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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001
정직흠(鄭稷欽)이 질병과 초상으로 어려운 이들의 형편을 전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병생 정직흠기미년(1919) 12월 25일 질병으로 고생하는 문하생인 정직흠(鄭稷欽)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출처 : 유교넷 -
348002
필(必)이 성춘(聖春)에게 문중일의 협조와 면학을 당부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노종 필모년 9월 28일 늙은 친척 필(必)이 유성춘(柳聖春 : 1890∼1960, 농포 유영희의 字)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출처 : 유교넷 -
348003
필(必)이 가르침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들의 근황을 전하며 가야(佳野)에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종 필모년 6월 27일 친척인 필(必)이 가야(佳野)의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출처 : 유교넷 -
348004
권정일(權正鎰)이 질병과 초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로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손제 권정일을묘년(1915) 9월 19일 아우인 권정일(權正鎰)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출처 : 유교넷 -
348005
김병문(金秉文)이 학문의 부진을 염려하고 문집 간행의 협조를 바라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김병문계묘년(1903) 4월 10일 가르침을 받은 김병문(金秉文)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출처 : 유교넷 -
348006
김병직(金秉直)이 학문활동과 유림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병직기사년(1929) 사돈 사이며 아우인 김병직(金秉直)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출처 : 유교넷 -
348007
유봉희(柳鳳熙)가 안부와 문중현안을 의논하며 가야(佳野)의 구담댁(九潭宅)에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봉희11촌인 유봉희(柳鳳熙 : 1855∼1927)가 가야(佳野)의 구담댁(九潭宅)의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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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진(金洛晉)이 길흉사의 자문을 구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낙진모년 8월 아우 김낙진(金洛晉)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로 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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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문(金秉文)이 학문활동과 유림 사회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언급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문계묘년(1903) 모월 김병문(金秉文)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출처 : 유교넷 -
348010
권상두(權相斗)가 안부와 만남을 희망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권상두무신년(1908) 3월 아우 권상두(權相斗)가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출처 : 유교넷 -
348011
김두배(金斗培)가 사돈에게 가족의 근황과 학문활동을 알리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김두배임오년(1942) 5월 15일 사돈 사이며 아우인 김두배(金斗培)가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출처 : 유교넷 -
348012
만식(萬植)이 성춘(聖春)에게 가족의 질병 근황과 학문의 의견 교환을 희망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만식갑인년(1914) 8월 4일 친척인 만식(萬植)이 유성춘(柳聖春 : 1890∼1960, 농포 유영희의 字)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출처 : 유교넷 -
348013
건우(建宇)가 할아버지에게 가족과 친척들의 근황을 전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건우친척 손자인 건우(建宇)가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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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문(金柄文)이 안부와 길흉사에 대해 의논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병문경진년(1940) 4월 14일 아우 김병문(金柄文)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출처 : 유교넷 -
348015
장(璋)이 숙부에게 안부와 문중일에 도움을 바라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장신해년(1911) 2월 23일 조카인 장(璋)이 숙부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출처 : 유교넷 -
348016
헌징(獻徵)이 안부를 전하기 위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척기 헌징친척인 헌징(獻徵)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로 구성된다. 정중출처 : 유교넷 -
348017
박창희(朴昌熙)가 매형에게 잔치에 보내준 시(詩)에 감사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박창희기묘년(1939) 4월 25일 처남인 박창희(朴昌熙)가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출처 : 유교넷 -
348018
서상영(徐相英)이 서원 일로 바쁜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서상영임신년(1932) 10월 17일 서상영(徐相英)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출처 : 유교넷 -
348019
강대봉(姜大鳳)이 학문의 부진과 가족의 근황을 전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강대봉모년 3월 아우인 강대봉(姜大鳳)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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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좌(衡佐)가 상주인 자신을 위로해준것에 감사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형좌기유년 3월 19일 아우이며 상주인 형좌(衡佐)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출처 : 유교넷 -
348021
이경화(李敬和)가 가족 안부와 길흉사의 자문을 구하며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경화병술년 2월 10일 가르침을 받은 이경화(李敬和)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출처 : 유교넷 -
348022
유영희(柳永熙)가 이학기(李學基)에게 공부를 하기 위한 모임에 대해 협의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유영희갑인년(1914) 8월 18일 아우인 유영희(柳永熙 : 1890∼1960)가 이학기(李學基)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출처 : 유교넷 -
348023
유영희(柳永熙)가 부친의 탈상을 맞은 이진국(李鎭國)에게 위로하기 위해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유영희을미년(1955) 8월 10일 아우인 유영희(柳永熙 : 1890∼1960)가 이진국(李鎭國)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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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식(柳慶植)이 당숙(堂父)인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경식경자년(1900) 3월 10일 종질(從姪 : 5촌)인 유경식(柳慶植 : 1867∼1931)이 당숙(堂父 : 5촌 숙부)인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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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영(柳大永)이 친척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대영아우인 유대영(柳大永)이 친척 형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소 어진 인품과 고결한 덕성을 지녔던 점을 회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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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갑희(柳甲熙)가 친척 형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오종제 갑희임인년(1962) 8월 아우인 유갑희(柳甲熙 : 1894∼1962)가 친척 형인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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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李宗愚)가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이종우계축년 6월 17일 가르침을 받은 이종우(李宗愚 : 본관 고성)가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떠난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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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무(李鉉武)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현무임인년(1962) 8월 2일 가르침을 받았던 이현무(李鉉武 : 본관 전주)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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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權遠)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생 권원임인년(1962) 8월 2일 양쪽 집안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권원(權遠 : 본관 안동)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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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수(柳淵壽)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조 연수신축년(1961) 8월 친척 할아버지인 유연수(柳淵壽)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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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탁(姜聲鐸)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강성탁임인년(1962) 8월 2일 가르침을 받았던 강성탁(姜聲鐸 : 본관 진주)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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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탁(金鍾卓)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담죄인 김종탁임인년(1962) 8월 2일 상주이며 친척인 김종탁(金鍾卓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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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선(辛宗善)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신종선임인년(1962) 가르침을 받았던 신종선(辛宗善 : 본관 영월)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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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덕(柳淵德)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연덕임인년(1962) 8월 2일 친척인 유연덕(柳淵德)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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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룡(權德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동항거생 권덕룡임인년(1962) 같은 마을에 살며 친했던 권덕룡(權德龍 : 본관 안동)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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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金榮奎)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영규임인년(1962) 8월 2일 가르침을 받았던 김영규(金榮奎 : 본관 의성)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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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식(柳友植)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우식신축년(1961) 8월 친척인 유우식(柳友植 : 1903∼?)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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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박(金衡璞)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형박임인년(1962) 8월 2일 사위인 김형박(金衡璞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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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안(權泰安)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태안신축년(1961) 8월 2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태안(權泰安 : 본관 안동)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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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응문(張應文)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질 장응문신축년(1961) 8월 2일 처가쪽 종질(從姪 : 5촌)인 장응문(張應文 : 본관 인동)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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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金衍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첨소제 김연식임인년(1962) 8월 1일 친척 아우인 김연식(金衍植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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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환(鄭文煥)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정문환신축년(1961) 8월 2일 가르침을 받았던 정문환(鄭文煥 : 본관 청주)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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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하(朴贊夏)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박찬하임인년(1962) 10월 9일 처가쪽 인척인 박찬하(朴贊夏 : 본관 반남)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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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규(權五奎)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시생 권오규신축년(1961) 8월 2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오규(權五奎)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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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락(柳昌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재최인 창락임인년(1962) 8월 2일 친척이며 상주인 유창락(柳昌洛)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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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선(李甲善)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제 이갑선신축년(1961) 8월 2일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는 사이며 아우뻘인 이갑선(李甲善 : 본관 선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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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탁(金衡琢)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복인 김형탁·형각임인년(1962) 8월 2일 상주인 김형탁(金衡琢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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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李文浩)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제 이문호임인년(1962)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아우뻘인 이문호(李文浩 : 본관 안릉)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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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柳東周)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생 동주임인년(1962) 8월 1일 친척이며 가르침을 받았던 유동주(柳東周)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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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락(柳映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영락신축년(1961) 8월 1일 친척인 유영락(柳映洛)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