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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文(道源)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보내준 편지를 읽고 답을 해야 되는데, 본인의 병이 너무 깊어져 늦어졌다. 최근에 조금 차도가 있어 4∼5일 후에는 한 번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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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訥甫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城 안에 돌림병이 들었는데, 이는 국가적 대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조정의 뜻을 모아 일을 처리해야하며, 한 사람의 독단으로 처리함은 불가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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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中立(道行)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城中의 모임에도 불구하고 병에 차도가 없이 그저 예산만 낭비함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선집의 편집에 의논할 내용이 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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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其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집안의 喪事는 人之常情이지만 형이 위문에 대한 감사와 자신은 지금 병 중에 있어 제대로 안부를 여쭙지 못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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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伯審(應度)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始祖의 廟齋와 事蹟을 모으는 일은 商燮의 수고로 많이 진행되었으며, 太師廟의 事蹟과 獻爵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논의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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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來鳳(韶)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商燮이 모아놓은 廟齋와 事蹟은 精力과 비용이 많이 소비되었지만 編帙이 너무 浩闊하고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어 집안의 어른들께 凡例와 기타 成帙에 관한 부분을 상의하고자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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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穉道(완)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지난날 선생이 撰한 狀草를 右丞相께서 열람하시고 손대지 못한 것을 본인이 직접 가감하여 송구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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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士初(爾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우리 집안사람들은 비록 소원하고 돈후한 풍속이 적지만 先大人의 遺集이 거의 모아졌으니 자주 왕래하며 질정하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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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爾鳳)權彛敍(東範)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부친의 遺稿를 정리하면서 凡例나 實記 年譜 등의 순서를 정하고 아직 미흡한 부분을 마저 정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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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洛淵會中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洛淵에서의 모임 중 南兄과 이군의 글짓기 솜씨에 대한 이야기와 본인의 평등에 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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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季善(馨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先大人의 문집 중 一齋선생의 門下에 출입한 부분과 "淵源之學" 네 글자의 異同에 관한 부분을 질정하고 있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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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仲進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일상적인 안부 인사와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염려가 주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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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器仲(載道)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玉川 先生에게 다시 벼슬이 내려지고 과거에 임하는 청이 받아들여졌으니, 이는 조금도 주저할 일이 아니며 備忘記를 갖추어 보전함이 옳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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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士鉉(台佐)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우리집안의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이 편지에 의지한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것과, 領府事의 집에 이 글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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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舍弟亘萬(尙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지난 편지에서 자신에게 충고해 주던 말을 기억할 것이며, 지금 산에서의 공부는 멈출 수가 없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尙佑도 讀書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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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亘萬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임금이 陵幸가는 도중 길을 막고 先祖의 故事를 아뢴 일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내용과 李台燮의 사람됨을 알리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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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孫兒琮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자신은 지금 腹部에 병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통증이 심하다는 것과, 떠나고 난 뒤에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당부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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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禮安豊基文(代士林作)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拙齋 柳元之(1598∼1674) 선생은 西涯 柳成龍의 嫡孫으로 家學을 이어 衣鉢을 전한 이로서 오로지 敬 공부에 전념하고 窮理를 실천한 분이니, 지금 祠堂을 다시 건립하여 받드는 것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謙庵 柳雲龍 선생까지 빛내는 일임을 闡明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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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各院文(栗園里社時代士林作)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栗園 李珙(1533~1612) 선생을 사당에 봉안하고 社享禮를 거행하고자 각 고을의 서원에 보낸 通文이다. 선생은 우리 고을의 百代之師여서 70∼80년 전부터 부로들이 봉사의 뜻을 비췄지만 이제야 겨우 奉安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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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近嵒書院文(代屛山士林作)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木齋 洪汝河(1621∼1678) 선생이 편찬한 {東史提綱}과 {麗史彙纂}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간행되지 않은 서적인데, 龍洲 趙絅 선생은 史家의 서적으로 극찬한 바 있다. 그러나 후손들에 의해 {東史提綱}은 판각 중에 있다고 하는데 {麗史彙纂}은 아직 편질로 완성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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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大學箚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大學}에서 의문나는 문구나 글자의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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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原道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韓愈는 [原道]를 통해 "博愛"를 仁이라 하고 "行宜"를 義라고 했는데, 이는 格物致知의 공부가 엄정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 편의 원래 의도는 학문을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老佛을 배척하기 위해 쓴 것이므로 그리 심하게 논박할 바는 못된다. 老佛을 배척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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栗谷書記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壬子年 초여름, 避病을 위해 安氏 집에 갔을 때 {栗谷集}을 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208항목 남짓 理氣를 논한 부분이 있었는데, 율곡의 理氣論은 太極과 陰陽의 원리를 너무 한쪽으로만 파악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낳게 되었으며, 그 중 주요한 것만 條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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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韓久庵四七說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久庵 韓百謙(1552∼1615)은 그의 文集 가운데에서 "形氣의 發이 七情이며, 義理의 發이 四端이다. 즉, 四端은 道心을 七情을 人心을 가리킨다."라 하였다. 이 말은 흡사 朱子와 退溪의 理發 氣發說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七情 이외에 별도의 四端을 두게 되는 격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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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辟卦相去疎數辨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宋代의 학자 邵康節은 易의 64卦 중 陽儀는 12번째 괘인 벽卦를 1년 12월의 主로 삼았다. 陰儀도 마찬가지로 臨에서 구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명하였는데, 처음 시작하는 復괘에서 臨괘까지의 간격 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저자는 이 문제를 先天圖의 규획원리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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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十四卦節氣分配辨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64괘에 의해 1년의 24절기를 나누면 四立 二分 二至가 節이 되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각각의 干支가 氣가 된다. 그래서 曆書에 따르면 24절기 내에는 각각의 節氣 사이에는 공통적인 법칙이 존재하며, 일정한 간격이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저자는 이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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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陽進退成卦辨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원도에 따르면 陽儀와 陰儀는 각각의 卦數를 가지며, 이 두 儀가 四象이 되고 四象이 八卦가 되어 動靜으로 서로 因하게 된다. 그래서 一奇一耕하는 가운데 두 氣가 서로 消滅 生長하는데, 이런 원리로 陰陽의 진퇴와 변화가 생기며 그 결과 다른 氣가 생성된다고 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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姤復二卦皆從下起辨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易에서 이 두 卦는 動處에서 陽, 靜處에서 陰이 된다. 그래서 자고로 陰陽을 논하는 자들은 陽은 地에서 陰은 天에서 생긴다고 하면서 각각은 互根이 된다고 했다. 저자는 圓圖卦象을 통해 이 두 괘의 변화는 下를 따른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陰陽의 昇降에 불합리한 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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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巖權公(希仁)訟寃文(177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본손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저자의 6代祖 權希仁은 壬亂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하였다. 그러나 다른 名士나 逸士들은 모두 事蹟이 드러나 이름이 알려졌는데, 유독 公의 6代祖 만은 200여 년 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권공은 임란 당시 鄕吏의 일개 武夫로 沃川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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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省齋孫公手藁後跋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乙酉年 가을 저자가 臨淸閣을 지나다가 우연히 閣主인 山甫로부터 孫公의 手迹을 보게 되고, 그 내력을 알게 되어서 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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謾錄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이 글은 저자가 당시의 숨은 일화나 평소의 생활 등을 기록한 것으로 1.丙午年 겨울 孟熙甫와의 養氣에 관해 논한 것. 2.孟熙와 趙聖紹와의 性理에 관한 논변. 3.戊申年 京師에 있을 때 江東人 洪生과 더불어 西路의 風俗에 관해 이야기하던 것. 4.己酉年 겨울에 李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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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나는 일생 담장 두를 공간을 가지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無齋"로 이름하였다. 그러다가 庚戌年 가을에 우연히 병을 얻었는데 겨울이 되자 더 심해졌다. 어느 날 꿈에 한 偉人이 나타나 孔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신대로 살기를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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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梅窩權公(士악)實記後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梅窩 權公은 임란 때 永川에서 權應銖 장군을 도와 東南의 요충지를 방어한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사적이 민멸되었다. 그러던 중 梅窩公의 5대손 爾福氏가 찾아와, 李衛率의 行狀과 小山公의 銘文과 더불어 나에게 後記를 부탁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문중에서 竹林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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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竹書院籠巖金先生奉安時告由文(179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朝鮮 初 宗系辨誣의 功이 있는 籠巖 金湊(?∼1404)의 位牌를 안동의 孤竹書院에 봉안할 때 올린 고유문으로 본손을 대신하여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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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林權公立社時告墓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壬亂 때에 六賢에 버금갈만한 赫赫한 공을 세우고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竹林 權士악의 新主를 祠堂에 봉안하고 告墓할 때 지은 글로 본손을 대신하여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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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川里社謙庵柳先生奉安時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일찍부터 退溪 李滉을 쫓아 陶山의 제일 高弟로 추숭되었던 謙庵 柳雲龍(1539∼1601)을 모신 풍기군 화천리 愚谷書院의 享祀 때, 社享禮를 실시하고 신주를 봉안할 때 지은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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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溪里社方潭權公奉安時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朝鮮 조의 文臣이자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권강을 雲溪里 사당에 모시고 享祀 때 社享禮를 행하고 新主를 봉안할 때 지은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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豊巖里社栗園李公奉安時告由文(178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임란 때 의병장 金垓를 도운 공이 있는 栗園 李珙(1533∼1612)를 모신 풍암리 豊巖祠에 社享禮를 행하고 공의 新主를 봉안할 때 지은 告由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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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山李先生改立石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조선 후기 禮學에 정통했던 孤山 李惟樟(1625∼1701)의 碑石을 새로 건립하며, 공의 덕이 언제나 영원하기를 바라며 지은 告由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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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懶拙齋李先生文(179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一生을 簞瓢陋巷에도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던, 30년 知己 懶拙齋 李公을 애도하는 제문으로 유생들을 대신하여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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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大山李公文(178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一生을 性理學에 沈潛하여 魯論과 朱子書 등에 밝았던 大山 李象靖(1710∼1781)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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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安訥甫文(179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자신을 세 가지로 돌이킬 줄 알고 "无妄" 두 글자를 座右銘으로 삼아 修身에 힘쓰던 守吾處士 安敏修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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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仲進文(177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백세의 귀감이 되었고 효행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鄭仲進의 죽음에 하늘이 나에게 애도하는 글을 허락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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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叔擎(柱厦)文(178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지난날 契會에서 같이 교유했고 화목함을 나누었던 同氣 李柱厦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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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仲父巢谷公文(176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仲父 巢谷公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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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父文(177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모두 2편으로, 府君과 나이가 차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나는 季父께서 府君이 돌아가신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시니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저자의 심정을 하늘에 원망하고 있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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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舍弟亘萬文(179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우리 집안의 易學은 세상에서 논하던 것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같이 經術을 논하던 舍弟 亘萬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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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龍井文(177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저자의 丈人인 李象辰 공의 장례일에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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箕山精舍上樑文(代作)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저자의 증조부 箕山公의 遺業을 기려 菊潭에 작은 정원을 짓고 精舍를 지으려는 뜻을 세웠다. 그러나 아버지 대에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이 일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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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谷書堂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저자의 부친 屛谷 선생의 뜻을 기려 제자들이 마을에 雲谷書堂을 세우니, 제자들은 서로 도와 학문에 힘쓰고 君民들은 영원토록 이 門戶를 빛낼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