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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너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형을 보내니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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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冷泉李公(猷遠)文(1774)(代家君作)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葛菴 李玄逸의 孫子이며 密菴 李栽를 스승으로 모시며 평생 가난했지만 학문에 정진하여 家風을 진작시킨 冷泉 李猷遠을 추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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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百弗菴崔先生文(178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주민들과 함께 계를 조직하여 세금을 충당하고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春秋로 사민들을 모아 교육에 힘쓰던 百弗菴 崔興遠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여러 번 조정에 출사하였지만 공부를 더욱 돈독히 하여 天性을 잘 보존했다고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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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瓢溪柳丈(通源)文(177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영파공을 잇는 학문으로 일생을 단표누항의 즐거움을 간직하며 우리들의 풍속을 교화시키는데 앞장섰던 瓢溪 柳通源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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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丈支國(以肅)文(178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行有餘力則以學文"의 군자로 칭송되기에 적당하며, 일상에서의 도를 잘 닦으며 중용의 도리를 다하였던 權以肅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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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審幾堂黃公(啓熙)文(178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俗利山 동쪽에서 중들과 더불어 仙境을 논하며 공부에 몰두했으며, 스승인 大山 李象靖 先生에게 性理를 배워 우리들의 道를 넓혀준 祭審幾堂 黃啓熙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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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進士(光憲)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義城 金氏 가문에서 태어나 선현들의 학문을 이었으며 특히 密菴의 文集을 간행하는 데 공로가 컸던 金光憲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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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進士行之文(178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두루 학문을 섭렵하고, 남들에게 의혹됨이 없었으며, 말과 행동에 모두 옳음을 구했으며, 의리에도 정밀했던 金之文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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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直甫(宗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顔子가 되기를 희망하면 안자가 되었고, 一心精白은 당대에 최고였으며, 거듭되는 조정의 부름에도 나가지 않고 더욱 학문에 힘쓴 金宗敬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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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姑平山申氏文(178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화려한 가문에서 태어나 시집와서 糟糠의 어려움을 마다 않고 君子의 짝됨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기이한 병을 얻은 지 5년 되는 76세의 시어른을 극진히 보살핀 外姑平山申氏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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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校理再從叔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70평생을 다만 節制로서 생활하고, 30여년 벼슬살이 동안 淸要職을 두루 거치면서 관찰사로서의 직분까지도 훌륭히 완수한 再從叔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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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新樂堂再從叔文(178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弱冠의 나이에 이미 문명을 떨쳐 남이 모방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말년에는 전원에 卜宅을 마련하고 寒溪壟雲을 玩味하던 新樂堂再從叔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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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母孺人文(176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지금 伯父의 나이가 70을 바라보는데 오늘 이 高大廣室에 홀로 지낼 고통을 당했으니, 백모의 죽음은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며 자신의 슬픔은 哀死일 뿐만은 아니라 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이는 天壽를 누렸으니 백부께서는 앞으로 100壽를 영위하시길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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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卓氏族譜序(177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자손들이 유연히 번창하는 것은 족보의 도움이다. 광산 탁씨는 竹亭 文貞公이 有學有行하여 鬱然히 비조가 되었지만 舍人 訓將 諸公에 이르러 문호가 점점 미약해졌다. 그래서 지금 집집마다 가진 책은 전할수록 오래되어 자손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루는 卓在龍이 나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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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子純遺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공은 어려서부터 科擧에서 이름을 날려 모두들 時文의 秀才로 인정하였다. 그러니 하늘이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하여 問學에 힘쓰도록 했으면 斯道에 羽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주는 있어도 천명은 없어 싹이 터 열매를 맺기도 전에 운명을 달리한 申子純을 애도하며 문집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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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齋郭公實紀後敍(178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存齋郭公은 정유년 黃石의 난리에 別將과 士卒들이 모두 죽어 홀로 전쟁을 독려하여 죽음에 이르러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전하는 말에, 공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存齋"라 이름붙인 편액을 걸고 窮理精深에만 힘을 쏟았다고 한다. 만약 선생에게 無事之日에 출사하게 하면 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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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金童子杏堂遺帖後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어릴적부터 효성이 깊고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던 김동자는 7~8세에 이미 심원한 理趣를 지녔으며 일삼는 바는 스스로 고대의 현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9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으니 子思가 이른바 "오히려 天地에 유감이 있는 듯 하다."란 말인가? 大人公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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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同講錄後送高淸叔(176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淸叔氏는 수 백리를 다니면서 家大人의 학문을 익혔는데, 가정에서 생장한 본인으로서는 오직 이 사람에게만 부끄러울 따름이라 했다. 그래서 느낀 바를 그대로 옮겨 淸叔씨에게 책망을 면하고 스스로의 경계로 삼는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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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谷書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우리 父老들은 항상 藏修之所를 찾았지만 마땅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우러러 산을 바라보고 굽어 물소리를 들으며 골짜기에 나아가 띠집을 짓고 머무를 곳을 정했다. 예로부터 고요한 뒤에 천하의 의리를 볼 수 있기에 산수 간에 찾았던 것이니, 이 雲谷書堂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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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腔子是惻隱之心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예전에 程子가 "滿腔子是惻隱之心說"이라 했는데, 이는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惻隱之心을 사물에게까지 적용시킨 오류임을 밝히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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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社廟宇移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같은 시대 태어난 두 賢者는 文武를 겸비하고 四海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교유가 좋았지만 이제 廟宇가 낡아 새로 移建하니 만세무궁토록 복을 누리길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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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靖平公廟宇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고려 三重大匡 判三事司 靖平公의 후손인 선생은 자태가 雄偉하고 諫官의 풍모를 지녀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局量이 있었다. 어려서 价石의 정을 지녀 자주 端門에 들면서 만년에 父老들의 기대를 받았으니 國家의 元老라 칭송받을 만 했다. 이런 선생의 威儀가 백세토록 현창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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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至自警文(176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사람이 禽獸와 다른 점은 유위에 있는데, 자신은 20여 년 동안 이루어 놓은 바가 없어 금수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래서 視聽言動을 法度에 맞게 하고, 心을 主一하게 하면 끝내는 귀한 인간이 될 수 있으니 힘써 정진하고자 다짐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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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宋公傳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姜肱 趙孝의 일과, 동생이 사람을 죽였는데 형이 대신 죄를 받고자 하는 경우를 들어 형제들 간에 우애가 깊어 죽음에 임해도 견고한 의지를 꺾지 않음을 칭송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후세에 전하여 敎化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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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課小識(177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세상의 번잡한 일을 대하는 가운데 한가로운 틈을 내 작은 책자에 일상의 勤慢處事의 得失을 기록하여 補過의 계책으로 삼고자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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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修道以仁疑義(178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先大人에게 들었던 "中庸修道以仁"란 구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기서 仁은 仁義禮智의 仁이 아니라 中庸 首章의 戒謹存省에 따른 用力의 방법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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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南宗伯答柳天瑞別紙(178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문) 性과 道는 對言으로 혹은 單言으로 구분하여 말할 수 있지만, 體와 用은 모두 道인데 道를 體用으로 구분한 것이다. (답) 이것은 天理自然 上 그렇다는 것이며, 人心動靜 上 그렇다는 것이라 근원은 한 가지이다. 억지로 對言 單言을 구분하면 그 차이의 미묘함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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泮村問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이 대목은 유천서와 자신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성리의 주요 개념인 성과 도, 체와 용, 성과 정, 미발과 이발에 있어 성과 정의 관계 등을 논의하고 있다. 주된 쟁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性과 情이 發하기 前 道의 문제. 둘째, 仁義禮智에서의 仁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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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行溫陽郡守驪江李公行狀(178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公의 諱는 範中이고 字는 彛卿이며 驪江人이다. 晦齋 李彦迪의 6세손이고 대대로 경주 양좌촌에 거주했다. 考의 諱는 德祺이며 비는 烏川 鄭氏이고 後비는 載寧 李氏이다. 공은 1708년에 태어났으며 나중에 季父 同樞公 諱 德祉의 후사로 출가했다. 내외직을 두루 지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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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저자의 죽음을 애도한 글로 蘆厓 柳道遠, 后山 李宗洙, 漢陽 趙運道, 進士 金道行, 素庵 金鎭東, 承旨 金若鍊, 縣監 權思浩, 永嘉 權思溥, 進士 柳星休, 承旨 金, 修撰 金熙稷, 損齋 南漢朝, 監察 南景羲의 만사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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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저자의 제사에 올린 글로 蘆厓 柳道遠, 后山 李宗洙, 川沙 金宗德, 東巖 柳長源, 晦谷 趙述道, 錦淵 申體仁, 進士 金台翼, 掌令 金宗發, 承旨 金굉, 佐郞 權訪, 進士 金宗燮, 昌原 黃龍漢, 損齋 南漢朝, 府使 柳範休, 敎官 金是璨, 進士 柳晦文, 從兄 俛庵 李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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壙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아들 李秉遠이 壙中에 넣는 글로 墓誌銘이다. 先係, 官歷, 子孫, 性品에 대해 간략히 기록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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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先係, 官歷, 子孫, 性品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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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立齋 鄭宗魯가 저자의 아들 형제가 遺事를 가지고 와서 부탁하기에 지은 것으로 先係, 官歷, 子孫, 人品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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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완默軒 李萬運이 쓴 묘갈명으로 先係, 官歷, 子孫, 人品 등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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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李祥熻의 문집. 2권 1책. 석인본. 曾孫 李昌淵이 1913년 그의 遺文을 수집함과 동시에 李晩煃와 李中轍에게 부탁해 각각 墓碣文과 行狀을 얻어 문집을 발간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비용의 마련 등 여력이 미치지 않아 간행을 못하고 미루어 두었는데, 5代孫 李裕民이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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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27首)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伏次愛日堂板上韻, 歎虛老, 歎老樹見伐, 暮春偶吟, 春雨, 次族大夫(泰馨)壽辰韻, 次李日觀(鎭岳)韻, 又次前韻答示意, 又次前韻奉復, 又用前韻答李振汝(世鐸), 登愛日堂望天淵臺有感, 過鳳城鄕校, 釣隱先生李公(世澤)挽(丁酉), 汾江書院請額事到新院望王城如在咫尺而馬病不能進(辛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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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承旨文源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承旨 李文源(1740~1794)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1785년(정조 9)에 썼다. 承旨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면서 자신은 汾江書院 賜額을 위한 請願운동이 실패로 끝남에 따라 아쉬움을 안고 돌아온 이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전했다. 아울러 陶山書院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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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漢慶(祊)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尹祊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1788년(정조 12)에 썼다. 추운 날씨에 건강은 어떠한 지를 묻고 자신은 분강서원 사액이 무산되었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은 이후 희망을 잃다시피 지내고 있음을 전했다. 소문에 듣건대 신임행차를 할 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일부러 거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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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柱河柱溟)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崔柱河·崔柱溟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1790년(정조 14)에 썼다. 서울에서 헤어진 지 이미 6,7년이 지났지만 때때로 얼굴 모습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기도 하고 별다른 진전도 없이 책상 앞에 앉아 담담한 심정으로 책만 읽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자신이 분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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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具士兼(聖元)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具聖元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흉년이 드는 바람에 契會에 낼 곡식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등의 간단한 안부에 이어 선비의 窮究하는 자세와 太極·陰陽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선비가 세상에 나와 해야 할 일은 工夫를 통해 道理에 근접하는 일 외에는 없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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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氏門中(聞慶會稽)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先朝의 外孫인 南氏 門中에 선조의 墓地 移葬과 관련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편지이다. 곧 先朝의 묘지가 전부터 不吉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결정을 못하고 있다가, 작년 가을 諸宗들의 합의를 얻어 묘를 파서 地穴을 살펴보니 槨面이 마치 새로 만든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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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汾江書院 賜額上疏의 추이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영천 이씨 문중에 그간의 상황을 전해준 내용으로, 1784년(정조 8)에 보낸 것이다. 嶺南뿐만 아니라 畿湖·海西의 유생들도 나서서 모두 3차례에 걸쳐 伏閤上疏를 했지만, 承政院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捧入하지 못하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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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汾江書院 賜額上疏의 추이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영천 이씨 문중에 그간의 상황을 전해준 내용이다. 집을 떠나온 지 3개월이나 지났고 가을에는 반드시 還鄕하겠다는 一念으로 疏事에 매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工曹를 제외한 五曹의 長官이 모두 교체되는 등 조정이 불안하고 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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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汾江書院 賜額上疏의 추이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영천 이씨 문중에 그간의 상황을 전해준 내용이다. 善山과 春陽의 유생들이 동시에 疏頭를 선발할 것을 제기했으나 내려 보낼 유생이 마땅하지 않다. 며칠 전 承旨 金載瓚을 만나니 말은 부정적으로 했지만 捧入될 수 있도록 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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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汾江書院 賜額上疏의 추이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영천 이씨 문중에 그간의 상황을 전해준 내용이다. 校理 李埦의 조언에 따라 조정의 분위기를 살펴 成彦根을 疏頭로 결정해 4번째 伏閤했으나, 承旨들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일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서울에서 만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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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大父僉知公(復馨)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8개월 동안 분강서원 賜額을 위한 疏事에 매달려 있는데 대한 族祖 李復馨의 위로 및 조언의 편지에 답하면서 진척 상황을 전해준 내용으로, 1784년(정조 8)에 보낸 것이다. 각지에서 올린 疏本은 모두 捧入이 되는데 반해, 유독 이것만 제외되고 있어 해가 저물기 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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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從弟熙老(萬熻)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從弟인 苟完齋 李萬熻(1740~1814)에게 보낸 편지로, 1790년(정조 14) 보낸 것이다. 서울에 잘 도착했는지를 묻고, 앞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누구와 의논해야 할지 걱정이라는 마음을 전했다. 우선 닥친 일로는 산의 묘지와 관련한 문제, 誌文을 고치는 문제 등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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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從弟熙老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從弟 李萬熻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 보낸 것이다. 지난달 떠난 이후 잘 지내는지를 묻고, 자신은 종전의 증세가 여전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함으로써 근력이 쇠약해졌음을 전했다. 가문의 현안인 誌銘의 改作여부나 묘지의 石物 新造 여부 등은 여전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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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時敬時靖兩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汾江書院 賜額을 위한 疏事로 서울에 머물면서 아들 李時敬·時靖에게 보낸 편지이다. 무사히 서울에 도착해 成均館의 謹悉을 받는 등 奉疏를 위한 제반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전하면서, 집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다른 뜻을 품지 말고 성취할 수 있도록 기원해 주도록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