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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南槐西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南槐西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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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瓠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匏山 鄭建模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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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伯元(承春)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으로 삼촌뻘인 伯元 承春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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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孟彬(周煥)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孟彬 金周煥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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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舜汝(孝淵)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으로 삼촌뻘인 舜汝 柳孝淵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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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國才戚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형인 趙國才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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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見卿(淵鱗)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삼촌뻘인 見卿 淵鱗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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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佐兼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李佐兼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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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文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李文克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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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顯五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金顯五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49911
祭李夢擧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李夢擧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49912
祭權子欽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權子欽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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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德夫(淵必)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삼촌뻘인 德夫 柳淵必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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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彛民(淵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척 삼촌뻘인 彛民 柳淵秉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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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翼八(建宇)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翼八 建宇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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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建卿(東元)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建卿 東元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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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聖居(運熙)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聖居 運熙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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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友克(東寓)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友克 東寓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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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祖汝明(昱欽)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재종조인 汝明 昱欽에게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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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金公燮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친구인 金公燮의 죽음을 애도하는 誄文이다. 5대조 通德郞의 묘소에 床石을 안치시킨 告由文이다. 告由文이란 큰일을 치른 뒤에 그 까닭을 사당이나 神明에게 알리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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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王考處士府君壙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親祖父인 斗鎭(1816~1884)의 壙誌銘이다. 壙誌銘은 죽은 사람의 성명·생몰년·행적 등을 기록한 글이다. 돌이나 사기 그릇 등에 새겨 무덤 속에 묻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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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堂叔父處士公壙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親堂叔인 處士公 錫洛(1830~1899)의 광지명으로 字는 文汝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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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室孺人義城金氏壙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저자의 부인인 義城 金氏(1868~1943)의 광지명이다. 56년을 함께 살았는데 한 번도 드세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지금 먼 세상으로 갔지만 편히 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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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夫人漢陽趙氏壙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저자의 양어머니인 漢陽 趙氏(1826~1882)의 壙記이다. 광기 역시 광지명과 동일한 형식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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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先府君壙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저자의 친아버지인 淵溥(1840~1897)의 壙記로 1929년에 지었다. 부친은 타고난 성품이 인자하고 선량하였다. 시속에 따르지 않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자신의 주장을 세우지 않고 곤란한 입장에 처해서는 항상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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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先妣孺人慶州鄭氏壙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저자의 친어머니인 慶州 鄭氏(1842~1905)의 壙記이다. 한 평생 비단 옷을 입지 않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자식들을 위해 살았다고 하면서 1930년 정월에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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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從祖考處士府君墓表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親從祖父인 處士公 漢鎭(1807~1860)의 墓表이다. 즉 친할아버지인 斗鎭의 형님이다. 돌아가신 지 80여 년이 되었다. 저술은 별로 없고 다만 淸凉山에 유람 갔다가 지은 시 10여 수가 전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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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季從祖妣孺人淸州鄭氏孝烈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1944년 2월에 璋植이 지었다. 季從祖父 부인인 孺人 淸州 鄭氏(1824~1857)의 효행과 정절에 대한 기록이다. 계종조부 泗鎭(친할아버지 斗鎭의 동생)에게 21살에 시집왔다. 1852년에 남편 사진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도 곧 세상을 하직하였다는 등의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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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양아버지의 이름은 達洙(1829~1884), 자는 學淵이다. 풍채가 좋고 성품이 순수하고 올곧았다. 언행은 신중하였으며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친구들에게는 한결같이 信義로 대하였다. 자식이 없어 공이 5살 때 입후되었다. 어린 공을 무릎 위에 앉히고 글자를 자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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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兄處士公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동생을 아는 데는 형만한 사람이 없고, 형을 아는데는 동생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나처럼 우둔한 사람이 감히 형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형의 학식과 덕망을 칭송하였다. 형 慶植(1867~1930)의 자는 善伯으로 3남 2녀를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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芙溪柳公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이름은 東秀(1862~1925), 자는 德實, 호는 芙溪이다. 1877년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 항상 말하기를 나의 학문 성취는 어머니 덕분이 다고 하였다. 1896년 閔妃가 시해되어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을 때 부계 선생도 여러 달 동안 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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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성은 柳氏, 이름은 璋植(1875~1949), 字는 圭範, 호는 可林·癡廬, 본관은 全州이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를 지냈던 檜軒 義孫(1398~1450)의 후손이다. 또 학문이 뛰어난 好古窩 徽文(1773~1827)의 玄孫이다. 5세에 양자로 들어갔으며 8세에 어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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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저자인 유장식의 일생을 서술한 행장으로 裴東煥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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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덕이 있고 겸허하며 성실하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노력하며 조상의 업적을 밝혔다. 可林處士 유장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작고한 지 24년 뒤에 아들인 秉熙가 글을 부탁함으로 쓴다고 하였는데 1972년에 南炳基가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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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述志錄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술지록」은 유장식이 지은 것으로, 제사지낸 날짜, 기타 어떤 일을 할 때의 구체적인 상황과 날짜를 적어 뒷날의 참고자료가 되게끔 만든 것이다. 그의 뜻이 가상하므로 이 글을 적는다. 1965년 中植 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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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林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可林은 圭範 유장식이 馬嶺의 동쪽 언덕에 살면서 자신이 독서하던 곳을 일컫는 명칭이다. 독서하고 밭 갈면서 부귀를 뜬구름처럼 보고 유유자적하게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匏山 鄭建模가 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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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林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나의 친구 圭範 유장식이 말하기를 “내가 사는 마을이 可林인데 친구들이 마을 이름으로 나의 호를 가림이라고 하였다. 이름이야 아름답기는 하지만 내가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사는 집을 ‘可林齋’라고 부를 것이다. 그대가 記를 지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친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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癡廬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유장식의 또 다른 호가 癡廬인데 친구 宋冑煥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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癡廬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얼마 전에 나의 친구인 유장식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나의 일생을 돌아보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러므로 내가 살던 집에 癡자를 붙여 이름을 짓는다. 그대가 記를 지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공자께서도 나라에 道가 없으면 어리석은 체 한다고 하였는데 유장식의 어리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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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石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眞安의 水淨寺 계곡에는 예로부터 기이한 무늬가 있는 돌이 많았다. 나의 친족인 규범 유장식이 이곳을 지나다가 계곡에서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을 구하여 文章石이라 불렀으며 돌에 대해 시도 짓고 序도 지었다. 한 척에 불과한 돌에 森羅萬象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앉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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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식이 문집은 아버지 可林 유장식이 남긴 글이다. 아버지는 오직 집안의 학문을 계승함을 임무로 여겼으며 평소에 저술함을 즐기지 않았다. 다만 山水를 읊은 약간의 시와 친구 간에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선조와 관련된 글 몇 편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없어지게 됨이 애석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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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가재집(可齋集) 조선 후기의 학자 可齋 權明佑의 文集. 4권 2책 權明佑의 後孫인 權五達이 집안에 전해 오던 것을 모아 편집하여 제가들의 교감을 받아 두었던 것을, 다시 교정을 더하여 石版本으로 간행한 것이다. 책머리에 李準英의 序文이 있고, 책 끝에는 權五寅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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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敬次季父樹谷公韻(幷小序)(1762), 又自占別韻, 次李仲謙(萬益)壽席韻(二首), 西笑日安訥甫(敏修)病裏贈別祝我點額卒困而歸遂次其韻(四絶), 敬次家大人霽谷八景韻(1765), 輓金九思堂(樂行)(1767), 次裵汝賢(維喆)留別除夕韻(1768), 輓金仲孺(景潝)(三首), 次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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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樊巖蔡相公(濟恭)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영남 유생들의 上疏가 받아들여지고 난 뒤 聖恩을 입은 감격과 부친의 문집 간행에 관한 일을 상의하고 있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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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大山(象靖)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저자는 지난날 선인의 遺集을 꼼꼼히 열람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교정하여 문집으로 간행하려 했지만 이제야 겨우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니 많은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아울러 이 書簡에는 서로의 {大學}의 "大學圖", "所厚者薄", "漫錄", "在心이 곧 性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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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孟熙(宗春)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저자와 柳宗春 간에 性理說의 異見인 "性之合"에 관한 부분과, "合虛"와 "氣"의 "有性之名"에 관한 부분을 書簡을 통해 서로 논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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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逸昇(鎭東)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진동 형이 올린 상소는 성상께서 수차례 거듭 읽었으니, 형의 정성은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가 없음을 감격해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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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疏廳諸友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상소의 일은 모두 제공들의 誠意로 聖上께 批答을 받았고 또한 명백히 다 일의 실정을 폭로하였다고 판단되니 각자의 심지를 굳게 하여 흔들리지 말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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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顯道)趙聖際(運道)趙聖紹(述道)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贈職의 은혜를 생각하니 느끼는 바가 있는데, 본인은 잔치에 말석으로 참석했다가 다만 안부만 여쭙고 돌아서니 모든 大事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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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聖紹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일전에 한 번 찾아가려고 해도 몸이 따르지 않더니, 이제 喪을 마치고 겨우 나서려 하지만 병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며, 아울러 先集을 고치려 깨끗이 한 본을 베껴 보내니 심사숙고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