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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0851

    舞溪朴公文集跋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舞溪 朴公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그의 글은 義理가 명백하고, 문장이 簡古하다고 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52

    黙軒李公文集跋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黙軒 李公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그의 글은 高古하고 簡淡한 맛이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53

    簡齋邊公遺集跋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簡齋 邊中一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簡齋는 임진왜란 때 鶴峰 金誠一과 忘憂堂 郭再祐의 의병에 참여하였으며 忠孝에 돈독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54

    昌臺鄭公實紀跋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우고 호조참판에 추증된 昌臺 鄭大任(1553~1594)과 관련된 글을 모아 만든 實紀의 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55

    柳村朴公遺集跋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柳村 朴公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柳村은 무과에 급제한 무신으로서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와 함께 많은 전공을 세웠고, 난이 끝난 뒤에 고향에 돌아와 유학에 몰두했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350856

    東厓李公御製十箴發揮後跋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숙종대왕이 세자를 위해 十箴을 지었는데 東厓 李公이 그 의미를 해설한 글을 썼다. 이 발문은 그 글이 이루어지게 유래를 밝힌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57

    平庵先生權公文集跋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平庵 權正忱(1710~1767)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平庵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할 때 극력 옹호하다가 형장에 끌려 갔는데 특지로 석방되었으며, 그 후 낙향하여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58

    敬書蘭軒李公自省四十目後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蘭軒 李公의 「自省四十目」에 대한 발문이다. 蘭軒은 朱子의 「敬齋箴」과 西山 眞德秀의 「誠齋箴」에서 가장 긴요한 구절을 뽑아 강령을 만들고, 그것을 부연하여 40개의 조목을 만들어 항상 자신을 수신하는 준거로 삼았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350859

    聾訥齋卞公遺稿跋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屛山에 사는 문하생 卞鐸秀의 선조 聾訥齋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60

    敬書家藏讀書錄抄後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고조 大山 李象靖이 薛敬軒의 『讀書錄』을 초록하여 두었는데, 이제 내가 그것을 베껴 책을 만들어 책상 위에 두고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1

    書南氏宗稧案後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外先祖 南護軍의 代가 끊어진 지 오래되어 원근의 자손들이 이제 南鍾成을 종손으로 삼아 끊어진 제사를 잇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62

    安塢南公遺稿跋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친구인 南聖奎의 선조 安塢 南公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글이 平實古雅하다고 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3

    書再從弟德明(馨稷)家傳箕帚後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재종아우 李馨稷의 집에 전해오는 책에 대한 발문이다. 그 책의 내용은 朱子의 독서법이요, 고조할아버지 李象靖의 晩修錄이며, 작은 할아버지 所庵公의 필체로 이루어져 있고, 할아버지 俛齋公의 발문이 붙어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4

    克己箴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남을 이기는 것보다 쉬우니,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을 이기도록 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5

    操心箴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군자는 마음을 잡고 소인은 마음을 놓아 버리는데, 敬以直內하여야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6

    荷石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연꽃의 깨끗함과 돌의 단단함을 본받겠다는 뜻의 銘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67

    鑑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얼굴의 美醜는 거울로 비추어 볼 수 있으나 마음의 美醜는 무엇으로 비추어 볼까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8

    案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책상에 대한 銘으로, 성현의 책을 죽을 때까지 항상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69

    盤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몸의 때는 목욕으로 새롭게 할 수 있고, 마음의 때는 日新又日新으로 새롭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0

    履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신발에 대한 銘이다. 올바른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1

    罏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화로에 대한 銘이다. 깨끗한 그림이 있는 따뜻한 난로를 보면 西山 眞德秀가 天君(마음)을 엄숙히 섬겼던 것을 생각하고, 한 점 눈발이 화로에 녹아드는 것을 보면 顔子가 극기복례하여 仁으로 돌아감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2

    權祖源字辭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權世淵에게 世淵이라는 이름과 祖源이라는 字를 지어주고 그 의미를 풀이한 글이다. 훌륭한 선조의 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노력하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3

    族弟家德(敦大)字辭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族弟 李敦大에게 家德이라는 자를 지어주면서 이름과 자의 의미를 설명한 글이다. 『중용』 제30장에서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4

    南國卿(錫恒)字辭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南錫恒에게 國卿이라는 字를 지어주며 이름과 字의 의미를 풀이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75

    雲川廟宇上樑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울산에 있는 雲川廟의 상량문으로 그곳에는 고려조의 인물 蔚山君 李先生과 조선 문종 때의 湖亭 李先生을 제향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6

    栗里別廟上樑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경북 군위군에 있는 栗里에 敬齋 洪魯를 제향하는 사당을 지을 때 쓴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77

    方壺社廟宇上樑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경북 청송군에 있는 方壺 趙遵道를 제향하는 사당에 대한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78

    公山講堂上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안동에 있는 公山講堂의 상량문이다. 이곳에는 원래 남씨 세 사람(해제자 註:『교남지』에 의하면 進士 南太白과 南太華, 南太別이라고 함)을 제향하는 사당이 있었는데, 이제 세월이 오래되어 강당을 겸하는 건물로 고쳐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79

    懶拙齋先生李公影堂上樑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안동 풍산에 있는, 懶拙齋 李山斗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에 대한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0

    南山講堂上樑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경주 南山에 있는, 是庵 任華世(1675~1731)를 제향하는 齋室을 지을 때 쓴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1

    東巖亭重建上樑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안동 풍산에 있는, 東巖 柳長源의 東巖亭이 낡고 오래되어 중건할 때 쓴 상량문이다. 東巖은 大山 李象靖의 제자로서 성리학, 예학 등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출처 : 유교넷
  • 350882

    沂川廟宇上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義城 點村에 있는, 杏亭 權軾을 제향하는 사당의 상량문이다. 杏亭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개하여 이곳으로 옮겨와 은거하였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350883

    西山廚舍上樑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긍암의 先祖인 稼亭 李穀과 牧隱 李穡을 제향하는 사당의 廚舍가 낡고 허물어져 다시 지을 때 쓴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4

    古溪亭上樑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안동 萬山에 있는 古溪亭에 대한 상량문이다. 이 정자는 恭肅公 李明德의 후손 孝子 李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하므로 禮安 溫惠洞의 고계정과 다른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5

    崔敬立(命德)哀辭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八公山 아래 漆溪에 살던 敬立 崔命德의 죽음을 슬퍼한 애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6

    崔君元敎哀辭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崔元敎의 죽음을 슬퍼한 애사이다. 崔元敎는 긍암의 손자 李性求의 장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7

    誄金致一(誠樞)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이웃에 살던 동갑인 친구 金誠樞의 죽음을 슬퍼한 誄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8

    誄金文見(絅輝)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친구 金絅輝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공덕을 찬술한 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89

    玩龜安公墓道改碣時告由文(代本孫作)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墓碣을 다시 세우게 된 것을 告由하는 글로 安氏 후손 대신 지어준 것이다. 玩龜 安公의 묘갈이 임진왜란 때 부서졌는데, 그 동안 다시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후손들이 뜻을 모아 새로운 묘갈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0890

    시호가 내린 것을 사당에 告由하는 글인데, 朴成陽의 후손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朴成陽(해제자 註:『교남지』 義城조에 인물에 대한 설명 있음)은 고려가 망하자 義城에 은거하며 태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 후 왜구 토벌에 나서 공을 세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50891

    紫巖 李民寏(1573~1649)에게 忠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사당에 고유하는 글인데, 그 후손을 대신하여 지어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92

    丹邱書院奉安文(代士林作)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의성에 있는 丹邱書院에 세 분의 위패를 봉안하는 奉安文으로 사림을 대표하여 지은 것이다. 제향되는 사람은 선조 때의 문신 虎溪 申適道, 懶齋 申悅道 형제와 그 자손 忍齋 申埰인데, 각각의 봉안문과 常享祝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0893

    進士南公墓所歲奠常享祝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유림에서 進士 南公의 묘소에 해마다 제사드릴 때 사용하는 축문이다. 進士 南公은 퇴계의 제자이며 학자로 이름나 魯林書院에 봉안된 南致利로 추정된다.
    출처 : 유교넷
  • 350894

    鳳岡里社常享祝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목화씨를 들여온 忠宣公 文益漸과 물레를 개발한 그의 손자 靖惠公 文萊를 제향하는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95

    魯林壇祀時告由文(代士林作)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魯林書院이 서원철폐령에 의해 없어졌으나 그곳에서 제향하던 賁趾 南致利에 대한 제향은 그만둘 수 없었으므로 제단을 만들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 글은 노림서원 자리에 제단을 만들어 南致利를 제향하며 그 사실을 告由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96

    林溪 曹景溫이 이조참판에 추증되어 이를 사당에 告由한 글인데, 그의 후손을 대신하여 지었다. 林溪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닥치는데도 피난하지 않고 시묘살이를 하다가 죽음을 당했는데, 그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벼슬이 추증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97

    긍암의 고조 大山 李象靖의 묘소에 비석을 세울 때 쓴 고유문인데, 부친을 대신하여 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98

    祭松巖權先生文(遷厝時)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松巖 權好文에 대한 제문이다. 송암은 퇴계의 제자이고 학덕으로 명망이 있어 송암서원에서 제향되었는데, 이 무렵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없어졌다. 이 제문은 서원에 있던 위패를 다시 무덤에 묻으며 제사할 때 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0899

    祭定齋柳先生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긍암의 스승 定齋 柳致明에 대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0900

    祭溪巖金先生文(甲寅遷厝時代大人作,1854)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돈우
    溪巖 金坽에 대한 제문이다. 계암을 제향하던 서원이 철폐되자 그 위패를 무덤에 묻으며 제사할 때 쓴 것이다. 계암은 긍암의 부친 외가쪽의 선조이며, 이 글도 부친을 대신하여 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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