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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식(柳基植)이 사촌형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기식4촌 동생인 유기식(柳基植)이 사촌형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고결한 덕성과 어진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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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백(柳淵百)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연백경자년(1840) 3월 10일 4촌 동생인 유연백(柳淵百)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소 자신에게 다정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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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석주(邊錫柱)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시생 변석주병자년(1936) 4월 5일 가르침을 받았던 변석주(邊錫柱 : 본관 원주)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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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석(金鎬錫)이 사형(査兄)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제 김호석정축년(1937) 4월 4일 사돈 사이인 김호석(金鎬錫 : 본관 순천)이 사형(査兄)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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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金相說)이 자형(姉兄)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김상열병자년(1936) 4월 5일 처남인 김상열(金相說 : 본관 순천)이 자형(姉兄)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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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서(朴文緖 )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박문서정축년(1937) 4월 5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나이가 어린 자인 박문서(朴文緖 : 본관 반남)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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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희(柳達熙)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달희신축년(1961) 10월 19일 재종제(再從弟 : 6촌 동생)인 유달희(柳達熙 : 1896∼1973)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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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李泰浩)가 장인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기복인 이태호병자년(1936) 4월 5일 사위이며 현재 상주인 이태호(李泰浩 : 본관 안릉)가 장인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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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락(柳宗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종락신축년 10월 19일 친척 아우인 유종락(柳宗洛)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진 성품과 평소 많은 이들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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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문(金柄文)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계생 김병문병자년(1936) 4월 대대로 인척으로 사귄 김병문(金柄文 : 본관 의성)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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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하(朴贊夏)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박찬하병자년(1936) 4월 5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가르침을 받았던 박찬하(朴贊夏 : 본관 반남)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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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범(李承範)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제자최인 이승범임인년(1962) 8월 대대로 알고 지내며 상주인 이승범(李承範 : 본관 고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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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식(柳遠植)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시생 원식신축년(1961) 8월 2일 친척인 유원식(柳遠植)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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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원(鄭春元)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 정춘원정축년(1937) 6월 12일 이종사촌인 정춘원(鄭春元 : 본관 서원)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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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호(權成鎬)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권성호정축년(1937) 4월 5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성호(權成鎬 : 본관 안동)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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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朴榮普)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박영보을해년(1935) 4월 19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가르침을 받았던 박영보(朴榮普 : 본관 함양)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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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權大璟)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재최인 권대경정축년(1937) 6월 12일 친척이며 상주인 권대경(權大璟 : 본관 안동)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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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金大鎭)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김대진병자년(1936) 4월 4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김대진(金大鎭 : 선성)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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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朴榮根)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박영근정축년(1937) 4월 5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가르침을 받았던 박영근(朴榮根 : 본관 함양)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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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연(李源淵)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재최인 이원연정축년(1937) 4월 5일 가르침을 받았으며 현재 상주인 이원연(李源淵 : 본관 영천)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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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연(李憲淵)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최인 이헌연정축년(1937) 4월 5일 상주인 이헌연(李憲淵 : 본관 영천)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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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李鉉東)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매자 이현동병자년(1936) 4월 5일 친척인 이현동(李鉉東 : 본관 안릉)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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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호(任柱鎬)가 이모부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질 임주호정축년(1937) 4월 5일 이질(姨姪)인 임주호(任柱鎬 : 본관 풍천)가 이모부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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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환(權普煥)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권보환정축년(1937) 4월 4일 가르침을 받았던 권진환(權普煥 : 본관 안동)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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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덕(權秉悳)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권병덕친척인 권병덕(權秉悳 : 본관 안동)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진 인격미와 고결한 학문 자세를 강조하였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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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모(金元模)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김원모정축년(1937) 4월 5일 생질(甥姪)인 김원모(金元模 : 본관 문소)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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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朴昌熙)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박창희신축년(1961) 8월 2일 인척인 박창희(朴昌熙 : 본관 함양)가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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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진(黃在鎭)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질 황재진신축년 10월 29일 내종질(內從姪 : 외척으로 7촌 관계)인 황재진(黃在鎭 : 본관 창원)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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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익(金元益)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김원익신축년(1961) 8월 2일 사돈 사이며 동생뻘인 김원익(金元益 : 본관 의성)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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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박(金衡璞)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손여서 김형박정축년(1937) 4월 4일 손녀서(孫女壻 : 손녀의 남편)인 김형박(金衡璞 : 의성)이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은 선비)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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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朴昌熙)가 외삼촌인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박창희병자년(1936) 4월 5일 외생(外甥)인 박창희(朴昌熙 : 본관 함양)가 외구(外舅)인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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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흠(柳頤欽)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숙 이흠신축년 10월 29일 사종숙(四從叔 : 11촌)인 유이흠(柳頤欽)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와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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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락(柳基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숙 기락병자년(1936) 4월 5일 사종숙(四從叔 : 11촌)인 유기락(柳基洛)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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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락(柳基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 기락을해년 4월 19일 사종숙(四從叔 : 11촌)인 유기락(柳基洛)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집안의 유풍을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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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李泰浩)가 처사(處士)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소제 이태호경자년(1960) 8월 2일 인척 동생인 이태호(李泰浩 : 본관 안릉)가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은 선비)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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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락(金州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소제 김주락병자년(1936) 4월 5일 인척 관계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김주락(金州洛 : 본관 문소)이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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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수(朴祖洙)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박조수병자년(1936) 4월 5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나이가 어린 자인 박조수(朴祖洙 : 본관 함양)가 유효식(柳孝植 : 1856∼1935)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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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영(權世永)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권세영정으로 사귄 아우 권세영(權世永 : 본관 안동)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고금의 인물이 많고 역사의 변천이 지속된다고 하면서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 망자가 남긴 영향력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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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한(張復韓 )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장복한가르침을 받았던 장복한(張復韓 : 본관 옥산)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을 문학적인 정감으로 표현하면서 슬픔을 표출하였다. 망자의 자태를 구슬처럼 영롱하다고 했으며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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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權錫夏)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권석하가르침을 받았던 권석하(權錫夏 : 1841∼1903, 본관 안동)가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를 통해 학문적인 가르침과 유교적인 인품을 배웠던 것에 대해 감사와 추모의 정서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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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金周壽)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김주수정으로 사귄 아우인 김주수(金周壽 : 의성)가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어질고 고결한 인품과 덕행을 추모하면서 망자와 사별해야 하는 아픔을 절실하게 토로했다. 망자가 베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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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金景洛)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 김경락친척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김경락(金景洛 : 1834∼1912, 본관 문소)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살던 곳에 대한 회상과 함께 망자가 떠난 이후의 정회를 간절하게 묘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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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환(金應煥)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김응환친척이면서 나이가 어린 자인 김응환(金應煥 : 문소)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학문적인 업적과 고결한 인격미에 대한 회고의 정서를 담아내었다. 망자의 고결한 학문 자세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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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李在濬)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이재준친척이면서 나이가 어린 자인 이재준(李在濬 : 1846∼1922, 본관 선성)이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살던 산수 자연 환경을 언급하면서 망자가 떠난 이후의 쓸쓸한 정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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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화(李宅和 )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교하생 이택하가르침을 받았던 이택화(李宅和)가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우수한 가문 전통에 대해 역설하면서 망자의 빼어난 자질과 유교적인 덕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망자를 통해 유교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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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수(金栢壽)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백수정으로 사귄 아우인 김백수(金栢壽 : 문소)가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함벽당 집안의 고유한 가문 전통을 강조하면서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정신을 체득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망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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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익(金奎翼)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생 김규익사돈 사이인 김규익(金奎翼 : 문소)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평소 망자의 어진 덕성과 고결한 인품에 대해 회상하면서 그의 행적을 추모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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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연호(權淵浩)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권연호정으로 사귄 아우인 권연호(權淵浩 : 안동)가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우수한 가문 배경과 가문의 정통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망자가 많은 이들에게 인격적인 감화력을 미쳤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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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金鳳秀)가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김봉수대대로 알고 지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김봉수(金鳳秀 : 연안)가 유석락(柳錫洛)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함벽당 가문의 우수성과 빼어난 학문 전통에 대해 언급하면서 망자의 가문 전통 정신 계승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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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원(姜熺遠)이 처사(處士) 전주(全州) 유공(柳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강희원나이가 어린 아우인 강희원(姜熺遠 : 진주)이 농포(農圃) 유영희(柳泳熙 ; 1890∼1960)의 영전에 망자의 평소 어진 행적과 고결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세월이 무상하며, 망자가 세상을 떠났지만 산수 자연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