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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說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心經』을 읽으면서 자신이 느낀 소회를 비롯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 및 의문점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정리한 것으로, 心學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 견해를 체계화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작성한 것이다. 「心學圖」, 「人心道心章註」 二者雜於方寸之間·必使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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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降陽升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45년(헌종 11)에 쓴 것이다. 陽이 아래에서 올라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陰이 위에서 내려가는 이치는 납득할 수 없다는 의혹제기에 대해, 양은 음에 근원하고 음은 양에 근원하며 양은 음의 가운데에서 생겼고 음은 양의 가운데에서 생겼다는 점을 전제로 음이 이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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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無出入說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10년(순조 10) 가을 高山講會에 참석하여 “心은 출입이 없다”는 大山 李象靖의 강론을 듣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관점에서 보완한 내용이다. 本體는 평온한 상태에서 고요하며 깨끗한 상태에서 비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心에 출입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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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獨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15년(순조 15)에 쓴 것이다. 獨이라는 것은 한가한 곳에 조용하게 머무는 것으로 心의 萌芽가 獨임에도 불구하고 愼獨을 나누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변한 내용으로, 心術이 隱微한 未形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獨이라 하지만 그 사이에 이미 思慮의 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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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論寡欲無欲說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16년(순조 16)에 쓴 것이다. 과거 『心經講錄』을 읽으면서 별다른 의혹을 갖지 않았던 寡欲·無欲說을 再論한 내용이다. “無欲을 경유해야 寡欲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人欲에 근저한 뒤에 寡欲이 私欲에 뿌리를 둘 수 없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과욕은 聖人의 極功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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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生金說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性理大全』의 ‘火生金說’을 退溪는 朱子의 본의가 아니라 판단하여 『啓蒙傳疑』의 「五行相生序」에서 “木은 火를 낳고 火는 土를 낳으며 土는 金을 낳는다”고 한 것에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다. 金은 물질로서 火를 기다려 단련되어 나오는 것이며 金氣는 火盛에서 성숙되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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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氣先後辨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11년(순조 11)에 쓴 것이다. 朱子가 ‘理先氣後’라 규정한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理는 形而上에 근저하고 氣는 形而下에 토대할 뿐만 아니라, 太極이 動이면 陽을 낳고 靜이면 陰을 생성함으로써 太極이 있은 뒤에 陰陽이 있으니 理氣에 先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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寡慾無慾辨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金苟齋의 『心經講錄刊補』에 소개된 “無欲을 경유해야 寡欲에 이른다”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다. 朱子가 “근저가 없는 공부라면 능히 寡欲을 거쳐 無欲에 이른다고 해서 聖人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한 말을 근거로 공부의 차례는 과욕이 앞이 되고 무욕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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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發之中辨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延平이 “衆人은 未發之時는 있어도 未發之中은 없다”고 한 말의 의미를 풀이한 내용이다. 人性은 모두 善하기 때문에 衆人도 聖人과 마찬가지로 中이라 할 수 있지만, 중인은 稟受가 치우치고 形氣가 구속되고 知覺이 생기면 外物의 유혹을 받아 靜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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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鬼神章實理實氣辨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朱子가 鬼神을 초년에는 實理로 설명했다가 만년에 實氣로 바뀌었다는 해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곧 귀신은 形而下의 氣이기 때문에 그것이 屈伸하고 왕래하며 消·長, 合散하는 것이 모두 기의 운용이라 할 수 있지만 無理의 氣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理·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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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高峰四七辨總論箚疑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高峰 奇大升이 退溪 李滉과 四端七情 논쟁을 전개한 이후 저술한 『四七辨總論』의 모순점을 지적한 내용이다. 일단 渾淪說에 근거해 四端 역시 氣로 간주하여 四端·七情의 불가분의 관계를 주장한 용기에 찬사를 보낸 다음, 사단이 발하는 바가 비록 氣를 오로지 하는 것은 아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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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心道心圖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心經』에 수록된 王魯齋의 圖說을 月川 趙穆이 退溪의 자문을 받아 수정·보완한 改作圖(『月川集』에 수록)를 토대로 자신의 독자적 논리를 보강해 새로 작성한 圖說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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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四圖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中庸』의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이해를 위해 작성한 圖說이다. ① 第一 性道圖 ② 第二 存省圖 ③ 第三 知行圖 ④ 第四 四前定圖로 구성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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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警十條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자신의 일관되고 절제된 학문생활을 위해 매일의 과제를 정해놓은 것이다. ① 세수 후 사당참배, ② 경전만 갖춘 서실에 端坐, ③ 적게 읽고 깊이 생각하는 독서, ④ 서책의 정리, ⑤ 독서의 여가에 室堂 청소, ⑥ 낮잠을 자지 않고 雜技를 경계, ⑦ 신중한 언동, ⑧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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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書塾諭諸生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16년(순조 16) 문중 자제들이 淸閣의 뒤에 작은 書塾을 건립한 것을 계기로 謀利·計功의 학문에 빠지지 말고 孝悌敦睦을 위한 德業을 닦도록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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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密州校院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密陽의 향교와 서원에 보낸 通文으로 廬江書院의 사림들을 대신해 작성한 것이다. 嚴先生을 제향한 祠宇에 孫處訥을 추향하는데 동의하는 공론을 수렴해줄 것을 희망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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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繡衣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嶺南按廉御使에게 올린 것으로 英陽의 士人 趙秉誠의 妻이자 金鎭鼎의 딸인 孝婦 義城金氏의 旌閭를 청원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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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庄世稿序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石門 鄭榮邦(1577~1650)의 후손 4명(益齋 鄭焜, 松雪 鄭允謹, 睡窩 鄭堯性, 天然臺 鄭道鍵)의 遺稿를 모아 간행하면서 지은 序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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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友軒遺集序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族從祖 尙友軒 李弘宇의 유고를 모아 간행하면서 지은 序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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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容寶鑑序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자신이 옛 것을 거울삼아 스스로 거듭 연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행동 방향을 정하여 지은 저술의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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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箴集說序 4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朱子가 程頤의 四箴을 발췌해 『論語』·『小學』·『近思錄』 등에 실은 것을 모범으로 箴說들을 모아 『附註集說』의 예에 따라 편집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1830년(순조 30)에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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潛叟詩稿序 4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38년(헌종 4) 潛叟 朴聖潑의 詩文을 모아 간행하면서 지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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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弟文民字序 4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再從弟 李冕의 字를 정하면서 지은 것으로 학문으로 대성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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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族弟德雍南遊詩序 4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永川에 살고 있는 族弟 李德雍이 歸省을 위해 자신을 방문하여 교훈이 될 만한 가르침을 달라는 요청에 따라 지은 것으로, 家學을 전수하며 爲己의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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撫松亭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葛川 金熙周(1760~1830)가 稼逸에 있던 琴氏 소유의 雙松亭을 매입해 이름을 바꿔 은거한 정자를 찾아 지은 記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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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亭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石門 鄭榮邦(1577~1650)이 지었고 그의 7세손 鄭仁睦이 중수한 것을 계기로 지은 記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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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亭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소나무를 벗 삼아 만년을 보낸다고 하여 松亭翁으로 불린 金啓魯의 정자를 방문해 지은 기문이다. 1846년(헌종 12)에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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畏庵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趙魯仲의 집을 방문해 ‘畏’의 의미를 풀이한 내용으로 畏는 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설명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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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孝子兩世旌閣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안동의 성문 동쪽에 위치한 孝子 權聖範·思度 父子의 旌閣 건립의 전말을 기록한 내용으로 그들의 대를 이은 효행이 人倫을 밝히고 풍속을 수립하는 표상이 될 것이라 칭송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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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寓窩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族兄 安寓翁의 집에서 그의 선친의 遺文을 함께 정리한 것을 계기로 지은 것으로, 우거하면서 편히 지내는 것이 아닌 안온한 삶의 방법을 모색하는 의미로 해석했다.출처 : 유교넷 -
354331
緘齋記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再從弟 李信民이 松鶴山에 우거하면서 지은 집의 뜻을 풀이한 것으로, 봉함 속에서 義를 취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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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書百選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退溪의 편지 백편을 엄선해 책을 편찬하면서 지은 跋文으로, 1829년(순조 29)에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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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城世稿後識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曲城府院君 廉悌臣(1304~1382) 4父子의 家乘을 읽고 감회를 서술한 내용이다. 특히 고려시대 문하시중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忠敬’의 시호를 얻은 梅軒 廉悌臣과 그의 아들들의 충절을 높이 평가했다. 나아가 염제신과 그의 조상 杏村 李嵒과의 각별한 관계 등을 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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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懼齋實記跋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임란 당시 從弟 畏齋 金自平, 從姪 栢巖 金玏과 함께 義兵을 일으켰던 懼齋 金得秋(1562~1660)의 實紀에 감회를 적은 後識로, 1848년(헌종 14)에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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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子書節要後識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益齋 鄭焜이 『朱子書節要』의 체제에 맞추어 退溪의 書簡을 편집한 책에 붙인 後識로, 1844년(헌종 10)에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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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稧案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宗孫 李景涵의 주도로 가문의 길·흉사의 상부상조를 위해 만든 義稧案의 뒤에 붙인 後識로, 利로서 利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義로서 利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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箴銘要訣後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鄭景勳이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해 편찬한 책에 써준 後識로, 眞知力踐을 강조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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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書龜湖公遺誡詩後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叔祖 龜湖公이 사망할 때 지은 遺誡詩를 음미하면서 감회를 기록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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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弟佑民字辭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再從弟 李佑民이 冠禮를 행할 때 字를 지어주면서 붙인 글로, 자신을 계발해 남을 돕는 인물이 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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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養天(復浩)字辭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李復浩의 字를 지어주면서 호방한 자세로 善養할 것을 당부한 내용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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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曾孫大而字辭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族曾孫 李大而의 字를 지어주면서 의미를 해석한 글로, 가문의 구심체로서의 宗家의 번영을 기원하는 희망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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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士行字辭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柳士行의 字를 지어주면서 원대한 포부를 갖고 학문에 매진할 것을 당부한 내용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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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贊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1815년(순조 15) 봄 省墓를 할 때 墳庵에서 잠을 자다 꿈속에서 先親과 從叔父의 지시를 받은 다음 『大學』을 읽고 감회를 서술한 것으로, 학문의 출발에서부터 窮格에 이르는 과정을 포괄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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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警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잘못을 고칠 용기가 없으면 善으로 나아갈 수 없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 확고하지 않으면 뜻을 세울 수가 없다. 진정 고치려는 용기와 지키는 것이 확고하다면 누군들 君子와 함께 할 수 없겠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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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湖書院講堂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容軒 李源(1368~1429)과 忘軒 李冑(1464~1504)를 제향한 明湖書院의 講堂을 건립하면서 지은 글로서, 그들의 學問과 忠節이 계승·발전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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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亭上椽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甄氏의 집안에서 세우는 정자의 서까래를 올릴 때 지은 글로서, 名利를 멀리하고 詩·禮에 매진해온 가풍이 이어질 것을 기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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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泉書堂山神祝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집안 및 향촌의 자제들을 교육하며 번창하던 산속의 서당에서 불미한 일이 자주 발생한 것을 계기로 山神에게 올린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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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文集重刊後告由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鳳停寺에서 年譜 및 遺書를 추가한 51篇의 『退溪集』 重刊을 마무리했음을 알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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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湖書院移奉時告由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明湖書院을 移建해 容軒 李源과 忘軒 李冑의 위패를 옮기면서 지은 고유문으로, 世道가 날로 무너지고 요상한 무리들이 득세함에 따라 변괴가 자주 생기는 바람에 조용한 花城으로 자리를 바꾸어 안치하게 되었음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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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敬堂張先生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시수敬堂 張興孝(1564~1633)의 묘를 이장할 때 올린 제문으로, 구계서원 사림을 대신하여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