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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1882) 3월 유필영(柳必永)이 친적과 문중의 중흥을 위해 헌신함을 기리며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필영임오년(1882) 3월 27일, 족손(族孫 : 친척 손자)인 유필영(柳必永 : 1842∼1924)이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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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1883) 3월 유장식(柳章植)이 망자의 덕행과 인품을 회고하며 족증조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증손 자최인 자식계미년(1883) 3월 27일, 족증손(族曾孫 : 친척 증손자)이며 재최인(齋衰人 :상주)인 유장식(柳章植 : 1859∼1897)이 족증조(族曾祖 : 친척 증조부)인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출처 : 유교넷 -
351303
신사년(1881) 8월 유인흠(柳人欽)가 망자의 은덕과 덕행을 그리워하며 종숙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인흠신사년(1881) 8월 1일, 종질(從姪 : 5촌)인 유인흠(柳仁欽)가 종숙(從叔 : 5촌)인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351304
계미년(1883) 3월 유연집(柳淵楫)이 망자의 충효 사상과 학문 정신을 회고하며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연집계미년(1883) 3월, 족손(族孫 : 친척 손자)인 유연집(柳淵楫 : 1853∼1933)이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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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894) 10월 유지호(柳止鎬)가 어진 덕행과 인격미를 회고하며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우족질 지호갑오년(1894) 10월 27일, 우족질(友族姪 : 벗의 친척 조카)인 유지호(柳止鎬 : 1825∼1904)가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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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1883) 3월 유광호(柳廣鎬)가 망자의 학문적인 성과와 어진 성품을 그리워하며 족숙 처사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광호계미년(1883) 3월 27일, 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유광호(柳廣鎬 : 1859∼1927)가 족숙(族叔 : 친척 숙부)인 처사(處士 :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고 살아간 남자)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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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1830) 1월 유건휴(柳健休)가 혈육과의 영원한 사별을 아파하면서 사제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형 건휴경인년(1830) 1월 12일, 형인 유건휴(柳健休 : 1768∼1834)가 사제(舍弟 : 친 아우)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형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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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1882) 3월 유이문(柳以文)이 망자의 어진 행실을 추모하며 근암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이문임오년(1882) 3월 27일, 친척인 유이문(柳以文 : 1820∼1894)이 근암(近庵)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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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1894) 10월 유연각(柳淵覺)이 망자의 어질고 평소 은덕을 그리워하며 족대부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연각갑오년(1894) 10월 27일, 족손(族孫 : 친척 손자)인 유연각(柳淵覺 : 1858∼1904)이 족대부(族大父 : 친척 할아버지)인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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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1883) 3월 유치우(柳致宇)가 망자의 빼어난 학문과 은덕을 추모하며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치우계미년(1883) 3월 27일, 족제(族弟 : 친척 아우)인 유치우(柳致宇 : 1854∼?)가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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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1882) 1월 유연청(柳淵靑)이 망자의 행적과 덕행을 추모하며 삼종조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연청임오년(1882) 1월 27일, 삼종손(三從孫 : 8촌)인 유연청(柳淵靑)이 삼종조(三從祖 : 8촌 할아버지)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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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10월 이병하(李秉夏)가 망자의 효성과 우애를 회고하며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병하경자년 10월 9일, 이병하(李秉夏)가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평소에 성실하고 친절했던 면모를 회고했다. 망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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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3월 이승익(李承翊)이어 외왕고 처사 부군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이승익경술년 3월 29일, 외손(外孫) 이승익(李承翊)이 외왕고(外王考 : 외할아버지)인 처사(處士 :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고 살아간 남자) 부군(府君)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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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12월 권동진(權東鎭)이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자 권동진경술년 12월 9일, 통가자(通家子 : 대대로 알고 지내는 관계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권동진(權東鎭 : 안동)이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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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12월 김희락(金希洛)이 처사 유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김희락신해년 12월 9일, 통가하생(通家下生 : 대대로 알고 지내면서 나이가 어린 자)인 김희락(金希洛 : 본관 의성)이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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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1879) 7월 유치덕(柳致德이 족종숙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치덕기묘년(1879) 7월 7일, 족종질(族從姪 : 5촌)인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이 족종숙(族從叔 : 5촌)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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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12월 정병규(鄭炳圭)가 처사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손 정병규경술년 12월 9일, 정병규(鄭炳圭)가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절실하게 표현하면서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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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3월 김동현(金東鉉)이 처사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생 김동현경술년 3월 29일, 통가생(通家生 : 대대로 알고 지낸 집안의 어린 자)인 김동현(金東鉉)이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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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1940) 8월 유동진(柳東震)이 처사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동진경진년(1940) 8월 15일, 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유동진(柳東震 : 1916∼1951)이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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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1941) 8월 유연태(柳淵泰)가 족형 처사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연태신사년(1941) 8월 15일, 족제(族弟 : 친척 아우)인 유연태(柳淵泰 : 1873∼1955)가 족형(族兄 : 친척 형) 처사(處士) 유공(柳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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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뢰(柳淵雷)·유연각(柳淵覺)등이 망자의 인품과 덕행 학문정신을 추모하며 족대부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혼문족제(族弟 : 친척 아우)인 유혼문(柳渾文 : 1802∼1873)이 족형(族兄 : 친척 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아름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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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1877) 4월 유치덕(柳致德)이 조상을 여윈 슬픔과 그리운 정을 담아 종조부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치덕정축년(1877) 4월 손자인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이 종조부(從祖父 : 할아버지의 형제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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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1941) 11월 유동수(柳東銖)가 문소김씨의 신주을 모신다는 것을 사당에 알린 축문(祝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손 동수신사년(1941) 11월 17일, 오대(五代) 손자인 유동수(柳東銖 : 1899∼?)가 조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알린 축문(祝文)이다. 돌아가신 문소김씨의 신주를 고쳐서 모신다는 것을 알린 글이다. 조상들의 벼슬과 본관을 차례로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351324
갑술년(1874) 3월 유용진(柳龍鎭)이 재종대부(再從大父) 처사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용진갑술년(1874) 3월 20일, 재종손(再從孫 : 6촌)인 유용진(柳龍鎭 : 1845∼1893)이 재종대부(再從大父 : 7촌)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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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뢰(柳淵雷)·유연각(柳淵覺)등이 망자의 은덕과 추억을 회고하며 족대부 근암 유치덕(柳致德)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연뇌·연각 등족손(族孫 : 친척 손자)인 유연뢰(柳淵雷 : 전주)·유연각(柳淵覺 : 1858∼1904) 등이 족대부(族祖父 : 친척 할아버지)인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 1823∼18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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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호(柳廣鎬)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광호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유광호(柳廣鎬 : 1859∼1927)가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에 대한 사별의 아픔을 문학적인 정감으로 절실하게 표현했다. 망자가 유교 경전을 연구하고 유교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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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식(柳元植)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현손 원식족현손(族玄孫 : 친척 증손의 아들)인 유원식(柳元植 : 1857∼1905)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학문을 회고하면서 우수한 가문의 정신을 이어받아 출중한 선비의 형상을 갖추출처 : 유교넷 -
351328
신종호(申鍾浩)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시생 신종호사하시생(査下侍生 : 사돈이면서 나이가 어린 자)인 신종호(申鍾浩)가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어진 인품과 고결한 평소의 행적을 추모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표출하였다. 망자가 평소 자신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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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윤(柳致潤)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치윤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류치윤(柳致潤 : 1805∼1880)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집약하여 표현했다. 망자가 평소 친척과 가문의 번영을 위해 헌신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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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金養鎭)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김양진정우(情友 : 정으로 사귄 친구)인 김양진(金養鎭 : 1829∼1901)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평생 행적을 간략하게 표현하면서 슬픔과 그리움을 토로하였다. 망자의 학문과 인격미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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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덕(鄭鎭悳)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정진덕통가제(通家弟 : 대대로 알고 지내며 동생뻘인 자)인 정진덕(鄭鎭悳)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산수 자연과 더불어 심성을 기르고 아름다운 덕행을 쌓았던 점을 추모했다. 그리고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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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도(金鎭道)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손우 김진도손우(損友 : 벗)인 김진도(金鎭道)가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집안 고유의 유풍과 유교적인 교양을 터득하여 어진 인품과 유교적인 교양을 익혔다고 했다. 그리고 망자가 가문의 중흥과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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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집(柳淵楫)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연집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유연집(柳淵楫 : 1853∼1933)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평소 어진 유학자로서 많은 이들에게 인격적인 감화를 미쳤던 점을 추모했다. 망자의 어진 인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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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원(朴時源)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박시원정우(情友 : 정으로 사귄 벗)인 박시원(朴時源)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영남 유림의 정기를 이어받고 집안 고유의 학문 전통을 이어 아름다운 선비의 모습을 이루었다고 하고 유림 사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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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흠(柳健欽)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건흠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유건흠(柳健欽 : 1825∼1891)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가문 전통과 가문의 정신과 학문을 계승하여 단아한 선비 형상을 구비했던 점을 추모했다. 망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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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림(金鎭林)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경제 김진림경제(庚弟 : 사돈 사이이면서 아우뻘인 자)인 김진림(金鎭林)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평소에 실천했던 충효 정신과 문중 및 가족들의 화목을 위해 노력했던 점을 추모했다. 그리고 망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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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림(金鎭林)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치덕유치덕(柳致德)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어질고 고결한 면모를 회고하면서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였으며, 순수한 인품과 어진 덕행 및 충효 정신을 추모하면서 그리움과 슬픔을 복합출처 : 유교넷 -
351338
유치숙(柳致淑)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족종 치숙정우(情友 : 정으로 사귄 아우)인 유치숙(柳致淑)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우수한 가문 배경과 어진 인품 및 고결한 학문 자세를 추모했다. 평소 많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덕행과 아름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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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원(李㙫元)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계 이집원정계(情契 : 정으로 사귄 사람)인 이집원(李㙫元)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자연 대상에 비유하여 슬픔을 표현했다. 망자의 인품과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행적출처 : 유교넷 -
351340
유휘문(柳徽文)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휘문족질(族姪 :친척 조카)인 유휘문(柳徽文 : 1773∼1832)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덕행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고 평소 많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덕행과 업적을 회고하면서 그리움과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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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대(金洪大)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홍대정제(情弟 : 정으로 사귄 아우)인 김홍대(金洪大)가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가문 배경을 언급하면서 충효 정신과 우수한 학문 자세 및 덕행에 대해 추모했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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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호(柳廷鎬)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정호족질(族姪 :친척 조카)인 유정호(柳廷鎬 : 1837∼1907)가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베푼 은덕을 추모하고 어진 성품과 학문 및 덕행에 대해 회고하면서 그리움을 나타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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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식(柳東植)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증손 유동식족증손(族曾孫 : 친척 증손)인 유동식(柳東植 : 1832∼1904)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는 집안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고 하면서 망자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훌륭한 가문의 전통을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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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용(權燦鏞)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소제 권찬용정소제(情少弟 : 정으로 사귄 아우) 권찬용(權燦鏞 : 본관 안동)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행적과 학문 및 덕행을 회고하면서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평소 많은 이들에게 인격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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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혼문(柳渾文)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혼문친척인 유혼문(柳渾文 : 1802∼1873)이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반영했다. 망자의 유교적인 인격미와 평소 많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어진 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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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호(柳建鎬)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건호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유건호(柳建鎬 : 1826∼1903)가 망자의 영전에 죽은이의 아름다운 인품과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 슬픈 마음을 담아낸 만사(輓詞)이다.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문학적인 비유를 통해 절실하게 표출하였다. 망자의 순수하고 어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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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엄(柳致儼)이 전주 유씨의 족보(族譜)를 완성한 뒤에 붙인 [족보발(族譜跋)]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치엄후손인 유치엄(柳致儼 : 1810∼1876)이 전주 유씨의 족보(族譜)를 완성한 뒤에 붙인 글인 [족보발(族譜跋)]이다. 고친 흔적이 많은 것으로 보아 처음 쓴 글을 고치는 과정의 글로 보인다. 전주 유씨의 유래와 역대 조상들의 내력을 기록하면서 학문과 덕행이 대대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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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극(柳致極)이 친척 가운데 도준(道峻)이라는 자(字)를 지어준 것에 대해 기록한 서도준자사후[(書道峻字辭後)]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발급자미상이 친척 동생[族弟]인 유치극(柳致極 : 1854∼1898)에게 도준(道峻)이라는 자(字)를 지어준 것에 대해 해설을 붙여 준 글이다. 이것의 의미를 유교 경전에서 끌어와서 설명한 글이다. 유교적인 수신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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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族姪 : 친척 조카)인 류지호(柳止鎬 : 1825∼1904)가 그의 조상인 정재(定齋) 류치명(柳致命 : 1777∼1861)이 봉산(鳳山) 아래에 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봉산정(鳳山亭)에 대해 기록한 [봉산정기(鳳山亭記)]이다. 유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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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화(金道和)가 예(禮)에 대해 고증하면서 이에 대해 기록한 [전례고증서(典禮攷證序)]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김도화정우(情友 : 정으로 사귄 아우)인 김도화(金道和 : 1825∼1912, 號 拓庵, 본관 聞韶)가 예(禮)에 대해 고증하면서 이에 대해 기록한 문건인 『전례고증(典禮攷證)』에 대한 서문인 「전례고증서(典禮攷證序)」이다. 중국 역대 성리학자들의 견해를 제시하면서 예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