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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섭(張麟燮)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장인섭임인년(1962) 10월 9일 친척인 장인섭(張麟燮 : 본관 인동)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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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연(金錫淵)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김석연신축년(1961) 8월 1일 내종(內從 : 4촌) 아우인 김석연(金錫淵)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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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식(柳貞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숙 정식신축년(1961) 8월 2일 종숙(從叔 : 5촌)인 유정식(柳貞植 : 1890∼1964)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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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석흠(邊錫欽)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변석흠신축년(1961)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는 아우뻘인 변석흠(邊錫欽)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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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순(張復舜)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장복순신축년(1961) 8월 2일 처남인 장복순(張復舜 : 본관 인동)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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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규동(權奎東)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계정제 권규동임인년(1962) 8월 2일 정으로 사귄아우인 권규동(權奎東 : 본관 안동)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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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화(權五華)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권오화임인년(1962) 8월 2일 평소 친하게 지내며 아우뻘인 권오화(權五華 : 본관 안동)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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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황(李相璜)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상황신축년(196) 8월 2일 친척 아우인 이상황(李相璜 : 본관 전의)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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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봉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김병봉신축년(1961)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아우뻘인 김병봉(金秉鳳)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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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문(金秉文)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문신축년(1961) 8월 1일 김병문(金秉文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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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서(朴興緖)가 유성춘(柳聖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기복인 박흥서신축년(1961) 8월 2일 상주이며 친척인 박흥서(朴興緖 : 본관 반남)가 유성춘(柳聖春 : 1890∼1960, 농포 유영희의 字)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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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金秉直)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김병직신축년(1961)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아우뻘인 김병직(金秉直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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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원(鄭春元)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정춘원임인년(1962) 8월 2일 이종사촌 동생인 정춘원(鄭春元 : 본관 서원)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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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걸(李裕杰)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손 이유걸임인년(1962) 8월 2일 친척인 이유걸(李裕杰 : 본관 영천)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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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범(李承範)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이승범신축년(1961)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가르침을 받은 이승범(李承範 : 본관 고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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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李賢鎬)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현호신축년(1961)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가르침을 받은 이현호(李賢鎬 : 본관 진안)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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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식(柳殷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은식임인년(1962) 8월 2일 친척인 유은식(柳殷植 : 1906∼1963)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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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수(柳麒秀)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기수임인년(1962) 8월 2일 친척인 유기수(柳麒秀)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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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동(金春東) 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심제인 김춘동신축년(1961) 8월 2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상주인 김춘동(金春東 : 본관 문소)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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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균(朴昌均)이 농로(農廬)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심제 박창균임인년(1962) 8월 2일 마음으로 사귄 아우 박창균(朴昌均 : 본관 영해)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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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호(任柱鎬)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임주호임인년(1962) 8월 2일 이종사촌 동생인 임주호(任柱鎬 : 본관 풍천)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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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덕(金周悳)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소제 김주덕경자년(1960) 8월 2일 친척인 김주덕(金周悳 : 1899∼1969, 본관 문소)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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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수(柳東銖)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동수신축년(1961) 8월 2일 친척인 유동수(柳東銖)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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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식(柳晉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군(柳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숙 진식임인년(1962) 8월 2일 종숙(從叔 : 5촌)인 유진식(柳晉植 : 1900∼?)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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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식(柳大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대식정축년(1937) 4월 5일 친척인 유대식(柳大植 : 1898∼?)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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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식(柳萬植)이 친척 형인 처사(處士 )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만식병자년(1936) 4월 5일 친척 아우인 유만식(柳萬植)이 친척 형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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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희(柳春熙)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춘희병자년(1936) 4월 5일 조카인 유춘희(柳春熙)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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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식(柳璋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장식병자년(1936) 4월 5일 재종제(再從弟 : 6촌 아우)인 유장식(柳璋植 : 1805∼1884)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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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李文浩)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이문호정축년(1937) 4월 5일 대대로 알고 지내면서 나이가 어린 자인 이문호(李文浩 : 본관 재령)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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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섭(權廷燮)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가소자 권정섭정축년(1937) 4월 5일 친척인 권정섭(權廷燮 : 본관 안동)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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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욱(金時煜)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김시욱정축년(1937) 4월 가르침을 받은 김시욱(金時煜 : 본관 의성)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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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락(金楨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정락정축년(1937) 4월 5일 대대로 알고 지니며, 가르침을 받았던 김정락(金楨洛 : 본관 문소)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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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환(金象煥)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상환을해년(1935) 4월 19일가르침을 받은 김상환(金象煥 : 본관 문소)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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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연(權景淵)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생 권경연경자년 3월 10일 친척인 권경연(權景淵 : 본관 안동)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철저한 유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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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金圭煥)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참최인 김규환정축년(1937) 4월 5일 가르침을 받았으며 현재 상주인 김규환(金圭煥 : 1811∼1894, 본관 문소)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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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金秉直)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기강인 김병직모년 4월 5일 현재 상주이며 가르침을 받았던 김병직(金秉直 : 본관문소)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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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현(柳師鉉)이 종형(從兄)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사현기축년(1769) 6월 1일 4촌 동생인 유사현(柳師鉉 : 1735∼1774)이 종형(從兄 : 4촌 형)인 유진현(柳晉鉉 : 1687∼1767)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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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휘(柳昌輝)가 숙부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창휘무진년 3월 23일 조카인 유창휘(柳昌輝)가 숙부인 유학(柳木+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소 어진 인품과 가족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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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흥상(權興相)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전주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흥상기축년(1769) 6월 7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흥상(權興相 : 본관 안동)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유진현(柳晉鉉 : 1687∼1767)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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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덕(柳淵德)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 연덕정축년(1937) 4월 5일 사종(四從 : 10촌)인 유연덕(柳淵德)이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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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식(柳遠植)이 종형(從兄)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원식친척인 유원식(柳遠植 : 1858∼1905)이 종형(從兄 : 4촌 형)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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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수(柳淵壽)가 10촌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 연수정축년(1937) 4월 5일 사종(四從 : 10촌)인 유연수(柳淵壽)가 10촌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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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식(柳敎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교식병자년(1936) 4월 5일 친척인 유교식(柳敎植)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전주 유씨 가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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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희(柳昇熙)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승희재종질(再從姪 : 7촌)인 유승희(柳昇熙 : 1892∼1949)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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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할아버지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종손 기태병자년(1936) 4월 5일 유기태(柳基泰)가 친척 할아버지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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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락(柳起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기락정축년(1937) 4월 5일 친척인 유기락(柳起洛)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우수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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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우(柳建宇)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건우병자년(1936) 4월 5일 친척 손자인 유건우(柳建宇)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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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락(柳相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락병자년(1936) 4월 5일 친척인 유상락(柳相洛)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전주 유씨 가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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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식(柳康植)이 친척 형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소제 강식병자년(1936) 4월 5일 친척인 유강식(柳康植)이 친척 형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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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식(柳璋植)이 당숙부(堂叔父)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장식경자년(1840) 3월 10일 종질(從姪 : 5촌)인 유장식(柳璋植 : 1805∼1884)이 당숙부(堂叔父 : 5촌)인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