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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0001

    竹林權公行狀(178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공의 조상이자 朝鮮 초 端宗 복위 운동을 꾀하다 죽임을 당한 六臣의 한 사람인 竹林 權山海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죽림공의 가계와 내력을 자세히 기술하였는데,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뒤 禁錮法으로 자손들이 정계에 나아가지 못하게 된 사정과 100년이
    출처 : 유교넷
  • 350002

    王考府君屛谷先生行蹟(178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저자의 부친인 屛谷公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家系의 내력부터 공의 평소 생활 등 매우 인물의 삶 전반을 매우 꼼꼼하고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이 행장에 따르면 屛谷公의 諱는 구이고 字는 放叔, 號는 屛谷이며 安東人이다. 그는 崇陵 壬子 閏 7월 초2일 枝谷里에서 출
    출처 : 유교넷
  • 350003

    伯舅下枝李公行狀(179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저자의 丈人인 李象辰의 行狀으로, 자는 若天이며 號는 下枝이다. 저자의 부친인 屛谷先生에게 가르침을 받고, 訥翁 李光庭 선생을 찾아가 經史와 文章을 배웠으며, 이듬해에 과거에 나가 連試에 장원급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004

    守吾齋安公行狀(179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守吾處士 安訥甫의 행장으로, 諱는 敏修이며 順興人이다.
    출처 : 유교넷
  • 350005

    杏堂金童子遺事(177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杏堂 金童子의 遺事로, 初名은 都吉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영오함을 인정받아 喚으로 고쳤다. 이가 나기 시작하자 景霖으로 이름을 고치고 자를 澤世 호를 杏堂이라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06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弼衡 作으로 가재공은 천성이 순정하고 문장이 뛰어났음을 칭송하고 임소에서도 끝까지 부친의 원고를 편집하지 못함을 한스러워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00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台漢 作으로 공은 낙동강변에 書齋를 짓고 한가로운 삶 가운데 태연자약하며 고인들의 삶을 따랐다. 그러나 저술을 남기지 않아 후학들이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지 염려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00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尹備 作으로 선생의 공덕과 양성은 지금 세상은 거의 드물며 청명한 고절은 홀로 빛난다고 했다. 그러나 강호에서 영원하자던 약속을 저버리고 먼저 떠나니 오로지 선한 마음만을 붙들고 살 것이라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0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李鎭東 作으로 우리 영남의 종장이 병곡공의 가업을 잊는 가재공의 업적은 영원할 것이며, 늙어서도 공경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공을 추모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七紀 作으로 7言 絶句로 된 2구의 聯詩이다. 前句에서는 공의 아름다운 이름은 前賢에 버금가며, 後句에서는 70여생을 살고도 오히려 슬픈 감정이 드는 마음을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象春 作으로 가업을 충실히 계승한 공의 아름다움과, 지난 날 같이 강학하며 논하던 공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굉 作으로 선생은 屛谷公의 典刑을 본받으며 훌륭히 일생을 살았지만 후손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그저 애통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養根 作으로 7言詩로 구성된 총 6편의 聯作詩이다. 공의 일생동안 이루어 놓은 업적을 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에서 서쪽 하늘로 아득히 먼저 떠나가는 공을 애도할 뿐이라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訪 作으로 병곡 공의 훌륭한 손자인 가재공은 나이와 덕으로 모두 鄕黨에서 칭송을 받았으며 삼년 동안 모셨지만 지금은 볼 수 없음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必華 作으로 可齋를 올려다볼수록 문장이 높았던 공을 애도함.
    출처 : 유교넷
  • 3500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李楨國 作으로 7言詩 2篇이다. 병곡공의 衣鉢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누구와 더불어 세세한 것까지 논해야 할지 한스러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馨復 作으로 공의 儀範은 자리에 남아 있고 정신은 족보에 깃들여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宗鐸 作으로 顔子처럼 安貧樂道 하던 공의 정신은 花山의 風月이 맑은 정신을 비춘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聖躋 作으로 평생 학문을 일삼다가 늙어 천명을 보전하던 공의 자취를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泰春 作으로 일찍이 訥翁과 더불어 강론하고 시 지으며 놀던 공의 모습은 천년이 지나도 칭송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鼎鉉 作으로 성품은 어눌하여 천성을 받은 듯 했으며 문장도 도를 이룬 것 같은 공의 모습은 城南의 譜事에 남아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尙中 作으로 공의 가학은 河南 程夫子와 比肩될 수 있으니 이후로 후생들이 어떻게 따라 갈 수 있을까 염려하며 공을 그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3

    祭文 屛山書院儒生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병산 서원의 제생들 중 네 분(柳謙祚 金宗鐸 權休復 李光一)이 공이 돌아가신 뒤 지은 제문이다. 공의 문장과 경술은 가학의 전범을 이으면서도 후생들의 모범이기에 충분하며, 性理와 易에 관한 학설은 당대의 제일이라 칭송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弼衡의 作으로 文章과 德을 아울러 겸비한 可齋公을 추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仲舅 李弘辰의 作으로 名實이 함께 칭송되던 공을 추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李宗洙의 作으로 어린 나이부터 가깝게 사귀어 蓬麻의 정을 나누었던 공을 추도하고 있다. 아울러 공은 일생을 병곡공의 유고 정리에 힘을 기울였음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규의 作으로 평생 가업을 이으며 性理와 象數에 밝았던 공을 추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表弟 柳一春의 作으로 弱冠의 나이에 이미 鄕里에 이름이 알려진 공의 학업과 덕에 관해 추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國春의 作으로 鄒魯之鄕인 嶺南에서 가학을 훌륭히 계승한 공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表從姪 朴漢昌의 作으로 家學을 잇는 典刑으로, 학술과 덕업을 아울러 겸비한 문인으로 칭송하며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器文의 作으로 우리나라 사표의 대표인 병곡공의 後嗣를 잘 이은 공을 칭송하며 先子와 더불어 同門修學하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安爾宅의 作으로 可齋公과 先子가 같이 기약하던 날을 그리워하며 道義로 서로 교유하던 모습을 애틋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表從姪 李亮燮의 作으로 공은 先君과 다름없다고 하면서 일생 의를 중시하던 공을 추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柳台佐의 作으로 공은 일생동안 선현들을 잘 따르며 조상들의 업적을 드러내는 데 공이 많았음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金啓運의 作으로 공은 德性과 孝友를 겸비하고 才藝까지 갖춘 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姜復九의 作으로 공은 家業을 받든 전형이며 德業을 갖춘 선비라 칭송하며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內從姪 李楨漢의 作으로 先君과 더불어 같이 遺集을 정리하던 노고를 기리며, 지난날 쫓으며 배우지 못함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翼溥의 作으로 일찍부터 공이 撰集한 기록을 통해 세상의 학문을 배웠음을 추억하며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朴咸慶의 作으로 공과의 夤緣으로 來往하던 때를 추억하며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權宗默의 作으로 가업을 계승한 공의 학문과 世譜를 印行한 공을 기리며 추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族弟 襄형의 作으로 같은 집안에 태어나 공은 文으로는 賁皇, 智識으로는 明理에 통달했다고 칭송하며 추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族姪 兢의 作으로 공의 인품은 薰香과 같이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높아지며, 菽粟의 文名을 지녔다고 칭송하며 고인을 追悼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43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이 글은 再從 宗孫 이 지은 行狀인데 공의 사후 80년 되던 해인 1875년에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044

    墓碣銘 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義禁府都事 行 通仕郞인 聞韶 金道和가 撰한 것으로 내용은 행장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공이 잠시 벼슬에 있을 때 하과에서 연이은 장원을 한 것이나, 가재의 연원을 상세히 밝힌 것 등은 주목할 점이다.
    출처 : 유교넷
  • 350045

    墓碣銘 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通政大夫 行 槐山郡守 安昌烈이 撰한 것이다. 동문수학한 두 조부의 친분으로 묘갈명을 저술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공의 修學과 交遊關係, 大小事 등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0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豐山 柳膺睦 撰한 것으로, 공의 집안은 대대로 빛나는 학문을 배태하였다가 屛谷公에 이르러 찬란해졌다고 하고 또한 대대로 斯文의 典刑이 되었으니 영원토록 강녕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00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명우
    後孫 五寅과 五根이 지은 발문으로 공의 사후 169년 만에 지었다. 가재집이 편찬된 내력과 지금에서야 겨우 간행되는 저간의 사정을 소개했다.
    출처 : 유교넷
  • 350048

    간암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
    간암유고(艮巖遺稿) 艮巖 李완의 문집. 9권 5책.(본집8권과 부록 1권으로 됨) 필사본. 艮巖 李완(1740∼1789)의 시문집을 9권 5책(본집 8권, 부록 1권)으로 엮은 필사본이다. 序文이나 後識가 없어서 언제 필사되었는지 알 수 없다. 현본은 완성된
    출처 : 유교넷
  • 35004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
    春日游河上二亭次趙丈(宜陽)韻(1761), 上雲寺有吟, 次錦澗李丈(植春)遊龜潭詩(1763), 次孫靖平公遺墟碑閣韻, 簡謝稚春從兄三絶(1766), 病臥枕上夜半聞巖舍讀書聲偶吟寄文若諸君求和, 次雲洞韻, 丁亥立春日次家大人韻(1767), 往視高山與諸友共賦得然字, 次高山精舍韻, 挽
    출처 : 유교넷
  • 350050

    辭弘文館副校理疏(178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
    왕(정조)이 선친(李象靖)을 만나보지 못한 아쉬움에 자신을 홍문관부교리에 임명한 것에 대해, 자신은 애초에 벼슬에 뜻이 없었고, 자질이 천박하고 학문이 천근하여 조정에 누를 끼치고 사방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명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한 상소문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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