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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時敬時靖兩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아들 李時敬·時靖의 안부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疏事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민망할 뿐이라는 심정을 전하면서, 나태하지 말고 더욱 課業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350302
寄時敬時靖兩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아들 時敬·時靖에게 보낸 편지이다. 汾江書院 賜額을 위해 유생들이 伏閤하여 승정원에 연락해 거의 捧入할 즈음에 갑자기 五曹의 長官이 교체된 데다 蔡濟恭을 鞠問해야 한다고 주장한 三司의 箚子에 왕이 격노함으로써 大臣들이 義禁府에서 待罪하는 등 조정에서 풍파가 일어나는출처 : 유교넷 -
350303
寄時敬時靖時聖時養四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時敬·時靖·時聖·時養 등 아들 4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老母와 아들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眼疾과 痢疾로 고생하고 있음을 전했다. 집안의 工事가 시작되었는지 물으면서 사랑채는 시급히 보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겠지만 밤마다 讀課에출처 : 유교넷 -
350304
答四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時敬·時靖·時聖·時養 등 아들 4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추위가 닥쳐오는데 疏事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그 여파로 복통을 비롯한 갖가지 병들이 괴롭히고 있음을 전했다. 疏事 역시 科試가 끝난 뒤로 미루어졌음을 알리면서, 宜人의 收稅와 관련한 일은 순리대로 풀되 다출처 : 유교넷 -
350305
寄四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時敬·時靖·時聖·時養 등 아들 4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疏事가 언제 관철될지 기약도 없고 4차례의 奉疏에 이어 언제 다시 伏閤할 것인지 계획도 없이 承政院을 분주하게 왕래하는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경험상 이러한 일은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을 끌어오고 財力에 관심을출처 : 유교넷 -
350306
敬謨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자신이 지은 敬謨堂에 대한 記文이다. 敬은 모든 聖賢들의 心法의 표준이 되는 것으로 학문의 방향을 여기에 설정하고, 謨는 자손들도 집안이 빈한해 물려받을 田土는 없지만 그것의 공부에 매진한다면 金玉 이상의 보배를 얻을 것이라 확신해 계승하도록 하고자 하는 뜻에서 택한출처 : 유교넷 -
350307
桐巖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汾水가 굴곡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한 桐巖을 예찬한 기문이다. 특히 오동나무는 예로부터 邪心을 없애고 和氣를 이루도록 할 뿐만 아니라 나라에 吉祥을 가져다주는 나무로 인식되었지만, 이 나무가 비록 汾陽의 舊物이 되어 냇가의 바위에 의지해 볼품없이 자라 사람들의 관심출처 : 유교넷 -
350308
風月巖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芙蓉峰 아래 洛水에 자리 잡고 있는 風月巖에서의 所懷를 표현한 記文이다. 이 바위는 月川 趙穆이 부용대에서 학문에 매진하다 수시로 소요하던 곳으로, 마음속의 먼지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떨어내고 淸明한 氣像을 갖춘다는 의미로 命名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통상적인 光출처 : 유교넷 -
350309
靈芝精舍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1770년(영조 46) 聾巖 李賢輔가 지은 靈芝精舍를 자신의 주도로 후손들이 힘을 합해 重修하면서 지은 記文이다. 靈芝山은 禮安의 中岳에 해당하는 산으로 좌측 자락에 陶山書院과 汾江書院이 자리하고 우측 자락에 禮安鄕校와 月川書堂이 위치하고 있어 東方의 鄒魯를 이룬 산출처 : 유교넷 -
350310
沙川齋舍重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少尹公 李軒, 永陽君 李大榮, 主簿公 李日忠 등 조상의 幽宅을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沙川齋舍를 汾水가에 중건하면서 지은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350311
祭釣隱先生李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李滉의 후손이자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釣隱 李世澤(1716~1777)의 喪을 맞아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350312
祭從弟東甫(振熻)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從弟 李振熻의 靈前에 올린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350313
契會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具聖元 등과 契조직을 결성하면서 지은 序文이다. 利害關係에 얽매여 있는 여타 계조직과는 다른 순수성을 강조했으며, 노쇠할 때까지 계원들의 합의에 의해 순조롭게 이어나갈 것을 다짐했다.출처 : 유교넷 -
350314
書勤爲無價之寶後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자신이 「陳篇」에서 본 ‘勤’이라는 글자의 해석을 누가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금은보화에서도 얻을 수 없는 斯文의 진정한 보배가 그 글자에 담겨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담은 後敍이다.출처 : 유교넷 -
350315
捕虎者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民家에 침입한 호랑이를 사람들이 잡자 官家에서 虎皮 등을 바치도록 요구한데 대해 반박한 내용이다. 맹수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禁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맹수가 제 발로 와서 죽음을 당한 것인데, 그것을 바치라고 한다면 앞으로 누가 憂患을 없애출처 : 유교넷 -
350316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李鎭慶·尹祊·李學基·李學時·李廷榗·李師錫 등이 썼다.출처 : 유교넷 -
350317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李世發·姜齊煥·金珵·權德標·李世伯·金慶胤·裵相震·李龜福·李學淳·尹祊·朴楨周·金樂宏·李師錫·李廷桷·李廷榗·李萬熻·李慶熻·李昺淵·李昌淵·李裕容 등이 썼다.출처 : 유교넷 -
350318
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曾孫 李昺淵이 1909년에 썼다.출처 : 유교넷 -
350319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惠陵參奉 李中轍이 1912년에 썼다.출처 : 유교넷 -
350320
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東學敎授 李晩煃가 1912년에 썼다.출처 : 유교넷 -
350321
贈遺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李世澤·李級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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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曾孫 李昌淵이 1913년에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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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흡5代孫 李裕民이 1980년에 썼다.출처 : 유교넷 -
350324
계서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谿栖 李晩淑의 문집. 4권 2책. 문집 첫머리에는 柳必永과 族姪인 李中轍의 序文 2편이 실려 있고 그의 族姪인 李中均이 쓴 발문이 문집 말미에 실려 있다. 제1권에는 한시와 그가 본생 부친을 대신하여 쓴 상소문이 수록되어 있고, 제2권에는 서간문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350325
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謹次伯氏龍壽寺夜坐韻,謹次伯氏遊陶淵松亭韻, 輓趙丈(槿復), 遊津寬寺(時家君差 明陵祭官陪行)寺後有泉石之勝與尹參奉(滋)趙士人(性敎)窮源探勝臨流擧觴惜其名之無傳請以枕流洞誌之,三千洞(自津寬寺越一峯有三千洞泉石絶勝), 侵曛還 明陵齋, 輓西圃權丈(載成),輓趙記注(彦國),李司書丈(源祚출처 : 유교넷 -
350326
上八條疏(代本生大人作)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本生 부친을 대신하여 지은 상소문이다. 대행대왕이 승하하고 대비의 명으로 새 왕이 등극하자 올린 상소문이다. 백성들이 왕의 등극을 매우 기뻐하고 있음을 피력하고 난 후 정력을 기울여 요순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본 상소문의 골자이며, 그 조목은출처 : 유교넷 -
350327
與海隱姜丈(必孝, 1846)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海隱 姜必孝에게 올린 서간이다. 계서의 선조인 이황의 「聖學十圖」가운데 禮와 智의 위치가 애초에는 智가 위이고 禮가 아래인 것으로 정했다가 기대승의 설명에 따라 예와 지의 위치를 바꾸었다가 곧 智는 性이 발로되어 情이 되는 차례에 해당하므로 위치가 불편하기에출처 : 유교넷 -
350328
與海隱姜丈問目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海隱 姜必孝에게 올린 問目이다. 주로 상례를 치를 때 상복의 착용 문제에 대하여 질의를 할 것으로 練時의 수질과 요질의 착용 문제, 임금의 상례를 치르는 동안 부모의 상례를 치르는 문제, 國恤 중에 가족의 상례를 치르는 문제 등 3가지에 대하여 답을 요하는출처 : 유교넷 -
350329
與定齋柳丈(致明, 11846)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서간이다. 여러 해 동안 뵙지 못하다가 지난번 누추한 거처에 찾아온 점에 대하여 사의를 표하고 난 후 근래의 안부를 묻고 있다. 지난해에 三峴에 거처하는 柳丈을 통해 유치명이 논한 四七書를 보고 난 후 그 간략함과 정밀함에 대하여 탄복하출처 : 유교넷 -
350330
與定齋柳丈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두 번째 서간이다. 여름 동안 망령된 의문을 경솔하게 올린 점에 대하여 송구한 마음을 표하고 난 후, 유치명이 그가 질문한 성리학의 의론들에 대하여 정성껏 답한 점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性情說에 대한 가르침을 깊이 마음속에출처 : 유교넷 -
350331
與海村琴丈(詩述, 1846)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海村 琴詩述에게 올린 서간이다. 四七說은 지난번 질문하였는데 아직 그 답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고서 七情은 氣質에서 나온 것인데 이 기질은 氣質之性으로 볼 수 없다, 本然之性과 氣質之性은 상대하여 말할 수 없다, 性의 범위 안에서는 나누어 볼 수 없다는 등 세 가지 문출처 : 유교넷 -
350332
賀海村琴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海村 琴詩述에게 올린 축하편지로 근래의 정황에 대하여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0333
答素無軒琴(書述)丈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素無軒 琴書述에게 올린 답장이다. 지난번 鍤峴에 갔을 때 일정이 바빠 문안을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의를 표하고 난 후 心統圖 간행의 전말을 적고 있다. 전후에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식견이 부족하여 시원스럽게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금서술의 의견출처 : 유교넷 -
350334
與可隱柳丈(箕鎭, 1845)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可隱 柳箕鎭에게 올린 편지이다. 大坪 文丈의 四七說을 지난번 살펴 보았는데, 의리가 오묘하여 그 요령을 쉽게 얻지 못하였는데 반복하여 깊이 연구하다 보니 몇 가지 엇갈리는 점이 있노라고 하고서 자신의 성리학설을 장문에 걸쳐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기설에출처 : 유교넷 -
350335
與谷泉李丈(1844)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谷泉 李丈에게 올린 편지이다. 오랫동안 사모해 마지않다가 작년 봉정사에서 만난 인연에 대하여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하고 난 후, 문집을 간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교정하고 배려해 준 것이 정확하고 정당한 점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피력하였다. 선조의 문집을 간행한 후로 다출처 : 유교넷 -
350336
答權戚兄仲心(秉淵)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戚兄 權秉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마도 당시 권병연은 병을 앓고 있었던 듯하다. 주자의 “마음을 보존하여 性을 기르는 방법이 병을 다스리는 요체가 된다”는 말에 근거하여 몸이 아픈 것이 병이 아니라 심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실로 병통이 된다며 병의 종류를 浮華의출처 : 유교넷 -
350337
答成內從(鍾運)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內從 사이인 成鍾運에게 보낸 답장이다. 당시 성종운은 상중이었는데 상중 생활에 대한 염려를 서두에 제시하고 난 후 고인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가난함을 편안하게 여긴 도리를 염두에 두고 생활하라는 당부를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0338
與趙詠叜(彦敎, 1834)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趙彦敎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여 아쉬운 마음을 서술하고 난 후 조언교가 당시 어려운 상황을 만나 여러 사람들의 근심이 보통이 아님을 서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0339
答趙詠叜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趙彦敎에게 보낸 답장이다. 대저 사람은 心地가 고요하지 않으면 세상 일에 휘말려 풍파를 일으키며 쉴 날이 없다는 경계와 함께 이러한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0340
與趙叔贊(彦育)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趙彦敎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달 이별하고 난 후 편지를 받고 보니 마음과 눈이 환해지는 듯하다고 한 후 조언교의 요즘 생활이 편안한 점에 대하여 안도의 마음을 피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0341
與柳忠彦(1844)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柳忠彦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을에 이별한 후 편지를 보내지 못하다가 겨울이 다가오니 더욱 안부가 걱정되노라고 적고 난 후 퇴계 이황이 남긴 서찰을 베껴 보내면서 이 글이 월천 조목과 왕복한 편지인 듯한데 저자 집안의 일을 언급한 것이 처절한 내용이라서 슬픈출처 : 유교넷 -
350342
與張木川丈(錫愚, 1844)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木川 張錫愚에게 보낸 편지이다. 귀양가는 장석우의 안부를 묻는 동시에 정자가 涪州에서 귀양 갔다 온 후 머리카락의 색깔이 예전보다 더 좋았던 이유는 학문의 힘이었다며 장석우의 근황에 대하여 위로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0343
答姜成玉(鏶,1844)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姜鏶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강집의 부친이 장수한 점에 대하여 축하하고 난 후 자신이 川上에 가서 좋은 물건들을 가져왔는데 특히 千古에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보물들을 접하고 보니 기쁜 마음을 금할 길 없노라고 적고 있으며 학문에 힘쓰기를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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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書村會中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書村의 會中에 보낸 답장이다. 서당 건물을 지으면서 서당 건물, 예컨대 재실 및 협실 등의 편액과 명칭의 제정에 대한 문제에 대한 답변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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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問答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어떤 사람의 학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적고 있다. 그 질문은 ‘形質’, ‘爲學次第論孟次之’, ‘明德理氣’, ‘所當然所以然’, ‘體用’ 등 5가지 항목이다. 그는 ‘形質’에서 氣質과 形質을 막론하고 모양이 이미 생긴 것을 이른 것이라고 하였고, ‘爲學次第論孟次之’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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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別紙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或人의 질문에 답한 別紙이다. 그 항목은 ‘受業於子思之門人’, ‘孟子見梁惠王’, ‘利’, ‘造端託始’, ‘拔本塞源’, ‘自移其粟’, ‘不忍’, ‘心爲甚’, ‘終身飽’, ‘八口之家’, ‘畏天之威’, ‘賢者亦有此樂’, ‘天理人欲同行異情’, ‘進賢如不得已’, ‘聞誅一夫紂’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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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國弼(家相,1844)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族叔인 李家相에게 올린 답장으로 한 편의 장문의 편지와 단문의 편지 5편이 같은 제목 하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만나지 못해 우울하던 차에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경계하고 감발시키는 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과 눈을 시원스럽게 하는 듯하다고 하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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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國弼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族叔인 李家相에게 올린 답장이다. 지난달 三江의 모임에 갔다가 이어서 陶山書院에서 교정하는 일에 참여하였노라고 하였다. 선인들이 선배들을 존경하고 경외한 것이 매우 지극하였는데 의리를 분별함에 있어서는 假借가 없었던 이유를 義理는 천하 사람들의 공공의 것이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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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國弼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族叔인 李家相에게 올린 답장이다. 뜻하지 못하던 차에 편지를 받고 보니 이것이 신년의 제일가는 좋은 소식이라 하였고 자신은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신년을 맞고 보니 기쁘면서도 두려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하였다. 「皇極內篇」은 일찍이 본 바가 없으니 箚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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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國弼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이 글은 族叔인 李家相에게 올린 답장이다. 봄에 보낸 편지로 「皇極內篇」의 箚疑를 삼가 살펴보고 난 후 用意의 근면함과 그 논의가 매우 좋은 것을 보고 난 후 감탄해마지 않는다고 하였다. 동방의 논저 중에 이러한 부분을 언급한 것이 많다고 하고서 퇴계 이황 이외에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