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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하재중(河在中)이 숙부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재중갑오년(1954) 1월 7일, 조카인 하재중(河在中)이 숙부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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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김정로(金定魯)가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 김정노갑오년(1954) 1월 7일, 척하생(戚下生 : 친척이며 나이가 어린 관계) 김정로(金定魯)가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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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권기백(權奇百)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시하생 권기백갑오년(1954) 1월 7일, 세가시하생(世家侍下生 : 인척 관계를 이어왔으며, 나이가 어린) 권기백(權奇百)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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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김광모(金光模)가 외사촌 형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김광모갑오년(1954) 1월 7일, 내종제(內從弟 : 외사촌 동생) 김광모(金光模)가 외사촌 형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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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3월 홍희원(洪禧源)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홍희원갑오년(1954) 3월 9일, 홍희원(洪禧源)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하공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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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권오봉(權五鳳)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권오봉갑오년(1954) 1월 7일, 세제(世弟 : 대대로 사귄 두 집안 관계에서 아우뻘)인 권오봉(權五鳳)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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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이성호(李諴鎬)가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백남 이함호갑오년(1954) 1월 7일, 부백남(婦伯男 : 맏 처남) 이함호(李諴鎬)가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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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김시인(金時寅)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김시인갑오년(1954) 1월 7일, 세제(世弟 : 대대로 사귄 두 집안 관계에서 아우뻘)인 김시인(金時寅)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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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김응로(金應魯)가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 김응로갑오년(1954) 1월 7일, 부이질(婦姨姪 : 아내 자매의 아들)인 김응로(金應魯)가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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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하문수(河文洙)가 숙부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문수갑오년(1954) 1월 7일, 조카인 하문수(河文洙)가 숙부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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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하재도(河在道)가 숙부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재도갑오년(1954) 1월 7일, 조카인 하재도(河在道)가 숙부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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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장용섭(張龍燮)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장용섭갑오년(1954) 1월 7일, 세하생(世下生 : 대대로 사귄 두 집안 관계에서 동생뻘) 장용섭(張龍燮)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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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장인섭(張麟燮)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장인섭갑오년(1954) 1월 7일, 계하생(契下生 : 대대로 사귄 두 집안 관계에서 동생뻘) 장인섭(張麟燮)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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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하상팔(河相八)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생 상팔갑오년(1954) 1월 7일, 족종생(族從生 : 조카뻘) 하상팔(河相八 : 1895∼1983)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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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이상황(李相璜)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상황갑오년(1954) 1월 6일, 시하생(侍下生 : 가르침을 받았던 어린 사람) 이상황(李相璜)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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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박(李鍾博)이 지봉(砥峯) 처사(處士) 하희문(河羲文)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평생우 이종박평생우(平生友 : 평생 벗)로 지낸 이종박(李鍾博 : 1876∼1962)이 지봉(砥峯) 처사(處士) 하희문(河羲文 : 1875∼1952, 河中煥의 字)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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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1953) 1월 이종희(李鍾凞)가 장인인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이종희계사년(1953) 1월 7일, 여서(女婿 : 사위) 이종희(李鍾凞)가 장인인 지봉(砥峯) 처사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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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변석인(邊錫仁)이 지봉(砥峯) 하희문(河羲文)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변석인갑오년(1954) 1월 7일, 소제(少弟 : 동생뻘)의 인물인 변석인(邊錫仁)이 지봉(砥峯) 처사(處士) 하희문(河羲文 : 1875∼1952, 河中煥의 字)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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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 1월 지용진(池龍鎭) 등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지용진·석진갑오년(1954) 1월 7일, 시하생(侍下生 : 가르침을 받았던 나이 어린 사람)인 지용진(池龍鎭)과 지석진(池石鎭)이 지봉(砥峯) 처사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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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954)년 3월 김후병(金厚秉)이 지봉(砥峯) 하중환(河中煥)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후병갑오년(1954)년 3월 9일 정제(情弟:친근한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기'를 일컫는 말) 김후병(金厚秉 : 1874∼1954)이 지봉(砥峯) 처사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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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우(河鍾禹)가 동야(同野) 처사(處士) 진주(晉州) 하공(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손 종우족종손(族從孫 : 같은 형제의 손자)인 하종우(河鍾禹)가 동야(同野) 처사(處士) 진주(晉州) 하공(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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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선생(丹溪先生)의 위패를 모시는 가묘(家廟)를 세우고 알린 고유문(告由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서 발급자가 분명하지 않은 문건으로, 단계선생(丹溪先生)의 위패를 모시는 가묘(家廟 : 조상의 위패를 집안에 모신 사당)를 세우고, 알린 고유문(告由文)이다. 운율에 맞춘 운문 형식의 글에서 단계 선생의 의리 정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진주 하씨의 가문 내력과 의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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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세우고, 이를 기념하며 작성한 육신묘봉안문(六臣廟奉安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선조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사육신(死六臣 : 하위지. 이개.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 유성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세우고, 이를 기념하며 의리 정신을 기리고자 작성한 「육신묘봉안문(六臣廟奉安文)」이다. 4언의 운율에 따라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며, 의리 정신을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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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질녀(從姪女) 하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종질녀(從姪女 : 조카 딸) 하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조카 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남은 가족에 대한 염려의 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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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희(隆熙) 3년(1909) 4월 시흥군수(始興郡守) 나기정(羅基貞)이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시흥군수 나기정융희(隆熙) 3년(1909) 4월 26일, 시흥군수(始興郡守) 나기정(羅基貞)이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1412∼1456)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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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헌(逋軒) 권덕수(權德秀 : 1672∼1760)가 문서 수급자가 감사 벼슬을 다시 제수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여 향을 사르며 올린 분황문(焚黃文)이다. 그간의 경위와 해당 인물의 복직에 대한 상황 및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말미에는 묘 앞에 비문을 세우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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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이건을 알린 대묘이건시개기고문(大廟移建時開基告辭)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위지(河緯地:1412∼1456) 선생의 위패를 모신 큰 사당을 옮겨 건축하기 위해 기초석을 세운 뒤에, 운율에 맞추어 이 사실을 알린 「대묘이건시개기고문(大廟移建時開基告辭)」이다. 하위지 선생의 충절을 기리며, 사당을 옮기는 경위를 설명하고, 옮긴 이곳에서 안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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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부인의 효행비 건립시 작성한 절효부조씨표창수비시개기고유문(節孝婦趙氏表彰竪碑時開基告由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한 조씨 부인의 착한 행실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울 때 기초석을 세우고 신에게 알린 「절효부조씨표창수비시개기고유문(節孝婦趙氏表彰竪碑時開基告由文)」이다. 4언의 운율에 따라 조씨 부인의 효성과 어진 성품을 서술하고, 그 아름다운 행실을 후세에 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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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호(河景祜)가 처사 하대규(河大圭)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경호친척인 하경호(河景祜 : 1846∼1918)가 처사 하대규(河大圭)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우연히 질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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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종제가 형 와우(臥雨)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인척 관계이며 아우뻘인 자가 와우(臥雨)라는 호를 가진 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질병으로 사망한 점을 애석하게 여기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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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1월 이형직(李亨稷)이 아내의 할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손서심제인 이형직경오년 1월 13일, 손서(孫壻 : 손자 사위)이며 상주인 이형직(李亨稷)이 아내의 할머니(빙조모 : 聘祖母)인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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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한 진산(晉山) 하공(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서 발급자가 명확하지 않은 문건으로,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한 진산(晉山) 하공(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는 어려서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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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8월 이의섭(李宜燮)이 의성김씨 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생질 이의섭기해년 8월 20일, 생질(甥姪) 이의섭(李宜燮)이 의성김씨 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어진 부인의 도리를 다하여 가정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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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각(李敎珏)이 하중환(河中煥)의 행적을 서술한 서문(序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교각(李敎珏)이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의 행적을 서술한 서문(序文)이다. 하중환의 가계를 언급하며, 충효 정신과 의리심이 투철했던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진주 하씨 가문의 의리 정신을 이어, 고결한 선비의 형상을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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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정사(鶴山精舍) 건축시 작성한 학산정사창건기(鶴山精舍創建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과 숙종 때의 세 현인의 위패를 모신 학산정사(鶴山精舍)를 세우면서 그간의 경과와 이 정사 건축의 의의 및 후세에 기대에 기록한 「학산정사창건기(鶴山精舍創建記)」이다. 이 정사의 건립 과정에서 고을 원님 서상학(徐相鶴)의 업적과 이를 추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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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1907) 1월 남정철(南廷哲)이 하중환(河中煥)을 전송하면서 써 준 송하군중환서(送河君中煥序) / 기록자료>고문서 / 하산 남정철정미년(1907) 1월, 하산(霞山) 남정철(南廷哲)이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을 전송하면서 써 준 「송하군중환서(送河君中煥序)」이다. 서두에서 영남 선비들의 의리 정신과 학문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에 합당한 인물이 하중환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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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李承奎 : 1867∼1949)가 남씨 성을 가진 판서가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을 전송하는 것을 보고 쓴 서문인 「서남판서송하중환서(書南判書送河中煥序)」이다. 서두에서 이 서문을 작성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지봉(砥峯) 하희문(河羲文, 하중환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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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1945) 1월 하중환(河中煥)이 여유재를 짓고 난 뒤에 기록한 여유재기(餘遺齋記) / 기록자료>고문서 / 하중환을유년(1945) 1월,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이 여유재를 짓고 난 뒤에, 이 집의 건축 내력과 의의 등에 대해 기록한 「여유재기(餘遺齋記)」이다. 하중환은 이 글에서 여유로운 사상과 한적한 사상을 드러내었다. 여유가 있는 가운데 자신의 심성을 수양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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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환(河中煥)이 우산(虞山) 이옹(李翁)이 집을 짓고난 뒤 기록한 신구와기(新舊窩記) / 기록자료>고문서 / 하중환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이 우산(虞山) 이옹(李翁)이 집을 짓고, 그 이름을 신구와(新舊窩)라고 한 것과 그 의의에 대해 기록한 「신구와기(新舊窩記)」이다. 이 집에서 여유롭게 노닐며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기 위한 것에 그 목적을 두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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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헌(訥軒) 등 3명이 개인적인 감회와 자연 경관을 보고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한 경모재회화(景慕齋會話) / 기록자료>고문서 / 눌헌 등 3인눌헌(訥軒) 등 3명이 개인적인 감회와 자연 경관을 보고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한 「경모재회화(景慕齋會話)」이다. 자연 경물을 보고 느낀 점을 상세하게 표현하면서 유교적 자연관에 의해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염원도 담겨 있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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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명(柳致明)이 진주 하씨의 족보 편찬 경위와 유래 및 의의 등에 대해 쓴 진양하씨족보서(晉陽河氏族譜序) / 기록자료>고문서 / 류치명류치명(柳致明 : 1777∼1861)이 진주 하씨의 족보 편찬 경위와 유래 및 의의 등에 대해 쓴 「진양하씨족보서(晉陽河氏族譜序)」이다. 서두에서 진주 하씨의 기원에 대해 언급했다. 진주 하씨의 유래 설명에 이어, 진주 하씨가 고려조에 명성을 떨쳤던 점과 역대 진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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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商山) 노인이 기록한 채조헌기(採釣軒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산(商山 : 지금의 상주) 노인이 기록한 「채조헌기(採釣軒記)」이다. 서두에서 채조헌을 세운 내력과 그간의 경위 등에 대해 상세히 언급했다. 그리고 이 건물의 주변 경관과 관련된 인믈을 소개했다. 특히, 자연 경관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철학적인 사상을 표출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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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현(丹城縣) 등 지방의 역사 등을 기록한 지방지(地方誌)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지방의 역사, 지리, 문화, 인물, 행정 구역, 풍토, 토산물 등을 집중적으로 기록한 「지방지(地方誌)」 성격의 글이다. 해당 고을은 단성현(丹城縣), 강성현(江城縣), 하동현(河東縣), 안음현(安陰縣), 고성현(固城縣), 거제현(巨濟縣), 진해현(鎭海縣)이다. 해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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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시신이 방치되었을 때, 그 시신을 묻어 준 어부의 행적을 기록한 강상어부전(江上漁父傳)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선 시대 단종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죽음을 당하고 시신이 방치되었을 때, 그 시신을 묻어 준 어부의 행적을 기록한 「강상어부전(江上漁父傳)」이다. 세월이 흘러 사육신의 관직도 회복되고, 충절이 세상에 공개되고 빛나게 되었지만, 이 어부의 행적은 세상에 알려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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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선생의 본관에 대해 올바른 변증을 하고자 기록한 단계하선생관계변정록서(丹溪河先生貫系辨正錄序)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위지(河緯地:1412∼1456) 선생의 본관에 대해 올바른 변증을 하고자 기록한 문건의 머리글인 「단계하선생관계변정록서(丹溪河先生貫系辨正錄序)」이다. 서두에서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의 중요성과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없어야 함을 강조했다. 진주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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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옮겨 건축하고 작성한 단계하선생가묘이건상량문(丹溪河先生家廟移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문서 / 후학 이승규하위지(河緯地:1412∼1456)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옮겨 건축함에 따라 작성한 「단계하선생가묘이건상량문(丹溪河先生家廟移建上樑文)」이다. 일반 상량문 형식에 하위지 선생의 충절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지가 선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가묘 이전에 따른 그간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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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의 유래와 창건 배경 및 불교 철학을 담은 율사고지등본(栗寺古紙謄本)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계룡산(鷄龍山)의 「동학사문견록(東鶴寺聞見錄)」 등의 자료에서 동학사의 유래와 창건 배경 및 불교 철학을 담은 「율사고지등본(栗寺古紙謄本)」이다. 이 사찰의 유래와 배경 등을 언급하면서 신이적인 여러 사안과 불교 철학적인 사상을 기록했다. 진주 하씨 문중에 소장된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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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선생의 본관에 대해 명확한 논증을 거쳐 밝힌 충렬공관향증좌고적(忠烈公貫鄕證左古蹟)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위지(河緯地:1412∼1456) 선생의 본관에 대해 명확한 논증을 거쳐 밝힌 「충렬공관향증좌고적(忠烈公貫鄕證左古蹟)」이다. 하위지 선생의 본관과 진주 하씨의 배경과 가문 내력을 역사적 자료를 인용하여 기록해 두었다. 역사적인 자료는 『국조방목(國朝榜目)』, 「존이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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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중수시 작성한 창렬사우중수기(彰烈祠宇重修記) / 기록자료>고문서 / 감사 이지연하위지(河緯地:1412∼1456)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을 고쳐 지으면서 작성한 「창렬사우중수기(彰烈祠宇重修記)」이다. 사당이 위치한 공간적 배경과 단종 시절,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하위지 선생의 충절과 정신을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바람직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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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선생의 행적이 담긴 기록을 근거로 하여, 작성한 시문(詩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행적이 담긴 기록을 근거로 하여, 작성한 문건이다. 진주(晋州) 단계현(丹溪縣)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진주 하씨의 유래와 하위지 선생 관련 시문을 역사서나 지방지 등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채록해 두었다. 그리고 하위지와 관련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