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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3801

    與南鎭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南峻衡에게 보낸 편지이다. 邵雍의 시, "林下居常睡起遲, 那堪車馬近來稀"를 보니, 바로 오늘의 況味이다.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바로 一場의 懽이라. 알지 못하겠으나, 煙火臼에서 超然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출처 : 유교넷
  • 353802

    答尹退甫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尹思進에게 보낸 답서이다. 紙面 가득히 亡人을 哀悼하신 말씀은 不覺 중에 눈물이 난다. 백수로 지내는 세상의 정경이 어찌 그리 비슷한가! 짚신과 지팡이를 찾아 들고서 적막한 물가에서 만나 회포라도 풀면 모년의 쾌활한 일이겠지만, 피차 세상일에 얽매어 있으니 한이 된다
    출처 : 유교넷
  • 353803

    答九峯會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九峯書院에 보낸 답서이다. 疾病 때문에 武毅公(朴毅長)의 諡冊延賀에 가지 못하여 죄송하다. 告由文字를 어찌 이토록 잘못 맡겼는가? 百拜하며 사양할 일이지만, 裔孫의 한 사람이니, 어리석음을 다하여 裁擇에 대비할 수밖에 없겠다.
    출처 : 유교넷
  • 353804

    答申周伯聖濂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申聖濂에게 보낸 답서이다. 先集을 보고싶다는 말씀을 하였는데, 집에는 底本 밖에 없으나, 誤字를 미처 다 고치지 못하였다. 노형의 요청이 매우 간절하므로 이 책을 보내 드린다. 열람하시는 중에 可疑處가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란다.
    출처 : 유교넷
  • 353805

    答栢湖役所僉員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栢湖精舍를 重修한지 벌써 月餘가 지났다. 上樑文을 지으라고 하시지만, 자손들이 參涉할 일이 아니다. 사양하는 것밖에 다른 방책이 없으나, 상량 기일이 박두하였다고 하니, 부득이 대충 적어 보내지만 쓸만한 것이 못된다. 바라건대 僉賢들은 他處에서 구하여 귀중한 禮貌를
    출처 : 유교넷
  • 353806

    答咸安晉州諸宗與諸親聯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함안과 진주의 종중에 보낸 답서이다. 족보 편찬이 시작되었다니 僉賢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別錄은 앞날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것이다. 병신년의 修譜를 續成 增錄하기 바란다. 配室의 世系를 함께 기록하는 일은 부담이 될 뿐만이 아니라, 舊例에 어긋나니 다
    출처 : 유교넷
  • 353807

    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앞의 답서에 덧붙인 別紙이다. 高麗史에서 인용한 樂浪公主 神鸞公主에 대한 의문은 세대가 멀고 근거할 전적도 없으니, 舊譜 傍註의 例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 구보의 諱 小鳳 傍註에 上將軍으로 기록한 것은 반드시 근거가 있을 것이다. 姜碣 때문에 상호군으로 바꾸는 것은
    출처 : 유교넷
  • 353808

    答咸晉諸宗與諸親聯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함안과 진주의 종중에 보낸 답서이다. 嘉樹尸祝事는 지난 답서에 이미 의견을 전하였으니, 僉左右들이 善處하였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遷延하다가 或 의견이 다른 자가 틈을 엿보면 자칫 狼狽를 볼 수도 있다. 移奉處가 數間에 不過한 荒墟破屋일 뿐이라고 하던데, 걱정스럽지 않
    출처 : 유교넷
  • 353809

    與咸安宗人五見文龍兼柬僉宗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함안의 宗人 李文龍과 그곳의 諸宗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嘉樹創設事는 門親들의 의견이 합치되어야만 한다. 奉先의 도리는 規範이 있다. 朝廷에 稟議하거나 士林과 議論해야 한다. 公議도, 規模도 欠闕하면 될 일이 아니다. 우리 후손들이 선조를 높이는 길은 오직 餘範을 지켜
    출처 : 유교넷
  • 353810

    上伯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伯氏 李猷遠公에게 올린 편지이다. 兒姪들이 이번의 酬應에 可望이 있을 듯하지만, 필경에는 떨어지고 말 것이니 걱정이다. 石役은 추위가 다가오니 여쭙지 않을 수 없다. 뒷날 東坡의 일은 마칠 것을 생각하시면, 한번 合當한 돌을 두루 구해 보시라.
    출처 : 유교넷
  • 353811

    答族弟大益紀遠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紀遠에게 답한 편지이다. 내용은 石溪府君(李時明)의 宗家에 收藏하고 있는 繡帖의 제작자에 대한 의견을 적은 것이다. 석계부군의 글씨에 그 며느님인 曾王비가 수를 놓은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출처 : 유교넷
  • 353812

    與再從弟希道象遠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象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幼聞(李重祖)이 서울에 올라가 여러 달을 고생하면서 成 의 일을 遭遇한 것은 이미 전해 들었으리라. 그가 어릴 때 갈암선생에게서 수업하였고, 뒷날 글을 보내 절교를 고하였다는 말은 맹랑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首揆가 이미 筵中에서 進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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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13

    與希道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象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湖嶺의 知舊들이 대궐 앞에 나아가자고 發議하면서, 嶺南에서 깃대를 들면, 畿湖 諸人들도 협력하겠다고 한다. 幼聞이 川水, 蘇湖, 沙村 등처를 다니며 의논하기를, 이 달 보름 虎院에서 모여 各邑에 통문을 보내기로 약속하였다고 한다. 京書와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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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14

    答再從弟幼聞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重祖에게 답한 편지이다. 근래의 爻象이 전날과 같지 않다. 함께 보내는 洪範衍義는 蔡大監에게 보이되, "私家에는 단지 이 한 본 뿐이니, 登覽하신 뒤에 돌려 주셔야 한다."라고 말하라. 다만 대감이 읽어 본 뒤에 上께 올리고자 한다면, 그 뜻을 거절하기 어려울 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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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15

    答幼聞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重祖에게 보낸 답서이다. 擧幡 일은 편지글과 등사하여 보내온 諸文字를 보니, 각처의 의견이 동일함을 알겠다. 諸賢들의 높은 뜻이 이와 같으니, 天運이 陽復하려는가? 感動하여 不覺 중에 눈물이 난다.
    출처 : 유교넷
  • 353816

    與族姪夏瑞宇錥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宇錥에게 보낸 편지이다. 族譜의 續成은 累世에 걸쳐 이루지 못한 일이거늘, 그곳의 宗人들이 先唱하였으니, 어려운 일이다. 舊譜는 高王父(李時明)가 주관하신 것이고, 曾王父 형제분이 검토한 것이다. 당시의 餘規를 준수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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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17

    寄長姪宇鏻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李宇린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조카의 편지글에 담긴 不平한 氣를 보고서 충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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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18

    寄烈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妻家에 가 있는 아들 李宇烈에게 보낸 편지이다. 應孫 母子는 잘 지내는가. 내일이 그 첫돌이라 더욱 보고 싶구나. 그곳의 諸公들은 모두 나의 평생 친구이니, 소홀히 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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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19

    答烈兒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아들 李宇烈에게 보낸 답서이다. 아이들이 工課를 꾸준히 하는지 궁금하다. 遺稿를 校勘하는데, 科日이 迫頭하니 젊은이들이 분주하여 書寫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六行祀事가 끝난 뒤에는 바로 돌아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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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0

    戒潝瀅兩孫及侃子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潝과 瀅, 두 손자와 아들 李宇侃에게 준 경계의 글이다. 처음으로 科場에 들어가는 두 손자와 아들에게 길조심하고 실수하지 말라고 당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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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1

    字說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字 亘甫의 의미를 설명한 글이다. 나의 初名은 宙遠이다. 季祖 弘庵公이 명명하신 字가 亘甫이다. 뒤에 周遠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긍보라는 자를 계속 사용하였다. 宙와 周는 글자는 다르지만, 貫徹長存의 뜻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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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2

    成僩告絶書辨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成僩이 葛菴先生에게 絶交를 告하였다는 편지글에 대하여, 거짓임을 따진 글이다. 성한은 13세 동자 시절에 선생의 문하에 찾아와 배웠으며 뒷날 글을 보내 절교를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대흥 사람인 성한이 영해까지 칠백리를 찾아와서 배웠을 리가 없다. 혹 13세의 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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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3

    偶讀謾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우리 東方은 箕子가 八條로 設敎한 이후, 禮法을 숭상하여 小中華라는 칭송을 받았다. 姓이 같더라도 本貫이 다르면 婚姻을 하는 우리의 婚習에 대하여, 중국인들이 이를 胡俗이라고 비웃는다. 禮記大傳과 喪服小記의 주석을 보면, 殷人은 五 六世가 지나면 서로 通婚을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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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4

    厝火有惑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나의 온돌방은 하루에 한번 불을 땐다. 미지근하다가 점차 더워지는데, 夜半이 지나면서 기운이 점차 쇠하여 차츰 식어간다. 다시 불을 때면, 아래는 다시 뜨거워지지만 방안의 寒氣는 더욱 심해진다. 음(냉기)과 양(온기)이 서로 부딪칠 때, 점차로 만나다가 격렬해지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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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5

    張氏論詩集傳說辨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谿谷張氏(張維)가 朱子의 詩經集傳을 논하여, "國風 중의 淫奔之詞 수십 편을, 毛序는 淫亂을 諷刺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주자는 음란한 자의 自作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인이 무슨 이유로 이를 경전에 실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는 馬端臨의 文獻通考에 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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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6

    書經酒誥箚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周書 主顧 두 편에 대한 의문은 蔡沈의 설명이 자세하므로, 두 글이 하나라는 점은 다시 의논할 것이 없다. 그러나 篇首 "王若曰" 아래에 封 한 글자가 빠졌다. 또 酒誥 중에 "爾丕克羞耉惟君" 중의 惟君 두 자는, 蔡氏가 未詳이라고 하였으나, 내 생각으로는 "爾惟君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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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7

    丹槎三記事(178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갑진년 봄, 權允卿의 墳庵에서 본 세 異人에 대한 기록이다. 고기잡이를 하면서 자기 분수를 지켰던 王達父, 병자난에 남한성에서 淸主을 저격하려다 실패한 뒤에 평생 한을 품고 살았던 포수 是漢의 조부, 李爾瞻의 도당인 縣令의 강권을 뿌리친 崔士龍 등의 일화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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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8

    送諸秀才赴公車序 十二歲作(17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나이 12세에 지은 화제작이다. 今上 즉위 명년 8월, 선비들을 불러모아 과거를 치른다니, 遠近의 靑衿이 다 모인다. 이 산중의 제공들도 참가한다. 우리 주상이 堯舜 보다 나은 임금이 되어, 이 세상을 仁壽의 고장으로 만드는 것이 선비의 직분이다. 금상이 群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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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29

    感歲除詩序 同年作(17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사람은 때에 맞게 勉勵해야 한다. 大禹도 寸陰을 아꼈다. 지금 歲除之日에 나 홀로 유감이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 천지만물이 모두 새로워지는데, 나의 학업은 아직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12년 遊戱했던 습관을 신년부터는 바꾸리라. 聖賢의 遺經을 읽어야지. 夙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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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0

    丹峽畏友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금년 가을 伯氏가 匡廬山 아래로 돌아왔다. 梔子 화분을 丹陜族兄의 집에 맡겨 두고서 날마다 함께 지내며 撫玩하였다. 백씨가, "치자는 그 성품이 부녀를 꺼리고, 술과 고기냄새를 싫어하니, 草木 중의 佛子라."고 말하자, 족형이 "이 식물은 공경할만하구나. 나의 畏友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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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1

    同樞權公載巽壽席時序(178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옛날에 先王들은 나이 많은 이를 높여 大耋에 이르면 爵位를 내려 주었다. 富貴는 위세나 지모로 얻을 수 있지만, 長壽는 제왕의 尊貴로도 얻을 수 없다. 佳山權丈은 지금 93세이다. 나라에서 二品 同樞의 작위를 내려 주었다. 기유년 맹동 18일 경인에 사당에 고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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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2

    紅蓮庵重修記(175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고향에 있는 암자, 홍련암의 중수기문이다. 기묘년에 藏六寺의 홍련암을 秀行이 중수하였다. 내가 "佛家는 淡素를 귀하게 여기면서, 집을 이토록 치장하였는가?"라고 농을 하니, 수행이 웃으면서, "그 말씀이 맞습니다만, 이 암자는 한 사람 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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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3

    眠雲亭記(176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거처 眠雲齋의 기문이다. 집 뒤의 산허리에 우묵한 곳이 있는 것을 보고서, 자리를 정하였다. 騰雲山을 뒤에 두고 雲棲山을 마주 보고 있는데, 아래로는 나의 집과 십여 걸음에 불과한 자리이다. 경진년에 주추를 세우고 지붕에는 이엉을 얹었다. 伯氏가 나에게 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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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4

    魯軒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箕城의 張東浚의 집, 魯軒의 기문이다. 張上舍補天은 慕古하는 선비이다. 魯國은 周公이 다스리고 孔子가 살던 곳이니, 千古에 걸쳐 天下가 敬重하는 곳이다. 曾子가 一貫의 統을 이어받은 것도 魯로써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독학하여 실천하는 자는 魯로써 自勉하고, 성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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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5

    於斯窩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벗인 松江逸老 權子의 於斯窩의 기문이다. 주인옹과 나는 知己가 된지 70년이 되었다. 어느 맑은 봄날 이곳을 지나자니, 주인이 漁父詞 한 곡조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이어서 "여기에서 술 석 잔, 여기에서 글 백 편, 여기에서 마음대로. 明月도 여기서, 淸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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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6

    冥棲庵記(178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曾祖 李徽逸의 冥棲庵의 증수 사실을 적은 기문이다. 명서암은 존재선생이 중년에 卜居하신 곳이다. 당시 갈암선생도 상류의 鳥嶺 아래에 寓居하셨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뒤, 큰물이 그 앞을 덮쳐 모래더미에 덮인 지 거의 백년이 지났다. 계사(1773)년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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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7

    篤洞齋舍重創事實記(177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선조 李璦의 齋舍를 중창한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篤洞은 蔚珍縣令府君의 衣履를 모신 곳이다. 건물이 노후하여 무술(1778)년 宗人들이 중창하였다. 부군이 海邦에 터를 잡은 지 이미 10세 11세가 지났다. 백여 가구가 넘는 자손들이 花樹의 友誼를 돈독히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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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8

    先祖妣繡帖詩跋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宗家에서 수장하고 있는 繡帖의 발문에 덧붙인 글이다. 수첩의 두 시는 高王妣貞夫人張氏가 지은 것이고 高王父 石溪先生의 筆跡이며, 曾王母의 繡이다. 五世孫 宇標가 서울에 갖고 가서 함을 만들었다. 서울에서는 많은 搢紳들이 찾아와 보고서 李氏三絶이라고 감탄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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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39

    家訓增補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冷泉(李猷遠)공과 三守(李輝遠)공이 편찬한 家訓增補의 後敍이다. 족형 삼수공이 家世諸文字를 수집하여, 냉천공이 兒孫들을 訓戒한 詩 各條의 주석 아래에 부록으로 붙이고서 李氏家訓增補라고 이름을 붙였다. 내가 그 뜻을 이어받아 냉천공이 편찬한 家乘 중에서 사실을 節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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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0

    權氏三世逸稿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權氏三世逸稿의 발문이다. 이 책은 眞城에 사는 權瑚의 曾大父와 大父 및 그 先公의 遺文이다. 권군이 말하기를, "자손이 적고 喪禍를 만난 데다가, 禍厄을 당하여 선대의 유적이 남은 것이 없다. 내가 겨우 수습하여 한 책을 만들었으니, 집사가 유의해 주기를 바란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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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1

    忠烈錄卷末十六字後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忠烈錄 卷末에 적힌 十六字의 來歷을 적은 글이다. "忠義骨髓, 道理心腸. 古人此語, 公實承當"의 16字는 寒岡先生(鄭逑)이 鶴峰先生(金誠一)의 祭文에 쓴 글이다. 存齋先生이 參判 鄭公(鄭湛)을 위해 忠烈錄을 편찬하면서, 이 16자를 취하여 책의 말미에 친필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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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2

    書忠烈錄續篇新增後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忠烈錄續篇新增의 後敍이다. 참판 정공은 임진왜란 때 南路를 차단하여 왜적의 공격을 막다가 殉國한 분이다. 호남 일대가 그에 힘입어 보전되었고, 국가가 중흥하는 기본이 되었다. 존재선생이 諸家의 기록을 수습하여 忠烈錄을 편찬하였으나, 草本이 整頓되기 전에 선생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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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3

    外先祖武毅朴公觀感錄續篇後敍(178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외선조 朴毅長의 행적을 담은 觀感錄 續篇의 발문이다. 武毅公은 임진왜란에 나라를 지킨 공이 많은 분이다. 그 행적은 관감록 전후편에 실려 있다. 갑진(1784)년에 공의 6세손 朴師周가 천리 길을 달려가 御駕 앞에서 시호를 청원하였다. 이에 贈諡를 請願하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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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4

    書翼道編門補缺重修後(176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가 족친들과 함께 편찬한 翼道編門補缺重修의 발문이다. 정사(1737) 무오(1738)년간에 나는 皆言(李宇宏), 斗天(李宇鎭) 및 諸親들과 百家書를 모아 이 책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失火하여 반 넘어 사라졌고, 개언 등도 이미 고인이 되었다. 지난 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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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5

    竹老申公遺稿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竹老申公遺稿의 발문이다. 竹老公은 孝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18 9세에 方伯에게 글을 올려 學校敎養을 논하였다. 民隱을 目擊하고 지은 萬言疏는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江湖에서 憂世하는 뜻을 볼 수 있다. 시문이 淸逸古雅하였지만, 공의 저술은 장자 상사공이 적어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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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6

    家藏墨帖後識(179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저자의 家藏墨帖의 발문이다. 이것은 냉천공이 무인(1758) 기묘(1759)년간에 再從弟 象遠을 시켜 배접한 家世寶藏이다. 신축(1781)년에는 長姪 宇鏻이 냉천공의 手墨을 그 아래 追附하였다. 이에 粧帖한 과정과 함께 대대로 물려줄 珍藏이므로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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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7

    眞寶鄕校明倫堂移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진보향교의 명륜당을 옮겨 세울 당시의 상량문이다. 眞城의 學校는 입지가 적당치 않아 여러 차례 이전을 하였다. 다행히 나라의 宣賜를 받아 漢丘에 새로 짓게 되었다. 고을의 문풍이 진작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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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48

    石川書堂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석계선생의 유촉지 石保에 石川書堂을 세울 때의 상량문이다. 家學을 크게 진작시킨 석계선생의 유덕을 칭송하고, 그 터에 세우는 석천서당에서 후진들의 학업이 진작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3849

    栢湖亭重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백호서당을 중건할 때의 상량문이다. 存齋先生의 遺址를 표장한 선배들의 공로를 찬양하고 이곳에서 선비들의 進德修業하는 공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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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850

    碧水高祖비贈貞夫人金氏墓立石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원
    碧水에 있는 高祖비 贈貞夫人 金氏의 묘소에 비석을 세울 때의 고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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