 봉화)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347512
을묘년(1855) 2월 이석린(李錫麟)·이석영(李錫永)이 종숙부(宗叔父 )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석린· 석영을묘년(1855) 2월 6일, 이석린(李錫麟 : 전주)·이석영(李錫永 : 1825∼1898)이 종숙부(宗叔父)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347513
갑오년 2월 변진우(邊振宇)가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변진우갑오년 2월 26일, 변진우(邊振宇 : 본관 원성)가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에 대한 애출처 : 유교넷 -
347514
계축년(1853) 4월 이학연(李學淵)이 친척 할아버지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학연계축년(1853) 4월 4일, 이학연(李學淵 : 1815∼1876)이 친척 할아버지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347515
신유년 4월 이세문(李世文)이 재종제(再從弟) 이사영(李士英)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형 세문신유년 4월 2일, 이세문(李世文 : 전주)이 재종제(再從弟) 이사영(李士英 : 전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를출처 : 유교넷 -
347516
계축년 4월 금정익(琴禎翼)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금정익계축년 4월 4일, 가르침을 받은 제자 금정익(琴禎翼 : 본관 봉화)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347517
을묘년 2월 이석구(李錫龜)가 종종숙(宗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석구을묘년 2월 7일, 이석구(李錫龜 : 전주)가 종종숙(宗從叔 : 5촌 숙모)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73세의 평생을 살아가출처 : 유교넷 -
347518
이석린(李錫麟)이 재종형(再從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석린이석린(李錫麟 : 전주)이 재종형(再從兄 : 6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소 부지런하고도 성실한 자세로 가문 중흥을 위출처 : 유교넷 -
347519
을묘년 2월 이박연(李博淵)이 명와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박연을묘년 2월 7일, 이박연(李博淵)이 명와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곡진하게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347520
갑인년 2월 권재신(權載臣)이 처사 전주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권재신갑인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재신(權載臣 : 본관 안동)이 처사 전주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소 유출처 : 유교넷 -
347521
경신년 3월 김백동(金百東) 등이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김백동 등 2인경신년 3월 18일, 김백동(金百東) 등 2명이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타고난 성품이 어질출처 : 유교넷 -
347522
신유년 10월 권근연(權瑾淵)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권근연신유년 10월 14일, 권근연(權瑾淵 : 본관 안동)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망자출처 : 유교넷 -
347523
신유년 10월 김용한(金龍漢)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 김용한신유년 10월 15일, 김용한(金龍漢 : 본관 안동)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칠십평출처 : 유교넷 -
347524
계축년(1853) 4월 강필노(姜必魯)가 벗인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강필노계축년(1853) 4월, 강필노(姜必魯 : 1782∼1854)가 벗인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강필노는 망자와 마음을출처 : 유교넷 -
347525
무술년(1898) 1월 이직필(李直弼)이 소종숙모(小宗叔母)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종질 직필무술년(1898) 1월 29일, 이직필(李直弼 : 1860∼1922)이 소종숙모(小宗叔母)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347526
을미년(1835) 2월 이복연(李復淵)이 친척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참쇠인 복연을미년(1835) 2월 26일, 상주인 이복연(李復淵 : 1816∼1844)이 친척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집안의출처 : 유교넷 -
347527
신유년(1921) 10월 이명상(李明相)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참쇠인 명상신유년(1921) 10월 15일, 상주인 이명상(李明相 : 1903∼1969)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아름다운 행실출처 : 유교넷 -
347528
신유년(1921) 10월 이승형(李承瀅)이 친척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승형신유년(1921) 10월 15일, 이승형(李承瀅 : 1888∼1975)이 친척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 부터 망자의출처 : 유교넷 -
347529
신유년 10월 이교인(李敎寅)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여서 이교인신유년 10월 15일, 조카사위인 이교인(李敎寅 : 본관 진성)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출처 : 유교넷 -
347530
을미년 4월 이치정(李致禎) 외삼촌 처사(處士) 함창(咸昌) 김공(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자서 참쇠인 이치정을미년 4월 3일, 상주인 이치정(李致禎 : 전주)이 외구(外舅) 처사(處士) 함창(咸昌) 김공(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347531
김한모(金漢模)가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이질 김한모김한모(金漢模 : 본관 문소)가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아름다운 덕성을 지녔던 점을 회고하였다. 망자를출처 : 유교넷 -
347532
경술년(1910) 1월 이승철(李承喆)이 백부(伯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승철경술년(1910) 1월 12일, 이승철(李承喆 : 1874∼1924)이 백부(伯父 : 큰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출처 : 유교넷 -
347533
계축년 4월 강필교(姜必敎) 등 7명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강필교 등 7人계축년 4월 4일, 강필교(姜必敎 : 본관 진주) 등 7명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347534
기해년 1월 유수영(柳秀榮)이 아내의 할머니인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자손서 유수영기해년 1월 29일, 손녀사위인 유수영(柳秀榮 : 본관 풍산)이 아내의 할머니인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347535
무신년(1908) 8월 이승규(李承圭)가 족종형(族從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공복인 승규무신년(1908) 8월 2일, 상주인 이승규(李承圭 : 1888∼1929)가 족종형(族從兄 : 4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출처 : 유교넷 -
347536
신유년 10월 권계연(權啓淵)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권계연신유년 10월 14일,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권계연(權啓淵 : 본관 안동)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347537
정필(廷弼)이 이성팔(李聖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오종제 정필오종제(五從弟 : 12촌 아우) 정필(廷弼)이 이성팔(李聖八 : 전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어려서출처 : 유교넷 -
347538
을묘년 4월 이경유(李景圭)가 친척 숙부인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경규을묘년 4월 15일, 친척 조카인 이경규(李景圭 : 전주)가 친척 숙부인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347539
을묘년 2월 안연교(安延敎)가 처사(處士)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안연교을묘년 2월 7일, 정으로 사귄 아우뻘인 안연교(安延敎 : 본관 순흥)가 처사(處士)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347540
갑오년 2월 권유도(權有度)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권유도갑오년 2월 26일, 집안 대대로 알고 지내면서 나이가 어린 입장인 권유도(權有度 : 본관 안동)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347541
을묘년(1855) 2월 이치소(李致昭)가 집안 형뻘인 처사(處士)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치소을묘년(1855) 2월 7일, 집안 아우뻘인 이치소(李致昭 : 1787∼1861)가 집안 형뻘인 처사(處士) 명와(明窩)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347542
을묘년 2월 금정익(琴禎翼)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소자 금정익을묘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은 금정익(琴禎翼 : 본관 봉화)이 명와(明窩)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347543
계축년(1853) 4월 이석망(李錫望)이 삼종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석망계축년(1853) 4월 4일, 종질(從姪 : 5촌) 이석망(李錫望 : 1822∼1893)이 삼종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347544
을묘년 2월 권응수(權應壽)가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참쇠인 권응수을묘년 2월 7일, 상주이며, 가르침을 받았던 권응수(權應壽 : 본관 안동)가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347545
친척 숙부가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친척 숙부가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출처 : 유교넷 -
347546
계축년(1853) 4월 이석인(李錫寅)이 재종숙부(再從叔父) 명와(明窩) 처사(處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석인계축년(1853) 4월 4일, 이석인(李錫寅 : 1806∼1857)이 재종숙부(再從叔父 : 7촌) 명와(明窩) 처사(處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출처 : 유교넷 -
347547
을묘년 2월 정효인(鄭孝仁)이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 학생 후인 정효인을묘년 2월 7일, 가르침을 받았던 정효인(鄭孝仁 : 본관 봉화)이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정효인은 스승출처 : 유교넷 -
347548
계축년(1853) 4월 이석원(李錫遠)이 5촌 숙부 명와(明窩) 처사(處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석원계축년(1853) 4월 4일, 이석원(李錫遠 : 1787∼1863)이 5촌 숙부 명와(明窩) 처사(處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347549
을묘년 2월 이치하(李致厦)가 종형(從兄) 명와(明窩) 처사(處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치하을묘년 2월 7일, 이치하(李致厦 : 전주)가 종형(從兄 : 4촌) 명와(明窩) 처사(處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가문의출처 : 유교넷 -
347550
을묘년(1855) 2월 이석인(李錫寅)가 재종숙부(再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석인을묘년(1855) 2월 7일, 이석인(李錫寅 : 1806∼1857)가 재종숙부(再從叔父 : 7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