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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壺谷族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족형 호곡 류범휴(1744~1823)에 대한 제문이다. 류범휴는 김낙행·이상정의 문인으로 1780년 생원이 되었고 안변도호부사를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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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燁如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족질 류회문(1758~1818)에 대한 제문이다. 류회문은 1783년 진사에 합격했고 이상정의 문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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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奎應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족형 柳訔休에 대한 제문이다. 노애와 동암 두 선생에게 종학하여 경서에 두루 통했고 선을 즐겨 행하고 의를 좋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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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景範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족질 류낙문(1766~1807)에 대한 제문이다. 류낙문은 권렴·류장원의 문인으로 「방곡집」을 남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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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孟博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족질 류약문(1769~1819)에 대한 제문이다. 류약문은 류장원의 손자로 1792년 생원이 되었고 「龜峀集」을 남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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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父處士府君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季父인 처사부군에 대한 제문이다. 예법에는 한이 있으나 사모의 정은 끝이 없어서 잊으려고 해도 더욱 그리워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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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兄挺休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從兄되는 류정휴에 대한 제문이다. 사촌간이나 형제보다 더 우애가 있었고 동암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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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舍弟子儀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아우되는 류소휴(1774~1829)에게 한 제문이다. 저자에게 허물이 있으면 넌지시 충고해서 고치게 했고, 글 지을 때 군색하게 되면 고쳐주어 빛내 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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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眞城李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부인 진성이씨에 대한 제문이다. 부인은 36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저자와는 15년간 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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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子婦聞韶金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며느리 의성김씨에 대한 제문이다. 옛날 이름난 효부라도 의성김씨를 능가할 수 없다고 슬퍼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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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宗武大重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류범휴의 문인이던 처사 申大重에 대한 애도의 글로 저자는 신대중을 ‘호걸의 선비’로 지목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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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乃守基倫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벗인 함안 趙基倫에 대한 애도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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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景威達熙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22세로 요절한 南湖 徐達熙에 대한 애도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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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生㶅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청운처사 황학(1758~1804)에 대한 애도의 글이다. 황학은 역촌에서 태어나 후암 권렴, 천사 김종덕을 사사하여 시문에 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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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姪景質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37세로 마마에 걸려 죽은 저자의 족질되는 柳後文에 대한 애도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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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直心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秀德에 대한 애도의 글이다. 가학을 잘 계승하여 기대가 컸는데 중도에 갑자기 꺾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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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祖考處士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증조부 柳永時(1671~1738)에 대한 묘지문이다. 삼종형되는 류종시에게 수학했는데 만년에는 문중의 대소사를 주도적으로 담당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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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處士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선친 처사부군 柳忠源(1742~1798)에 대한 묘지문이다. 류충원은 평소 자제들에게 학문은 효를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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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代祖考龍巖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6대조 용암 柳知潛(1583~1653)의 사적을 정리한 글이다. 정유년에 왜구가 재침하자 기봉공과 함께 화왕산성의 곽재우 진중에 가서 擧義에 참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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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考松陰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조부 송음 류화현(1712~1782)의 사적을 정리한 글이다. 류화현은 류관현의 문인으로 「송음일고」를 남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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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父處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계부인 柳敏源(1748~1825)의 사적을 정리한 글이다. 원근의 친구와 위 아래 사람들이 모두 “후덕한 군자이다. 쌓은 것이 두텁고 베푼 것이 넓다”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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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孺人安東權氏遺事(1796)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만 60세로 죽은 저자의 모친 유인 안동 권씨의 행실을 정리한 글로 모친의 인품과 효성·절약·治産·검소함에 대해 기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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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弟成均生員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저자의 아우 성균 생원 류소휴(1774~1829)의 사적을 정리한 글이다. 류소휴는 일찍이 저자의 서재를 짓기 위해 재목을 모았는데 서재가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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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秉運이 쓴 류건휴에 대한 만사이다. 5언 율시 2수로 류건휴가 죽자 유학의 도도 따라서 피폐하게 되었다고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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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金羲壽가 쓴 만사이다. 5언 율시 2수로 公晦를 슬퍼하는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子强(류건휴의 字)을 잃었다고 슬퍼한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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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羲發이 쓴 만사이다. 7언 율시 1수로 대산과 동암의 학문을 계승하여 학문의 노선이 바르다고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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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家淳이 쓴 만사로 7언 절구 1수이다. 3년간 홀로 책을 안고 공부하여 고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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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家發이 쓴 만사로 7언 율시 1수이다. 하늘이 낸 인물로 동료들의 기대가 대단했음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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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秉夏가 쓴 만사로 7언 율시 3수이다. 신고의 노력 끝에 학설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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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徐成烈이 쓴 만사로 5언 율시 1수이다. 동암이 일찍이 인정을 했고 영남의 선비들이 의귀처로 삼았다고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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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질 柳鼎文이 쓴 만사로 5언 율시 4수이다. 예를 배워서 충·신을 기초로 삼았고, 법도를 행하여 곧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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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李秀弼이 쓴 만사로 7언 장편시이다. 송대의 성리서가 아니면 보지 않았고 대산과 동암의 학문을 계승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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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질되는 柳聖文이 쓴 만사로 7언 율시 1수이다. 류건휴의 학문 전수를 공자의 도를 전수한 증자에 비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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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손 柳致皜가 쓴 만사로 5언 율시 3수이다. 학문이 축적될수록 정신이 맑았고 공부를 철저히 하여 기질이 순박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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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손 柳致敎가 쓴 만사로 7언 율시 3수이다. 학문을 통해 변화한 것이 여동래에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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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逸圃 朴時源이 지은 것으로, 예학에 있어서는 상례와 변례에 따라 신중하였고, 경전의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파헤쳤다고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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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원이 쓴 제문으로 류건휴의 재주와 견식, 행실, 문장, 학문에 대해 서술하면서 특히 의리를 담론하는데 뛰어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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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이병하가 쓴 제문으로 이단을 비판하여 바른 학문을 밝힌 것과 패도를 지양하고 왕도를 지향한 것 등을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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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황중목이 쓴 제문으로 류건휴의 문사는 어눌했으나 가르침은 엄격하였고, 爲己의 학문을 실천한 데 대해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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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손되는 류치명이 지은 제문이다. 공이야말로 참으로 학문에 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경전의 은미한 뜻을 궁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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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질되는 류정문이 쓴 제문이다. 공평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고 서술하면서 공의 학문을 깊이 아는 자가 없는데 대해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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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손되는 류치구가 쓴 제문이다. 공자의 문인 3천명 중에 도를 전했던 증자에 비유하면서 효제와 성실을 바탕으로 한 인품을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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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족손되는 류치호가 쓴 제문이다. 당대의 이름난 선비로서 성인의 학문을 돈독하게 신뢰하여 이단의 학문을 배척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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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류건휴행장은 저자의 족손으로 사간원 대사간을 지냈던 류치명이 지었다. 행장의 내용은 문집의 저자 소개에서 대체로 언급하였기에 생략한다. 류치명은 성리설에 있어서는 이상정의 학설을 계승하여 이를 活物로 보고 이의 자발적 동정에 의해 기가 동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단칠정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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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東田 李中均의 문집. 14권 8책. 석인본. 서문이 없고 발문만 2편이 있다. 구한말 향촌에 은거한 유교지식인의 문집으로 당시 예안지방의 향촌 내 상황과 영남학파의 동향을 보여주는 자료가 많이 있다. 이중균 자신은 『陶山及門諸賢錄』의 편찬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편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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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草堂言志(1885), 霽夜, 吾廬族大父(彙馝)輓二首, 攤書(1886), 謹次老稼亭曺公褒贈韻(1887), 草宴, 旅中遣懷(1888), 孫景昆(庚鉉)館拈韻同賦, 登忠州城北樓, 黃江滯雨, 鳳凰川, 山城津, 東關廟, 向丹陽, 月夜, 冬至日書, 春日大父芝村行次陪後有作(188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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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題朴道亨宅山水障子, 月瀾精舍敬次先祖先生韻, 桃花下偶書奉呈鶴陰兄(中一)以冀左韻, 次朴君(載華)韻奉呈, 悶旱, 聞吳景亡, 黃花, 處士族叔(晩禹)輓, 奉懷巨濟兄(中喆)是日除夕, 遊鼻巖(1902), 卽事, 次韻金道謙(秉益), 雜興, 春農, 哭應源(再從弟中孝)二首, 韓參判(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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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甘泉酬趙應雨(鎭九)趙仲文(泰舜, 1915), 春日次老杜六絶句, 暮春衡七見訪用東坡月夜飮杏花下韻, 又拈農巖集韻相酬, 姜承宣舜來(鳳元)丈六十九歲生日壽九十親堂中均未及躬參盛筵聯綴蕪語以寓區區祝賀之忱, 書與族姪善必(性鎬), 挹春亭次韻, 訪舜佐於剡塾先有會者五六人拈韻覓句余亦和之, 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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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柳上舍鶴山丈輓(1922), 次韻題權聖循錘山亭, 玉淵亭, 金氏道林祠, 輓姜上舍(春元), 輓族姪菡山上舍(康鎬), 輓金文甫(奎昌), 輓趙君佑卿(宇泳), 觀金道謙李敬哉(學基)初秋會話之作次其韻二首,輓趙聖居(鎭容), 稚會乙卯冬末自甘泉撤寓歸無以爲家至今年十月得西巷數間屋分居喜而有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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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家大人(1893)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이중균이 성균관에 居接하면서 아버지 李晩昌에게 보낸 간찰이다. 집안의 안부를 묻고 安孝濟(1850~1912)를 탄핵하고자 하는 성균관 西齋生들의 움직임을 전하면서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공갈을 일삼는다고 전하였다. 안효제는 1889년 정언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은 무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