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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0351

    答族姪公善(性和,1850)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族姪인 李性和에게 보낸 답장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던 차에 추위가 찾아오니 안부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을 모시며 세월을 보내고 있노라고 하였고 구차하게 시간만 보내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피력하고 난 후 성호 이익이 편찬한
    출처 : 유교넷
  • 350352

    上本生大人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생부에게 올린 글이다. 먼저 간행소에 머물고 있는 정황에 대하여 서술하고 난 후 지금 간행하는 일을 착수하였는데 아직도 두서를 잡지 못하고 있노라고 하고서 교감하는 일이 서원의 여러 차례의 독촉으로 인하여 재삼 교정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어 어제 서원
    출처 : 유교넷
  • 350353

    遊淸凉山錄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가 청량산에 간 사건을 기록한 산수유기이다. 먼저 태백산 한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갔다가 북쪽으로 꺾여 청량산이 되었는데 맑은 기운이 엉겨 있으며 돌로 된 산이 흙에 덮여 뾰족하게 서 있는 모양이 마치 군자의 모습과 같다고 했다. 이어 청량산 12봉인 蓮花
    출처 : 유교넷
  • 350354

    貞元齋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이만숙의 거처인 貞元齋에 붙인 기문으로 갑오년 6월에 南村의 貞元齋에서 지은 것이다. 그는 貞과 元의 뜻을 『周易』의 이론에 근거하여 설명한 후, 元과 貞의 뜻에 기반을 두어 안목을 높이고 실천을 강화하여 공부에 매진한다면 動靜이 한결같고 표리가 일치할 것이
    출처 : 유교넷
  • 350355

    東隱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의 벗 趙英叜가 그의 집에 東隱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 저자에게 기문을 요청하자 이에 답한 글인데, 기유년 11월 上浣에 지은 것이다. 저자는 은둔의 방식에 대하여 跡隱, 心隱을 거론한 다음 마음을 담박하게 하고 정신을 성현의 경전에 집중하여 幽貞함을 편안
    출처 : 유교넷
  • 350356

    書知禮三賢行蹟後(代作,1840)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知禮의 어진 사람인 盤谷 張公, 節孝 尹公, 南溪 徐公의 행적을 기록한 책자에 붙인 발문으로 南溪 徐公의 후손인 徐景斗의 요청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다. 저자는 『三綱行實圖』와 『輿地』 등에서 그 분들의 행적을 수록하여 사람들마다 환히 아는 일이지만 금세에 세
    출처 : 유교넷
  • 350357

    書先祖集重刊時箚疑後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가 갑진년 3월에 지은 발문이다. 선조인 퇴계 이황의 문집이 문인들의 손에 의해 교정되어 매우 정밀하고 상세하지만 編帙이 방대하여 글자와 음이 착오된 부분과 탈자와 落句가 있어서 중간에 改刊할 때 다시 草本에 근거하여 빠지고 잘못된 곳을 상세히 교정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358

    書先祖集重刊日記後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퇴계 이황의 문집을 重刊할 때 그 경위를 기록한 일기에 붙인 발문이다. 퇴계 이황의 문집이 萬曆 기해년에 처음으로 간행된 바 있고 改刊이 언제 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갑오년에 三嘉公에 의해 주도된 적이 있으며 그 후 정축년에 叔祖인 後溪公이 주도한 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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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59

    書族大父艸艸庵公推恩焚黃時日記後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의 族大父인 艸艸庵公이 증직을 받아 焚黃禮를 거행할 때 그 경위를 기록한 일기에 붙인 발문이다. 일찍이 陶山에서 거행된 과거에 참여하였고 이어서 신유년에 관직에 올랐지만 크게 현달하지 못하여 고향에서 생활하던 저자의 族大父인 艸艸庵公의 생애를 서술하였는
    출처 : 유교넷
  • 350360

    祭趙公(居讓)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趙居讓에게 올린 제문이다. 조거양이 가정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유학에 힘썼으며 자질이 온화하고 성품이 활달하였으며 남에게는 예의로 대하고 일 처리는 꼼꼼하였다는 회상의 마음을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361

    祭鄭丈平叔(東賓)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鄭東賓에게 올린 제문이다. 그의 자질이 純一하고도 질박하며 언사 또한 진실하여 그 풍모와 행실을 본받을 만하였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였지만 다시 만나 가르침을 받을 날을 기약하였는데 공의 운명을 만나니 슬픈 마음을 금할 길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0362

    祭仲祖後溪公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의 仲祖인 後溪公에게 올린 제문으로 후계공이 운명한 지 2년 만에 지었다. 저자가 목도한 후계공의 모습과 행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363

    誄權而遠(重銓)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權重銓에게 올린 誄文이다. 권중전의 호는 逸溪인데 그가 정유년 정월에 松湖의 본가에서 운명한 지 1년이 되었는데 찾아가 조문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였다. 이어 성품과 기질이 빼어났으며 주자학에 심취했던 그의 학문적 성향을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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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64

    仲祖後溪公遺事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의 仲祖인 後溪公의 생애를 정리한 遺事이다. 후계공은 영조 갑술년에 태어나 임진년 12월 29일 축시에 향년 79세로 운명하였다. 7세에 三從大父인 積城 李世胤에게서 수학하였고 18세에 宣城李氏인 통덕랑 漢佑의 따님과 혼인하였다. 경자년에 사마시에 합격하
    출처 : 유교넷
  • 350365

    王考將仕郞公府君行畧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저자의 王考인 將仕郞公의 행적을 정리한 글이다. 장사랑공은 성품이 활달하였으며 형제간 우애가 두터웠다고 했다. 또한 국량이 대단하여 마을의 중요한 일들의 모두 위임받아 처리하였고 집안 선조들과 관계된 일들을 처리함에 성의를 다하는 생애를 살았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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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66

    貞元齋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이만숙의 거처인 貞元齋에 붙인 기문으로 姜必孝가 지은 것이다. 강필효는 이만숙의 행적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난 후 貞과 元의 뜻을 경전의 이론에 기초하여 서술했다. 이어 이만숙은 온화하고 우아한 자질로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인과 현인이 될 것을 기약하라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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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67

    輓詞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李晩淑의 영전에 바친 만사로서 기재된 순서에 따라 제시하면 그 작자는 아래와 같다. 琴詩述, 琴書述, 金岱鎭, 柳衡鎭, 金鎭林, 朴宗垕, 金鍍壽, 金安鎭, 琴誠述, 權秉淵, 柳疇睦, 金重運, 琴翼祥, 趙秉義, 趙彦英, 琴翼文, 柳致游, 趙彦育, 趙彦敎, 趙端復, 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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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68

    哀辭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權璉夏, 柳宇睦, 南皐, 金永獻, 琴翼明, 金載琡, 李台榮, 族姪 李性和, 琴翼祥, 蔡周馨, 李斗榮, 族叔 李彙載, 族叔 李彙寧, 族叔 李彙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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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69

    祭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저자의 제사에 올린 글로 鄭允愚, 金奎洛, 趙彦英, 琴誠述, 再從弟 李晩修의 제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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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0

    行狀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谿栖集』의 저자 李晩淑의 생애를 정리한 행장으로 지은이는 이만숙의 족손인 李康鎬이다. 이만숙의 자는 仲聞이며 호는 谿栖이다. 고려 말 생원으로 密直使에 증직된 碩의 후손으로서 퇴계 이황의 11세손이다. 부친은 諱가 彙圭인데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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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1

    墓碣銘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谿栖集』의 저자 李晩淑의 생애를 정리한 묘갈명으로 지은이는 그의 족제인 李晩煃이다. 이만규는 “어진 사람은 장수하고 착한 사람은 복을 누리는 것이 떳떳한 이치인데 능히 그렇지 못한 것은 비록 성인과 達士라 해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여 다만 운명과 운수에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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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2

    行畧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谿栖集』의 저자 李晩淑의 생애를 정리한 行畧으로 작자는 그의 백형인 李晩浩이다. 그 내용은 앞서의 行狀 및 行畧과 별반의 차이가 없으며 단지 연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만숙의 생애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기술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출처 : 유교넷
  • 350373

    跋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숙
    이 글은 『谿栖集』에 붙인 발문으로 지은이는 그의 族姪인 李中均이다. 이만숙의 학문적 특징이 고인들의 爲己之學에 전념한 데에 있고 영남의 사론이 분열되었을 때 올바른 처신을 유지하였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음에도 지조를 바꾸지 않은 점, 그리고 『周易』을 탐독하고 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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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4

    고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조선 후기의 학자인 李惟樟의 문집. 9권 5책. 목판본. 이 책은 손자 載基 등이 편집하였고 1775년(영조 51) 현손 弘辰·象辰 등이 간행하였다. 부록 2권을 포함하여 9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권두에는 李象靖·丁範植의 서문이 있다. 시가 5백 수 가까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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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過宣城, 訪忘菴(金邦杰)幽居, 呈鄭雲巢(侙), 聞內弟金會一(如萬)頗以得失念詩以解之, 次琴易堂韻, 行路難, 次李信古(簠)韻, 記夢, 輓百拙菴(㮨), 元日示子姪, 嗚朝兒加冠書示, 初度日有感, 石頭次草堂韻, 述懷, 過順興有感, 問馬, 馬答, 寄金天休(學培), 輓金濟萬(學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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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次柳聖擧靜齋韻, 又次, 次李君則(東標)牕閒植竹, 輓柳伯春(振輝), 贈南幼輔(尙召), 輓朴參判(廷薛), 李德升求扇戱贈, 次柳爾能(世嗚)赴關東幕, 次權聖則首尾吟二首, 戰國五賢, 題乙丑年曆, 戱示金蒙義新, 李德升來訪有詩次之, 次黃嶽山僧尙海詩軸中韻 聞李晉叔(時善)將遊太白送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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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龍門寺次丁君翊, 次權聖源韻, 次權子輝, 七里灘精舍次韻爲金安安題輓朴晦彦(焨), 慶老宴, 詠至月梅, 箕山和吾三首詩復次之, 至日有感, 謹次佳野草堂韻, 權絮余之任梁山, 輓柳德膺, 望八老人自鄭尙吾至金會一六人者會于中臺晝與對榻夜則聯枕怡怡焉相樂也少年諸友亦有來會之者旬有三日而後罷亦一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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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8

    答柳拙齋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拙齋 柳元之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병산서원에서 강회가 있었을 때, 유원지의 강의에 큰 배움이 있었음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아울러 배우는 사람의 독서 순서에 대해 유원지의 주장에 반대를 말하였다. 유원지는 사서와 『소학』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한데 반해,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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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79

    與丁君翊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우담 정시한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시한이 출처의 문제로 저자에게 자문을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진퇴거취는 음식이나 의복과 같은 것이어서 남이 입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벼슬에 나아가 큰 뜻을 이루는 것은 산림처사의 출처의 방도는 아니지만 등용하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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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0

    與丁君翊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영북으로 가는 인편에 편지를 보냈는데 받았는지 물었다. 정시한이 관직을 받았음을 알고 출처의 어려움에 대해 동정하였다. 징사 이경숙의 안부를 대신 물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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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1

    與丁君翊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여전히 벼슬을 받고 고민하고 있는데 대해 동정을 표시하였다. 두 가지 물건을 보내준데 대해 감사했다. 특히 약물을 보내준데 대해서 의외의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오는 봄에 소백산 일소암에서 며칠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382

    答丁君翊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정시한이 소백산으로 유람을 떠나는 길에 저자에게 동행을 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감사를 표하고, 옛날부터 소백산으로 가고 싶었는데 조물주가 이러한 인연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울러 물품을 보내준데 대해 깊이 감사하고, 정시한의 자제가 과거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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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3

    答丁君翊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정시한과의 소백산 유람에서 길이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산문에 도달했으나 마침 정시한 일행은 떠나고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저자가 지체하다가 약속 시한에 대지 못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384

    與丁君翊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저자는 정시한에게 안동에 천등산과 봉정사 그리고 개목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고 하고 함께 유람할 것을 제의했다.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유람하는 사람이 이곳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천하의 경승지를 다 보지 못한 것이라 하고, 만약 이곳에 가게 되면 자신도 같이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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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5

    與丁君翊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물품을 보내주신데 보답하고자 하나 집안이 가난하여 보낼 물건이 없다고 하면서, 琴군의 인물화 8폭을 보낸다고 했다. 그림의 가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나 그린 내용이 모두 전대의 고상한 선비들이니 한가할 때 두고 볼 만하다고 하고 또 퇴계 선생의 그림이 포함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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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6

    答丁君翊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저자가 쓴 발문에 대해 정시한이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글에 문제가 많아 차라리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특히 동계 정온에 관련된 언급이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계의 상소문에서 말한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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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7

    與丁君翊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임종에 가까워져서 보낸 편지로 보인다. 저자는 정시한과 같은 뛰어난 인물을 만나서 함께 상종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고 하면서, 그러나 이제는 명이 다하여 영결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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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8

    答李晉叔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李時善에게 보낸 편지이다. 귀양 중에 보낸 편지에 대해 감사했다. 저자는 복통을 앓고 있다고 했다. 이시선이 저자에게 세상을 위해 공을 세우고 세도를 바로잡는 일을 함께 하자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사람은 실로 알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형편이라고 하면서 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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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89

    答李晉叔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이시선이 한강 정구의 예서를 간행하면서 저자에게 발문 같은 글을 부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한강의 예학 저술은 실로 우리 고을에서는 나올 수 없는 대단한 사업이라고 칭찬하고,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천학비재가 이 글을 맡아서 사문의 손가락질을 당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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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0

    答李晉叔子見(時復)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李時善·李時復에게 보낸 편지이다.두 사람이 저자에게 태백산 유람에 동행을 권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백산은 동방의 명산이며 이곳 사람들도 평생 그 산에 오르기를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다. 저자는 태백산령이 정갈하지 못한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데 자신이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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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1

    答李晉叔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손자가 돌아와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늙어가면서 몸이 쇠약해지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번 보낸 매죽도 4폭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대의 뜻인 것 같다고 하며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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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2

    答李晉叔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세상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두 손녀가 성혼을 했으니 다시 무엇을 바라겠는가 라고 했다. 고을의 사론이 둘로 나뉘어졌다고 하고 다른 지방에 대해 부끄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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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3

    與金安安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泰基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태기가 저자에게 거문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음률을 알지 못하지만 오래 전부터 거문고를 가지고 싶었는데 이제 소원을 풀었다고 했다. 그러나 몸이 병이 들어 거문고를 타지는 못하고 다만 만지기만 해도 그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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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4

    與金安安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어제 학사공이 지나다가 들렸다고 하면서 고맙기가 이를 데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가 늙고 병들어 절실한 말은 하지 못하고 한가한 말만 하다가 보냈음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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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5

    答金安安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김태기가 저자에게 매죽도 4폭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감사하면서 자신이 자상한 사람이 되지 못하여 인사가 늦었다고 하고 칠언고시를 사례로 보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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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6

    與金會一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如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만난 후 서울로 떠났는지 물었다. 서울에 천연두가 유행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심을 당부했다. 호계서원에 갔다가 空空子를 만났는데, 楓井노인과 더불어 봄에 청량산을 유람하기로 했음을 알고 반드시 우리도 끼워 달라고 했음을 말했다. 축융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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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7

    與金會一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언행록이 다 정리가 되었으면 한 부 베껴서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묘갈명은 누구에게 위촉할 것인지 물었다. 선조의 글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문예적 능력만 갖춘 사람이어서는 안 되고, 그의 말이 후세에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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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8

    與金會一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죽기 전에 만나서 회포를 풀어야 하는데, 날씨가 이렇게 차가워서 거동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4일의 모임에는 꼭 참석하도록 하려고 했지만 형편이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저자의 심사는 육사형의 歎逝賦에 나타난 그대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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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399

    答金會一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김여만이 저자에게 예설에 관한 질의를 한데 대해 답변했다. 질의한 내용은 일종의 변례로서 자식을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고 나니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예설은 예서에는 없고 근대 명현의 답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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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00

    答金會一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저자가 벼슬을 받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관해 서술했다. 사유가 있는 경우라면 부임하지 않아서 저절로 기한이 지나 체직되게 하면 되는데, 이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침묵을 지키고 사은숙배를 하지 않는다면 다만 불공스러울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미안한 일이라고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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