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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月寒水亭重建上樑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퇴계를 추념하기 위하여 蒼雪齋 權斗經이 발의하고 古溪 李彙寧이 건립한 秋月寒水亭이 퇴락하자 문중에서 중건하고 상량문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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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溪宗宅正寢重建上樑文(1929)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上溪宗宅正寢重建上樑文(1929) 1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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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山書堂上樑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芝村 金邦杰家에서 芝山書堂을 짓자 상량문을 써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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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省齋上樑文(1930)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定省齋 琴모의 정자를 중건하자 상량문을 써준 것이다. 定省齋는 금난수로 추측된다. 퇴계의 문인으로 浮羅古洞에 있었으면 금난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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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叔君奭宅重建上樑文(1932)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晩佐가 집을 중건하자 써준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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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妣貞夫人崔氏遷葬告文(1895)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조모 貞夫人崔氏를 遷葬하고 쓴 告由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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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祖考別廟還安告文(1904)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별묘를 중수하고 5대조의 위패를 還安하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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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溪書院復享奉安文(1924)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淸道 紫溪書院을 再建하고 金克一, 金馹孫, 金大有를 復享하는 봉안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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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叔古隱公(晩埈)文(1895)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三從叔 古隱 李晩埈을 기리는 祭文이다. 고인이 평생 학문에 힘썼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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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克齋姜公(金冕)文(1896)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克齋 姜金冕을 기리는 제문이다. 공의 죽음은 사림의 참변이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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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上舍洪公(鍾善)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洪鍾善을 기리는 제문이다. 洪鍾善과의 교분을 언급하고 맑은 술을 드린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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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應木文(1900)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中森을 기리는 제문이다. 1895년 숙부의 상을 당하자 친척·친지가 탄식하였으나 그대가 있어 집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상을 마친 지 2년 만에 요절하고 어린 자녀가 우는 것을 보니 차마 참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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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應源文(1903)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中孝를 기리는 제문이다. 이중삼이 죽고 그대가 혈기방장한 나이에 죽으니 누가 나를 위해 근심할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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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斗用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星鎬를 기리는 제문이다. 고인과 友誼가 깊었음을 말하고 명이 하늘에 달렸으나 요절함을 어찌할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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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大父恥菴令公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恥菴 李모를 기리는 제문이다. 학문에 힘썼고 白首가 되어서도 직접 부모를 봉양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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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姜氏文(1904)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妻 강씨를 기리는 제문이다. 부부가 되어 동거한 지 28년 만에 하루도 편히 해주지도 못하고 이렇게 오늘 죽게 되니 28년이 그대에게는 고통이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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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響山公文(1911)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響山 李晩燾를 기리는 제문이다. 나라가 망하자 단식하여 28일 만에 절명하자 사람들은 공이 죽은 것만 알지 義를 위해 죽은 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만도의 학문이 넓고 정심함을 말하고 공의 죽음이 오히려 영광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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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小宗兄圭範(中錫)文(1913)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中錫을 기리는 제문이다. 李中錫의 효심이 지극하였음을 말하고 예순이 안되어 죽었으니 어린 아들은 어찌할까 하고 탄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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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參書景極文(1915)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晩圃 金奎一의 대상 때 지은 제문이다. 고인과의 우정을 말하고 고인이 도의와 행실이 있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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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德汝文(1917)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姜를 기리는 제문이다. 그대의 부고를 받으니 눈물이 샘솟는다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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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世能文(1918)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金秉奎를 기리는 제문이다. 고인의 풍도가 효성스럽고 속태가 없었음을 말하고 이중균이 아플 때 약을 보내주기도 하는 등 우정이 깊었음을 이야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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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姜公文(1919)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장인 姜濟를 기리는 제문이다. 고인이 금일에 살면서 옛 도를 행하는 인물이었다고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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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澹山孫參奉文(1921)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澹山 孫昌鉉을 기리는 제문이다. 『도산급문제현록』을 편찬할 때 孫昌鉉의 공이 컸음을 말하고 8·9년 동안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부음이 오니 슬프다고 하며 孫昌鉉의 신선같은 모습을 기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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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孫表弟(珽鉉)景振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외사촌 동생 孫珽鉉을 기리는 제문이다. 나이 마흔이 못 되어 요절함을 통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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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周若文(1922)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어릴 때부터의 친구였던 姜麟元을 기리는 제문이다. 1919년 양가의 상을 당하여 서로 조문하였으나 말할 틈이 없었는데 3년 만에 죽으니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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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溪涯金丈(尙欽)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溪涯 金尙欽을 기리는 제문이다. 김상흠이 재덕이 있었다고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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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寧越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姜鳳元을 기리는 제문이다. 내가 병이 들어 신음하니 엎드려 절하지 못하고 글과 눈물을 바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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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處士張丈(復吉)文(1925)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張復吉을 기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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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宅實(華永)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金華永을 기리는 제문이다. 고인의 학문과 風度를 기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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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公晉(輝瑨)文(1926)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金輝瑨을 기리는 제문이다. 고인과 도의로 사귀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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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兄郡守公文(1930)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郡守를 지낸 사촌형을 기리는 제문이다. 이중균의 아버지 李晩昌이 李彙承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에 養家에는 사촌형이 없고 생가의 사촌형으로 9년 위의 종형은 李中喆이다. 편지 중에 지방관으로 재임하고 있는 이중철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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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琴致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琴鏞夏을 기리는 제문이다. 그대의 자취를 좇아 고산정에 가니 정자는 물가에 있는데 주인은 어디 갔나 하고 탄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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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朴上舍稚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朴勝振을 기리는 제문이다. 내가 공을 위하여 곡을 할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78세의 수를 누리고 아들 또한 장성하였으니 가풍을 떨어뜨리지는 않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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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晩兟文(1932)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再從叔 李晩兟을 기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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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南吳景哀辭(1901)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石南 吳모에게 바친 哀辭다. 고인과 성균관에서 만나 우정이 두터웠고 예안으로 낙향할 때 애절한 정이 있었다고 한다. 깊은 산골에서 서울의 소식을 모르다가 올해 봄에 서울로 가는 자가 있어 소식을 물어보니 건강이 좋지 못하고 집안이 몰락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서 소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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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宅中耒文(1904)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金書洛에게 바친 耒文이다. 金書洛은 풍산인으로 晩圃 金奎一의 2子다. 1903년 8월에 김규일이 경무청에 체포되었을 때 순검을 통하여 옷과 이불을 넣어주고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버지의 무고를 재상에게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병이 들어 고향에 내려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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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興伯耒文(1909)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姜佑昌에게 바친 耒文이다. 어려서부터 병이 있어 치료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할아버지 참봉공은 84세며 아버지 승선공 또한 늙었는데 참혹하다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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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再從孫源吉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再從孫 李源吉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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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子婦安東權氏哀辭(1922)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조카 李信鎬의 처 安東權氏가 출산 후 사망함을 애도하는 哀辭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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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錦松哀辭(1927)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錦松 朴膺植을 애도하는 哀辭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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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弟應木壙誌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中森의 壙誌다. 이중삼의 자는 應木으로 宜溪 李晩頀의 아들인데 효성스럽고 근신하여 문호를 열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宜溪公이 돌아가신 지 5년만에 이중삼이 죽으니 화가 매우 혹심하다 하였다.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監役 金輝濬의 딸이다. 1871년 5월에 태어나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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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人宣城金氏墓誌銘(幷序,1909)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姜岐昌의 妻 예안김씨의 묘지명이다. 김씨는 文節公 金淡의 후예로 증조의 휘는 永珏, 조는 의금부도사 金樂灃이며, 아버지는 金輝國이며 어머니는 성균생원 姜鎏의 딸이다. 나이 14세에 姜岐昌에게 출가했다. 시부모를 모실 때 항상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나지막히 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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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文公墓碣銘(幷序,1913)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松石 文錫軫의 비문이다. 楓菴 文緯世의 10세손 의관 文桂泰가 장흥에서 찾아와 도산서원 상덕사를 배알하고 다음날 방문하여 松石 文錫軫의 행장을 보여주며 묘갈명을 청하였다. 사양하였으나 부득이 짓는다 하였다. 文錫軫의 자는 應八, 본관은 南平으로 문익점의 후예이며 楓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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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圃宋公墓碣銘(幷序,1922)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宋祜永의 비문이다. 宋祜永의 자는 鼎年이고 冶城人이다. 10세조 訥齋 宋碩忠이 김굉필·최부와 교유하다 무오사화를 피해 영주에 자리잡았다. 증조는 儒恭이고 할아버지는 震基, 아버지는 應錫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 民寧의 딸이다. 순조 29년(1829) 12월에 태어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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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生洪君墓碣銘(幷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洪淵穆의 비문이다. 洪淵穆은 16세에 진성이씨 문중으로 장가들어 이중균의 아버지 李晩昌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29세에 요절했다. 敬齋 洪魯의 후손으로 증조의 휘는 璧修로 호는 三畏齋이며, 조부는 龍佑로 호는 寒坡다. 아버지는 羲欽으로 대대로 缶林縣 栗里에 살았다. 어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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僉知中樞府事朴公墓碣銘(幷序,1923)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朴萬埰의 비문이다. 朴萬埰의 자는 和春이고 밀양인이다. 朴仲孫의 10세손이다. 고조의 휘는 培根인데 기자전 참봉을 지냈고 증조의 휘는 彦厚로 문과에 급제했다. 할아버지의 휘는 福諶인데 嘉義大夫에 올랐다. 아버지의 휘는 承完으로 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청주에서 野城 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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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岡李公墓碣銘(幷序)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李晩輿의 비문이다. 자는 希曾으로 眞城人이다. 蒙齋 李安道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彙儁이고 어머니는 上洛金氏 東壽의 딸이다. 書山 李晩浩에게 수학하였다. 한주 이진상의 心卽理설을 논파하였다. 1904년 44세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庸學要辨』, 『踐形篇』이 있고 시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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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室宜人姜氏墓誌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자신의 부인 강씨의 묘지다. 철종 11년(1860) 태어나 1903년에 사망하니 44세이다. 장사 지낸 지 20년 후 아들 起鎬가 청하여 쓴 것이다. 부인의 본관은 晋州이며 봉화 法田里가 世居地다. 姜恪의 10세손이고 姜濟의 딸이다. 17세에 이중균에게 시집왔다.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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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生洪公墓碣銘(幷序,1925)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洪時燮의 비문이다. 자는 汝章, 호는 思谷이며 남양인이다. 고려 經濟功臣 洪灌의 후손이다. 증조의 휘는 龜儀로 贈左承旨이며 할아버지의 휘는 海鵬인데 贈戶曹參判이다. 아버지 秉機 또한 贈戶曹參判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 鳳泰의 딸이다. 1826년 태어나 1888년 12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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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一愚洪公墓碣銘(幷序,1928)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균洪鍾善의 비문이다. 자는 而受로 남양인이다. 퇴계문인으로 寧原君에 봉작된 晩全 洪可臣의 후손이다. 할아버지의 휘는 晩裕이며 생원이었고 호가 后山이다. 아버지는 思建이고 어머니는 眞城李氏 彙震의 딸이니 이중균에게는 종고모가 된다. 순조 34년(1834) 태어나 溪堂 柳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