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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305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自歎三首, 溪齋朝起吟示兒輩, 題亭前海棠, 麥坂感次先大人韻, 鐵嶺道中伏次先大人韻, 鐵嶺又次生(先의 誤字인 듯)大人韻, 磨雲嶺伏次先大人韻, 入七寶山戲占, 外山, 內山, 八景口占, 利城道中思兄弟口占, 次伯氏韻,丙戌除夕伯氏守歲于大坪叔遠(長源)弟宿於其家余獨坐溪亭偶誦老蘇詩佳節每
    출처 : 유교넷
  • 35305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伏賡表忠綸音 御製詩, 明齋直中伏和 御製板上韻, 明齋直所戲吟, 直中戲吟回寄範休, 展拜木會道先塋感吟一絶, 還到泮中示範休, 漢江舟中作二首, 達川道中, 到家後戲成古風贈卯君, 湖上校勘會吟呈小山, 走次雙梅園韻,將哭金漢瑞(井東)馬上口占, 謹次怡悅巖權公韻, 徑谷歸路吟寄族叔大卿(正鉉
    출처 : 유교넷
  • 353053

    哀詞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虛舟辭送李山甫(宗岳)靈柩, 族孫光文哀辭, 中姪婦金孺人哀詞, 姪孫婦李孺人哀詞
    출처 : 유교넷
  • 353054

    與蔡判書(濟恭,1786)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樊巖 蔡濟恭(1720~1799)에게 父親 柳升鉉의 墓碣을 써줄 것을 부탁한 편지이다. 이 편지와 함께 訥隱 李光庭(1674~1756)이 쓴 행장을 보낸다고 하였다. 柳升鉉의 沒年은 1746년이므로, 40년이 지났다고 한 것으로 보아 1786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유교넷
  • 353055

    答李方伯(秉模)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靜修齋 李秉模(1742~1806)에게 보낸 답신이다. '考校之役'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李秉模에게서 받은 서신은 공적인 것으로서, 科試의 試卷이나 經籍 혹은 典禮에 대한 考校를 담당하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도원은 병을 칭탁하여 이러한 임무를 맡기를 사양하
    출처 : 유교넷
  • 353056

    與大山李先生(1766)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스승인 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에 講錄校本을 가지고 공부하는데, 그 내용이 조금도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듯하다고 하면서 아우인 장원과 함께 다시 뵙고 가르침을 구할 날을 기약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57

    與大山李先生(1769)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어 그를 '道德博洽之士'로 칭하면서, 김낙행의 아들이 추진하고 있는 문집 편찬의 일에 있어서 질정을 받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58

    與大山李先生(1770)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喪禮의 告廟‧哭廟‧改葬‧禫祭 등의 시행에 대하여 문의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의 시행에 있어서 喪主와 最長房主가 二主가 되는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祭를 주관하는 사람이 遷葬을 주관하는 것이 무방한지, 그리고 여러 가지 예에 대한 몇 가지 설 가운데 金樂行의 설을
    출처 : 유교넷
  • 353059

    與大山李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앞서의 서신에서 문의하였던 상례에 대한 가르침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나서 再朞의 때에 變服하는 문제를 문의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60

    與大山李先生(1772)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자신이 집안의 근심과 질병으로 인해 아들 範休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음을 이야기 하고, 李象靖의 문하로 보내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공부나 행동거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막내아들인 玄休가 제 형을 따라가겠다고 나서서 함께 보내게 된 사정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61

    答大山李先生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象靖의 문하에 보냈던 아들들을 잘 가르쳐 준 데에 대해 사례하였다. 기질이 나약하고 지식도 엉성한 큰아들 範休를 내치지 않고 받아들여 가르쳐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갑작스럽게 다시 데려오게 된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막내아들 玄休도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나서 어리석은
    출처 : 유교넷
  • 353062

    與大山李先生(1776)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山寺에 잠시 머물렀던 것은 병든 몸을 요양하고 홍역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열흘 정도만 머물다 돌아왔음을 아뢰는 편지이다. 돌아와서도 몸이 좋지 않아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러한 나태함을 고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63

    答大山李先生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象靖의 편지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아들 범휴에 대한 안부도 전한 답장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64

    與大山李先生(1777)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전반부는 아이로부터 李象靖이 자신의 집(棣堂)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기쁜 마음 그지없다는 내용이다. 이어 후반부는 상례에 대한 문의인데, 양친을 한번에 잃은 族弟인 柳普源의 일과 普源의 伯從叔이 돌아가 장례를
    출처 : 유교넷
  • 353065

    與大山李先生(1778)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象靖의 命을 따르지 못했음을 사죄하는 짧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66

    與大山李先生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여름에 물을 잘못 먹고 병이 들었는데 가을이 되도록 낫지 않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알리면서, 집안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에 이미 李象靖에게 도움을 받기로 허락을 받아 놓았으면서도 자신의 병으로 인해 미루어지고 있는 실정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67

    與大山李先生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돌아가신 부친의 紀行文을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였다. 이 일로 온 가족이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 억누를 길이 없지만 아우인 長源은 일 때문에, 자신은 病 때문에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아이들만 보내어 인사드리는 것을 사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68

    與大山李先生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자신에게는 돌아갈 생각이 분명히 정해졌음을 알리고, 아울러 한동안 문안편지를 못하였는데 어떠한 지 안부를 묻는 짧은 편지이다. 別紙에는 옛 문헌의 기록 등을 토대로 하여 制國用司, 通人, 南內 등의 의미를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69

    與大山李先生(1779)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山間에서의 자신의 생활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고, 蘭翁 金江漢의 병세가 위중한 상황과 쇠락하여 텅 빈 집에 있는 그의 처지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70

    與大山李先生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먼저 자신의 병은 여전한데다 전염병이 돌아 산촌에 피해있는 근황을 전하고, 이어 金江漢의 장사지낼 날짜를 알린 후 李象靖이 김강한에게 보냈던 글들을 종에게 시켜 찾게 하고 있다는 등의 소식을 담고 있는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71

    與大山李先生(1780)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景溫의 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義城金氏가 요절한 것에 대해 자신이 惡業을 쌓은 召致라고 말하며, 집안사람들이 참담할 정도로 슬퍼하고 있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72

    與大山李先生(1781)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聖鐸(1684~1747)의 『霽山集』의 寫本의 定本이 여덟 冊으로 완성되었음을 알리고, 亂藁 중에 들어있는 김성탁의 아들인 九思堂 金樂行의 글은 자신들(문집 편찬의 실무자들)이 감히 임의로 고칠 수 없는 것이므로 편집에 있어서 본가의 元集을 토대로 하고 門下의 點校
    출처 : 유교넷
  • 353073

    與小山李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象靖의 동생인 小山 李光靖(1714~1789)에게 보낸 편지이다. 『虞聖全書』를 잘 받아 읽어보았는데, 그 規模가 크고 조리가 정연하였으며 ‘心法을 전함’이 글 전체의 요체가 된다고 하면서, 결론적으로 ‘世敎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를 깨달았다고 하고
    출처 : 유교넷
  • 353074

    與小山李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선친의 문집을 편찬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선친의 글을 깨끗이 베껴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내용이다. 직접 가서 인사하는 것이 禮이지만 병 때문에 가질 못하고 있으니, 병이 나으면 가서 이러한 결례를 사죄하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75

    與小山李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전에 여쭈었던 「溪集疑義」에 대하여 정밀하고 문헌을 널리 참고하여 회답해 주어 답답함이 풀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退溪集」에 인용된 故事와 名物 등의 출처를 밝히는 이러한 작업이 퇴계선생이 警戒하신 일을 범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는 마음도 피력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76

    答小山李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象靖 선생의 문집을 교정하는 일에 別檢兄이 위촉한 사람은 매우 부적당한데, 어째서 야단쳐서 중지시키지 않느냐고 비판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77

    與小山李休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앞의 편지에 이어 문집 교정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있다.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각 실무자들의 지적 사항을 그대로 다 따를 수는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78

    答小山李休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산중에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는, 이어 「溪集疑義」 저술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 얕고 또 산중이라 책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그러니 거절하지 말고 가르침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79

    答蘭谷金濯以(江漢)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아들 범휴의 장인인 金江漢(1719~1779)에게 보낸 편지이다. 喪을 당한 슬픔을 위로하고, 省墓할 때에 상복을 입는 것에 대해 古禮에는 있으나 세속에서 행하지 않는 점 등을 들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80

    與蘭谷金濯以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상복을 벗는 일과 관련하여 吉祭에 있어서의 문제 그리고 心喪의 服에 대한 생각 등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81

    答蘭谷金濯以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주자어류』의 ‘人無有極則處, 便是堯舜周孔, 不成說我是從容中道, 不要去戒愼恐懼.’에서 ‘極則’의 해석에 있어서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 근거로서 『주자어록』의 해당 부분을 제시하고 있으며, 해당 부분의 全文을 읽지 않음으로 말미암은 오류라고 지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82

    答蘭谷金濯以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加麻(스승의 상 등에 心喪을 입는 표시로 겉옷에 삼베헝겊을 붙이는 것)의 문제에 대해 諸家의 설들을 참고하여 이야기해주고 있다. 金江漢이 보낸 편지에 이에 대한 문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유교넷
  • 353083

    答蘭谷金濯以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일체 신경 쓰지 않고 지내는 자신의 요즘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한 내용이다. 보리농사는 극심한 흉작인 관계로 보리죽을 쑤게 하여 온 식구가 먹고 지내고 있는 일 등을 썼다.
    출처 : 유교넷
  • 353084

    答蘭谷金濯以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禮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을 고찰한 내용을 적은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85

    答後山李學甫(宗洙)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象靖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李宗洙(1722∼1797)에게 보낸 글이다. 端午節에 편지를 받아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다는 점, 산중에서의 생계는 말할 수 없이 어려운 형편이라는 점, 지난겨울 德中兄이 찾아와 함께 시를 지었던 일 등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86

    李象靖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金宗德(1724~1797)·宗發·宗燮 형제에게 답한 편지이다. 師門의 적막함을 개탄하고 스승의 유집을 열람한 후에 왕래한 서신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087

    與川沙金道彦景蘊弘輔(1790)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宗德·宗發·宗燮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3년간의 병치레 끝에 근래 들어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책을 보는 일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근황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88

    與柳孟希(宗春)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西厓 柳成龍(1542∼1607)의 후손인 柳宗春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해가 갈수록 병이 심해져 집에 처박혀 후회만 쌓아가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고, 끝에서는 아우인 士浩를 문하에 받아들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89

    答金德中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龍普에게 답한 글이다. 편지에 적어 보낸 시를 받아 보고 그 느낌과 고마움을 적었다. 두 편의 시를 받았으니 두 편 모두 和韻하여 보내야 하지만 詩思도 고갈되어 버린데다가 슬픔 때문에 휘둘려서 한 편에만 차운하여 보낸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90

    答鄭敬修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鄭惟簡에게 답한 글이다. 여행 중에 편지를 받고 쓴 짧은 답장이다. 꽃이 가을에 시들어 버리더라도 뿌리에 있는 生意로 말미암아 봄에 다시 피어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출처 : 유교넷
  • 353091

    與鄭敬修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신선한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에 대해 경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92

    與金定之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鎭東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鎭東이 부탁한 上樑文 짓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정중히 거절하고, 地名과 齋室의 이름에 대해서는 素洞과 素齋를 추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93

    答金定之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부탁받았던 伯氏의 墓誌를 지어 보낸다고 하였고, 別號를 짓는 것은 남에게 물어서 할 것이 아니라 九思堂의 후손들이 圖章을 보고 지었던 예를 따라 伯氏도 松下處士라고 하면 될 것 같다고 제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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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094

    與金定之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병 때문에 집안에 틀어박힌 지 3년이 흘러 정신과 근력이 모두 쇠약해졌고 이에 따라 책도 보지 않고 지내는 근황을 알린 짧은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95

    答趙聖紹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趙述道(1729∼1803)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술도의 편지에서 거론한 학술적인 문제 중 어떤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小山 李光靖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광정의 沒年인 1789이거나 그 다음해 정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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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096

    答金中立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聖鐸의 조카인 金道行(1728∼1812)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준 글에 화운하여 보내고자 여러 번 시도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보내준 책의 序文에 年月이 없어서 흠이 될 만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097

    與李山甫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李宗岳(1726~1773)에게 보낸 편지이다. 눈병이 나은 것과 盆梅에 꽃이 피려고 하는 것 등을 전한 짧은 안부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98

    與李山甫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스승인 이상정을 모시고 虎溪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도 병치레하느라 나가보지 못했음을 말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099

    答李山甫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五一居士’라는 號를 지어주면서 어떠하냐고 물었고, 浦項의 장례에 참석하고자 하는데 갈 사람은 세 사람이지만 말이 한 필밖에 없는 사정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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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100

    答金聖得(汝弼)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
    金汝弼에게 보낸 편지이다. 湖上에서 찬바람을 쐰 탓에 돌아와서 이불을 싸매고 설을 보냈다는 근황을 전하고 한번 만나기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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