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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3601

    答姜興叔(聞昌,1925)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姜聞昌에게 보낸 답장이다. 연보가 지금 인쇄되어 반포된 것은 斯文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라 하고 영남 고가의 자제들이 시세에 따라 동요되고 있다고 탄식하고 편지의 첫 부분에 나아가지 못한다는 근심이 있다고 하나 반드시 나아갈 때가 있을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막지도 말았
    출처 : 유교넷
  • 353602

    答丁壻(1911)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사위 丁岱鎭에게 보낸 답장으로 학문에 힘쓸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03

    答李聖循(起轍,1931)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起轍에게 보낸 답장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편지를 받으니 어찌 응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고 농부가 농사지으면서 때를 놓치면 안 되듯이 그대도 공부에 힘쓰라고 하고 4개의 조를 읽어보니 다 어리석은 소견이 아니라서 대답하지 않았다고 하고 별지에 적어 보낸다고
    출처 : 유교넷
  • 353604

    別紙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맹자』의 好樂의 洛을 洛으로 읽는 것에 대하여 강우의 선배들이 설이 많은데 면우 곽종석의 그것에 대해서 질의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요씨의 주에 田獵은 비록 樂이 아니라고 한 것을 미루어 보건대 이는 분명한 것이다. 태교하여 성모가 성자를 낳았다고 한 것은 군자가 태
    출처 : 유교넷
  • 353605

    答族姪準鎬(1922)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族姪 李準鎬에게 보낸 답장으로 천하의 만사가 모두 心자에 달려 있으니 힘쓰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06

    答族孫源有(1920)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源有에게 보낸 답장으로 그대의 동년배들이 구학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멀리 돌아다니니 이는 세대의 뜻이 그러한데 그대는 문을 닫고 스스로 지켜 평상시와 다름이 없으니 세속이 변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지금 청량산에 들어가니 나는 그대가 깊이 靜處를 찾아보고 독서하여 의
    출처 : 유교넷
  • 353607

    答族孫源天(1920)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源天에게 보낸 답장으로 그대가 不出告不出面하지 않으니 이는 문제가 있다고 하고 그대가 물으니 내가 답하지만 이 한마디가 없으면 정을 숨기는 것이고 고식적인 대답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08

    答李悳儒(進泓,1929)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進泓에게 보낸 답장으로 편지의 큰 뜻은 내가 自靖하고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꾸짖으시는데 군자가 스스로 이루는 것과 남을 이루게 하는 것은 같은 것이라 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에는 능력이 모자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09

    答李悳儒(1931)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進泓에게 보낸 답장으로 자신의 처신을 獨善으로 규정하고 師道가 서지 않아 후학들이 의지할 곳은 없지만 스승을 오로지 섬기지 않고 남으로 북으로 돌아다니면서 利를 찾으니 古道를 자임하면서 사방의 돌아다니는 선비들을 기다리는 자가 누구이며 선비는 독서 수행하면서 선을
    출처 : 유교넷
  • 353610

    答李君羲瑞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시와 서를 읽는 것만이 학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나의 분수 밖의 일이고 성심으로 노력하면 理를 이루지 못하지는 않을 것인데 사람들이 스스로 포기하니 탄식할 만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대가 궁벽한 곳에 자라 고루한 폐습이 있고 공부한 바가 정심하지 못하다고 한 것은
    출처 : 유교넷
  • 353611

    答南煥汝(章燮,1929)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질의한 내용에 대한 답으로 人心道心이 서문에서 다른 이름인 것은 깨달은 자가 같지 않다고 발명한 것이라고 하고 上智人心, 下愚道心의 분속은 이기에 논한 것 같다고 하였다. 知仁勇 3자가 傳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주자가 주에서 특히 그 큰 뜻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라고 설
    출처 : 유교넷
  • 353612

    答高海應(永大,1931)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高永大가 질의한 내용에 대한 답신이다. 학문하는 방법을 물은 것에 대하여 修身을 강조하였다. 高永大가 명리를 탐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는 것을 격려하고 博約 두 글자를 요결로 삼으라고 권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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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13

    答族姪岱鎬(1930)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고 학문에 힘쓰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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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14

    答李德遠(馨鎭,1931)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馨鎭에게 보낸 답신으로 학문에 힘써 일방의 砥柱가 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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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15

    答權君鎬胤(1932)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權鎬胤에게 보낸 답장으로 학문에 진전이 없는 것은 걱정스러운 것이나 전도가 만리와 같으니 그 누가 금지하겠는가 하고 성심을 다하여 책을 읽고 성심을 다하여 여러 사람에게 구하면 된다고 하였다. 학문에 힘쓸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16

    答金壻桂煥(1927)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사위 金桂煥에게 보낸 답장으로 손자들과 사위 丁岱鎭이 왔다가 헤어지니 쓸쓸하다고 하는 안부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17

    答外孫金秉元(1918)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외손자 김병원에게 보낸 답장으로 부모 섬김을 잘하고 공부에 힘쓰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18

    與家弟稚會(1897)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동생 李中埰에게 보낸 편지로 부모님 두 분의 기력은 寢膳이 줄었으니 걱정스럽다고 하고, 山役은 이미 끝이 났다고 집안 소식을 전하고 아이들 교육은 그대가 아니면 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이 아이를 불러 공부하는데 힘쓰게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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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19

    答從姪宣鎬(1902)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이선호에게 보낸 답장으로 멀리 나가 돌아다닐 시절이 아니니 번거로운 일이 있더라도 돌아오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고 하고, 형이 脚腫이 나서 의사가 치료하였다고 집안 소식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20

    答子起鎬(1903)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아들 이기호에게 보낸 답장으로 杜詩를 다 읽었느냐고 공부의 상황을 확인하고 두시는 비록 읽을 만하나 뜻이 심원한 곳에 이르면 숨기는 것이 있으니 앞사람의 주석이 數百家의 것이 되더라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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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1

    寄起鎬(1907)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아들 이기호에게 보낸 편지로 공부는 어떠한 지 묻고 며느리는 약을 먹는지 안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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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2

    漫草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저자 이중균이 經典과 처세, 공부하는 자세에 대하여 수필형식으로 쓴 글이다. 『맹자』의 一治一亂說에서 출발하여 난세에 군자가 처해야 할 방도를 역사를 통하여 논하였고, 趙의 武靈王이 胡服을 입은 것과 북위의 拓拔氏가 胡服을 금지한 것을 비교하면서 夷가 華로 변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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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3

    題扇(1899)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부채에 대하여 논한 글로 부채는 바람을 치는 것으로 사람이 잡고 흔들면 바람이 생기는 것이니 이는 부채의 공으로, 비록 사람이 아니면 바람이 생기지 않으나 바람이 일지 않으면 염천의 뜨거운 열을 시원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니 그 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題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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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4

    正心章先祖先生訓專言省察考意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퇴계가 『대학』 「正心章」에 訓釋한 ‘專言省察’에 대한 이중균의 견해를 쓴 것이다. 퇴계가 정심장을 訓釋하면서 혹은 오로지 省察을 말한 것이라고도 하고, 存養을 같이 말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正其心을 하고자 하면서 心은 상하단을 통틀어 보아도 없는 것은 存養의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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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5

    文房四友贊(1903)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붓, 종이, 먹, 연적에 대한 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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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6

    戒兒(1908)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09년 10월 아들 起鎬에게 경계하여야 할 사항을 적어준 것으로 마음에 간직해야 할 사항들을 열거한 것이다.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을 열거하면서 正直을 우선적으로 내세웠고, 퇴계 이후 儒業을 닦았으니 명심하고 명리를 좇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3627

    勸兒讀書帖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아들 起鎬가 시국이 혼란하여 독서를 전폐하고 있음을 근심하여 내려준 글이다. 지금 시국이 정돈되기를 기다려 독서하려 함은 기약할 수 없으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명심하여 공부에 힘쓰라 하고 지금은 밭갈면서 책을 읽어야 할 시점이니 책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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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28

    讀老蘇管仲論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관중이 자신을 대신하여 현인을 천거하지 않았다고 논죄한 蘇洵의 글에 대하여 비판한 것이다. 비록 관중이 환공에게 현인을 천거하였다고 할지라도 과연 환공이 기용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하면서 竪刀·易牙·開方 3인은 사람으로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관중이 이야기하
    출처 : 유교넷
  • 353629

    觀海解嘲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12년 族姪 景初와 바다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으나 병 때문에 가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실천하지 못한 것을 놀리자 병이 다 나으면 가겠노라고 하는 해명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30

    丹丘日錄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16년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10일간의 丹陽遊覽記다. 26일壬辰 단양으로 출발하였다. 全秀璣·李準鎬가 동행하였다. 27일癸巳 榮川(榮州)를 지나면서 詩 한 수를 지었다. 昌保에서 묵었다. 28일 甲午 비가 와서 머물렀다. 29일乙未풍기에서全鳳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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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31

    南遊日錄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17년 4월 16일부터 4월 27일까지 12일 동안의 周王山遊覽記다. 16일 戊寅 주왕산을 향해 출발했다. 沙月에서 묵었다. 李源有가 수행했다. 17일 己卯 동산현을 넘으니 영양이다. 新谷 權翰模의 집에서 묵었다. 權翰模의 다리가 아파 가지고 갔던 赤藤杖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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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32

    元朝題壁上(1925)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25년 자신의 소회를 적은 글이다. 窮通과 禍福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려우며 毁譽와 是非는 사람에 달린 것이니 사람마다 보는 것은 다른 것이니 어찌할까 오직 나는 몸과 마음을 반성하고 심사숙고하여 큰 잘못 없이 생을 마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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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33

    書烈婦金氏事(1929)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열부 김씨는 의성인으로 운천 김용의 후예다. 예안김씨 金錫奎에게 시집갔는데 그 집안 역시 영남의 세가였다. 金錫奎는 재능과 학식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金化에 훈장으로 갔다. 김씨 홀로 시아버지를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는데 남편이 죽으니 나이 겨우 29세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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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34

    梨花村記聞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32년 8월 義興 梨花村에서 들은 黃尙栗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黃尙栗의 집에서 과객을 잘 대접한 내용을 적은 것인데 黃尙栗이 이름인지 자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35

    治生爲學者先務論(1904)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元의 魯齋 許衡이 말한 “治生은 학자가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먼저 힘써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하여 학자가 먼저 힘써야 할 것으로 正心·??修身·讀習·從師取友 4가지를 들고 관직에 나아가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은 먼저 힘써야 할 것이 아니라고 논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36

    魯兩生論(1909)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魯의 兩生이 叔孫通의 징발을 거부한 이유에 대하여 이중균이 論한 것이다. 兩生이 거부한 제설에 대하여 설명하고 自重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논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37

    昭烈臨崩託丞相亮論(1917)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유비가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한 것에 대한 論이다. 유비가 영안에서 만약 劉禪이 불초하면 제갈량이 나라를 맡으라고 한 것은 어린 주군을 보도하여 조씨를 멸망시키라고 한 것은 이윤의 일을 본받아 托顧한 것이라고 하고 군신의 명의는 감히 어그러뜨릴 수 없는 것이라고 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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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38

    志學說書與族孫源天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1914년 族孫 李源天에게 공부에 뜻을 두고 공부해야 할 순서에 대하여 적어준 것이다. 詞章之學과 事功之學은 힘써야 할 바가 아니라고 하고, 이원천이 『논어』를 읽고 겨울동안 나를 따라 『대학』을 배웠으니 그 뜻을 알만 하다고 하고 공부의 방향은 이 두 책을 빼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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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39

    石广說(1916)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全奎龍의 호인 石广에 대하여 설을 붙인 것이다. 전규룡이 石广이라고 호한 것은 조상인 野翁의 유지를 이어 받은 것이라고 하고, 전규룡이 옛 것을 좋아하고 조상의 뜻을 조술하는 뜻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40

    避魚粱說(1918)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퇴계가 도산에 있을 때 魚梁을 피한 것에 대하여 이중균이 설을 붙인 것이다. 퇴계의 出處가 六進六退하였는데 비록 義에 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추호라도 몸을 밝게 살피고 동정에 조심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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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41

    君活字說(1919)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源有에게 君活이라고 字를 지어주고 뜻을 풀이한 것이다. 이름에 근원의 뜻이 있으니 살아있는 물처럼 순리에 따른 학문을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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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42

    元甫字說(1931)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李善和에게 자를 元甫라고 지어주고 뜻을 풀이한 것이다. 元은 善의 으뜸이니 그 뜻이 심대한 것이라 하고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純深한 가르침을 주었으니 원대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43

    石齋銘(1909)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金洪奎가 遠巖川 상류에 石齋라고 편액을 걸자 그에 대한 銘을 지어준 것이다. 石齋의 뜻은 그 본연의 성격이 굳고 바른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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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44

    誠庵銘(1916)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姜秉熙가 西山 金興洛으로부터 받은 誠庵이라는 호에 대하여 銘을 지어주기를 청하자 이에 대한 명을 지은 것이다. 西山이 誠이라는 글자로 호를 한 것은 학문에 있어서 힘쓸 것을 명한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45

    書架銘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서가에 대한 명을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46

    燈檠銘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등잔대에 대해 명을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3647

    直山齋銘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全奎明의 호인 直山齋에 대한 銘이다. 全奎明이 사는 곳에 愚直谷이 있는데 이로 인하여 直山이라고 자호하였는데 아들 普鉉이 여러 사람이 지은 直山記 등을 가져와 齋銘을 지어달라고 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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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648

    土爐銘(1897)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질화로에 대한 銘이다. 질화로는 질박하고 누추하나 내가 항상 자랑하는 것이니 겨울에 눈 오고 추울 때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3649

    梅花硯銘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매화꽃이 장식된 연적에 대한 명이다. 1928년 全永韶을 위하여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53650

    抄誦序(1901)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
    抄誦은 내가 궤 속에 놓아두고 사사로이 보는 것인데 내가 자못 외우는 재주가 있었으나 요즈음 근심과 병 때문에 하루 종일 외워도 한 구를 외우기 힘들었다. 책을 따라 외운 이후 수십 년 사이에 잊어버려 지금 얼마나 남았는지 몰랐다. 지금 한두 축을 내어 간간이 날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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