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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行司憲府掌令涵鏡堂先生柳公行狀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司憲府 掌令을 지낸 涵鏡堂 柳敬時의 생애를 정리한 행장이다. 유경시의 자는 欽若이며, 본관은 文化이다. 부친은 東輝이며, 모친은 漢陽趙氏이다. 공은 현종 병오년(1666) 11월 13일에 水谷里에서 출행하였다. 성품이 조용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였고, 임술년(168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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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壺窩柳公行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지낸 壺窩 柳顯時의 행적을 정리한 행장이다. 유현시의 자는 達夫이며, 본관은 文化이다. 그는 현종 정미년(1667) 정월 24일에 안동의 水谷里에서 출생하였다. 신묘년(1711) 생원 1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후로는 과거를 보지 않고 경서에 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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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外王考挹翠軒金公行狀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本生 外王考 挹翠軒 金九用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 김구용의 자는 元則이며, 본관은 善山이다. 부친은 必亨이며, 모친은 광주김씨이니 玉音의 딸이다. 공은 현종 임인년(1662) 7월 19일에 태어났는데, 백부가 취하여 후사로 삼았다. 장성하자 秋潭 金如萬의 문하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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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通政大夫工曹參議慵窩府君家狀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부친인 通政大夫 工曹參議 慵窩 柳升鉉의 행적을 기록한 家狀이다. 유승현은 자가 允卿이며, 본관은 全州이다. 부친은 奉侍이며, 모친은 鵝州申氏이니 通德郞 以徵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년) 증광회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과 정랑을 역임하였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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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蘆厓 柳道源의 죽음을 애도한 輓詞로, 李宗洙, 金宗德, 趙運道, 趙述道, 金虎鍊, 金道行, 金若鍊, 金象鍊 등 8명이 지은 8편의 輓詞가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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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蘆厓 柳道源의 죽음을 애도한 祭文으로, 李宗洙, 金宗德, 金宗燮, 南漢朝, 枕澗亭의 생도 柳泰休, 柳龜文, 柳允文, 東巖亭의 생도 柳翼休, 柳宅文, 朴宗絢 그리고 從弟인 柳長源 등 10여 명의 제문 7편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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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원丁範祖가 지은 柳道源(1721~1791)의 行狀이다. 유도원의 자는 叔文이며, 호는 蘆厓이다. 참의 觀鉉의 아들인데 참의 升鉉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인 長源과 함께 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네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부모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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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집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대야집(大埜集) 大埜 柳健休의 시문집. 10권 5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으나 1842년 문인이자 족손인 소은 柳致球(1793 ~1853) 등에 의해 편집·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권1은 시 78수, 권2~6은 書 133편, 잡저 1편, 권7·8은 잡저 7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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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澗水, 夜與弟子儀韶休偶看桐溪集次明字韻, 刊東巖先生文集於黃山寺用板上韻寓感, 白雲洞景濂亭次板上韻,次李士希魯賢韻, 謹次退溪先生詠懷韻, 與子儀夜坐呼韻得休字, 訥隱李公和陶靖節形影神三篇寄意高古有會于心因步其韻以自警, 松堤上流有仙人巖金丈士毅弘喆欲構亭其下巖面刻仙人巖三大字又刻主晩隱翁四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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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巖先生(1790)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동암 류장원에게 올린 편지로 기질의 성과 천지의 성에 대해 질정을 구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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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1808)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손재 남한조에게 올린 편지로 마음과 사물의 관계에서 그 체용을 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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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무엇보다도 사려의 紛擾가 학자의 병폐이니 마땅히 경을 유지하는 공부에 종사해야 할 것을 주장하면서 희노애락의 미발과 형체의 운동, 耳目의 視聽에 대해 질정을 구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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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손재 남한조에게 올린 편지로 뜻을 세움이 굳지 않아 한 가지 일도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탄식하면서 가르침을 청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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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상정의 ‘마음은 출입이 없다’는 설에 대해 논변한 것으로 천지만물이 모두 나의 본성이기는 하나 오직 이치에 내외가 없다고 주장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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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雨皐金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우고 김도행에게 보내준 편지로 스승 동암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의심난 것이 있어도 물을 데가 없음을 탄식하면서 別紙로 가르침을 청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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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俛庵李丈(1808)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면암 이우에게 보내준 편지로 면암이 樗翁에게 답한 ‘心在說’ 몇 조목을 보고 그 의심난 곳에 대해 가르침을 청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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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주자의 ‘세상 사물의 이치가 마음에 두루 구비되지 않음이 없다’는 설을 인용하여 우주가 방촌의 안에 있다는 것을 비판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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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晩洲(1814)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만주 권이복에게 보내준 편지로 오늘날엔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 거의 없고 간혹 뜻을 두더라도 각자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뿐 서로 토론이 없는 것에 대해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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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태극의 동정, 심의 발휘, 이기의 체용, 학문의 순서, 사단과 의리, 성명·형기·지각의 선후 관계 등에 대해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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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進士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진사 李祥發에게 답한 편지로 哀章을 보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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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進士(1819)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진사 黃夔漢에게 답한 편지로 斗谷 文丈의 죽음을 슬퍼하고 병호 시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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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以凝(1831)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명필로 알려진 동원 金羲壽에게 보낸 편지로 대야정·성건재·관선재 편액 글씨를 써줄 것을 요청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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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亨萬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김형만에게 보내준 편지로 갈암 이현일의 강학하던 곳을 기념하여 금양에 단을 쌓을 때 지은 시 등에 대해 화운해서 보내 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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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爾成(1822)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이성에게 보낸 편지로 「雜記」 등에 근거하여 처를 제사지낼 때 축문에 남편의 姓字를 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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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智彦(1829)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朴宗成에게 답한 편지로 「태극도」의 ‘凶’자 두 글자의 의미에 대해 음양 및 인의의 설을 끌어와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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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世英(1824)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남세영에게 답한 편지로 주희의 인심과 도심의 논변에 초년과 만년의 차이가 있음을 거론하면서 채계통에게 답한 글은 주희의 초년설로 만년의 정설이 아님을 주장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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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世英(1832)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남세영에게 답한 편지로 사단칠정에 대해 논변한 글이다. 저자는 남세영과 사단칠정을 주제로 10여 년 간 서신을 왕래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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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淸如(1833)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徐活에게 답한 편지로 주자의 ‘의리는 무궁하고 地步는 남음이 있으나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인용하여 학문에 힘쓸 것을 강조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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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子皜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南漢皜에게 답한 편지로 別紙에 수록되어 전한다. 인성과 물성의 귀천·선후의 차이, 본성의 偏全에 대해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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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宜卿(1808)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義裕에게 답한 편지로 象數의 학문이 본시 궁리의 일단이기는 하나 평이하고 비근한 것에 힘을 쓰는 것만 못하니, 사서와 『심경』·『근사록』등의 책을 반복하여 독서할 것을 권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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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宜卿(1809)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의경에게 답한 편지로 사서와 『심경』·『근사록』같은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 힘을 들이고, 상수 같은 것은 여력이 있으면 공부할 것을 훈계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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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宜卿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의경에게 보낸 편지로 『중용』을 공부할 때 유의할 것에 대해 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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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擎厦(1825)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와 학문적 동반자인 송서 강운(1773~1834)에게 답한 편지로, 『중용』의 수장에 나오는 존양 공부의 節度인 ‘戒懼’에 대해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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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擎厦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송서 강운에게 답한 편지로 『中庸』에 나오는 ‘致中’의 의의와 禮疑 몇 조목 등에 대해 제유의 설을 인용하여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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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擎厦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송서 강운에게 답한 편지로 ‘아버지는 살아있고 어머니가 죽은 경우엔 25개월로 상을 마친다’는 구절에 대해 이상정 등의 설을 인용하여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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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擎厦(1827)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송서 강운에게 답한 편지로 동암 류장원 저술의 『상변통고』의 발간에 대해 논의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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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擎厦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송서 강운에게 답한 편지로 소옹의 「관물외편」에 나오는 ‘陰陽餘空’에 대한 강운의 견해를 논변하고, 주희의 본지에 근거하여 ‘統宗會元’에 대해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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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汝綱(1793)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朴世維에게 보낸 편지로 도는 잠시라도 떠날 수 없으니 도를 떠나면 이적과 금수가 된다고 주장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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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景模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顯楨에게 답한 편지로 외가의 제사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의견을 모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결과를 이루는 것이 어려움을 당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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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英叔(1808)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家發에게 답한 편지로 선배들의 학문하는 방법을 담론하면서 붕우와 절차탁마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임을 제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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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仲擧(1831)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권중거에게 답한 편지로 장문의 편지와 시를 보내온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부탁한 시문은 글재주가 없으나 보내드린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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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1814)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2통의 서신과 별지 3폭 및 강의 1통을 보내온 所庵 李秉遠(1774~1840)에게 답한 글이다. 性·道의 偏·全과 四七理氣 등에 대해 주자의 설에 근거하여 논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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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에게 답한 서신의 별지로, 고산서원 강의에서 논의되었던 주제의 미진한 사안에 대해 답변한 것이다. 기질과 성의 본연, 渾然과 燦然, 이발과 기발, 心無出入의 3설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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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소암 이병원에게 답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不睹不聞]’는 단락의 뜻에 대해 답변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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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소암 이병원에게 답한 서신의 별지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과 未發과 사려·지각의 관계를 대산 이상정, 川沙 金宗德(1724~1785)의 설에 근거하여 조목조목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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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1815)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에게 답한 서신으로, 주자의 ‘실천을 통해 강학을 精緻하게 한다’는 말을 인용하여 면려하면서, 『주서절요』와 『주서강록』과 『주서강록간보』에 대해 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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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에게 답한 별지로 ‘天’과 ‘人’의 상대적 관계, 기질과 형기의 偏全, 음양과 오행의 경계에 대해 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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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1815)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에게 답한 글로 이단의 학설이 유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가학을 잘 계승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이병원은 대산 이상정의 손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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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에게 답한 서신의 별지로, 주자의 설에 근거하여 사단칠정의 구분과 본성의 본연적 기품의 차이를 논한 글이다. 所庵이 자신의 논리에 폐단이 있음을 스스로 고백한데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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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에게 답한 것으로 ‘不睹不聞’과 ‘無見無聞’에 대해 대산이 晩谷 趙述道와 約齋 權炳(1723~1772)에게 답한 글과 제가의 설을 원용하여 비교 논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