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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금정문(琴禎文)이 친척 할아버지인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척손 금정문을묘년 2월 7일, 외가쪽 손자인 금정문(琴禎文 : 봉화)이 친척 할아버지인 명와(明窩)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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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조영기(趙英基)가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조영기신유년 10월 15일, 오래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이며, 나이가 어린 입장인 조영기(趙英基 : 본관 한양)가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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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1월 안병연이 외숙모(戚叔母) 허씨(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질 안병연기해년 1월 29일, 안병연(安(玉+丙)淵 : 순흥)이 외숙모(戚叔母) 허씨(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질고 정숙했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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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1862) 2월 이석모(李錫謨)가 從兄(종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석모임술년(1862) 2월, 이석모(李錫謨 : 1815∼1877)가 從兄(종형 : 4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자신의 연령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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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이승오(李承五)가 재당숙부(再堂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승오신유년 10월 15일, 이승오(李承五 : 전주)가 재당숙부(再堂叔父 : 7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인간의 살고 죽는 것은 예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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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이승락(李承洛)가 숙부(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승락신유년 10월 15일, 이승락(李承洛 : 전주)가 숙부(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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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921) 10월 이현상(李賢相)이 사종대부(四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제쇠인 현상신유년(1921) 10월 15일, 상주인 이현상(李賢相 : 1891∼?)이 사종대부(四從大父 : 10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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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서상석(徐相奭)이 종형(從兄)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시생 서상석신유년 10월 15일, 서상석(徐相奭 : 달성)이 종형(從兄 : 4촌)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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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921) 10월 이성필(李誠弼)이 가운데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성필신유년(1921) 10월 15일, 아우인 이성필(李誠弼 : 1853∼1927)이 가운데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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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김규철(金奎哲소)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손 김규철신유년 10월 15일, 외손(外孫)인 김규철(金奎哲 : 본관 문소)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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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이정상(李鼎相)이 친척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정상신유년 10월 15일, 이정상(李鼎相 : 전주)이 친척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의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망자가 베풀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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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1910) 이정필(李廷弼)이 종종형(宗從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정필경술년(1910) 이정필(李廷弼 : 1849∼1927)이 종종형(宗從兄 : 10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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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1월 조언정(趙彦鼎)이 빙숙모(聘叔母)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서기복인 조언정기해년 1월 29일, 사위이면서 현재 상주인 조언정(趙彦鼎 : 본관 한양)이 빙숙모(聘叔母 : 아내의 숙모) 하양허씨(河陽許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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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강홍(姜泓) 등이 외재종대부(外再從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재종손 강홍·강유신유년 10월 15일, 강홍(姜泓 : 본관 진주)·姜洧(강유 : 본관 진주)가 외재종대부(外再從大父 : 6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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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이기진(李基鎭)이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기진신유년 10월 15일, 손자인 이기진(李基鎭 : 전주)이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집안의 가문 전통과 우수성에 대해 강조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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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1월 강신국(姜信國이 외종조(外從祖)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종손 강신국신해년 1월 13일, 강신국(姜信國 : 본관 진산)이 외종조(外從祖 : 4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자신과 망자와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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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921) 10월 이동상(李東相)이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소손 동상신유년(1921) 10월 15일, 손자인 이동상(李東相 : 1907∼1971)이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탈상을 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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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이승돈(李承敦)이 숙부(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승돈신유년 10월 15일, 조카인 이승돈(李承敦 : 전주)이 숙부(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진 덕행과 고결한 학문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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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유심영(柳尋榮)이 장인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유심영신유년 10월 15일, 유심영(柳尋榮 : 본관 풍산)이 장인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순수하고 어진 성품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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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921) 10월 유시만(柳時萬)이 사장(査丈른)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유시만신유년(1921) 10월 15일, 사돈 관계에 있으면서 나이가 어린 사람인 유시만(柳時萬 : 1863∼1933, 본관 풍산)이 사장(査丈 : 사돈 어른)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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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10월 이암필(李巖弼)이 사종형(四從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암필신유년 10월 15일, 이암필(李巖弼 : 전주)이 사종형(四從兄 : 10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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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1855) 4월 강명규(姜命奎)가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강명규을묘년(1855) 4월 15일, 친척 조카인 강명규(姜命奎 : 1801∼1867, 본관 진산)가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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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 4월 서간승(徐榦昇)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첨계 서간승계축년 4월 4일, 서간승(徐榦昇 : 본관 달성)이 처사(處士) 완산(完山)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간승은 질병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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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1911) 1월 이상필(李商弼)이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상필신해년(1911) 1월 13일, 아우인 이상필(李商弼 : 1851∼1919)이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형제의 우애를 곡진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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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9월 이승두(李承斗주)가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이승두신해년 9월 1일, 조카인 이승두(李承斗 : 전주)가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소 고결하고 정숙했던 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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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11월 김용한(金龍漢)이 이모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질기복인 김용한신미년 11월 9일, 김용한(金龍漢 : 본간 안동)이 이모 선성이씨(宣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이모의 어질고 고결한 인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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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1862) 2월 이석영(李錫永)이 4촌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석영임술년(1862) 2월 1일, 이석영(李錫永 : 1825∼1898)이 4촌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소 아름다운 덕행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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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2월 이인렴(李仁濂)이 종형(從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인렴을묘년 2월 4일, 이인렴(李仁濂)이 종형(從兄 : 4촌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장문의 형식에 형에 대한 그리움과 가슴 미어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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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부의 식도병과 소화기 장애 치료를 위한 병록(病錄)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별한 사안에 대해 기록해 둔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환자의 병에 대한 증세와 치료 과정을 기록한 [병록(病錄)]이다. 환자는 19세의 새 신부로서, 시집 온 이래 음식을 먹지 않은 이후 식도에 문제가 생겨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 증세를 기록했다. 새 신부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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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奉化) 이치림(李致林) 등이 성주(城主)에게 봉화 사람인 김기순(金氣淳)의 송월재(松月齋) 유고(遺稿) 간행을 위한 땅 점탈 해결을 청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봉화(奉化) 춘양(春陽) 서면(西面) 풍정리(楓井里)의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 이치림(李致林 : 1807∼1881) 등이 성주(城主)에게 자신의 선조인 송월재(松月齋)의 유고(遺稿)를 간행하기 위해 마련한 땅에 봉화 사람인 김기순(金氣淳)이 이주해 와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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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연(李夏淵) 등이 조상 산소 침탈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관청에 호소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이하연 등이하연(李夏淵 : 전주), 이설연(李卨淵 : 전주)이 억울한 사정을 관청에 호소한 소지(所志 :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관청에 청원을 하거나 진정을 할 때 제출했던 문서)이다. 이하연의 6대 조상인 좌랑 벼슬을 한 부인의 묘소 근처에 성품이 못된 자들이 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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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奉化) 이치정(李致楨) 등이 성주(城主)에게 조상묘 관리인 김가의 조상묘 침탈사건 해결을 요청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이치정 등봉화(奉化) 춘양면(春陽面)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 이치정(李致楨 : 1781∼1853), 이치림(李致林 : 1807∼1881)이 성주(城主)에게 자신의 고조 할머니 무덤 아래 대대로 묘를 관리하던 김가란 사람이 자신의 조상 묘를 만든 것에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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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1901) 12월 봉화(奉化) 이기연(李夔淵) 등이 성주(城主)에게 산촌 농민들의 송월재(松月齋)의 묘소 실화 사건 처벌을 요청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하연 등봉화(奉化) 춘양면(春陽面)의 풍정리(楓井里)의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 이기연(李夔淵 : 전주), 이정필(李廷弼 : 1849∼1927), 이상필(李相弼 : 전주), 이직필(李直弼 : 1860∼1922) 등이 신축년)1901) 12월에 성주(城主 : 고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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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1845) 8월 봉화(奉化) 이치정(李致禎) 등이 고을 원님에게 증조부모 묘소 침탈사건의 해결을 요청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이치정 등봉화(奉化) 춘양면(春陽面)의 이치정(李致禎), 이치림(李致林 : 1807∼1881) 등이 을사년(1845) 8월에 고을 원님에게 자신의 증조부모의 묘소 아래 위로 김가 놈과 권가 놈이 자신의 조상묘를 만든 것을 알고, 소송하여 둘 다 이장을 시켰는데 금년 여름에 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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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1901) 7월 봉화(奉化) 이면우(李冕宇) 등이 관찰사에게 선조 송월재(松月齋) 문집 간행과 묘지기 설치를 청원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진사 이면우 등봉화(奉化) 춘양면(春陽面)의 풍정리(楓井里)의 진사(進士) 이면우(李冕宇 : 1824∼1905) 등이 신축년(1901) 7월에 관찰사에게 자신의 선조 송월재(松月齋) 선생의 문집 35책을 간행하고, 묘지기를 두어 묘를 관리할 수 있도록 조정에 건의해 달라고 청원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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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奉化) 춘양면(春陽面)의 풍정리(楓井里)의 전주 이씨 집안의 유생들이 관찰사에게 자신의 선조 송월재(松月齋) 선생이 역대 중국의 경서와 역사서 등을 참고로 하여 정리한 서책 35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간행하도록 조정에 건의해 달라고 청원한 소지(所志 : 백성들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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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奉化) 전주 이씨 집안 사람들이 고을 원님에게 선조 송월재(松月齋) 묘소 주변 임야의 보호를 청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봉화(奉化) 춘양면(春陽面)의 풍정리(楓井里)의 전주 이씨 집안의 사람들이 자신의 선조 송월재(松月齋) 선생의 묘소 주변에 있는 임야를 보호해 달라고 고을 원님에게 올린 소지(所志 :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관청에 청원을 하거나 진정을 할 때 제출했던 문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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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安東府) 춘양면(春陽面) 삼서리(三西里) 이치휴(李致休 : 1792∼1871)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가 기록된 함풍(咸豊) 8년(1858)의 준호구(准戶口)이다. 준호구는 관청에서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주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이치림의 나이가 67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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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安東府) 춘양면(春陽面) 삼서리(三西里) 이하연(李夏淵 : 전주)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가 기록된 광서(光緖) 8년(1882)의 준호구(准戶口)이다. 준호구는 관청에서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주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이하연의 나이가 36세 때에 기록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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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安東府) 춘양면(春陽面) 삼서리(三西里) 이하연(李夏淵 : 전주)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가 기록된 광서(光緖) 5년(1879)의 준호구(准戶口)이다. 준호구는 관청에서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주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이하연의 나이가 33세 때에 기록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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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安東府) 춘양면(春陽面) 삼서리(三西里) 이하연(李夏淵 : 전주)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가 기록된 광서(光緖) 14년(1888)의 준호구(准戶口)이다. 준호구는 관청에서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주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이하연의 나이가 42세 때에 기록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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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치르는 절차 및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 치르는 절차 및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이다. 무덤의 방위는 건좌곤향(坤坐艮向)이며, 문건의 윗 부분에 하관하고 빈소를 설치하고, 장막을 설치한 방위와 흙을 취해 무덤에 처음 뿌리는 방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문건의 좌측 상단에는 무덤의 깊이가 4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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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치르는 절차 및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 치르는 절차 및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이다. 무덤의 방위는 병좌임향외정좌계향(丙坐壬向外丁坐癸向)이며, 문건의 윗 부분에 아들 3명과 며느리 3명, 손자 2명, 손녀 4명의 생년 간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어 그 하단에는 안장한 일자를 4월 26일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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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에 해당하는 곡물이나 해산물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이다. 곡물이나 해산물도 포함된다. 품목은 건어(乾魚 : 건어물), 해의(海衣 : 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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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에 해당하는 곡물이나 해산물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이다. 곡물이나 해산물도 포함된다. 이 문건에서는 경사를 당한 집에 부조한 찬조금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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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에 해당하는 곡물이나 해산물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이다. 곡물이나 해산물도 포함된다. 이 문건에서는 해당하는 인물을 기록하고, 그 해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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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에서 특별한 행사를 추진할 때, 제공된 밥상 수를 기록한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문중에서 특별한 행사를 추진할 때, 제공된 밥상 수를 기록한 문건이다. 문건의 좌측에는 풍정리(楓井里) 하인에게 제공된 밥은 모두 4상이고, 하리(下里)에는 8상이 제공되어 모두 51상이 제공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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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에 해당하는 곡물이나 해산물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이다. 곡물이나 해산물도 포함된다. 이 문건에는 수세를 낸 인물과 집 이름 및 해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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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한 농민이나 어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에 해당하는 곡물이나 해산물을 기록해 둔 [수세기(收稅記)]이다. 곡물이나 해산물도 포함된다. 이 문건에서는 경사를 당한 집에 부조한 찬조금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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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에서 특별한 행사를 추진할 때, 제공된 인부수와 관련 사항을 기록한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기록해 둔 문건인 [치부기(置簿記)]인데, 이 문건은 문중에서 특별한 행사를 추진할 때, 제공된 인부수와 관련 사항을 기록한 문건이다. 문건의 우측에 운석부비(運石浮費)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중의 조상 산소의 비석을 세우는 일과 연관된 공사에 돌을 운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