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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石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봄날에 李夢擧 형과 함께 眞安의 水晶寺에 유람을 갔는데 그곳에는 예로부터 무늬 있는 돌이 많기 때문이다. 돌무더기 많은 곳에 가 瑪瑙石 한 개를 찾았는데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났고 한 척 넓이에 森羅萬象이 들어있는 듯하였다. 즉 무늬 있는 돌에 대한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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昇姪去橫城時贈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사물이란 변화를 겪지 않으면 재목이 되지 못하고, 인간이란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지 못하다. 그 재질에 따라서 그 지혜를 더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조카 昇이 강원도 橫城으로 갈 때 훈계 삼아서 한 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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恥窩徐公修稧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恥窩 徐錫祐는 영남의 명망 있는 명문가로 대대로 대구에 살았다. 지금은 강원도 횡성에서 독서와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다. 그가 세상을 타계한 후 그와 교분을 맺은 사람들이 교분을 맺은 글을 엮어서 기념하고자 하였다. 조카인 昇熙와 達熙가 그와 교분을 맺었기에 서문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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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寧隱老人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寧山은 渭水의 남쪽에 있다. 이 산에 사는 寧隱노인은 나이 70을 바라본다. 산 속에 몇 칸 집을 짓고서 집을 寧隱이라고 하였는데 寧山의 편안함을 독차지하고자 함이다. 산도 편안하고 사람도 편안하니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가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얻은 시문 수 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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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嶺草堂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鵝岐山 북쪽 馬嶺村의 남쪽에 한 草堂이 있는데 나의 9대조이신 萬嶺 益徽公께서 사시던 곳이다. 지금 기둥과 지붕이 무너져 바람도 가리지 못하여 다시 重修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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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樹軒楠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나의 친척으로 할아버지뻘인 花樹公께서 세운 집이다. 지금은 후손인 基泰가 重修하는 일을 주관하면서 1937년에 인부와 자재를 모아서 다시 지었다. 기태는 참으로 조상의 뜻을 잘 잇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집이 완성된 이듬해(1938) 6월 보름에 璋植이 삼가 지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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峨眉山楠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마을 남쪽에 녹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둘레가 여섯 일곱 아름드리이고 높이가 거의 100여 척인데 어느 시대에 어느 사람이 심었는지 모른다. 여름에는 그늘이 져 길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고 문인과 시인들도 이곳에서 한가로이 글을 짓기도 한다. 이 나무를 정자라고 부름은 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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滄浪答門小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창랑답문」은 나의 고조부 好古窩 徽文(1773~1827)이 지었다. 日月星辰에서 만물이 생겨난 근원과 人心과 體用의 오묘함에 대하여 철저하게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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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藏渾天儀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혼천의는 나의 고조부 好古窩 徽文이 만들어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였다. 어찌 존경스럽지 않은가? 증조부 守齋 致喬公이 도산서원에 보관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해에 집에 보관하였다. 1936년 8월 16일에 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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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明續綱目後小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皇明續綱目」은 고조부께서 편찬하신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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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禮抄略小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禮가 너무 많으므로 冠婚喪祭 四禮가운데서 뽑아 한 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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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善稧帖小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從祖母인 鄭氏는 효도와 貞節이 있는데도 나라의 표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感善稧帖」을 짓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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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慕齋稧帖後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樂琴堂 南公의 행적은 상세하지 않다. 그런데 몇 해 전에 그의 아들인 錫玄과 사귀다 보니 학문이 뛰어난 사람임을 알았으므로 「경모재계첩」을 만들어 외람되게 글을 짓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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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夫人金氏實記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禹氏에게 시집간 부인 金氏의 훌륭한 절개와 아름다운 행실은 이미 여러 군자들이 상세히 말하여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지만 史官이 채취를 할까 기대하면서 이 글을 짓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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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征日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一初·權文擧와 함께 1927년 8월 11일에 출발하여 경주 일대를 구경한 遊覽記이다. 15일 周王山에 도착. 27일 玉山書院하고 오후에 瞻星臺, 石氷庫, 雁鴨地, 鮑石亭, 芬皇寺를 구경함. 29일에 陳列館에 들어갔다. 黃金冠, 磁器, 陶器, 石劍 등을 관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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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行日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고조부가 저술한 「滄浪答問」을 간행하기 위해서 서울 光文會를 갔다 온 일정을 적은 글이다. 1912년 4월 3일에 尙州 도착. 4일 金烏山을 보고, 吉再선생의 유적지를 봄. 金泉에 도착하니 화물차와 洋屋집이 많음. 5일 아침 9시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김천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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橫竪說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말 그대로 자신의 일생을 간략히 기술한 횡설수설이다. 60평생에 이룬 것 없이 세월만 흘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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幞坡墳庵重建時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참으로 사물의 興廢에는 운수가 있다. 1934년 12월 그믐에 온 집안에서 중수하기로 합의를 하여 이듬해인 1935년 봄에 공사를 끝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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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嶺祈雨壇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여름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지를 않아 모든 곡식의 싹이 말라죽어 백성들이 하늘을 보고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니 비를 내려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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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谷陂澤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농사짓는 마을에 물이 마르고 계곡이 말라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이 살아 갈 수 없다. 林谷에 저수지를 만드니 저수지가 마르지 않기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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洑神祈雨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洑神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기원하는 祝文이다. 洑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洑神은 보를 관장하는 神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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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五代祖考通德郞府君墓安石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5대조 通德郞의 묘소에 床石을 안치시킨 告由文이다. 告由文이란 큰일을 치른 뒤에 그 까닭을 사당이나 神明에게 알리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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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祖妣恭人漢陽趙氏墓安石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5대조 할머니인 恭人 漢陽 趙氏의 묘소에 상석을 안치시키고 올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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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高祖考素隱先生墓安石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큰 고조부인 素隱 柳炳文(1766~1826)선생 묘소에 상석을 안치시키고 올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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訥谷外先塋安石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訥谷의 先塋에 상석을 안치시키고 올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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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大埜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大埜 柳健休에게 올리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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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大夫廣林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인 廣林公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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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西坡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西坡 柳必永에게 올리는 제문으로 선친의 유고를 보전할 수 있었음은 선생의 힘이 아님이 없다고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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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大祥時)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大祥 때 西坡 柳必永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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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芙溪族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형인 芙溪 柳東秀(1862~1925)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經典과 역사서를 차근차근히 잘 가르쳐 주었고 의심나는 곳은 쉽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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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雅湖金丈(儁相)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雅湖 金儁相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그대는 참으로 古人이다. 고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소박하고 진실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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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木溪權戚丈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어른인 木溪 權某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金玉같은 아름다움으로 집안 교육을 잘 받았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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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兄處士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저자의 친형인 처사공 慶植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옛 일을 생각하면 엊그제 같은데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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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姑氏鄭孺人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고모 鄭孺人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돌아가셨는데도 직접 靈前앞에 가서 곡하지 못하여 더욱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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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誠菴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誠菴 兄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타고난 품성이 순박하고 진실하여 곤궁하게 살았어도 지조를 잃지 않았고 나이 들어 더욱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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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戚丈(鍾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李鍾萬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총명하고 건강하여 나이 아흔까지 살았으니 과연 仁者의 증거가 될 만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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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晩山宗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종가집의 형인 晩山 昌植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하늘이 형에게 뛰어난 자질을 내린 것은 어찌 우연이겠는가? 우리 집안을 일으키라고 한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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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琴下族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형인 琴下 晦植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형은 지식이 해박하고 견해가 정밀하고 행동이 고결하다. 형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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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上舍族叔淵博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上舍로 집안 삼촌뻘인 淵博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上舍는 生員試나 進士試에 합격한 사람을 말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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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汎菴族叔(淵楫)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집안 삼촌뻘인 汎菴 淵楫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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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水西族叔(淵根)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집안 삼촌뻘인 水西 淵根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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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臥松族祖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집안 할아버지뻘인 臥松 廣鎬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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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東山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東山 寅植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민족을 구제할 뜻이 있었는데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였다. 나라의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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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允五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李允五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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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善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金善應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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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君耳亨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耳亨 柳鼎熙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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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碧坡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碧坡 金希洛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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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故室孺人金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작고한 부인 孺人 金氏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부인은 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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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士文丈(濟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士文 金濟秉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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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恬庵族叔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으로 삼촌뻘인 恬庵 柳淵龜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