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2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48601
유생이 의정부(議政府)에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본관시비에 대한 조정의 분명한 판결을 촉구한 제음(題音) / 기록자료>고문서 / 의정부·유장유생이 의정부(議政府)에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본관이 단계(丹溪)가 아니라, 진주(晉州)임이 『홍재전서(弘齋全書)』 등에 명확히 실려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조정의 분명한 판결을 촉구한 제음(題音)이다.출처 : 유교넷 -
348602
안동 유림과 선현의 책자에 대한 규칙을 기록한 절목(節目)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안동 유림과 선현의 책자에 대한 규칙을 기록한 절목(節目)이다. 『도산급문록』에 실린 청원시(淸遠詩) 두 수와 노애(蘆厓) 선생의 문집에서 청원시에 대해 세부적으로 언급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만인(李晩寅)이 작성한 「국파선생 신도비」에서 청원(淸遠)의 의미는출처 : 유교넷 -
348603
창절서원(彰節書院)에서 제사를 위해 제기를 새로 준비하면서, 물품 내역을 기록한 절목(節目)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창절서원(彰節書院)에서 제사를 위해 제기를 새로 준비하면서 물품 내역을 기록한 절목(節目)이다. 추가로 모신 신위(神位)의 제기 물품은 보궤, 향촉대, 향합이다. 충신단의 제기 물품은 주발, 황촉대, 향합, 방석, 찬합 등이다. 영월부사단소는 일부 건물을 고치고, 증출처 : 유교넷 -
348604
갑술년 8월 역모사건에 관한 일로 의정부에 올린 계문(啓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갑술년 8월 29일에 의정부에 올린 계문(啓文)이다. 역모 사건에 관련된 사안을 다루었다. 아무개의 역모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으니, 이에 대한 조정의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아무개의 역모와 연관된 언급이나 행동을 구출처 : 유교넷 -
348605
박해철(朴海哲)이 사육신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 / 기록자료>고문서 / 박해철박해철(朴海哲)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이다. 박해철은 이현우(李晛宇) 등이 함께 올린 상소문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해철은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을 비롯한 사육신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사를 올리면서 축문에 관향과 성씨만을 기출처 : 유교넷 -
348606
청나라와 화친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척화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청나라와 화친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척화 상소문이다. 장문의 상소문에 유교 성리학 이념이 담겨 있다.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면서 청나라와 화친을 하는 것은 오랑캐나 금수와 화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청나라와 화친이 이루어 질 수 없는 이유를 조목별로 정리하여,출처 : 유교넷 -
348607
이○○ 등이 충렬공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본관에 대한 해명을 촉구한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이품 이○○ 등충렬공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본관에 대한 해명을 촉구한 상소문이다. 종이품(從二品)인 이 아무개 등이 올렸다. 하위지 선생의 충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하위지 선생의 복권이 이루어진 그간의 과정에 대해 기술했다. 그리고 조정에서 이러한 복권 정책을출처 : 유교넷 -
348608
순조 계사년에 하위지(河緯地) 선생 본관시비에 대한 조정의 명확한 처분을 호소한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순조 계사년에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호를 본관으로 여긴 자들에 대해 조정의 명확한 처분을 호소한 상소문이다. 사육신의 행적에 대해 강조하면서 충의 정신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인 기록 등에서 하위지 선생의 호가 단계(丹溪)인데, 이 호를 본출처 : 유교넷 -
348609
하위지(河緯地) 선생 본관시비에 대한 조정의 명확한 처분을 호소한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호가 단계(丹溪)인데, 이 호를 본관으로 여기는 자들에 대한 처분을 요구하며, 역사적인 자료 등에서 오류 처리된 것을 바로 잡아 달라고 주장한 상소문이다. 진주 하씨의 유래와 역사적인 배경 등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리고 진출처 : 유교넷 -
348610
한글의 우수성과 민족정신의 개조를 주장한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국가의 원기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며, 국민의 정신 개조에 이바지해야 함을 주장한 상소문이다.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좁은 안출처 : 유교넷 -
348611
용계서당 동학들의 계 모임 명부인 용계서당도계명첩(龍溪書堂道稧名帖)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용계서당에서 공부한 자들이 함께 결성한 계 모임의 명부인 「용계서당도계명첩(龍溪書堂道稧名帖)」이다. 해당 인물의 벼슬, 성명, 자호, 생년 간지, 본관, 거주지가 기록되어 있다. 해당 인물은 하대운(河大運 : 1841∼1917), 하경호(河景祜 : 1846∼1918)출처 : 유교넷 -
348612
창선사(彰善祠) 유생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인 창선사유안(彰善祠儒案) / 기록자료>고문서 / 창선사 유생창선사(彰善祠) 유생들의 명단을 차례로 기록한 좌목(座目)인 「창선사유안(彰善祠儒案)」이다. 김천군 봉산면 봉계리 창성사당의 유생들이 신사년(1941) 6월에 하중환(河中煥 : 1875∼1952)에게 보낸 문건이다. 총 10명의 유생들 생년 간지와 자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348613
광무(光武) 8년(1904) 5월 31일에 발행한 관보(官報) 2840호 / 기록자료>고문서 / 장례원경신 이근수관아에서 행정 사항을 통보한 관보(官報)이다. 광무(光武) 8년(1904) 5월 31일에 발행한 2840호인데, 장예원의 이근수(李根秀)가 올린 관보이다. 내용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浮)의 후손이 없는 점을 감안하여, 경기도 유생 이유제(李출처 : 유교넷 -
348614
계사년에 예조(禮曹)에서 하위지 선생 본관시비에 관한 일로 왕에게 올린 계문(啓文)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예조(禮曹)에서 왕에게 올린 계문(啓文)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왕에게 올려, 허락을 받을 때 사용하였다. 계사년에 작성한 「예조등록(禮曹謄錄)」의 내용이다. 개성의 유생 하시철(河始澈)이 그의 11대 조상인 충렬공 하위지(河緯地 : 1412∼1456)의 본관출처 : 유교넷 -
348615
임인년 3월 예조(禮曹)에서 하위지 선생 본관시비에 관한 일로 왕에게 올린 계문(啓文)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판서 박회수형조에서 왕에게 올린 계문(啓文)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왕에게 올려, 허락을 받을 때 사용하였다. 임인년 3월 27일에 판서 박회수(朴晦壽)가 형조에서 임인년 3월 12일에 올린 계목을 다시 왕에게 올린 것이다. 내용은 개성의 유생 하시철(河始澈)이 11대출처 : 유교넷 -
348616
경인년 4월 예조(禮曹)에서 사육신 명예회복에 관한 일로 왕에게 올린 계문(啓文)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판서 한광회왕에게 올린 문서인 계문(啓文)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왕에게 올려, 허락을 받을 때 사용하였다. 경인년 4월 24일에 예조판서 한광회(韓光會)가 왕에게 올린 것이다. 내용은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사육신에 대한 시호가 내려졌지만, 박팽년(朴彭年) 외에는 시호를출처 : 유교넷 -
348617
임인년 3월 예조(禮曹)에서 하위지 선생 본관시비에 관한 일로 왕에게 올린 계문(啓文)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판서 박회수왕에게 올린 문서인 계문(啓文)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왕에게 올려, 허락을 받을 때 사용하였다. 임인년 3월 3일에 예조판서 박회수(朴晦壽)가 왕에게 올린 것이다. 내용은 하위지(河緯地 : 1412∼1456)의 후손인 하시철(河始澈)이 하위지의 본관이 진주임출처 : 유교넷 -
348618
광무 8월 21일에 장례원에서 하위지(河緯地) 제사 허락 요청건에 대한 답변 전령(傳令) / 기록자료>고문서 / 장예원상급 관원이 하급 관원이나 백성들에게 보낸 전령(傳令)인데, 특정한 직책에 임명하거나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한 문서이다. 광무 8월 21일에 장예원에서 발급한 문서이다. 하위지(河緯地 : 1412∼1456)의 후손이 올린 하위지를 제사하기 위한 조정의 허락 요청건에 대출처 : 유교넷 -
348619
송상수(宋相秀)가 사육신 하위지(河緯地)의 후사(後祀) 문제 해결을 요청한 정문(呈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전참봉 송상수전참봉(前參奉) 송상수(宋相秀)가 사육신 하위지(河緯地 : 1412∼1456)의 후사(後祀) 문제를 상부 기관에 알려, 이에 대한 해결을 요청한 정문(呈文)이다. 하위지 사후에 그에 대한 신원이 이루어지고, 복권과 시호 하사 등 일련의 조치가 내려진 것에 대해 서술했출처 : 유교넷 -
348620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본관시비에 대해 정확한 판결을 해 달라고 올린 정문(呈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충절 정신을 강조하면서 역사적인 자료나 문집 등에서 언급한 것을 예로 들어 증거하면서 하위지 선생의 본관이 진주(晉州)가 아닌 단계(丹溪)로 이해되어 오는 것에 대해 정확한 판결을 해 달라고 올린 정문(呈文)이다. 하위지출처 : 유교넷 -
348621
모년 10월에 있었던 장례 절차에 따른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案葬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 절차에 따른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案葬記)이다. 안장은 10월 25일에 시행되었다. 문건의 상단부 우측에 아들, 며느리, 손자 4명, 손부 1명, 증손자 3명의 생년 간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안장, 하관, 무덤의 깊이, 취토 등의 내용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348622
사육신(死六臣) 의 복권과 시호 하사에 따른 책문(冊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사육신(死六臣) 충문(忠文) 성삼문(成三問), 충정(忠正) 박팽년(朴彭年), 충열(忠烈) 하위지(河緯地), 충간(忠簡) 이개(李塏), 충목(忠穆) 유응부(兪應浮), 충경(忠景) 유성원(柳誠源)이 죽은 뒤에 복권이 이루어지고, 시호가 내려짐에 따라 내려진 벼슬과 시호를출처 : 유교넷 -
348623
신축년(1901) 5월 김규회(金奎會)가 진주 하씨 문중에 부모묘의 이장을 약속한 표기(標記) / 기록자료>고문서 / 표주 김규회서로 약속을 하고, 증거로 문서를 작성한 표기(標記)이다. 신축년(1901) 5월 13일에 김규회(金奎會 : 1850∼1913)가 진주 하씨 문중에 써 준 표기이다. 내용은 김규회가 하위지(河緯地 : 1412∼1456) 선생의 위패를 묻은 단 아래 임시로 자기 어버이출처 : 유교넷 -
348624
갑진년 12월에 뇌옥헌(瀨玉軒)이 국왕에게 왕도정치를 촉구한 상소문 형식의 차자(箚子) / 기록자료>고문서 / 뇌옥헌뇌옥헌(瀨玉軒)이 갑진년 12월 2일에 올린 상소문 형식의 차자(箚子)이다. 차자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이다. 특별한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왕의 어진 정치 실현을 촉구했다. 전체적으로 왕도 정치에 입각한 어진 정치 구현을출처 : 유교넷 -
348625
갑진년(1804) 12월 최익현(崔益鉉)이 왕에게 왕도정치의 구현을 촉구한 상소문 형식의 차자(箚子) / 기록자료>고문서 / 찬정 최익현갑진년(1804) 12월 2일, 찬정(贊政)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올린 상소문 형식의 차자(箚子)이다. 차자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이다. 국왕의 어진 정치 실현에 따른 여러 사안을 제시했다. 왕도 정치 구현을 위한 유교적인 수신과출처 : 유교넷 -
348626
영양 김씨의 가계를 간략하게 정리한 족보(族譜) 형식의 영양김씨세보(英陽金氏世譜)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영양 김씨의 가계를 간략하게 정리한 족보(族譜) 형식의 「영양김씨세보(英陽金氏世譜)」이다. 시조에서부터 10대에 이르기까지의 영양 김씨 가문의 내력을 기록했다. 해당 인물의 자호, 벼슬, 아들의 현황을 기록했다. 시조(김충), 1대(김충황), 2대(김수연), 3대(김출처 : 유교넷 -
348627
진주 하씨의 가계를 간략하게 정리한 족보(族譜) 형식의 진주하씨세보(晉州河氏世譜)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진주 하씨의 가계를 간략하게 정리한 족보(族譜) 형식의 「진주하씨세보(晉州河氏世譜)」이다. 시조 하기진(河琪辰), 하륜(河崙), 하연(河演), 하위지(河緯地 : 1412∼1456)의 선대 10대조까지의 관직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348628
융경(隆慶) 2년(1568) 4월 왕이 이황(李滉)을 우찬성(右贊成)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훈유문(訓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왕이 문건은 국왕이 융경(隆慶) 2년(1568) 4월 1일에 내린 교서(敎書)이다. 교서는 국왕이 내리는 선포문이나 명령문을 의미하는데, 왕이 자신의 정책 방침을 발표하거나 국난을 당하여 직언을 구하고 공신 책봉 및 관리를 임명하며 그 책임을 다하도록 훈유(訓諭)할 때출처 : 유교넷 -
348629
이 문건은 국왕이 융경(隆慶) 원년(1567) 11월 16일에 내린 교서(敎書)이다. 교서는 국왕이 내리는 선포문이나 명령문을 의미하는데, 왕이 자신의 정책 방침을 발표하거나 국난을 당하여 직언을 구하고 공신 책봉 및 관리를 임명하며 그 책임을 다하도록 훈유(訓諭)할출처 : 유교넷 -
348630
이 문건은 국왕이 융경(隆慶) 원년(1567) 11월 16일에 내린 교서(敎書)이다. 교서는 국왕이 내리는 선포문이나 명령문을 의미하는데, 왕이 자신의 정책 방침을 발표하거나 국난을 당하여 직언을 구하고 공신 책봉 및 관리를 임명하며 그 책임을 다하도록 훈유(訓諭)할출처 : 유교넷 -
348631
왕이 이황(李滉)을 영의정 문순공(領議政文純公)으로 추증하면서 내린 훈유문(訓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왕이 문건은 국왕이 내린 교서(敎書)이다. 교서는 국왕이 내리는 선포문이나 명령문을 의미하는데, 왕이 자신의 정책 방침을 발표하거나 국난을 당하여 직언을 구하고 공신 책봉 및 관리를 임명하며 그 책임을 다하도록 훈유(訓諭)할 때 발급하는 것이다. 이 문건은 왕이 이황(출처 : 유교넷 -
348632
가정(嘉靖) 13년(1534) 3월 이황(李滉)이 문과 을과 제1인으로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3
만력(萬曆) 4년(1576) 11월 이황(李滉)의 시호를 문순공(文純公)으로 내려 준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4
특정인에게 안동진관병마동첨절제사(安東鎭官兵馬同僉節制史)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5
함풍(咸豊) 11년(1861) 1월 이휘녕(李彙寧)의 아내인 권씨의 품계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준다는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6
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7
가정(嘉靖) 19년(1540) 5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봉직랑 행 사간원정언 지제교 겸 승문원교검(奉直郞 行 司諫院正言 知製敎 兼承文院校檢)으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8
가정(嘉靖) 19년(1540) 11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홍문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 승문원교리(通善郞 弘文館校理 知製敎 兼 經筵侍讀官 春秋館記注官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39
가정(嘉靖) 19년(1540) 11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홍문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 승문원교리(通善郞 弘文館校理 知製敎 兼 經筵侍讀官 春秋館記注官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0
가정(嘉靖) 20년(1541) 5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행 홍문관수찬 지제교 겸 경연검토관 춘추관기사관 승문원교리(通善郞 行 弘文館修撰 知製敎 兼 經筵檢討官 春秋館記事官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1
가정(嘉靖) 22년(1543) 7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행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 승문원교리(通善郞 行 弘文館副校理 知製敎 兼 經筵侍讀官 春秋館記注官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2
가정(嘉靖) 21년(1542) 11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사헌부지평 지제교 겸 승문원교리(通善郞 司憲府持平 知製敎 兼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3
가정(嘉靖) 21년(1542) 1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행 성균관전적 지제교 겸 승문원교리(通善郞 行 成均館典籍 知製敎 兼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4
가정(嘉靖) 21년(1542) 1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형조정랑 지제교 겸 승문원교리(通善郞 刑曺正郞 知製敎 兼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5
가정(嘉靖) 21년(1542) 2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행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 승문원교리(通善郞 行 弘文館副校理 知製敎 兼 經筵侍讀官 春秋館記注官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6
가정(嘉靖) 21년(1542) 4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의정부검상 지제교 겸 승문원교리(通善郞 議政府檢詳 知製敎 兼 承文院校理)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7
가정(嘉靖) 21년(1542) 5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선랑 의정부검상 지제교 겸 승문원교리 세자시강원문학(通善郞 議政府檢詳 知製敎 兼 承文院校理 世子侍講院文學)으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8
가정(嘉靖) 21년(1542) 5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덕랑 의정부검상 지제교 겸 승문원교리 세자시강원문학(通德郞 議政府檢詳 知製敎 兼 承文院校理 世子侍講院文學)으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49
가정(嘉靖) 21년(1542) 윤5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덕랑 수 의정부사인 지제교 겸 승문원교감 세자시강원문학)(通德郞 守議政府舍人 知製敎 兼 承文院校勘 世子侍講院文學)으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
348650
가정(嘉靖) 21년(1542) 12월 이황(李滉)의 품계를 통덕랑수 사헌부장령 지제교 겸 승문원교감(通德郞守 司憲府掌令 知製敎 兼 承文院校勘)으로 임명한 교지(敎旨)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건은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