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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0451

    與柳欽若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柳敬時에게 보낸 편지이다. 중씨의 방문을 감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箕山·五味 두 노인을 모시고 광흥사의 도회에 참석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拙菴記는 대강 완성을 했는데 원로에게 한번 보이고 수정을 해서 보내고자 했지만 만나기 어려워서 그리 하지 못했다고 했
    출처 : 유교넷
  • 350452

    答柳茂仲(夏時)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柳夏時에게 답한 편지이다. 말씀하신 내용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입을 댈 문제는 아니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 쓰는데,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알아서 처리하기 바란다고 했다. 다섯 수의 시 다음에 서문을 쓰는 것은 적당치 않은 줄 알지만 적어서 보낸다고 했
    출처 : 유교넷
  • 350453

    答金守之(必學)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必學에게 답한 편지이다. 練祭와 祥祭는 산소에서 거행하는 것이 아니고 거처하는 곳에 제단을 쌓고 행사하는 것이라 했고, 따라서 복제를 바꾸는 절차가 매우 미안하지만 부득이한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454

    答任(世楨)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任世楨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비워두었다. 예설에 관해 한강 정구와 동강 김우옹의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임세정이 한강의 학설만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쪽 고을의 사론이 다 그렇게 모아진 것으로
    출처 : 유교넷
  • 350455

    答載基孫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손자 載基에게 답한 편지이다. 재실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손자에게 공부에 힘쓸 것을 권면하였다. 좋은 동무가 많다니 반갑다고 했다. 또 『강목』은 방대한 책이어서 조금 보아서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것이라 하고, 흐리멍텅한 정신으로는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출처 : 유교넷
  • 350456

    先世遺事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저자 예안이씨 집안 선조들의 혼반관계를 정리한 글이다. 주로 유명한 선조들이 어느 집안으로 장가들었는지 간략히 밝혀 놓았다. 이름은 거명하지 않고 죄주선조, 판서선조, 판사선조, 주부선조 등으로 지칭했다.
    출처 : 유교넷
  • 350457

    金氏奉先錄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풍산에 살았던 효자 김씨의 약전이다. 효자각이 세워진지 5주기가 되었다고 했다. 향리에 효자가 있었음을 후세에 알려 모범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고, 더욱이 저자의 집안은 효자 김씨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 많아 그 전말을 기록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0458

    爲人呈府伯狀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안동 풍산현 철곡리에 사는 오소사라는 과부의 아름다운 행적을 현감에게 고한 내용이다. 오소사는 한량의 딸로 권흥리에게 시집갔는데, 시집간 지 수개월 만에 나라에 난리가 나서 남편은 전장에 나가 전사하고 말았다. 친정 부모는 아직 자식이 없는 딸을 개가시키려고 했지만
    출처 : 유교넷
  • 350459

    金道望德望字說(卽門人金侃金俔兄弟)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侃·金俔 형제의 자를 지어준 내력을 적은 글이다. 저자의 문인이기도 한 두 사람이 관례를 치르고 난 후 자를 지어줄 것을 부탁받았다. 저자는 두 사람에게 毅자와 行자를 써서 자를 지어 주었는데, 그 의미를 풀어 설명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460

    禮安李氏族譜序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예안이씨는 본래 전의이씨에서 이적되었는데, 전의이씨 족보에는 다만 언승이라고 하는 휘자만 기록되어 있고 그 자손들의 성명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예안이씨 족보에는 다만 제학선조를 비조로 하고 있고 그 선대를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여 이번에 족보를
    출처 : 유교넷
  • 350461

    朔講立議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풍산은 본래 학문하는 고장으로 전통이 있어 명종 때는 임금이 사액하여 충신 효자 열녀가 줄줄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올수록 전통이 희박해지게 되어 식자들이 한심하게 여겼다. 금년 가을에 안동 김대섭씨가 강우지역에 갔다가 상산이씨들이 매월 초하루에 강습하는 것을
    출처 : 유교넷
  • 350462

    向陽齋記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진성이씨 진사 군칙이 저자의 거처를 지나다가 저자에게 향양재의 기문을 부탁했다. 향양재의 의미는 재실이 정오의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더 깊은 의미는 주인이 소시적 과거공부를 했지만 장성하여 마음을 돌려 도학에 힘쓰기로 작정하고 그 표시로 재실의
    출처 : 유교넷
  • 350463

    磨崖草堂記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옛날 金昌文이라는 사람이 저자에게 써 준 마애초당이라는 글씨에 대한 기문이다. 저자가 마애에 우거하고 있을 때, 당시 필법에 능했던 김창문이 편액으로 쓰라고 마애초당이라는 대자를 써서 주었다. 저자는 잊어버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김창문의 글씨를 상자에게 발견하고,
    출처 : 유교넷
  • 350464

    志學齋記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학문에 뜻을 두고 저자에게 배우던 사람들이 재실을 짓고 이름을 지학재로 명명하였다. 그들이 저자에게 기문을 요청했기로 저자가 지학재의 기문을 지은 것이다. 고대의 학문 정신이 당시에 와서 많이 소홀해졌음을 강조해서 말하고, 소학과 대학의 학문적 의의와 절차에 대해 논
    출처 : 유교넷
  • 350465

    藥記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계해년 봄에 저자가 종기가 나서 많이 아팠던 것으로 보인다. 약을 써서 치료하고자 했지만 돈이 없어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원근의 친구들이 약값을 부조하였는데, 그 내역을 보낸 사람의 이름과 약재의 종류, 그리고 금액을 치부하여 둔 기록이다. 종기를 치료하기 위
    출처 : 유교넷
  • 350466

    惕若齋遺稿跋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惕若齋 金九容의 유고에 대한 발문이다. 김구용의 본관은 安東, 자는 敬之, 호는 척약재 혹은 六友堂, 시호는 文溫이다. 정몽주·박상충·이숭인 등과 함께 성리학을 일으키는 일익을 담당하였고, 친명 정책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시로 유명하여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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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67

    英陽南氏族譜跋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영양남씨 족보에 대한 발문이다. 영양남씨는 안렴공이 동방에 정착한 이래, 그 자손 가운데에서 명공거경이 배출되어 동방의 거족이 되었지만 믿을만한 족보가 없어서 오랫동안 병통으로 여겨왔다. 저자의 외조부 역시 일찍이 영양남씨 집안으로 장가들었으므로 발문을 쓰게 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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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68

    書豐山柳氏官敎帖後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풍산유씨 문중에서 대대로 소장해 오던 관교직첩을 모아서 만든 「풍산유씨관교첩」에 대한 발문이다. 풍산유씨 집안에서는 문충공 유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고관을 배출하였다. 저자는 그 후손인 졸재 유원지에게 배운 바 있어, 이를 계기로 발문을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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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69

    書佳野同門錄後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유일재 김언기의 문인록인 「가야동문록」에 대한 발문이다. 김언기의 문하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는데, 권도촌·신오봉·권노천을 비롯하여 지금까지도 그의 훈육이 계승되고 있다고 했다. 저자의 선조인 시은공 역시 유일재의 문하에서 배웠다고 했다. 유일재의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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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0

    書山城日記後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유유헌 남급(1592~1671)이 1636년 병자호란 때 사옹원 참봉으로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산성일기」에 대한 발문이다. 저자는 일찍이 유유헌의 문하에서 배웠기 때문에 당시의 사실을 익히 듣고 있었는데, 유유헌의 후손인 진사공이 일기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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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1

    書朱太史眞蹟後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중국에서 사신의 일행으로 방문한 朱太史는 명필이었다. 순천 김명순의 집안에는 주태사의 진적을 소장하고 있었다. 저자는 글씨를 빌려 조카로 하여금 모사하게 하고 돌려 주었는데, 이 때 주태사의 글씨에 대한 발문을 썼다.
    출처 : 유교넷
  • 350472

    書高翠屛天下圖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翠屛 高應陟(1531~1605)이 저자의 조부에게 헌정한 「천하도」에 대한 발문이다. 고응척은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온 중국의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직방설에서 얻은 바 있어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던 것이다. 당시에 이미 글자들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멸실되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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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3

    書百拙庵字集詩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百拙庵 柳稷이 모든 선비들이 애호하는 한석봉의 글자를 집자하여 율시 다섯 편을 만들었는데 이것에 대한 발문이다. 백졸암의 손자인 유하시가 그것을 목판으로 새겨서 인출하였는데, 저자는 선조의 뜻을 계승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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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4

    書湖憂先生遺稿後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蕪湖 李선생의 시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무호 선생은 서애 유성룡의 생질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훈도를 받아 학문과 사상이 언어문자의 말단에 그치지 않았다. 저자는 묘당에 있을 때는 백성을 걱정하고 강호에 있을 때는 임금을 걱정한다는 범중엄의 말을 상기하면서 그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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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5

    月梧里社奉安文(後改號箕川)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용궁면 월오리의 箕川정사에 文瑾의 위패를 제향할 때 지은 봉안문으로 보인다. 문근의 본관은 甘泉, 자는 士輝, 호는 雙槐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대사간 등을 역임하면서 조광조 등과 함께 훈구파와 맞서서 적극적인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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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6

    氷山書院三先生追享奉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빙산서원에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여헌 장현광의 세 선생의 위패를 추향할 때 지은 봉안문이다. 빙산서원은 빙산의 남쪽에 있어서 본래 모재 김안국, 회재 이언적 두 사람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는데, 이번에 세 위를 추향함으로써 5위의 위패를 모시게 되어 후세에 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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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7

    淸溪書院配位告事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청계서원에 사액이 되어 판제를 개수할 때 지은 고사문이다. 청계서원에는 세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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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8

    淸遠亭別廟奉安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풍산에 있던 淸遠亭에 별묘를 세우고 淸陰 金尙憲(1570~1652)의 위패를 제향할 때의 봉안문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주장하여, 1641년에 청나라에 끌려가 4년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 이어서 常享祝文이 첨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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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79

    虎溪書院告事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안동 임하에 있는 호계서원을 중건하고 지은 고사문이다. 호계서원은 본래 여강서원으로 출발하여 퇴계 이황의 위패만을 봉안했다가 후에 이황의 큰 제자인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였다. 1676년(숙종 2) 사액을 받고 호계서원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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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80

    五峰書院常享文(後改號臨湖)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상주의 임호서원에 표연말, 홍귀달, 채수, 권달수의 위패를 제향할 때 지은 상향문이다. 서원은 이들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것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복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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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81

    藏待書院常享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의성 장대서원에 김송은, 신회당, 신오봉, 이경정 네 사람의 위패를 봉안할 때 지은 상향문이다. 장대서원은 1663년(현종 4) 봉양면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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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82

    祭金上舍(邦烈)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邦烈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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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83

    祭金士興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邦杰에 대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484

    祭權皆玉(瑎)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權瑎에 대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485

    祭金安安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泰基에 대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486

    祭金茂叔(稶)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稶에 대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487

    祭李善餘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李元全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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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88

    祭李天源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李文潑에 대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489

    祭李彬如(彬)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李彬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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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0

    祭外舅柳公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저자의 장인 柳㰒에 대한 제문이다. 유학의 본관은 전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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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1

    祭李性初(命全)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李命全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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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2

    祭金逸叟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金壧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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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3

    祭鄭稚巖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鄭稚巖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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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4

    祭亡子鳳朝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저자의 양자인 鳳朝에 대한 제문이다. 鳳朝는 본래 백씨인 惟樑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저자에게 양자로 들어왔으나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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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5

    樂善堂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孤松 申弘望이 지은 낙성당에 대한 명이다. 신홍망은 자신이 살던 집 옆에 낙선당이라는 정자를 지어 시를 읊고 족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삼았다. 그의 손자 國模씨 대에 와서 정자를 개축했는데 옛날의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였다. 또 정자의 이름도 낙선당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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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6

    琴銘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거문고를 찬양한 명이다. 琴자는 禁한다는 뜻과 통한다. 거문고를 뜯음으로써 마음속에서 나쁜 생각이 생겨나는 것을 금한다. 아침저녁으로 거문고를 가까이하면 마음속의 찌꺼기가 마치 얼음이 녹듯이 사라지고 봄날의 안개처럼 옛사람의 뜻이 생겨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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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7

    芝山先生金公行狀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芝山 金八元(1524~1589)의 행장이다. 김팔원은 자가 舜擧, 초자가 秀卿, 본관은 江陵이다. 아버지는 績이고, 어머니는 永春李氏이다.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으며, 신재 주세붕과 퇴계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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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8

    方潭先生權公行蹟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方潭 權杠의 행적이다. 권강은 자가 公擧, 본관은 安東이다. 아버지는 遇臣이고, 어머니는 一直孫氏이다. 어릴 때부터 영오하여 문예에 취미가 있었으며 만력 기축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서애 유성룡의 문하에 나아가 위기지학을 배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봉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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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499

    處士全州李公行狀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처사 李榮基의 행장이다. 이영기는 자가 光先이고 본관은 全州이다. 아버지는 成立이고, 어머니는 昌原黃氏이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단정하고 엄전하였으므로 유영경과 이수봉이 보고 기이하게 여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족이 모두 관동으로 피란했다가 갑오년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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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500

    百拙庵先生柳公行狀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유장
    百拙庵 柳稷(1602~1662)의 행장이다. 자는 廷堅이고 본관은 全州이다. 아버지는 友潛이고, 어머니는 羽溪李氏이다. 유씨는 본래 문화유씨에서 갈라져 전주유씨가 되었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했다. 1635년 황해도의 유생들이 율곡 이이의 문묘종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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