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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父(1869)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태백산 史庫의 史閣 보수의 일을 맡았을 때, 그 일을 준공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仲父께 올린 안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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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季父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상소문을 올리기 위해 서울에 갔을 때 季父께 올린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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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穉敎(秀學)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族叔인 李秀學에게 보낸 것으로, 영남 지역 선비들의 뜻을 담아 상소문을 올리는 일에 대해 자문을 청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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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再從弟法祖(文稷)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뜻밖의 일로 인하여 울진에 가서 머물게 된 再從弟 李文稷에게 위로하는 뜻을 전한 편지이다. 이때 李文稷은, 임금의 큰 은혜를 손꼽아 기다렸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말로 미루어 보건대 유배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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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仲弟始百(敦稷)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집안일 때문에 외지에 나가 있는 아우 李敦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先祖의 관직 추증 여부와 諡狀을 올리는 일에 대해 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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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再從弟仲昊(敦羲)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타향에 寓居 중인 再從弟 李敦羲에게 성현의 말을 빌어 위로하고 조언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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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季弟公一(敦夔)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떠나 있는 아우 李敦夔에게 과거 시험장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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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姪重岳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조카 李重岳에게 보낸 편지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결과이니 탈 없이 돌아오기만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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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重明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과거시험에 응시하러 간 아들 重明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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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아들 李重明에게 보낸 편지이다. 시대를 염려하며 이런 때에 과거에 합격한들 장차 어디에 쓰겠느냐고 하였다. 다만 행동거지에 더욱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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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性求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손자 李性求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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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손자 李性求에게 공부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일러준 편지이다. 잡념을 제거하려면 『맹자』 奕秋章을 조석으로 읽어서 의미를 되새겨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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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情先後說(1873)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性과 情은 先後가 있는가에 대한 견해를 쓴 글인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性과 情은 원래 先後가 없고 理氣動靜처럼 서로 先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理氣動靜은 그 本原을 논하면 理靜이 先이 되고, 稟賦를 논하면 氣動이 先이 되니 애초에 先後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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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信庵集天根月窟設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일찍이 邵雍(宋代의 학자, 字:堯夫, 諡號:康節)의 글을 읽다가 ‘乾遇並時探月窟, 地逢雷處見天根’이라는 시구를 보았는데, ‘月窟’과 ‘天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근래에 『信庵集』을 읽다가 그것을 풀이한 것이 있어 기록해 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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腔子說(1872)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程子는 마음이 腔子 속에 있다고 하였는데, 腔子는 무엇이며, 사물을 應接한 때에도 心이 腔子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쓴 說이다. 강자는 ‘軀殼의 안'을 뜻하며, 마음은 수렴되어 있을 때나 사물을 응접할 때에나 늘 강자 속에 있으니 ‘在腔之心’과 ‘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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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信庵集師門讀書錄諸條往復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信庵集』에서 四端과 七情에 대한 논의를 스승 柳致明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자신의 견해를 쓴 글이다. 肯庵의 견해를 두 가지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四端은 本然之性에서 發하는 것이고 七情은 氣質之性에서 發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性을 두 가지로 나누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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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發時亦省察說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先祖인 李象靖의 문집에 있는 말을 인용하여 마음이 未發한 고요한 때에도 省察의 공부는 가능하다는 것을 밝힌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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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該動靜性情分動靜說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朱子의 ‘性은 動靜을 포괄한다❲性該動靜❳’는 설과 大山 李象靖의 ‘性情은 動과 靜으로 나뉜다❲性情分動靜❳’는 설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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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心統性情上中下三圖說(1874)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퇴계 선생의 「心統性情圖」를 해설한 글이다. 上圖‧中圖‧下圖의 의의가 각각 어떻게 다른지, 배우는 자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는지를 설명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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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氣無限量說(1874)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천지에 가득 찬 것은 理氣가 流行한 것인데, 理는 分段이 없으니 限量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氣는 消息하는 경우가 있으니 限量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논제에 대한 說이다. 氣의 盈虛消息은 들숨과 날숨, 썰물과 밀물 같은 것이어서 결국 限量이 없는 것이라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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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氣體用說(1875)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理와 氣를 體와 用으로 나누는 朱子의 여러 가지 이론을 나열한 뒤, 그것을 종합하여 원만한 이해를 도출해 보려한 說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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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以直內說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以敬直內’라고 하지 않고 ‘敬以直內’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를 마음의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해낸 說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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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而生陽不可作已發看辨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或問』에는 ‘動而生陽, 不可作已發看’이라는 延平 李先生의 말이 실려 있는데, 이 글은 그 이론이 타당한 것인가를 논변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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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養涵養辨(1872)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存養과 涵養은 다 같은 하나의 수양일 뿐인데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친구 安陵 李叔珍의 물음에 답변한 글이다. 動과 靜을 근거로 하여 存養과 涵養의 차이점을 분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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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理人欲同行異情辨(1871)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天理와 人欲은 上智의 인물이나 下愚의 인물이 공유하는 것이나, 人欲을 天理에 맞게하는 점에서 上智와 下愚의 차이점이 있게 된다는 說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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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有出入無出入辨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心은 出入함이 있다는 설과 없다는 설이 있는데 그것은 관점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잡으면[操] 入하고 놓으면 [舍] 出한다는 說이 타당하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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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系子之女爲本生祖父母服疑辨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양자로 나간 사람의 딸이 친조부모를 위해 입어야 할 服制에 대해 논변한 글이다. 아버지가 양자인 경우 그 딸이 시집가지 않은 경우 한 등급 강등된 복제인 大功服을 입는데, 시집간 경우 한 등급 더 강등된 복제를 입어야 한다는 설이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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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禮襲後小斂前孝巾疑辨(1879)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禮書에서 孝巾을 써야 할 시기를 분명하게 말해 두지 않아 小斂 후에 孝巾을 쓰는 집안이 종종 있는데, 襲을 한 뒤에는 孝巾을 쓰고 小斂 후에는 頭巾을 써야 한다고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50779
朱子中和書坤復初晩說疑辨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朱子의 知覺 動靜에 대한 이론이 만년에 달라진 점을 논변한 글이다. 朱子는 「論中和第六書」에서 생각이 싹트기 전에도 지각은 어둡지 않으니 靜中動인지라 復卦에 해당된다고 하였는데, 만년에는 그것을 至靜之中이라 하였으니 坤卦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이론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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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第九章疑義辨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中庸』 제9장의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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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祧遷私議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철종 2년에 있었던 종묘의 祧遷 문제에 대한 의견을 기록한 글이다. 헌종 임금이 죽고나서 철종이 등극한 후 眞宗(영조의 아들 敬義君을 추존한 명칭)의 신위를 永寧殿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는데, 철종은 眞宗의 증손자 항렬에 해당했으므로 논란이 있었다. 이 글은 왕위 계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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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制追後成服疑議(1851)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肯庵은 헌종이 승하한 다음 해인 철종 1년(1850)에 급제하였는데 헌종에 대한 喪服을 어떻게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國制에는 왕이 승하하던 당시에 관직이 없던 자가 그 후에 급제하여 어떻게 成服한다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긍암은 스승 柳致明에게 자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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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亥邦制疑辨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1863년 철종이 승하하였을 때 대왕대비의 복제를 朞年으로 정하였다. 긍암은 이 복제가 기해년 효종 승하시 宋時烈이 정했던 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며, 마땅히 齊衰三年으로 했어야 옳다고 논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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廬居問答(1858)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이 글은 긍암이 모친상을 당해 여막을 지키던 1858년에 쓴 것으로 과객과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객은 충청도 선비 柳緯明이며, 두 사람의 문답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기해년 禮訟 문제에 대한 논의인데, 효종이 승하한 후 대왕대비가 朞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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濠上問答(1865)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太極圖說」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의문점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정리한 글이다. 太極과 無極은 서로 모순된 말이 아니냐는 질문에서 시작한 문답은 점차 부연되어 四端七情의 문제에까지 이어지는데, 전체 16개 조목의 질문과 답변이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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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湖洛問答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편자 미상의 『湖洛問答』이라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반박하여 논변한 글이다. 제목 아래에 “이 책을 살펴보니 누가 편집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속에 의심스러운 바가 많이 있어 諸賢의 말을 인용하여 조목별로 논변한다”는 말이 부제 형식으로 붙어 있다. 글의 내용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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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疑辨答(1862)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난해한 예법 조목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둔 글이다. 다루고 있는 항목을 요약하면 養子의 명칭 문제, 養子의 服喪문제, 喪服 杖朞條의 순서 문제, 父在母喪의 服喪 문제, 양자간 아들의 아내에 대한 시부모의 服喪 문제, 宗子의 어머니가 살아있는 경우 宗婦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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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箚錄(1862)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心經』을 읽다가 깨달은 바를 기록해둔 글이다. 『心經』에서 해당되는 구절을 일부 옮겨 적고 그 아래에 저자의 생각을 부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23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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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書箚錄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朱子의 서간문 중에서 느낀 바가 있는 구절을 옮겨 적고 그 아래에 저자의 감상을 기록해 둔 글이다. 주로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나 학문하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는데, 모두 9개의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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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沙溪語錄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畿湖學派를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학자인 沙溪 金長生(1548~1631) 의 어록을 읽고, 그 글 가운데 嶺南學派의 학설과 배치되는 이론을 반박한 글이다. 반박한 조목은 모두 4개인데, 모두 主氣的 理氣論과 연관된 이론을 主理的 입장에서 논박한 것이다. 글의 말미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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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非錄上(1855)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자신의 잘못된 점과 가져야 할 올바른 생활 태도를 정리하여 기록한 글이다. 「연보」를 참고해 보면, 긍암은 나이 49세 되던 1855년에 「知非吟」이라는 시를 짓고 또 「知非錄」 上中下 3편을 지었다고 한다. 「知非吟」이라는 시의 서문에는 “晦齋 선생은 나의 46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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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非錄中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知非錄」 중편도 상편과 같은 취지에서 쓰여진 것이어서 개인적인 허물을 반성하는 내용이 더러 있지만 보편적 윤리 덕목을 강조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중편의 요지를 간추려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젊은 시절 義城 雲水庵에서 공부하던 때에 밤낮 끊임없이 정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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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非錄下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知非錄」 하편에서는 8조목의 덕목을 제시하고 있는데, 글의 말미에 “비록 배움이 미숙했으나 이전의 배움은 진정한 배움이 아니었고, 비록 체득하여 행함을 알았으나 이전의 앎은 진정한 앎이 아니었다”고 하여 자신을 새롭게 할 뜻을 드러내었다. 하편에서 말한 덕목의 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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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二十七章圖(1858)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중용』 제27장의 내용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긍암은 이 그림을 그린 후 스승 柳致明에게 질정한 바가 있으니 그 사연이 권 3에 실려있는 「上定齋先生」에 나타나 있다. 그림 뒤에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취지를 부기하여 두었는데, 「중용」의 내용 중에서 27장이 학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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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贊圖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宋나라 때의 학자 眞德秀가 지은 「心經贊」을 도식화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내용을 조금도 축약하지 않고 전문 그대로를 도식화한 점이 특이하다. 원문과 달라진 글자는 ‘道心伊何, 源於性命’이라는 구절의 ‘源’자인데, 원문에는 ‘根’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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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溪河先生實紀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사육신의 한 사람인 丹溪 河緯地와 관련된 글을 모아 만든 책의 서문이다. 하위지의 숭고한 충절을 기리고, 또 이 책 속에 실은 글을 간략히 소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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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纓金先生年譜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濯纓 金馹孫의 연보에 대한 서문이다. 연보는 김일손의 조카 三足堂 金大有가 쓴 것이다. 그 글이 화를 입지 않고 오래도록 전해온 것은 하늘의 뜻이며, 무오사화 때의 군자와 소인을 후세에 길이 알려 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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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溪先生全公實紀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은퇴했던 무신 休溪 全希哲의 實紀에 대한 서문이다. 전희철의 절의에 대한 기록이 역사서에는 남아 있지 않으나 그의 묘갈문과 그와 함께 은퇴한 老松 鄭知年의 행장에는 남아 있으니, 마땅히 단종의 사당에 배향된 32인과 함께 배향되어야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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磨厓權公文集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磨厓 權輗(1495~1549)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권예는 기묘사화 때 조광조 일파를 극력 변호하였으며, 퇴계선생이 높이 평가한 인물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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逍遙堂朴公遺集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逍遙堂 朴河淡(1479~1560)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박하담은 회재, 퇴계 두 선생과 학문을 논변하는 편지를 주고받은 학자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아 기묘년과 을사년의 사화에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