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2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48501
신묘년(1951) 8월 하중환(河中煥)이 편찬한 연단실제명설(鍊丹室題名說)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신묘년(1951) 8월,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이 편찬한 「연단실제명설(鍊丹室題名說)」이다. 김성공(金聖恭)이 단정리(丹井里)에서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의 이름을 연단실(鍊丹室)이라고 한 것에 대해 유래를 역사서나 경서 등을 인용하여 밝혔다. 유교 성리출처 : 유교넷 -
348502
안광직(安光直)이 안동 부사를 역임하면서, 하위지(河緯地) 후손인 하석중(河錫中)의 선조자료 수집을 허락한 시문(詩文) / 기록자료>고문서 / 안광직안광직(安光直)이 안동 부사를 역임하면서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후손 가운데 하석중(河錫中 : 1758∼1837)이 하위지의 행적과 충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하위지 관련 사료를 열람하고, 필요한 자료는 베껴가도록 허락했다는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하위지출처 : 유교넷 -
348503
하중환(河中煥)이 이주욱(李周旭)의 여유재(餘遺齋) 건축시 작성한 여유재기(餘遺齋記) / 기록자료>고문서 / 하중환하중환(河中煥 : 1875∼1952)이 이주욱(李周旭)이란 자가 새로 집을 짓고, 집 이름을 여유재(餘遺齋)라고 한 것에 대해 해명한 「여유재기(餘遺齋記)」이다. 여유의 의미는 넉넉한 복을 남겨 두어, 후손에게 물려 준다는 것[留餘福遺子孫]이다. 이 집을 통해 후손들출처 : 유교넷 -
348504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실을 입증한 충렬공단계선생사실(忠烈公丹溪先生事實)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원 등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보조 자료인, 역사적인 자료 정리 및 관련 사안을 들어 입증한 「충렬공단계선생사실(忠烈公丹溪先生事實)」이다. 하위지 선생의 충절을 기리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담긴 일련의 상소문 내력과 조정에서출처 : 유교넷 -
348505
안동부사(安東府使) 민백남(閔百男)이 기록한 하위지(河緯地) 추모비 내력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 민백남일부가 누락된 문건으로, 안동부사(安東府使) 민백남(閔百男)이 기록하였다.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충절을 추모하고, 후세에 그 정신을 길이 전하기 위해 세운 추모비 내력을 기록했다. 하위지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록하고, 진주 하씨 가문의 배경과출처 : 유교넷 -
348506
병인년 3월 하술효(河述孝)가 하규(河奎)의 행적을 기록한 둔와유사(遯窩遺事)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술효병인년 3월, 삼종손(三從孫 : 8촌 손자) 하술효(河述孝)가 하규(河奎:1829∼1887)의 행적을 기록한 「둔와유사(遯窩遺事)」이다. 둔와는 하규의 호(號)이다. 하규의 어진 성품과 고결한 인품 등을 서술했으며, 그가 평소 고을과 가정에서 베푼 아름다운 행동을출처 : 유교넷 -
348507
오류헌(五柳軒) 하연(河蓮 : 1522∼1601)의 행적을 기록한 오류헌하공연묘지명(五柳軒河公漣墓誌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오류헌(五柳軒) 하연(河蓮 : 1522∼1601)의 행적을 기록한 「오류헌하공연묘지명(五柳軒河公漣墓誌銘)」이다. 서두에서 일반인들은 충성과 효성을 겸비할 수 없지만, 진주 하씨의 경우는 충효 정신을 동시에 수행한 집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주 하씨의 유래와 가문 배출처 : 유교넷 -
348508
정인묵(鄭人默)이 효행으로 조정 표창을 받은 내력을 기록한 장례정공효행록(掌禮鄭公孝行錄)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인묵(鄭人默)이 효행으로 인해 조정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내력을 기록한 「장례정공효행록(掌禮鄭公孝行錄)」이다. 서두에서 동래 정씨의 가문 내력을 서술하면서 정인묵의 조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정인묵의 어진 효행을 기록했다. 정인묵의 효행으로 인해 좋은 조상 산소출처 : 유교넷 -
348509
숭정 3년(1630) 조관빈(趙觀彬)이 조선의 사육신 행적을 비석에 새긴 글인 유명조선국육신묘비명(有明朝鮮國六臣墓碑銘) / 기록자료>고문서 / 대종백태 학사 조관빈숭정 3년(1630) 조관빈(趙觀彬)이 조선의 사육신 행적을 비석에 새긴 글인 「유명조선국육신묘비명(有明朝鮮國六臣墓碑銘)」이다. 일부 훼손된 문건이다. 사육신의 신상 명세를 기록하고, 그들이 처한 당대 정치적인 상황을 기록했다. 그리고 사육신의 충절의 의미를 강조하며출처 : 유교넷 -
348510
을사년 6월 이승구(李昇九) 등이 호계서원(虎溪書堂) 유생들에게 하위지선생 본관 시비에 대해 알린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방외영남유생회중 이승구 등을사년 6월 23일, 영남 지역 유생 단체[嶺南儒生會]를 대표하는 이승구(李昇九) 등이 호계서원(虎溪書堂) 유생들에게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알린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단계(丹溪) 하위지출처 : 유교넷 -
348511
병진년 1월 하석점(河錫漸) 등이 족보편찬의 일로 송파(松坡)에 보낸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회중 하석점 등 14인병진년 1월 25일, 진주 하씨의 문중 모임인 종회(宗會)를 대표하여 하석점(河錫漸) 등 14명이 송파(松坡)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주요 사안은 진주 하씨가 가문 배경이나 충의 정신이 투철한 집안임에출처 : 유교넷 -
348512
병오년 11월 김진기(金鎭麒) 등이 하위지선생 본관 시비의 일로 여러 향교(鄕校)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임천서당 김진기 등병오년 11월 1일, 임천서당(臨川書堂)의 김진기(金鎭麒) 등이 여러 향교(鄕校)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본관에 대한 시비가 가려지고,출처 : 유교넷 -
348513
읍지(邑誌)를 간행할 때, 묵계(默溪) 향회(鄕會)에 보낸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묵계향회중읍지(邑誌)를 간행할 때 묵계(默溪) 향회(鄕會)에서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서두에서 안동 고을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의 우수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리고 이 『영가지』 편찬 과정에서 있었던 사안을출처 : 유교넷 -
348514
남명(南冥) 조식(曺植) 학설의 정통성문제에 대해 유림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학설이 정통성을 이어 오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조식의 후손에 대해 죄상을 밝히고자 유림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남명의 학출처 : 유교넷 -
348515
소화(昭和) 18년(1943) 1월 이동흠(李棟欽)이 『동유학안(東儒學案)』편찬의 일로 문중이나 향교 및 관련 단체에 보낸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안편집소경상도회중 이동흠 등소화(昭和) 18년(1943) 1월, 우리나라에 전래된 유학을 계승한 인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동유학안(東儒學案)』을 편집하기 위한 유림 단체인 동유학안편집소경상도회(東儒學案編輯所慶尙道會)의 이동흠(李棟欽 : 1881∼1967) 등이 이 책의 편찬을 위해 협출처 : 유교넷 -
348516
정묘년 2월 하경회(河慶淮) 등이 종약계 참석을 진주 하씨 작은 문중에 요청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하경회 등 6인정묘년 2월 20일, 하경회(河慶淮) 등 6명이 진주 하씨 작은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알리는 내용은 종약계(宗約契)를 진주군 대곡면 단목리 경모재에서 개최하니, 많은 후손들이 참석해 달라고 부탁출처 : 유교넷 -
348517
정묘년 3월 이상익(李相翊) 등이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서원 건립의 일로 협조를 당부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경의당회중 이상익 등정묘년 3월 29일, 경의당회(敬義堂會)의 이상익(李相翊) 등이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기 위한 서원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협조를 당부한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서두에출처 : 유교넷 -
348518
정묘년 2월 김형석(金炯碩)이 백촌실기(白村實紀) 편찬을 알린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묘년 2월 15일,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 선생의 충의 정신을 추모하며, 후세에 길이 알리기 위해, 후손 김형석(金炯碩)이 백촌의 시문과 관련 자료를 모아, 『백촌실기(白村實紀)』 3권을 편찬하였기 때문에 보낸다고 알린 통문(通文)이다. 통문출처 : 유교넷 -
348519
풍기에 사는 금계 황모씨가 종사(從祀)와 관련하여,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폐를 끼친 것에 대해 조정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고을에 폐단을 발생시켰기 때문에 인근 유림 단체와 향교 등에 통보하여, 이에 대해 협의하고 성토하고자 협조를 당부하는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출처 : 유교넷 -
348520
진주(晉州) 종천서원(宗川書院)에서 하위지선생의 기록 수정을 요청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진주(晉州) 종천서원(宗川書院)으로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충의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문건이다. 우리 나라 역대 기록물 가운데,출처 : 유교넷 -
348521
계묘년 9월 김모가 보낸 하위지선생 유집간행의 일로 문중 등에 보낸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경현소 유사 김○○계묘년 9월 23일, 경현소(京絢所) 유사(有司) 김모가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의 성명을 적어 차례로 돌리어 보는 통지문이다.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충의 정신이 깃들고, 그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게 하기 위해서출처 : 유교넷 -
348522
홍태철(洪泰喆)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홍태철대대로 친분을 유지해 온 관계에 있으며, 나이가 어리고 가르침을 받은 자[通家侍生] 홍태철(洪泰喆)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운율이 담긴 한시 형식에 슬픔을 표현하였다. 망자출처 : 유교넷 -
348523
홍영전(洪永銓)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홍영전사돈관계에 있으면서 나이가 어린 입장[査下]인 홍영전(洪永銓)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슬픔 감정을 극진하게 표현하였다. 가을 하늘의 짝 잃은 기러기와출처 : 유교넷 -
348524
하재기(河在夔)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재기족손(族孫 : 친척 손자) 하재기(河在夔)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평소 망자의 훤칠한 모습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남은 가족에 대해 염려하면서 슬픔을출처 : 유교넷 -
348525
하경연(河景淵)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경연족손(族從 : 친척 손자) 하경연(河景淵 : 1851∼1934)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평소 망자의 벼슬 살이 행적과 이룬 업적을 회고하는 가운데 슬픔과 이별에의 아쉬움 등출처 : 유교넷 -
348526
하문환(河文煥)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문환족질(族姪 : 친척 조카) 하문환(河文煥 : 1850∼1928)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40 평생을 회고하며 슬픈 감정을 표현하였다. 망자를 잃고, 슬픔과 고독함에출처 : 유교넷 -
348527
하경호(河景祜)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경호친척 하경호(河景祜 : 1846∼1918)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할 일이 많은 망자가 세상을 떠나게 된 점을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그리고 평소 자신과 망자와의 친했던 추출처 : 유교넷 -
348528
하○○ 등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하○○ 등 2인정소제(情少弟 : 정으로 사귄 아우) 하○○ 등 2명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긴 글의 만사에서 망자의 유교적 인품과 학문 정신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평소 자신들과의 교유 활출처 : 유교넷 -
348529
지용진(池龍鎭)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지용진정제(情弟 : 정으로 사귄 아우) 지용진(池龍鎭)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와 다정했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망자가 보여준 인간적인 후덕함을 생각하며 슬퍼했다. 그리고 평소출처 : 유교넷 -
348530
권오봉(權五鳳)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권오봉세제(世弟 : 대대로 사귄 가문의 아우) 권오봉(權五鳳)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문학적인 비유를 거쳐 망자와의 오랜 친분 관계를 회고하면서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의출처 : 유교넷 -
348531
이수걸(李秀杰)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수걸정제(情弟 : 정으로 사귄 아우) 이수걸(李秀杰 : 1877∼1963)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학문과 인격미를 추모했다. 망자가 진주 하씨 가문의 충의 정신을 이어 받아,출처 : 유교넷 -
348532
김동환(金東燦)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질 김동찬표종질(表從姪 : 외사촌 조카) 김동찬(金東燦)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인격과 아름다운 덕행을 회고하면서 슬픔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진주 하씨 가문의 우수성과 망자의 충효출처 : 유교넷 -
348533
이용걸(李鏞杰)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용걸정제(情弟 : 정으로 사귄 아우) 이용걸(李鏞杰 : 1883∼1964)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일생을 간략하게 회고하면서 어질고 고결한 인품을 추모했다. 그리고 망자가 평소출처 : 유교넷 -
348534
유영희(柳泳熙)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유영희세하생(世下生 : 가르침을 받은 이) 유영희(柳泳熙 : 1890∼1960)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문학적인 감수성과 슬픈 감정을 동원하여, 망자에 대한 슬픔을 절실하게 표현출처 : 유교넷 -
348535
김병문(金秉文)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생 김병문세가생(世家生 : 대대로 사귀어 온 입장에 있는 이) 김병문(金秉文)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가문 배경과 이어 내려 오는 충의 정신을 추모했다. 이와 함께 망자가 그러한 가출처 : 유교넷 -
348536
신승희(辛承禧)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신승희시하생(侍下生 : 가르침을 받은 이) 신승희(辛承禧)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진주 하씨 가문의 충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망자가 그러한 가문의 유풍을 이어 받아 청빈한출처 : 유교넷 -
348537
박성양(朴聖陽)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박성양하생(下生 : 나이가 어린 이) 박성양(朴聖陽)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문학적인 정감으로 슬픔을 표현하였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면서 유족의 아픔을 함께 그려내었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348538
김규욱(金奎旭)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정우 김규욱지상정우(地上情友 : 오래 정으로 사귄 벗)인 김규욱(金奎旭)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벗과의 영원한 사별의 아픔을 표현하였다. 이 세상에서 함께 나누었던 우정을 회고하면서 미처 다출처 : 유교넷 -
348539
김주덕(金周悳)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주덕시하생(侍下生 : 가르침을 받은 이) 김주덕(金周悳)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평소 알뜰하게 가르쳐 준 은덕에 대해 추모했다. 그리고 망자의 행적에 대해 작은출처 : 유교넷 -
348540
유장원(柳長源)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척 유장원친척 유장원(柳長源 : 1724∼1796)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문학적인 비유를 들어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미에는 이 만사를 쓰게 된출처 : 유교넷 -
348541
하용익(河龍翼)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참봉(參奉) 하용익(河龍翼 : 1701∼1770)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평소 행적과 진주 하씨 가문의 충의 정신을 회고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유교적 인품에 대한 추모와 고결한 인격미를출처 : 유교넷 -
348542
이중구(李重九)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중구정제(情弟 : 정으로 사귄 아우) 이중구(李重九)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문학적인 정감으로 죽은 이를 슬퍼했다. 평소 망자가 베푼 은덕과 아름다웠던 지난 날에 대한 추억을출처 : 유교넷 -
348543
하석중(河錫中) 등이 진주 하씨 충렬공 하위지(河緯地)의 본관문제로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경상도 안동유학 하석중 등유학(幼學) 하석중(河錫中 : 1758∼1837) 등이 진주 하씨 충렬공 하위지(河緯地 : 1412∼1456)의 본관이 단계(丹溪)임에도 불구하고, 진주로 된 것에 대해 바르게 고쳐 주기를 희망하며 올린 소지(所志)이다. 소지는 일종의 청원서 같은 문건이다. 여러 부출처 : 유교넷 -
348544
송상수(宋尙洙) 등이 진주 하씨 본관의 시정을 촉구하며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송상수 등 13인송상수(宋尙洙) 등 13명이 역대 역사적인 기록 등에서 진주 하씨의 본관이, 단계(丹溪), 진주, 진양 등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올바른 시정을 촉구하며 올린 소지(所志)이다. 소지는 일종의 청원서 같은 문건이다. 특히, 하위지(河緯地 : 1412∼145출처 : 유교넷 -
348545
광서(光緖) 13년(1887) 4월에 하경렴(河景濂)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한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조(吏曹)에서 광서(光緖) 13년(1887) 4월에 하경렴(河景濂 : 1817∼1890)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한다는 공식 문서인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조선시대 국왕이 관원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48546
이조(吏曹)에서 광서(光緖) 13년(1887) 4월에 하경렴(河景濂 : 1817∼1890)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한다는 공식 문서인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조선시대 국왕이 관원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48547
이조(吏曹)에서 광서(光緖) 13년(1887) 4월에 하경렴(河景濂 : 1817∼1890)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됨에 따라, 법전에 의거하여 하경렴의 아내 배씨(裵氏)에게 숙부인(淑夫人)의 벼슬을 내려 준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출처 : 유교넷 -
348548
이조(吏曹)에서 광서(光緖) 13년(1887) 4월에 하경렴(河景濂 : 1817∼1890)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됨에 따라, 법전에 의거하여 하경렴의 아내 장씨(張氏)에게 숙부인(淑夫人)의 벼슬을 내려 준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출처 : 유교넷 -
348549
이조(吏曹)에서 광서(光緖) 15년(1889)에 하경렴(河景濂 : 1817∼1890)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려 준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조선시대 국왕이 관원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이다. 문서의 말미에 관인이 찍혀 있다.출처 : 유교넷 -
348550
이조(吏曹)에서 광서(光緖) 15년(1889) 1월에 하경렴(河景濂 : 1817∼1890)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려 준다는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조선시대 국왕이 관원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이다. 문서의 말미에 관인이 찍혀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