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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1822) 10월 28일 박진겸(朴鎭謙)이 초상에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정씨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박진겸임오년(1822) 10월 28일, 아우이며 상주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상주인 정씨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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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에 박익지(朴益之 : 大所軒 朴鎭謙의 字, 1762∼1831)가 구미(龜尾)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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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1813) 12월 19일 박진겸(朴鎭謙)이 시집 보낸 딸이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염려하며 구미(龜尾)에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박진겸계유년(1813) 12월 19일, 사돈 사이며 아우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구미(龜尾)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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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1814) 9월 30일 박진겸(朴鎭謙)이 초상과 겨울에 치뤄지는 아들의 혼례를 염려하며 정씨에게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박진겸갑술년(1814) 9월 30일, 사돈 사이며 아우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상주인 정씨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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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1828) 12월 4일, 장인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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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4월 7일 유교영(柳敎榮)이 남편을 잃은 제수씨의 건강과 안부를 염려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중내종 유교영경인년 4월 7일, 고종 사촌인 유교영(柳敎榮)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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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3월 30일 이정채(李鼎采)가 혼례 일자를 알리기 위해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이정채갑자년 3월 30일, 이정채(李鼎采 : 본관 驪州)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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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5월 6일 김굉(金㙆)이 혼인예식과 관련하여 생년월일을 기록한 주단을 보내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김 굉임술년 5월 6일, 김굉(金㙆 : 본관 聞韶)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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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10월 15일 이수영(李秀榮)이 조상 추모글을 써주기로 허락한 것에 대해 감사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영갑술년 10월 15일, 이수영(李秀榮 : 본관 載寧)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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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7월 10일 이징호(李徵鎬)가 봄에 빌린 돈을 인편을 통해 갚겠다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이징호계묘년 7월 10일, 가르침을 받은 이징호(李徵鎬)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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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9월 29일 유교식(柳敎植)이 안부와 아들의 학문 활동이 왕성함을 칭찬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유교식무신년 9월 29일, 아우 유교식(柳敎植)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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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천로(車天輅)가 쓴 당나라와 송나라의 율시 가운데 정수를 뽑아 만든 책의 머리글인 「당송율수서(唐宋律髓序)」 / 기록자료>고문서 / 차천로차천로(車天輅)가 쓴 당나라와 송나라의 율시 가운데 정수를 뽑아 만든 책의 머리글인 「당송율수서(唐宋律髓序)」이다. 당송 율시 가운데 문학성과 사상성이 뛰어난 작품을 모아 책으로 만들면서 후세 사람들이 당송 율시의 진수를 쉽게 익히도록 배려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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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정(李光庭)이 김시원(金始元)의 자(字)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의 인품과 유교적 인간미를 회고한 「김경인자설(金景仁字說)」이다. 유교적인 자연관과 인간에 대한 애정 의식이 담긴 글이며, 김시원과의 관계를 회고하면서 유교적인 덕성을 강조하고 개인적인 감수성과 인간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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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의 뜻을 풀이하면서 유교적인 철학의 의미를 표현한 글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주역(周易)』의 뜻을 풀이하면서 유교적인 철학의 의미를 표현한 글이다. 구절별로 『주역』에서 의미하는 바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글로 해당 주역 문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근한 예를 들어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배려하였으며, 본문의 큰 뜻에 대한 일차적인 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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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1903) 5월 26일 박재철(朴載轍)이 친척 형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재철계묘년(1903) 5월 26일, 친척 아우인 박재철(朴載轍 : 1876∼1933)이 친척 형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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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832) 3월 26일 박춘수(朴春秀)가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춘수임진년(1832) 3월 26일, 종손(從孫 : 4촌)인 박춘수(朴春秀 : 1804∼1868)가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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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892) 2월 4일 박재하(朴載河)가 숙부(叔父)인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재하임진년(1892) 2월 4일, 박재하(朴載河 : 1875∼1901)가 숙부(叔父)인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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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4월 19일 박정찬(朴禎燦)이 숙부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참최인 정찬갑술년 4월 19일, 친척 조카이며 상주인 박정찬(朴禎燦 : 1845∼1886)이 숙부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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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4월 9일 박수(朴秀)가 처사(處士) 안릉이공(安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박 수경진년 4월 9일, 사돈 사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박수(朴秀)가 처사(處士) 안릉이공(安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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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10월 18일 이문탁(李文鐸)이 외사촌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종조 이문탁경신년 10월 18일, 이문탁(李文鐸 : 본관 안릉)이 외사촌[外從孫] 수재(秀才 : 남자에 대한 칭호)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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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1936) 11월 22일 박재호(朴載皞)가 유인(孺人)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박재호병자년(1936) 11월 22일, 사종질(四從姪 : 11촌 조카)인 박재호(朴載皞 : 1872∼1938)가 사종숙모(四從叔母 : 11촌 숙모)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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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1월 12일 박성우(柳宬佑)가 매부(妹夫)인 박정락(朴定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유성우갑신년 1월 12일, 박성우(柳宬佑)가 매부(妹夫 : 누나의 남편)인 박정락(朴定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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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2월 19일 박유정(朴裕鼎)이 누나인 유인(孺人)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가제 유정기미년 2월 19일, 동생인 박유정(朴裕鼎 : 본관 오천)이 누나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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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1944) 1월 12일 박재인(朴載寅)이 박정락(朴定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조 재인갑신년(1944) 1월 12일, 삼종조(三從祖 : 8촌)인 박재인(朴載寅 : 1904∼1968)이 삼종손(三從孫 : 8촌)인 박정락(朴定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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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헌(朴載憲)이 박공숙(朴孔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형 재헌사종형(四從兄 : 10촌)인 박재헌(朴載憲 : 1875∼1926)이 사종군(四從君 : 10촌)인 박공숙(朴孔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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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1월 12일 박동영(朴東英)이 종숙부인 박정락(朴定洛)의 영전에 올린 국한문 혼용체의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동영갑신년 1월 12일, 종질(從姪 : 5촌)인 박동영(朴東英)이 종숙부(族從叔 : 5촌)인 박정락(朴定洛)의 영전에 올린 국한문 혼용체의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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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1901) 5월 26일 박헌찬(朴憲燦)이 조카인 박공숙(朴孔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헌찬신축년(1901) 5월 26일, 친척 숙부인 박헌찬(朴憲燦 : 1876∼1911)이 조카인 박공숙(朴孔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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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純祖) 19년(1819) 윤 4월 18일 박치약(朴穉若)이 누이동생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형 치약순조(純祖) 19년(1819) 윤 4월 18일, 사돈 사이이면서 형인 박치약(朴穉若)이 누이 동생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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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哲宗) 11년(1860) 11월 28일 정유규(鄭裕珪)가 유인(孺人) 오천정씨(烏川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정유규철종(哲宗) 11년(1860) 11월 28일, 사위인 정유규(鄭裕珪 : 본관 오천)가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오천정씨(烏川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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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12월 28일 최두천(崔斗天)이 스승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최두천계사년 12월 28일, 가르침을 받았던 최두천(崔斗天)이 스승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진 덕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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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5월 11일 정윤휴(鄭倫休)가 누나의 남편인 무안박군(務安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정윤휴갑진년 5월 11일, 처남인 정윤휴(鄭倫休 : 본관 오천)가 누나의 남편인 무안박군(務安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처남 매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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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3월 26일 이휘정(李彙楨)이 외삼촌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휘정임진년 3월 26일, 생질(甥姪 : 3촌)인 이휘정(李彙楨 : 본관 진성)이 외삼촌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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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10월 26일 정유근(鄭裕覲)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정유근임진년 10월 26일, 사돈 사이며 나이가 어린 정유근(鄭裕覲 : 본관 오천)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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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3월 26일 권도원(權度源)이 면성박공(綿城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권도원임진년 3월 26일, 사돈 사이며 나이가 어린 권도원(權度源 : 본관 안동)이 면성박공(綿城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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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1833) 12월 28일 박미수(朴美秀)가 재종대부(再從大父)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미수계사년(1833) 12월 28일, 재종손(再從孫 : 6촌)인 박미수(朴美秀 : 1813∼1864)가 재종대부(再從大父 : 6촌)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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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1881) 3월 3일 박정찬(朴禎燦)이 사종형(四從兄)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정찬신사년(1881) 3월 3일, 사종제(四從弟 : 10촌)인 박정찬(朴禎燦 : 1845∼1886)이 사종형(四從兄 : 10촌)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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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1859) 11월 28일 박종찬(朴琮燦)이 재종대모(再從大母)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박종찬기미년(1859) 11월 28일, 재종손(再從孫 :6촌)인 박종찬(朴琮燦 : 1834∼1860)이 재종대모(再從大母)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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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1월 28일 정치복(鄭致復)이 고모(姑母)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정치복기미년 11월 28일, 정치복(鄭致復 : 본관 오천)이 고모(姑母)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고모의 어질고 후덕한 면모를 회고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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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 9월 5일 친척 손자인 박규환이 풍산유씨의 영전에 올린 한글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규환계축년 9월 5일, 친척 손자인 박규환이 풍산류씨의 영전에 올린 한글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소 덕행과 어진 면모를 회고하고 자신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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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2월 19일 사위 정유규(鄭裕珪)가 유인(孺人)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정유규기미년 2월 19일, 사위인 정유규(鄭裕珪)가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의 행적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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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2월 27일 정치관(鄭致寬)이 유인(孺人)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정치관기묘년 2월 27일, 생질(甥姪 : 누이 동생의 아들)인 정치관(鄭致寬 : 본관 오천)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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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3월 27일 조카 수(秀)가 막내 숙모인 유인(孺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수기묘년 3월 27일, 조카 수(秀)가 막내 숙모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전주류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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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3월 26일 이재유(李在濰)가 외할아버지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이재유임진년 3월 26일, 외손(外孫)인 이재유(李在濰)가 외할아버지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인품과 어질었던 모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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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12월 28일 남조양(南祖陽)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남조양계사년 12월 28일, 남조양(南祖陽 : 본관 영양)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빼어난 인품과 고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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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인 이야순(李野淳) 등이 고모(姑母) 유인(孺人)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야순 등 2인조카인 이야순(李野淳 : 1755∼1831, 본관 眞城) 등이 고모(姑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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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7월 25일 이석기(李錫驥)가 고종 사촌인 박공숙(朴公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 이석기신축년 7월 25일, 내종(內從 : 4촌)인 이석기(李錫驥 : 본관 여강)가 고종 사촌인 박공숙(朴公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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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삼촌인 이석현(李奭鉉)이 박공숙(朴公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숙 이석현처삼촌인 이석현(李奭鉉 : 본관 안릉)이 박공숙(朴公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진 인품과 아름다운 자질을 안타깝게 여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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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949) 6월 17일 박원락(朴沅洛)이 증조부(曾祖父)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증손 원락기축년(1949) 6월 17일, 증손 박원락(朴沅洛 : 1900∼1966)이 증조부(曾祖父)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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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3월 26일 김극추(金極樞)가 외할아버지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김극추임진년 3월 26일, 외손(外孫)인 김극추(金極樞 : 본관 문소)가 외할아버지[外王考]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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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10월 28일, 사종숙(四從叔)이 사종질(四從姪)인 박천수(朴天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숙기축년 10월 28일, 사종숙(四從叔 : 10촌)이 사종질(四從姪 : 10촌 조카)인 박천수(朴天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