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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49251

    선몽대 주인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가 지은 시를 새긴 시판이다. 우암 이열도는 퇴계 이황의 증손이자 문인으로, 1576년 문과에 급제한 뒤 정랑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는 은퇴한 뒤 1563년에 선몽대를 짓고,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이 시판에 새겨진 시는 7언 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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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2

    경차_중원 최진방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중원(中原) 최진방(崔鎭邦)이 선몽대에서 지은 시를 새긴 시판이다. 최진방은 선몽대를 방문하여 선몽대 주인의 시에 차운하여 이 시를 지었다. 최진방은 본관이 충주이고 자는 지병(之屛)으로, 1560년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친 인물이다. 이 시에서 최진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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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3

    기제선몽대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퇴계 이황이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가 지은 정자에 ‘선몽대’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함께 써준 축하시를 새긴 시판이다. 이 시에서 이황은 노송(老松)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선몽대의 경치를 찬탄하고, 그곳에 신선이 내려와 놀던 꿈에 의거하여 ‘선몽대’라는 이름을 짓는
    출처 : 유교넷
  • 349254

    차선몽대운(한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 선몽대에서 지은 시를 새긴 시판이다. 이덕형이 선몽대를 방문했을 때 벽에 걸린 선몽대 주인의 시를 보고, 그것에 차운하여 이 시를 지었다. 7언 절구 1수이다. 시의 내용은, 선몽대의 쇄락(灑落)하고 자적한 경치에 감탄하면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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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5

    경차벽상운배정선몽대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정호선(丁好善: 1571∼1633)이 선몽대에서 지은 시를 새긴 시판이다. 정호선이 선몽대를 방문하였을 때 벽에 걸린 선몽대 주인의 시를 보고, 그것에 차운하여 이 시를 지었다. 이 시는 7언 절구 2수이다. 첫째 수에서는 선몽대의 경치에 찬탄하고 주인과 담소하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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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6

    차문원유고산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퇴계 이황이 제자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쓴 시 「고산에 노닐며(遊孤山)」라는 시에 차운하여 써준 답시의 시판이다. 금난수는 본관이 봉화이고 자는 문원(聞遠)이며 호는 성재(惺齋) 혹은 고산주인(孤山主人)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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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7

    산거부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강재항(姜再恒: 1689∼1756)이 쓴 「산거부(山居賦)」를 새긴 서판이다. 강재항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구지(久之)이며 호는 입재(立齋)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으로, 윤동원(尹東源)·권구(權絿)·신익황(申益愰) 등과 교유하면서 강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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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8

    제읍호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읍호정(挹湖亭)에서 지은 시 3수를 새긴 시판이다. 첫째 시는 이홍윤(李洪胤)이 지은 것이고, 둘째 시는 신익성(申翊聖)이 지은 것이며, 셋째 시는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것이다. 3수의 시 모두 약포(藥圃) 정탁(鄭琢)이 세운 읍호정(挹湖亭)을 방문하여 경관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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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59

    차정상탁기로소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윤두수(尹斗壽: 1533~1601)가 정탁의 시에 차운하여 창작한 시를 새긴 시판이다. 윤두수는 본관이 해평(海平)이고 자가 자앙(子仰)이며 호가 오음(梧陰)이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황의 문인으로 조선 중기 유명한 문신이다. 155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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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0

    우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정탁이 쓴 7언 절구 1수를 목판에 새긴 것이다. 정탁은 임진왜란 당시 좌찬성으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곽재우(郭再祐)·김덕령(金德齡) 등의 명장을 천거하여 전란 중에 공을 세우게 하였다. 또 정유재란 때에는 옥중의 이순신을 극력 변호하여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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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1

    증별정자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퇴계 이황이 정탁을 전송하면서 지어준 시를 새긴 시판이다. ‘자정(子精)’은 정탁의 자이다. 정탁은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한 제자로서, 관직에 임명되어 떠나게 되자 이황이 이 시를 지어주며 석별의 정을 나눈 것이다. 이 시에서 이황은 제자 정탁의 사람됨을 칭찬하고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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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2

    한강송정상남행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가 정탁을 한강에서 전송하면서 지어준 시를 새긴 시판이다. 윤두수는 정탁과 함께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한 동창생이자, 같은 때에 조정에서 벼슬을 하면서 동고동락한 동료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윤두수는, 정탁이 귀향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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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3

    오리선생유필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의 필적을 목판에 새긴 책판이다. 이원익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공려(公勵)이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형조참판·대사헌·호조와 예조판서·이조판서 겸 도총관·지의금부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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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4

    연비어약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연비어약(鳶飛魚躍)’ 4글자를 한 글자씩 인쇄할 수 있게 새긴 목판이다. 연비어약이라는 말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오른다.(鳶飛戾天, 魚躍于淵)”는 것이다. 이 구절은 도(道)의 본체가 자연과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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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5

    오류선생전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중국 동진(東晋) 시대의 문학가 도연명(陶淵明)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목판에 새긴 것이다. 도연명은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도가적(道家的) 세계관을 평이한 시어(詩語)로 표현한 중국 최고의 시인이다. 도연명은 자신의 집에 5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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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6

    청풍명월낙천안토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청풍명월(淸風明月)’과 ‘낙천안토(樂天安土)’의 8글자를 목판에 새긴 것이다. 청풍명월이란 결백하고 온화한 군자의 성품을 일컫는 말로, 선비된 자가 항상 지향해야 할 인격의 모범을 뜻한다. 또 낙천안토란 『예기(禮記)』「애공편(哀公篇)」의 “처한 자리에서 편안히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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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7

    정탁 벼루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鄭琢: 1526~1605)이 쓰던 벼루를 보관하던 나무상자이다. 이 유물은 상단에 벼루를 수납할 수 있도록 하고 위로는 여닫는 뚜껑을 달았다. 하단에는 납작한 서랍을 만들어 붓 같은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서랍의 앞면에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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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8

    정탁 蓮花紋 벼루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鄭琢: 1526~1605)이 사용하던 벼루이다. 이 유물은 정탁이 1582년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명나라의 황제 만력제(萬曆帝)로부터 하사받은 벼루이다. 정사각형의 검은 돌을 깎아 만든 것인데, 가운데에 둥근 원향으로 연당(硯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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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69

    월봉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월봉(月峯) 고인계(高仁繼: 1564∼1647)의 문집 책판이다. 총 33매이다. 고인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자는 선승(善承)으며 호는 월봉(月峯)이다.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이었던 고거(高距)의 6세손이다. 60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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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0

    추담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추담(秋潭) 고유(高裕: 1722∼1779)의 문집 책판이다. 고유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개성이고 자는 순지(順之)이며 호는 추담(秋潭)이다.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한 뒤, 다음해 친시(親試) 제술과(製述科)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인재로 주목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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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1

    불구당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불구당(不求堂) 김왕(金迬: 1606∼1681)의 문집 책판이다. 김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이고 자는 여정(汝定)이며 호는 불구당(不求堂)이다. 1633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학유(學諭)와 전적(典籍)을 거쳐 직강(直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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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2

    이재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이재(頤齋) 조우인(曺友仁: 1561∼1625)의 문집 책판이다. 조우인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학가로,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여익(汝益)이며 호는 매호(梅湖) 또는 이재(頤齋)이다. 경상북도 예천 출신이다. 160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요직을 거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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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3

    산천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산천(山泉) 박주종(朴周鍾: 1813~1887)의 문집 책판이다. 박주종은 조선 후기 훌륭한 역사학자이자 청렴한 선비로, 본관은 함양이고 자는 문원(聞遠)이다. 18세에 경시(京試)에 급제하였으나, 문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관직에 등용되지는 못하였다. 항상 수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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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4

    매호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선 후기의 학자 매호(梅湖) 손덕승(孫德升)의 문집인 『매호문집(梅湖文集)』의 책판이다. 6권 3책이다. 서문·발문이 없어 편자 및 간행경위를 알 수 없다. 「서(書)」에서는 경전의 해석과 예학(禮學)에 관해 문답한 내용이 많으며, 「설(說)」의 「인요설(人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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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5

    청대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60)의 문집 책판이다. 권상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태중(台仲)이다. 경북 상주 근암리(近嵒里)에서 출생했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된 뒤, 예조좌랑․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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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6

    지남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지남(砥南) 김남일(金南一: 1635~1696)의 문집 책판이다. 김남일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선성(宣城)이고 자는 중백(重伯)이다. 외할아버지 권극해(權克諧)에게 수학하여, 1677년(숙종 3) 향천(鄕薦)으로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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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7

    노주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 1637~1702)의 문집 책판이다. 김태일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예안이고 자는 추백(秋伯)이다. 외할아버지인 권극해(權克諧)에게 수학하여,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사예와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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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8

    단계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단계(檀溪) 김해일(金海一: 1640∼1691)의 문집 책판이다. 김해일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선성(宣城)이며 자는 종백(宗伯)이고, 호는 단계 또는 단곡(檀谷)이다.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63년 선교랑(宣敎郎)의 신분으로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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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79

    학고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학고(鶴皐) 김리만(金履萬, 1683~1758)의 문집 책판이다. 김리만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예안이고 자는 중수(仲綏)이다. 단계(檀溪) 김해일(金海一)의 아들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增廣試) 병과에 급제하고, 통덕랑(通德郞)과 병조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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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0

    점리와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점리와(點离窩) 안도징(安道徵 ; 1616∼1678)의 문집 책판이다. 안도징은 조선 중기 학자로,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태화(泰和)이다. 안도징은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퇴계 이황의 학식과 품덕을 사숙하였다. 일찍부터 과거를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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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1

    삼암선생유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삼암(參巖) 권희인(權希仁: 1558~1593)의 문집 책판이다. 권희인은 조선 중기 문덕을 갖춘 무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사안(士安)이며, 권언균(權彦均)의 아들이다. 19세에 서애(西厓) 류성룡(柳聖龍)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는데, 류성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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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2

    별동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별동(別洞) 윤상(尹祥: 1373∼1455)의 문집 책판이다. 윤상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예천이고 자는 실부(實夫)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인 조용(趙庸)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사예가 되었다. 사성을 거쳐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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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3

    별동선생속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별동(別洞) 윤상(尹祥: 1373∼1455)의 속집(續集) 책판이다. 속집이란 문집이 편찬된 뒤 다시 수집한 원고를 모아 편찬한 것이다. 윤상은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향리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도 공부에 전념했다. 관청에서 남는 솔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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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4

    옥계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옥계(玉溪) 김명흠(金命欽, 1696~1773)의 문집 책판이다. 총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첫머리에는 권상익(權相翊)의 서문이 있다. 권1에는 시(詩) 12수, 서(書) 12편, 제문(祭文) 3편, 기(記) 1편, 서(序) 1편이 실려 있다. 권2는 부록으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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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5

    모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모암(茅庵) 장진(張瑱: 1635∼1707)의 문집 책판이다. 장진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군옥(君玉)이고, 적개공신(敵愾功臣) 장말손(張末孫)의 6대손이다. 31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의 직책에 임명되었다. 그 뒤 찰방과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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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6

    구사당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 1708∼1766)의 문집 책판이다. 김낙행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간부(艮夫)이다. 이재(李裁)의 문인으로 1735년(영조 11) 향시에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하였다. 『구사당선생문집』은 원집 9권과 속집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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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7

    약포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약포(藥圃) 정탁(鄭琢 : 1526∼1605)의 문집 책판이다. 정탁은 조선 중기 유명한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자정(子精)이고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저자의 유문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유실되었고 집안에 보관되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756년(영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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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8

    약포선생속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의 문집 속편의 책판이다. 1760년에 정옥(鄭玉)이 황해도 해주에서 『약포선생문집』을 간행한 뒤, 후손 정광익(鄭光翊)이 원집에서 누락된 유문을 수집하고 정필규(鄭必奎)가 편차하여 속집(續集)을 발간하였다. 정필규의 발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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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89

    노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노암(魯庵) 정필규(鄭必奎:1760∼1831)의 문집 책판이다. 정필규는 자가 명응(明應)이고 본관은 청주이며, 예천에서 살았다. 이 책은 김대진(金岱鎭) 등이 편집하고, 1886년(고종 23) 그의 문인인 정창덕(鄭昌德) 등이 간행하였다. 정필규는 1789년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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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0

    팔우헌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팔우헌(八友軒) 조보양(趙普陽, 1709~788)의 문집 책판이다. 조보양은 본관이 한양(漢陽),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이다. 이경익(李景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당시 학자로 명성이 높던 권상일(權相一)에게 학식을 인정받았다. 1747년(영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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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1

    투식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광곽, 판심, 계선 등의 편집 형식이 갖추어진 투식판(套式版)이다. 투식판은 줄이 그어진 공책을 찍어내는 인쇄틀이라 할 수 있다. 이 투식판으로 필사할 용지를 필요한 만큼 찍어내고, 그 용지에 기입할 내용을 정성들여 쓴다. 이것을 판서본(板書本)이라고 하고, 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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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2

    추원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개성고씨 월봉종택에서 기탁한 사당 현판이다. ‘추원’이란 먼 선조의 덕을 기리며 추모한다는 의미로, 추원사는 개성고씨 녹문종택 선조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었다. 개성고씨 월봉종택은, 월봉(月峯) 고인계(高仁繼: 1564∼1647), 추담(秋潭) 고유(高裕: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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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3

    도남정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경주손씨 안락당파 종택에 게시되어 있던 현판이다. 정사(精舍)란 지방의 소규모 교육 기관인 서당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이 현판의 ‘도남(禱南)’이라는 명칭은 ‘궁도남교(躬禱南郊)’라는 말에서 따온 것 같다. 임금이 몸소 남쪽 교외에 가서 천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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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4

    도은구택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도은 (陶隱) 강각(姜恪: 1620~1657)의 집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강각은 자가 경오(敬吾)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굴욕적으로 항복하자, 강각은 경북 봉화 법전 양촌에 이 집을 짓고 은거하며 절의를 지켰다. 강각의 친형 잠은(潛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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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5

    담상판각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영주 희연당 안협댁(安峽宅)에서 기탁한 현판이다. ‘판각(板閣)’이란 장판각(藏板閣)의 줄임말로, 집안의 목판을 보관하는 장소를 뜻한다. 이 글씨는 강벽원(姜璧元: 1859∼1941)이 쓴 것이다. 강벽원은 조선 후기 이름난 서예가로서, 경북 영주군 두서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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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6

    무릉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눌헌(訥軒) 이응(李應: 1536~597)이 지은 정자의 이름을 쓴 현판이다. 이응은 안동 상류 절강(浙江) 도수곡(桃樹谷)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무릉정(武陵亭)’이라고 지었다. 이곳에서 이응은 매촌(梅村) 이유(李愈: 1521~1593), 율리(栗里) 이희(李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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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7

    원모루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영양남씨(英陽南氏) 남흥재사(南興齋舍)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남흥재사는 현재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남흥사라는 사찰의 법당 건물이었는데, 개조하여 재사로 만들었다 한다. 고려 말 전리판서를 지낸 남휘주와 참판 남민생 부자의 분묘를 관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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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298

    관서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오계서원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오계서원은 1570년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안동시 녹전면에 세운 것이다. 원래 이름은 오계정사였는데,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가 이덕홍의 큰아들 선오당 이시(李蒔)가 오계서당으로 재건하였다. 그 후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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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계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에 위치한 용계서원(龍溪書院)의 현판이다. 용계서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 선생을 배향한 서원이다. 정조2년(1778) 김언기의 문인과 후손들이 보덕사(報德祠)를 세워 선생을 배향했는데, 뒤에 제자들이 선생의 고결한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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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암(대원군필)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경북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위치한 근암고택(近庵古宅)의 현판 글씨이다. 근암고택은 조선조 철종 때 학자인 근암(近庵) 류치덕(柳致德, 1823~1881)이 1870년 건축한 집이다. 원래는 안동시 임동면 한들에 있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것이 우려되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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