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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륜(朴濟輪)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예천군수 부임. 목조2층 군청사 건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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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망(羅智網)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예천군수 부임. 농상장려(農桑獎勵), 보리재배 적극 권장 (보리군수로 불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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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팔원(金八元)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선정을 베품. 애민이셩 부용형벌(愛民以誠 不用刑罰) 호는 지산(芝山) 효자였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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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李 愈)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예천수성장(醴泉守城將)으로서 의병을 이끌고 진중(陣中)에서 순국(殉國) 『축산승람(竺山勝覽)』에 기록이 전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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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영(柳 泳)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용궁향교(龍宮鄕校) 재건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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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립(洪 雴)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거사비(去思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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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李 獎)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용궁향교 경내(境內)에 세심루(洗心樓)를 세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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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준(任 濬)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거사비(去思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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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징(李翼徵)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거사비(去思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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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식(李馨植)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용궁향교 명륜당(明倫堂) 재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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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규(韓宗揆)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사창(司倉) 건립,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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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식(鄭 湜)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가사「축산별곡(竺山別曲)」을 지음. 송강 정철의 고손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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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기(朴弼基)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선정을 베풀고 명관중의 명관으로 칭송 받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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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질(李思質)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임청각(臨淸閣)을 건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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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풍(金啓灃)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용궁현읍지(龍宮縣邑誌)』를 간행. 규장각(奎章閣)에 보관되어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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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묵(成敎黙)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학문을 일으켜 흥학거사비(興學去思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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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수(李胤秀)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관아(官衙)가 침수되어 읍부리로 이건, 구폐선정비(救弊善政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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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영(鄭基永)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거사비(去思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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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영(李喬榮)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불망비(不忘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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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교목(柳敎睦)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봉록(俸祿)으로 척화비(斥和碑)를 건립, 작대청(作隊廳), 일근당(一勤堂)을 건립.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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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규(韓鎭奎)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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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金勝圭)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선정비(善政碑)인 청간비(淸簡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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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柳台衡)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애맨선정비(愛民善政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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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윤(李晩胤)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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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량(鄭寅亮)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문화진흥(文化振興), 농상장려(農桑獎勵)의 선정으로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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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李周儀)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용군군(龍宮郡)이 되고 현감(縣監)에서 군수(郡守)로 변경 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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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직(權秉稷)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음 《용궁십면도(龍宮十面圖)》가 남아 전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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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金相一)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 2기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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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환(張龍煥)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용궁현 현감 부임. 향교(鄕校)와 교토(校土)를 정비, 학문권장, 선정비(善政碑)가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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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지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문경읍 상리의 문경서중학교 안에 위치한 이 건물은 출장간 관리, 외국 사신 등이 숙소로 쓰거나 임금께 예를 올리던 조선시대 객사 건물로 전한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1990년 보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서 1648년(인조 26)과 1735(영조 1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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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천산정은 동로면 간송1리 옛 천주사(天柱寺) 자리에 1904년 소산거사(小山居士) 황범주(黃範周)가 세웠다. 황범주는 호가 소산거사이며 본관은 장수(長水)로 칠봉(七峯) 황시간(黃時幹)의 후손이다. 그는 정자를 짓는 의의를 “경신년(庚申年)에 조부의 묘소를 백운동(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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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문경 조령(鳥嶺)의 가장 앞에 위치한 제1관문이다. 2, 3관문이 있는 곳에 비하여 계곡부가 비교적 넓은 편이고, 성문 안쪽은 특히 넓고 평평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도 일반인이 거주하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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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문경 조령의 마지막 관문인 제3관문이다. 조령관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해 건립한 관문으로, 선조 때에 조성한 후 1708년(숙종 34년)에 중창하였으나, 1907년 항일 의병전 때 일제가 소각하였고 1976년에 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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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남쪽에서 오는 적을 막기 위해 1594년에 신충원이 가장 먼저 축조한 것을 임란 직후 개축하였으며, 1907년에 일본군이 항일 의병장인 운강 이강년과 전투를 할 때 소각한 것을 197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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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새재 1관문과 2관문 사이의 절경지인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이 있는 용추(龍湫)와 새재(鳥嶺) 옛길 앞에 자리하며, 조선시대 경상감사가 왕명을 받들어 한양을 출발해 경기,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 땅으로 오게 되는데 경상감사가 이곳 교귀정에 당도하면 신구 경상감사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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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문경향교는 문경 읍내를 북쪽으로 벗어나 문경고등학교를 옆으로 돌아 조금 떨어진 곳의 경사가 심한 산자락에 주흘산을 배경으로 하여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언덕 높은 곳에 위치하므로 한눈에 문경 읍내를 바라볼 수 있으며, 앞으로는 신북천(身北川)이 흐르고 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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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산북(山北)에서 경천댐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산수정이 소재한 내화리(內化里) 마을이 나온다. 산수정은 마을 뒤쪽을 감아 도는 산줄기와 그 아래를 흐르는 작은 시내를 굽어보며 앉아 있다. 이 정자는 효종조(孝宗朝)에 사고(槎皐) 권극해(權克諧)가 창건하여 외손자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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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산북면 서중리(書中里)에 소재한 정자로 채익하(蔡翊夏)를 추모하기 위해 1900년대에 후손이 세워 현재까지 인천채씨(仁川蔡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이곳은 원래 채익하(蔡翊夏)가 제영을 붙이고 즐겨 유상한 곳이었다. 채익하의 호는 주암(舟巖)이며, 성균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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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김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선성김씨종택은 내화리 입향조인 김단(1610~1680)의 장인인 권극해(權克諧)가 세운 것이라 전한다. 사랑채는 약간 개보수를 하였으나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안채는 김단의 5대 주손(胄孫) 낙룡(樂龍: 호 慕菴, 1790~1870)이 만년에 개축하였다. 종택 가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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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황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곳은 장수황씨 사정공파 후손들이 500년 이상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곧 명재상 황희의 후손으로 황희 정승이 사용하던 벼루, 갓끈, 문진도 이 집안에서 보존해왔다. 황희의 고조부(장수황씨 중시조)는 전북 장수 사람이고, 황희는 개성과 한양을 기반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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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근암서원은 산양면 서중리에 있는 문경 지역 최초의 서원으로 홍언충(洪彦忠), 이덕형(李德馨), 김홍민(金弘敏), 홍여하(洪汝河), 이구(李구), 이만부(李萬敷), 권상일(權相一)의 7현(賢)을 배향한 서원이다. 1544년(중종 39)에 근암서당으로 창건되어 1669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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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석문정(石門亭)은 근품재(近品齋) 채헌(蔡헌)이 만년의 풍월을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다. 채헌(숙종41년,1715~정조19년,1795)은 자는 계징(季澄), 호는 근품재(近品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영조 29년(1753)에 생원(生員)시에 급제하였으나 이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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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고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산양면 녹문리에 위치한다. 녹문리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진사(進士) 고성겸(高聖謙)이란 인물이 있어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그의 문하생들이 스승의 호를 따서 마을을 녹문(鹿門)이라 부르던 것이 현재까지 마을 이름으로 전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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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숙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가옥은 고몽익(高夢翊, 1780~1851)이 산양면 녹문리에 이주하면서 1828년(순조 28)에 건축하였다. 고몽익은 사예 고인계(司藝 高仁繼)의 6대손 고보(高補)의 여섯 아들 중 넷째로 그의 종반이 이 무렵부터 녹문리에 살게 되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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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산양면 반곡리(盤谷里) 영강가에 있다. 1574년(선조 7)에 처음 산양면 현리(縣里)에 세웠다. 백담 구봉령이 여기를 지나다 며칠을 유숙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러 선비가 청을 하여 존성당(尊性堂)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당하면서 전소되고 말았다. 그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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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반곡리(盤谷里)에서 영순면 포내리(浦內里)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으며, 상당히 지대가 높은데도 야트막한 능선이 둘러싸고 있어 주변에 높은 산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정경이 평온하다. 서당 앞 관리 주택 외에는 주변에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위치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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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산양면(山陽面) 봉정리(鳳亭里)에 있는 정자로 금수옹(錦繡翁) 노병국(盧秉國)을 위하여 장손인 희철(熙哲)이 1936년 세우고 봉정리 광산노씨(光山盧氏) 문중에서 현재까지 관리해오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노병국은 문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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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변동식 가옥이 있는 진정리(辰井里) 마을에서 송죽리(松竹里) 쪽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야트막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죽헌이 보인다. 병조참의(兵曹參議) 여춘(余春)이 서식하던 곳에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여 1919년에 세운 정자이다. 여춘의 호인 죽헌(竹軒)으로 정자의 이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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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곳은 엄흥도(嚴興道)와 관련된 유적이다. 엄흥도는 영월(寧越)의 호장으로 당시 영월에 유배 중이던 노산군(魯山君: 단종)이 시해되자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낸 인물이다. 17세기 중반 이후 여말(麗末)의 충신, 사육신(死六臣) 등 충효에 대한 재평가와 대대적인 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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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엄흥도를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산양면 위만리(渭滿里)에 있는 상의재 건너편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00년 의산서원(義山書院) 자리에 상의재를 건립하면서 또한 별묘를 지어 위패를 봉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충절사이다. 평면은 전면의 반 칸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