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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樂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참봉 金宅浚은 호남의 望族으로 阜州의 道溪里에 대대로 거주하였는데 지난 봄 자기 집 동쪽 두어 걸음 정도 되는 곳에 삼락재를 지었다. 손님이 「孟子」에 나오는 三樂의 의미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자신이 이 정자를 지은 의미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저자가 문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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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松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松夜에 살다가 다시 吉安의 松堤로 돌아가 몇 칸의 집을 짓고 삼송재라 이름한 친구 權應安의 재실에 쓴 기문이다. 손님을 내세워 삼송재가 도연명의 세 길이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가 오히려 남아있다는 것에서 뜻을 취한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면서 자신이 삼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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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泉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豊山 서쪽 芳洞의 곁에 한천정이 있는데 곧 晩翠 김공이 서식하던 곳이다. 김공은 산수를 좋아하여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했다. 정자가 頹落함에 그 손자 驥煥이 새로 짓고 기문을 요청하기에 지어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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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澗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문경의 沙谷里에는 晩悔 처사 孫箕一의 정자가 있는데 손군이 여기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하고 있었다. 손군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세상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詩書로 世業을 삼고 孝友로 집안의 정치를 삼았다. 그 형제들이 모두 뛰어났으나 요절하는 바람에 세상의 쓰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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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毅公嚴先生神道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寧越戶長 忠毅公 嚴興道의 신도비문이다. 영월에서 단종이 승하함에 아무도 화를 두려워하여 접근조차 두려워하고 있을 때 엄흥도가 나서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영월군 북쪽 冬乙旨 산에 장사를 지냈다. 그의 사후에 여러 벼슬이 내려지고 그를 위해 義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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梧峯申先生神道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鵝州 신씨 고려 판도판서 휘 윤우의 후손이요 증좌승지 휘 몽득과 증숙부인 월성 박씨 민수의 따님 사이에서 오봉 申之悌 공이 태어났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8세에 모친상을 당함에 성인처럼 초상을 잘 치렀다. 강보에 있는 누이동생이 심히 슬피 우니까 공이 항상 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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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平公竹軒吳先生神道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同福 오씨 시조 휘 녕의 후손이요 부친 검교참찬 문하찬성사와 모친 안동 권씨 현복군 렴의 따님 사이에서 죽헌 吳陞 공이 태어났다. 司馬 兩試에 합격하고 문과를 보았는데 조선 태종과 同榜及第하여 사간원 헌납을 除授받았다. 이 후에 內外職을 포함하여 수많은 벼슬을 지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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雍齋先生朴公壝墟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龜山 박씨 시조 휘 천의 후손이요 안상의 아들인 옹재 朴致霖의 유허비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학을 열심히 공부한 선비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申晦堂, 高杜谷과 道義交를 맺고 임란에 아들을 의병에 보내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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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窩黃公壝壇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檜山 황씨 시조 휘 석기의 후손이요 덕원부사 휘 찬과 숙부인 전주 이씨 군수 윤순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난 黃世喆의 제단비문이다. 남와공은 膂力이 뛰어난 장사로 임란에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했고 그 부인인 숙부인 평산 신씨도 남편의 순절 소식을 듣고 곧 下世한 충절의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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遯菴先生李公遺墟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둔암 이상휘는 합천 이씨로 문질공 강천 휘 예와 그 아들 달암 휘 원달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비록 궁벽한 지방에 살았으나 항상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려다가 괴수가 섬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두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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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部錄事興海裵公壝壇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흥해 배씨 시조 휘 현경의 후손이요 세종 때의 名臣인 예문관 직제학 휘 환과 보승랑장 취용의 따님인 정부인 함창 김씨 사이에서 5남중 차남으로 동부녹사 裵孝存은 태어났다. 공의 사적이 매우 많았을 것이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거의 없어져서 자세히 알 수가 없게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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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隱先生閔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여흥 민씨 고려 상의봉어 휘 칭도의 후손이요 적순부위 행사맹 휘 총과 군사 장의 따님인 숙부인 파평 윤씨 사이에 서울에서 남은 閔興이 태어났다. 공은 易學에 조예가 있고 세간의 명리에 마음이 없어서 청송의 당저동으로 내려와 거처를 남은이라 하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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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武原從功臣蘇菴先生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김녕 김씨 고려 평장사 시호 문열공 휘 시흥의 후손이요 찰방 휘 기의 아들인 선무원종공신 소암 金大成은 어려서부터 고원한 뜻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울 것과 韜略에 관심이 많았다. 임란이 일어나자 몸소 의병장 權應銖와 招諭使 金誠一의 막하로 가서 수많은 전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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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通訓大夫司僕寺正多菴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의성 김씨 휘 석의 후손이요 순부와 주부 연종의 따님인 현풍 곽씨 사이에 蘇洞里 옛집에서 다암 金麒相 공이 태어났다. 공은 어려서 효성이 지극했는데 임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업고 新寧의 多內村으로 피난을 했다. 竹坡公을 진주의 전투지로 보내고 자신은 어머니를 모시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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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江兵馬萬戶止菴黃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중국의 예부상서 휘 낙의 후손이요 懷德 황씨 회천위 諡號 양도인 휘 유와 太宗大王의 따님인 淑安翁主 사이에 지암 黃澄이 회덕 옛집에서 태어났다. 지암공은 훌륭한 자질로 어려서부터 비범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어버이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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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厓先生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김씨 시조 고려 상락군 휘 방경의 후손이요 전력부위 휘 흥려와 선산 박씨 숭의 따님 사이에 素山里 집에서 낙애 金夢麟 공이 태어났다. 공은 동생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여 병자호란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어머니 때문에 망설이니 어머니가 참전을 독려했다. 胡兵들과 싸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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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夫人密陽朴氏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정부인은 江湖 金淑滋의 부인이요 佔畢齋 金宗直의 어머니로 사재감정 밀양 朴弘信의 따님으로 밀양의 池洞里 집에서 태어났다. 친정 부친 감정공은 좌군병마사로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가 전사했다. 21세에 강호 선생에게 시집와서 열심히 노력하여 賢夫人이란 칭송을 들었다. 빠듯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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樗下軒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김해 김씨 수로왕의 후예요 부호군 호 미포 휘 홍도와 경주 박씨 광남의 따님인 숙부인의 사이에 眉湖 집에서 저하헌 김해 金英達 공이 태어났다. 8세에 숙부 眉山公에게 수학했고 자라서는 四書의 공부에 전력을 기울였으며 先世의 사적이 소실된 것을 여러 곳에서 찾아 六七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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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成均館正字虎谷黃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평해 황씨 시조 휘 낙의 후손이요 유일로 진보현감에 除授된 호 대해 휘 응청과 울진 장씨 한보의 따님 사이에서 호곡 黃有一이 태어났다. 어려서 鶴峯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했으며 정해년에 문과 會試에 응시하였으나 불행히도 발표가 되기 전에 별세함에 예에 따라 성균정자를출처 : 유교넷 -
354070
璿源殿叅奉浪翁高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개성 고씨 시조 고려 양경공 휘 영신의 후손이요 승사랑 휘 이령과 퇴계 선생의 현손이요 참봉 억의 따님인 진보 이씨 사이에 낭옹 高世章이 태어났다. 공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여동생의 병에 친히 약을 달여 구원하며 생질들을 자기 아들처럼 돌보았다.출처 : 유교넷 -
354071
通訓大夫軍資監正川齋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영천 이씨 시조 고려 평장사 휘 문한의 후손이요 부친 여우와 기계 유씨 연의 따님 사이에 枝谷里 옛집에서 천재 李華春이 출생했다. 훌륭한 자질로 임란이 일어남에 나이가 어리고 어버이가 연로하여 참전치 못했으나 憂國之心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광해군 때에는 벼슬을 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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拓菴金先生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의성 김씨 시조 휘 석의 후손이요 부친 휘 약수와 진양 정씨 상관의 따님 사이에 구호의 옛집에서 척암 金道華가 태어났다. 빼어난 자질로 7세에 글을 지었고 자라서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다. 定齋 柳致明 문하에 나아가 수업했는출처 : 유교넷 -
354073
省菴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경주 이씨 시조 신라 좌명공신 휘 알평의 후손이요 부친 직장 휘 정수와 모친 광산 김씨 후조당 선생 부필의 따님 사이에 성암 李穩이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출중하고 총명과 지혜가 絶倫하여 보는 사람들마다 앞날이 원대할 것으로 기약했다. 자라서는 경전에 몰두했고출처 : 유교넷 -
354074
贈資憲大夫兵曹判書樵隱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경주 김씨 현조 계림군 제숙공 휘 균의 후예요 부친 호조참의 휘 충원과 모친 승지 길현의 따님인 의령 남씨 사이에 서울 磚洞에서 초은 金守實 공이 태어났다. 빼어난 자질로 15세에 경사를 통달했는데 특히 易學에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독서하다가 天文을 관찰하고는 장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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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韓山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한산 이씨의 顯祖에는 원나라 조정에 급제한 가정 휘 곡과 그 아들 목은 휘 색 부자가 있는데 현감인 수은 휘 홍조가 연산군의 학정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안동의 蘇湖里로 남하하였다. 부친 휘 병진과 모친 손재 선생 휘 한조의 따님인 의령 남씨 사이에서 통덕랑 李秀億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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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武郞行金井道察訪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권씨 시조 고려 태사 휘 행의 후예요 부친은 학유로 세상에 알려진 휘 문임이요 모친은 생원 공저의 따님인 진주 강씨이다. 공의 생부모는 行義로 참의를 贈職받은 휘 문언과 여흥 민씨 희철의 따님인데 縣南 元堂里 옛집에서 權降 공이 태어났다. 약관 시절 부친의 병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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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工曹叅判行折衝將軍僉中樞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고려 태사 휘 행의 후예로 부친 증 공조참의 휘 조균과 모친 분성 김씨 사이에서 權德來 공이 태어났다. 8세에 시를 지었고 자라서는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末業인 문예보다 근본인 덕행을 힘썼다. 어른을 모시고 아랫사람을 다스림에 각각 마땅함이 있어서 종족들이 본받고 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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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徐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고려 판도판서 달성군의 후손이요 부친은 춘명이며 모친은 대구 백씨 견룡의 따님으로 달성 徐承節은 효종 정유년에 태어났다. 향년 91세로 별세했는데 壽職으로 3품의 품계를 받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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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陵叅奉竹窩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경주 이씨 시조 신라 아찬 휘 알평의 후예요 부친 첨추 도봉 휘 정간과 모친 경주 김씨 진성의 따님 사이에서 죽와 李浚榮 공이 태어났다. 뛰어난 자질로 문장이 일찍 이루어졌으며 어버이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특히 부친의 병환에 자신이 대신하기를 빌었고 의원을 만나려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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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工曹叅判孝子朴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밀양 박씨 관조 신라왕자 휘 언침의 후예요 부친 통덕랑 휘 종명과 모친 경주 김씨 성남의 따님 사이에 영사재 朴時晩 공이 태어났다. 부친이 일찍 별세하여 가세가 빈한함에 몸소 노력하여 모친을 모셨는데 매사를 모친의 명을 따라 행하였다. 한번은 어머니의 꾸중을 들을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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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권씨 시조 고려 태사 휘 행의 후손이요 부친 증 참판 휘 수안과 모친 호군 지의 따님인 고령 박씨 사이에서 처사 權運升 공이 태어났다. 어려서 지능이 일찍 발휘되었고 孝友가 出天하였으며 공부를 할 때에는 감독을 받지 아니해도 부지런히 하니 부형들이 원대할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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稷下齋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김씨 시조 고려 태사 휘 선평의 후예요 부친 휘 일근과 모친 창원 황씨 윤대의 따님 사이에 豊山의 玄厓里 옛집에서 직하재 金炳奎 공이 태어났다.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제사를 받들 적에 祭需를 정결하게 장만하여 정성껏 모셨다. 문장이 일찍 이루어져서 침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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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菴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광산 김씨 시조 신라왕자 휘 흥광의 후손이요 부친 묵와 휘 재기와 모친 청주 정씨 래동의 따님 사이에 佳邱里 옛집에서 좌암 金龍鉉 공이 태어났다. 특이한 자질에 부모의 명으로 과거공부를 하러 서울에 가서는 귀족 자제들의 부정 유혹을 물리치기도 했다. 어버이의 병을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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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廬黃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신라 시중 황경의 후예요 고려 때 전중감으로 이의방의 뜻을 어겨 남원의 장수현으로 피한 휘 공유의 후손으로 부친 우평 휘 인노와 모친 감찰 회경의 따님인 경주 손씨 사이에 중모리 옛집에서 시려 黃蘭善 공이 태어났다. 뛰어난 용모와 和順한 덕성에 총명을 겸비한 자질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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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閒堂朴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밀양 박씨 고려 태사 밀성부원군 휘 언부의 후손이요 부친 통덕랑 휘 정룡과 모친 칠원 윤씨 민행의 따님 사이에 양한당 朴文道 공이 태어났다. 양부모는 부친 휘 준룡과 모친 안동 김씨 남달의 따님이다. 빼어난 자질로 金荷潭과 李懶隱 두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하는 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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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行司憲府掌令南坡全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축산 전씨 국파 선생 축산부원군 휘 원발의 후손이요 부친 수직 동추 휘 지간과 모친 정부인 삼척 김씨 쾌응의 따님 사이에서 남파 全洪敎 공이 태어났다. 조부의 명으로 과거에 나아가 급제하여 승문정자를 시작으로 많은 벼슬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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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厓趙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풍양 조씨 시조 풍양부원군 휘 맹의 후손이요 문학과 중망이 있던 위재 휘 상덕과 부림 홍씨 목연의 따님 사이에서 연애 趙獻九 공이 태어났다. 빼어난 자질로 가정의 훈계를 이어받아 「論語」와 韓愈의 문장에 몰두하였다. 부친의 병에 백씨 竹林公과 정성껏 간호하였고 백씨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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遂初柳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문화 류씨 시조 고려 대승 익찬공신 휘 차달의 후손이요 부친 오계 휘 승우와 모친 안동 권씨 순효의 따님 사이에 梧川里 옛집에서 수초 柳仁헌 공이 태어났다. 공부를 할 적에 才思가 通敏하고 문예가 날로 진보하여 깊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뒤에 그만두었다. 定齋 류선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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益菴張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장씨 시조 고려 태사 휘 정필의 후손이요 부친 휘 숭구와 모친 진주 하씨 손호의 따님 사이에 錦江里 옛집에서 익암 張鎭錫 공이 태어났다. 족형 柏窩公에게 글을 배웠으며 과거공부를 하여 응시하려 했으나 선비의 습속이 날로 더러워짐을 鄙陋하게 여겨 定齋 류선생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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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齋曺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창녕 조씨 신라 창성부원군 휘 계룡의 후손이요 부친 휘 경섭과 모친 달성 서씨 덕순의 따님, 월성 이씨 계신의 따님 사이에서 성재 曺逵承 공이 태어났다. 빼어난 자질로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를 시작으로 사헌부 정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벼슬을 지내며 많은 업적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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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于堂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광산 김씨 시조 신라왕자 휘 흥광의 후손이요 부친 벽헌 휘 시윤과 모친 경주 김씨 흥룡의 따님 사이에 벽산우거에서 晩樵 金澤鉉 공이 태어났다. 仲氏 癡菴公과 李元魯의 문하에서 배웠고 그 뒤에 桂隱 李冕宙 선생의 문하에 나아갔으며 또 魯谷書塾에서 魯隱 金喆洙를 배알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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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樞院議官愚潭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경주 김씨 고려 평장사 정숙공 휘 인경의 후손이요 부친 휘 봉주와 모친 오천 정씨 겸의 따님, 월성 최씨 제경의 따님 사이에 黃岡里에서 우담 金俊熙 공이 태어났다. 모습이 준수하고 器局이 深厚하여 여러 父兄들이 기이하게 여겼고 자라서는 西山과 拓菴 두 선생의 문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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楠軒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경주 김씨 고려 태사 휘 인관의 후손이요 부친 휘 의계와 모친 수원 백씨 용규의 따님 사이에 長河里 옛집에서 남헌 金聖重 공이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빼어나 14세에 四書三經을 읽고 선비된 자의 본분을 알았으며 仙鶴寺에서 「中庸」을 읽을 적에 어느 중의 소개로 風水地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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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巖朴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고령 박씨 부창정 휘 답의 후손이요 부친은 문과 정언으로 상소를 올려 直諫하다가 호남의 흑산도로 귀양갔다. 12년 만에 풀려난 금파 휘 우현으로 모친은 숙인 예안 김씨 수곤의 따님과 숙인 진성 이씨 은섭의 따님으로 剛州의 元塘里 옛집에서 해암 朴鎬九가 태어났다. 어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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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村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권씨 시조 고려 태사 휘 행의 후손이요 수직 통정대부인 부친 휘 재찬과 단계 선생의 후예인 모친 진주 하씨 경우의 따님, 흥해 배씨 상옥의 따님인 작은 어머님 사이에 道溪里에서 석촌 權錫夏 공이 태어났다. 소년시절에 經史를 읽었는데 「小學」의 ‘愛親敬長’ 구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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怡菴朴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함양 박씨 휘 지량의 후손이요 문행이 있어 고을에 저명한 부친 휘 흡과 청주 양씨 진삼의 따님 사이에 이암 朴祥新 공이 태어났다. 「小學」만 읽어도 실천해야 함을 알아 어버이 명령을 받들었으며 桑老에게 배웠고 안동의 과거에 나아가 급제하였다. 어버이 초상에 상례를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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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窩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안동 권씨 고려 태사 휘 행의 후손이요 부친 휘 이희와 모친 의성 김씨 득하의 따님 사이에 杜陵里 옛집에서 농와 權正錘 공이 태어났다. 용모가 준수하고 재주가 총명하여 일찍이 金華 김공의 문하에 나아가니 김화공이 ‘총명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자질이 도에 가깝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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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號翁朴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월성 박씨 시조 휘 언의의 후손이요 부친 휘 현원과 모친 전주 이씨 원동의 따님 사이에 무호옹 朴武祚 공이 태어났다. 공의 다른 이름은 能一인데 아마도 천백 가지에는 능하지 못해도 한 번 죽는 데에는 능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남달라 아이들과 놀 때 悖慢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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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雲齋宋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鎭川 송씨 고려 평장사 진천백 휘 인의 후손이요 부친 휘 재기와 모친 경주 이씨 홍룡의 따님 사이에 송은 宋九鉉이 태어났다. 과거공부를 하여 시험장에 갔다가 임오군란을 만나 뜻을 접고 庚戌國恥를 당하여서는 비밀리에 회복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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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仕郞孝陵叅奉靜齋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락청풍 김씨 고려 문하시중부원군 휘 대유의 후손이요 부친 가선대부 휘 동세와 모친 예천 임씨 진사 영승의 따님 사이에 정재 金輔性 공이 綿川里 옛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라 놀이를 좋아하지 아니했으며 성품이 인륜에 독실하여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