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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1833) 12월 28일 박기수(朴岐秀)가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참최손 기수계사년(1833) 12월 28일, 상주이며 손자인 박기수(朴岐秀 : 1817∼1858)가 할아버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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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11월 4일 박성수(朴成秀)가 재종숙모(再從叔母)인 유인(孺人)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성수기묘년 11월 4일, 재종질(再從姪 : 7촌)인 박성수(朴成秀)가 재종숙모(再從叔母)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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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11월 4일 이능진(李能晋)이 유인(孺人)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이능진무인년 11월 4일, 외가쪽 생질[外甥]인 이능진(李能晋 : 본관 여강)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이씨(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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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3월 10일 정유환(鄭裕煥)이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서 정유환계묘년 3월 10일, 조카사위[姪壻]인 정유환(鄭裕煥 : 본관 오천)이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자신의 관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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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2월 2일 이기인(李基仁)이 외사촌 동생인 처사(處士) 박군(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 이기인을해년 2월 2일, 이기인(李基仁 : 본관 벽진)이 외사촌동생[表從弟]인 처사(處士) 박군(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지난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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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1833) 12월 28일 박문영(朴聞永)이 종숙(從叔)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문영계사년(1833) 12월 28일, 종질(從姪 : 5촌)인 박문영(朴聞永 : 1800∼1880)이 종숙(從叔 : 5촌)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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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832) 3월 26일 박남수(朴南秀)가 할머니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남수임진년(1832) 3월 26일, 종손(從孫 : 4촌) 박남수(朴南秀 : 1813∼1875)가 할머니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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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5월 26일 김기정(金基定)이 자형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김기정임진년 5월 26일, 나이어린 처남[姻弟]인 김기정(金基定 : 본관 光山)이 자형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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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5월 26일 남효석(南孝錫)이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남효석임진년 5월 26일,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며 아우뻘인 남효석(南孝錫 : 본관 영양)이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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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1월 12일 권삼달(權三達)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재종 권삼달갑신년 1월 12일, 외6촌[表再從]인 권삼달(權三達 : 본관 안동)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양쪽 집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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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10월 18일 유선우(柳璇佑)가 자형(姨兄)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소제 유선우경신년 10월 18일, 처남인 유선우(柳璇佑 : 본관 풍산)가 자형(姨兄)인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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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11월 12일 이효각(李孝珏)이 처숙모 유인(孺人) 유씨(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녀서 이효각기묘년 11월 12일, 조카사위[姪女壻]인 이효각(李孝珏 : 본관 재령)이 처숙모[姻叔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유씨(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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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1812) 10월 6일 박진겸(朴鎭謙)이 삼종질(三從姪)인 박희서(朴希舒)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숙 진겸임신년(1812) 10월 6일, 삼종숙(三從叔 : 9촌 숙부)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삼종질(三從姪 : 9촌 조카)인 박희서(朴希舒)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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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1879) 2월 8일 박오찬(朴五燦)이 재종숙모(再從叔母) 유인(孺人) 유씨(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박오찬기묘년(1879) 2월 8일, 재종질(再從姪 : 7촌 조카)인 박오찬(朴五燦 : 1854∼1907)이 재종숙모(再從叔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유씨(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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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촌 김진락(金鎭洛)이 박우서(朴禹緖)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 김진락외사촌[表從] 김진락(金鎭洛 : 본관 義城)이 박우서(朴禹緖)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자신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고 가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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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1874) 2월 2일 김흥락(金興洛)이 사형(査兄)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흥락갑술년(1874) 2월 2일, 사돈 사이인 김흥락(金興洛 : 1827∼1899)이 사형(査兄 : 사돈댁의 아들)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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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12월 10일 김호운(金浩運)이 유인(孺人) 박씨(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김호운임술년 12월 10일, 김호운(金浩運)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박씨(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을 잃은 슬픔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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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12월 9일 박시련(朴始鍊)이 고모(姑母) 유인(孺人) 박씨(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시련임술년 12월 9일, 박시련(朴始鍊)이 고모(姑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박씨(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고모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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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 3월 20일 김호운(金浩運)이 유인(孺人)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김호운신유년 3월 20일, 김호운(金浩運)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의 어질고 정숙한 인격미와 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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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1879) 5월 24일 박정찬(朴禎燦)이 재종숙모(再從叔母) 권씨(權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재최인 정찬기묘년(1879) 5월 24일, 재종질(再從侄 : 7촌)이며 상주인 박정찬(朴禎燦 : 1845∼1886)이 재종숙모(再從叔母 : 7촌 숙모) 권씨(權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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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1월 11일 남병호(南炳鎬)가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남병호갑술년 1월 11일, 정으로 사귄 아우뻘인 남병호(南炳鎬 : 본관 영양)가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인생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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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9월 24일 박현주(朴顯周)가 삼종제(三從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형 현주임자년 9월 24일, 삼종형(三從兄 : 8촌 형)인 박현주(朴顯周)가 삼종제(三從弟 : 8촌 아우)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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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1785) 9월 24일 박진겸(朴鎭謙)이 5촌 조카 박입여(朴立如)와 유인(孺人)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당숙 진겸을사년(1785) 9월 24일, 당숙(堂叔 : 5촌)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당질(堂姪 : 5촌 조카) 박입여(朴立如)와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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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1783) 7월 15일 박진겸(朴鎭謙)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진겸계묘년(1783) 7월 15일, 친척 손자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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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 2월 8일 박휘찬(朴徽燦)이 재종숙모(再從叔母) 유인(孺人) 풍산유씨(豊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휘찬기묘년 2월 8일, 재종질(再從姪 : 7촌 조카)인 박휘찬(朴徽燦)이 재종숙모(再從叔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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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1879) 2월 8일 박재악(朴載岳)이 삼종조모(三從祖母) 유인(孺人) 풍산유씨(豊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재악기묘년(1879) 2월 8일, 삼종손(三從孫 : 10촌) 박재악(朴載岳 : 1815∼1886)이 삼종조모(三從祖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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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1900) 9월 22일 박세춘(朴世春)이 할머니 유인(幼人)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자 세춘경자년(1900) 9월 22일, 박세춘(朴世春 : 1876∼?)이 할머니 유인(幼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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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1803) 4월 26일 박진겸(朴鎭謙)이 삼종형(三從兄)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진겸계해년(1803) 4월 26일, 삼종제(三從弟 : 8촌 동생)인 대소헌(大所軒) 박진겸(朴鎭謙 : 1762∼1831)이 삼종형(三從兄 : 8촌 형)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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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인 박우락(朴禹洛)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우락조카인 박우락(朴禹洛 : 1881∼1960)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숙부의 행적을 추모하면서 평소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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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10월 18일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무오년 10월 18일,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24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을 애통해하고 자신과 절친했던 지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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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0월 18일 김종구(金鍾九)가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김종구기미년 10월 18일, 김종구(金鍾九 : 본관 완산)가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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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0월 18일 이관호(李觀浩)가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생 이관호기미년 10월 18일, 친척인 이관호(李觀浩 : 본관 안릉)가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보여준 덕행과 어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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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인 김형식(金衡軾)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중내종 김형식친척인 김형식(金衡軾 : 본관 의성)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죽은 것은 가문의 재앙이라고 하고 그의 어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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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1919) 10월 18일 박선찬(朴善燦)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박선찬기미년(1919) 10월 18일, 친척인 박선찬(朴善燦 : 1880∼1941)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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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1901) 7월 25일 박재호(朴載皞)가 10촌인 박공숙(朴孔淑 )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형 재호신축년(1901) 7월 25일, 사종형(四從兄 : 10촌 형)인 박재호(朴載皞 : 1872∼1938)가 10촌인 박공숙(朴孔淑)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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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4월 27일 김시건(金始建)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김시건을묘년 4월 27일, 친척 조카인 김시건(金始建 : 본관 聞韶)이 처사(處士)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평소에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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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1823) 11월 5일 박진회(朴鎭晦)가 조카인 박우서(朴禹緖)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진회계미년(1823) 11월 5일, 친척 숙부인 박진회(朴鎭晦 : 1788∼1826)가 조카인 박우서(朴禹緖)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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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12월 28일 권도원(權度源)이 사돈 어른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권도원임진년 12월 28일, 사돈 사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권도원(權度源 : 본관 안동)이 사돈 어른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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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1919) 10월 18일 사촌인 박문종(朴汶鍾)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문종기미년(1919) 10월 18일, 사촌인 박문종(朴汶鍾 : 1894∼1949)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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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0월 18일 외삼촌 이하일(李河一)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내구 이하일기미년 10월 18일, 외삼촌 이하일(李河一)이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이른 나이에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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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892) 12월 28일 박지수(朴之秀)가 친척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지수임진년(1892) 12월 28일, 친척 손자인 박지수(朴之秀 : 1854∼1914)가 친척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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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10월 18일 이문호(李文浩)가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문호경신년 10월 18일, 정으로 사귄 아우인 이문호(李文浩 : 본관 안릉)가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이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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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12월 22일 박종규(朴鍾奎)가 할머니 유인(孺人)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손 종규병자년 12월 22일, 손자인 박종규(朴鍾奎)가 할머니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부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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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11월 22일 권삼달(權三達)이 외종조모(外從祖母) 유인(孺人)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손 권삼달을해년 11월 22일, 외6촌[表從孫]인 권삼달(權三達 : 본관 安東)이 외종조모(外從祖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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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10월 18일 김용구(金龍九)가 외사촌 형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김용구기미년 10월 18일, 외사촌 동생[表從弟]인 김용구(金龍九 : 본관 光山)가 외사촌 형인 박공(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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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1920) 10월 18일 박기찬(朴岐燦)이 종손인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조 기찬경신년(1920) 10월 18일, 재종조(再從祖 : 할아버지의 4촌)인 박기찬(朴岐燦 : 1884∼1956)이 종손인 박회부(朴晦夫)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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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1월 12일 권태호(權泰鎬)가 박군(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권태호을유년 1월 12일, 권태호(權泰鎬 : 본관 安東)가 박군(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인생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나 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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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7월 25일 이징호(李徵鎬)가 사위 박군(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옹 이징호신축년 7월 25일, 장인 이징호(李徵鎬 : 본관 眞城)가 사위 박군(朴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나이가 어린 사위를 잃은 장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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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832) 3월 26일 박정영(朴楨永)이 숙부 처사 부군(府君)과 유인(孺人)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정영임진년(1832) 3월 26일, 조카인 박정영(朴楨永 : 1793∼1866)이 숙부 처사 부군(府君)과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김씨(金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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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1859) 11월 28일 박회찬(朴晦燦)이 할머니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종손 박회찬기미년(1859) 11월 28일, 박회찬(朴晦燦 : 1807∼1871)이 할머니 정씨(鄭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할머니의 평소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