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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유정문(柳鼎文)이 수급자 미상에게 문안과 배상열(裵相說) 선생을 추모한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완산후인 유정문모년 모월 유정문(柳鼎文 : 본관 全州)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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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3년(1789) 10월 김희민(金熙民)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김희민정조 13년(1789) 10월 20일 정우(情友 : 정으로 사귄 친구) 김희민(金熙民 : 본관 문소)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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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3년(1789) 4월 김희주(金熙周), 김성사(金聖思)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우 김희주(성사)정조 13년(1789) 4월 14일 벗인 김희주(金熙周 : 1760∼1830, 본관 聞韶)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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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1791) 4월 배상익(裵相益)이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상익신해년(1791) 4월 14일 친척아우[族弟]인 배상익(裵相益 : 1765∼1826)이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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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789) 10월 여중건(余重健)이 배군필(裵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 여중건기유년(1789) 10월 20일 척하(戚下 : 친척이면서 나이가 어린 자) 여중건(余重健 : 의령)이 배군필(裵君弼 : 1759∼1789, 槐潭 裵相說의 字)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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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789) 10월 배순(裵純)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순기유년(1789) 10월 20일 친척숙부[族叔]인 배순(裵純)이 조카[族姪]인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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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홍이후(洪履厚)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홍이후기축년(1889) 11월 18일 홍이후(洪履厚 : 남양)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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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10월 권중동(權重動)과 유복천(柳復天)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경우 권중동·유복천모년 10월 20일 벗인 권중동(權重動 : 본관 안동)과 유복천(柳復天 : 본관 완산)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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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3년(1789) 10월 김희분(金熙奮)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김희분정조 13년(1789) 10월 20일 벗인 김희분(金熙奮 : 1760∼1822, 본관 聞韶)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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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배상승(裵相承)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상승기축년(1889) 11월 19일 사촌 동생인 배상승(裵相承)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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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789) 10월 김홍주(金洪疇)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질 김홍주기유년(1789) 10월 19일 이종 사촌인 김홍주(金洪疇)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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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1790) 4월 변진탁(邊振鐸)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정제 변진탁경술년(1790) 4월 14일 친척 아우인 변진탁(邊振鐸)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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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7월 배상섭(裵相燮)과 배상후(裵相后)가 사촌 형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상섭·상후무오년 7월 3일 사촌 동생인 배상섭(裵相燮)과 배상후(裵相后)가 사촌 형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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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10월 김정(金鐤)이 장인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정무인년 10월 6일 사위인 김정(金鐤)이 장인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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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10월 숙부가 맏 조카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무인년 10월 6일 숙부가 맏 조카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조카가 44세의 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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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10월 김시응(金時膺)이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김시응무인년 10월 6일 고종 사촌 동생인 김시응(金時膺 : 의성)이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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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789) 4월 변재숙(邊在肅)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손우 변재숙기유년(1789) 4월 14일 친구인 변재숙(邊在肅 : 본관 原州)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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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배선영(裵善韺)이 8촌 아우인 배성원(裵聖元)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형 선영무인년 모월 8촌 형인 배선영(裵善韺)이 8촌 아우인 배성원(裵聖元)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혈육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면서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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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10월 손석로(孫錫魯)가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제 손석로무인년 10월 6일 집안 대대로 알고 지내는 관계에 있으며 아우뻘인 손석로(孫錫魯 : 안동)가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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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 10월 박상옹(朴相雍)이 자형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박상옹무인년 10월 6일 처남인 박상옹(朴相雍 : 본관 咸陽)이 자형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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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789) 10월 배위(裵緯)가 조카인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위기유년(1789) 10월 20일 친척 숙부인 배위(裵緯 : 字 成經)가 조카인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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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 7월 권중찬(權重燦)이 사돈 사이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권중찬정사년 7월 3일 권중찬(權重燦 : 본관 안동)이 사돈 사이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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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김낙호(金樂浩)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자 김락호기축년(1889) 11월 19일 대대로 알고 지내는 관계이며 가르침을 받았던 김낙호(金樂浩 : 본관 의성)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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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김익수(金益壽)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손서 김익수기축년(1889) 11월 19일 손자 사위인 김익수(金益壽 : 본관 의성)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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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7월 변진탁(邊振鐸)이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변진탁무오년 7월 3일 처남인 변진탁(邊振鐸 : 본관 원주)이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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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7월 변진탁(邊振鐸)이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매서 변진탁병진년 7월 3일 처남인 변진탁(邊振鐸 : 본관 원주)이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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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김희주(金熙周)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우인 김희주기축년(1889) 11월 19일 친구인 김희주(金熙周 : 1760∼1830, 본관 聞韶)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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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 2월 강미(姜渼)가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강미정사년 2월 12일 강미(姜渼 : 본관 진주)가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자신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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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3년(1789) 10월 김희락(金熙洛)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김희락정조 13년(1789) 10월 20일 벗인 김희락(金熙洛 : 본관 문소)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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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1856) 10월 배약주(裵約周)가 종숙모(從叔母)인 경주손씨(慶州孫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약주병진년(1856) 10월 29일 5촌인 배약주(裵約周 : 1817∼1882)가 종숙모(從叔母 : 5촌 숙모)인 경주손씨(慶州孫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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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789) 10월 변진탁(邊振鐸)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변진탁기유년(1789) 10월 20일 처남인 변진탁(邊振鐸 : 본관 원주)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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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배상속(裵相涑)이 재종형(再從兄)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상속기축년(1889) 11월 19일 재종제(再從弟 : 6촌 동생)인 배상속(裵相涑)이 재종형(再從兄 : 6촌 형)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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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1년(1797) 2월 배상섭(裵相燮)이 종형(從兄)인 처사(處士)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상섭정조 21년(1797) 2월 12일 종제(從弟 : 4촌 동생)인 배상섭(裵相燮)이 종형(從兄 : 사촌 형)인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공(裵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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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889) 11월 배상한(裵相翰)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상한기축년(1889) 11월 19일 족종제(族從弟 : 4촌 동생)인 배상한(裵相翰 : 1779∼1833)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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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1878) 10월 배현모(裵顯謨)가 처사(處士) 배군(裵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현모무인년(1878) 10월 6일 족종(族從 : 4촌) 배현모(裵顯謨 : 1830∼1893)가 처사(處士 : 벼슬 하지 않은 선비) 배군(裵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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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회(權思晦)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노우 권사회(맹엽)벗인 권사회(權思晦 : 1741∼1810, 본관 安東)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가 남긴 덕행과 학문적인 업적을 회고하면서 슬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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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발(徐榦發)과 서성렬(徐成烈)이 죽은 이를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달성후인 서한발·서성렬서간발(徐榦發 : 본관 達城)과 서성렬(徐成烈 : 본관 達城)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가 유교적인 전통과 학문적인 업적을 계승하여 어진 인품과 덕성을 갖추었다고 술회하였으며, 온화한 성품과 고결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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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술(琴詩述)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후인 금시술후인(後人) 금시술(琴詩述 : 1783∼1851, 본관 奉化)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빼어난 학문 정신과 효성 및 우애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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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제(金東濟)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김동제벗인 김동제(金東濟 : 본관 聞韶)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유교적인 가풍과 철저한 가정 교육으로 인해 단아한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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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원(柳道源)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유도원유도원(柳道源 : 본관 全州)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가 많은 학문 업적을 이루고 어진 덕성을 길렀음에도 불구하고 처사로서 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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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원(李秉遠)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이병원이병원(李秉遠 : 1774∼1840, 본관 韓山)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도덕과 학문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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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하(李觀夏)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이관하이관하(李觀夏 : 본관 眞城)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는 유교적인 교육과 어진 덕성을 구비한 선비였다고 회고하였으며, 유학자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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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權燦)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권찬·권일권찬(權燦 : 본관 安東)과 권일(權馹)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문중을 대표하여 흥해 배공의 영전에 보낸 형식의 만사이며,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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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휴(李宗休)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휴이종휴(李宗休 : 본관 固城)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어질고 단아한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많다고 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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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병우 윤○尹○이 벗인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학문과 덕행을 그리워하면서 그립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실하다고 하고 사별의 아픔과 그리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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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원(朴時源)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박시원박시원(朴時源 : 본관 潘南)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남긴 문집을 통해 그의 사상과 인품을 추억한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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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성(金熙成)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김희성김희성(金熙成 : 1742∼1804, 본관 聞詔)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굽은 강물은 변함없이 유유히 흘러가지만 망자는 세상에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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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헌옹(雲軒翁)의 조카인 장광진(張光鎭)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고우 운헌옹질자 장광진망자의 돌아가신 벗인 운헌옹(雲軒翁)의 조카인 장광진(張光鎭 : 본관 仁同)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와 함께 했던 지난 시절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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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갑(李鍾甲)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생 이종갑이종갑(李鍾甲 : 본관 羽溪)이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의 평생 행적을 회고하면서 망자가 떠났지만 자연 환경은 예전과 다를 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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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이(權徳以)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노우 권덕이권덕이(權徳以)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 1759∼1789, 字 君弼)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지은 글로 만장(輓章)이라고도 한다. 망자가 성장했던 집안의 배경을 강조하면서 우수한 학문 정신과 고결한 인격미를 완성했다고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