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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4401

    辭大司成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성균관 대사성으로 임명되자 사직을 올린 疏이다. “유생들의 수장이 되는 직책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처럼 재주와 학식이 부족한 사람이 맡기에는 부족합니다. 하물며 금년은 나이가 이미 60을 넘어 정신이 흐릿하고 아침에 들은 일을 저녁에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오랜 고질병
    출처 : 유교넷
  • 354402

    冲齋權先生請陞廡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陞廡는 학식과 덕행이 있는 훌륭한 사람을 文廟에 配享함을 뜻한다. 文廟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으로 성균관에 있는데 중국의 역대 현인과 우리나라의 현인들이 배향되어 있다. 이휘준이 冲齋 權橃(1478~1548)을 문묘에 배향시키고자 올린 상소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03

    冶隱吉先生請改諡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冶隱 吉再(1353~1419) 선생을 위해서 시호를 바꾸어 달라고 올린 상소문이다. 선현을 존경하는 방법은 시호를 내림이 가장 중요하다. 선대의 金麟厚도 文靖이었으나 正祖연간에 文正으로 바꾸었다. 고칠만 하면 고침이 참으로 타당하지 작은 예절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출처 : 유교넷
  • 354404

    嶺南辨誣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에 晉州民亂이 일어났을 때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按覈使 朴珪壽가 그 내용을 조사하게 된다. 사건은 진주 한 지역에서 일어났는데 다른 지역까지 확대해서 조사를 하므로 이휘준이 박규수의 越權에 대해서 사건을 일으킨 亂民과 士族에 대해 분명한 구별을
    출처 : 유교넷
  • 354405

    忠烈公姜先生請追入忠烈錄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忠烈公 姜渭聘(1569~1637)은 『忠烈錄』에 들어가야 된다고 올린 상소문이다. 충렬공의 업적은 나라의 역사와 野史에도 실려 있고, 여러 선현들의 문집에서도 나오고, 인조 때는 좌승지로 추증되었고, 숙종조에는 정려문이 세워졌으며, 정조
    출처 : 유교넷
  • 354406

    甁山金先生請贈爵諡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甁山 金鸞祥(1507~1579)에게 爵位와 諡號를 추증해야 된다고 올린 글이다. 유학을 숭상하고 도학을 높임은 나라를 다스리는 급선무이다. 절개와 충성을 지닌 사람을 포장함은 태평성대에 해야 할 성대한 일이다. 을사사화때 화를 입은 文元公 李彦
    출처 : 유교넷
  • 354407

    芝山曺先生請爵諡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芝山 曺好益(1545~1609)에게 爵位와 諡號를 追贈해야 된다고 올린 글이다. 조호익은 본관이 昌寧으로 대대로 벼슬한 집안이다. 어려서는 영민하여 퇴계 이황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불행히도 都事로 있던 어떤 사람의 모함을 받아 평안도 江東縣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
    출처 : 유교넷
  • 354408

    錦溪黃先生請爵諡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錦溪 黃俊良(1517~1563)에게 爵位와 諡號를 追贈해야 된다고 올린 글이다. 황준량은 고려의 명신인 瑾의 6세 손이고 퇴계 이황의 수제자이다. 애석하게도 47세에 죽었다. 퇴계 선생은 그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직접 유고를 모았고 행장을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
    출처 : 유교넷
  • 354409

    察訪姜公副尉姜公請爵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임진왜란 때 국가를 위해서 싸우다 순국한 姜彦龍(1545~?)·姜起龍(?~1593) 형제에게 작위를 추증해야 한다고 올린 글이다. 나라에 충성한 자를 포창함은 국가의 법도이고, 절개와 의리가 있는 사람을 장려함은 통치의 급선무이다. 강언룡은 忘憂堂 郭再祐 장군의 휘하
    출처 : 유교넷
  • 354410

    方壺趙公請爵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方壺 趙遵道(1576~1665)에게 작위를 추증해야 된다고 올린 글이다. 임진왜란 때는 공을 세웠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공로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張顯光이 공의 충성과 지략을 알고서 특별히 의병장에 임명하니 집안의
    출처 : 유교넷
  • 354411

    孝子安公(基南)請旌褒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경남 金海에 사는 安基南은 孝行이 뛰어난 사람으로 조정에서 표창해야 함을 올린 글이다. 효행를 널리 알리고 숭상함은 조정의 법도이고, 덕을 숨기면서 사는 사람을 드러내어 밝힘은 士林의 공론이요, 알고서 말하지 않고 덕행을 숨기고서 밝히지 않음은 사림의 죄이다. 시골에
    출처 : 유교넷
  • 354412

    孝子李公(運協)請旌褒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경남 울산에 사는 李運協은 孝行이 뛰어난 사람으로 조정에서 표창해야 함을 올린 글이다. 우리나라는 역대로 효로써 나라를 다스려 왔으며 그가 살던 고을에 정려문을 세워 포창하였다. 이운협은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겨울에 병이 들자
    출처 : 유교넷
  • 354413

    溪村李先生請伸寃原情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原情이란 관청에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 한 글을 뜻한다. 溪村 李道顯(1726~1776)의 후손이 자기들의 조상인 이도현의 원통한 일을 풀고자 관청에 글을 올려야 되는데, 이휘준이 대신하여 써준 것이다. 이도현은 1776년(정조 즉위년)에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출처 : 유교넷
  • 354414

    懷仁縣監金公請伸寃原情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728년(영조 4)에 李麟佐가 일으킨 반란을 무신란이라고 한다. 영조의 즉위로 실각된 小論들이 密豐君 坦을 추대하여 일으킨 역모를 말한다. 당시 懷仁 縣監으로 있었던 金道應이 역적(이인좌 일당을 말함)들이 보낸 문서에 手決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그러
    출처 : 유교넷
  • 354415

    與柳士心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8년(철종 9)에 친구 柳士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헤어진 후로 서로 나이 한 살 더 먹었다. 근래 만나지 못했으니 섭섭하다. 당신의 아들과 손자는 잘 지내고 있고 마을도 편안한가? 나는 榮州를 두루 돌아다니다 雲亭(친구의 호) 집에 와서 머물렀다. 마침 며느리
    출처 : 유교넷
  • 354416

    與柳士心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친구 柳士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당신 아들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근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았으니 매우 기쁘다. 내 아들과 당신 손자가 과거보러 길을 떠난 후 공교롭게 비가 매우 많이 내렸는데 걱정된다. 함께 지내고 있으니 반드시 서로 유익한 도움이 있을
    출처 : 유교넷
  • 354417

    1856년(철종 7) 3월 14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근래 내가 보낸 편지는 읽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독서는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믿지만 걱정이 된다. 會試가 다음 달 4일에 있다. 공부 게을리 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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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418

    寄子晩嶠軫日台日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6년(철종 7) 4월 4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모두 잘 지내고 있으며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겠지. 나는 오늘 春塘臺 會試에서 乙科 2등으로 급제하였다. 너의 아비는 재주가 모자라고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급제를 하였다만 역시 영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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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419

    答子嶠軫台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7년(철종 8) 2월 6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너희들 편지를 보고 금년에는 무사하고 과거공부를 팽개치지 않았음을 알았으니 위로된다. 나는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다. 지난 겨울에 낫지 않은 병이 간간이 발작한다. 날이 따뜻해지기를 바랄 뿐이
    출처 : 유교넷
  • 354420

    答子嶠軫台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7년(철종 8) 5월 28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나는 정월에 이곳을 떠난 이번 달에 비로소 돌아왔다. 새로 산 말이 죽었으니 길에서 내가 고생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열 냥을 보내니 급한 대로 쓰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21

    答寄嶠軫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8년(철종 9) 4월 27일에 아들 晩嶠·晩燾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너희들 편지를 보고 모두 잘 있음을 알았다. 나는 酉橋를 지나 春陽에 들러서 백일장을 치룰 계획이다. 돌아갈 날짜는 초이틀이나 단오가 될 듯하다. 창호지·白紙 각 1권과 붓 3자루 脯 두 묶음을
    출처 : 유교넷
  • 354422

    寄嶠軫台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8년(철종 9) 8월 27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서울에 도착한 후 설사에 감기가 들어 며칠을 앓았다. 과거가 매우 혼란스럽다. 監試·節題試·東堂試라 하여 편안한 날이 없다. 士心은 침을 맞았느냐? 집을 떠난 후 모든 일에 도대체 생
    출처 : 유교넷
  • 354423

    答寄嶠軫台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8년(철종 9) 10월 28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晩嶠·晩燾는 편지를 보내었는데 晩煃는 무엇 때문에 편지를 보내지 않았느냐? 괴이하다. 士心의 병은 걱정 안 해도 좋겠느냐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24

    答寄嶠軫台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8년(철종 9) 11월 19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잠시 소식이 막혔는데 모두 잘 지내고 있느냐? 나는 전과 별 다름이 없는데 이번 13일 인사이동에서 持平이 되었고 冬至에는 祝官으로 靖陵에 갔다가 어제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왔다. 보낼 돈
    출처 : 유교넷
  • 354425

    答寄嶠軫台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8년(철종 9) 12월 12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근래 新延 吏房을 통해서 편지를 보냈는데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정월 초에 쓸 祭需를 보내니 적다고 걱정하지 말고 고르게 나누라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26

    寄嶠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59년(철종 10) 11월 20일에 아들 晩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누구의 혼례인지는 모르겠지만 혼례를 치르기 위해 가마와 말을 빌리고 인부도 데려와야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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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427

    寄嶠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0년(철종 11) 윤3월 30일에 아들 晩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인편이 간 후 여러 날이 지났는데 근황이 어떠하냐? 과거 공부는 등한히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應一의 병세는 차도가 없으니 매우 염려된다. 너희 형제가 모두 집에 있지 않아 일이 대단히 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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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428

    寄嶠熟孝(熟,晩燾小字.孝,晩煃小字)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1년(철종 12) 2월 8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어제 서울로 왔다. 경비가 예전보다 서 너 배 더 든다. 영남이 참으로 형편이 좋은 곳임을 알겠다. 어제 告變이 있었는데 3월 16일 일을 일으키겠다고 하더라. 서울이 혼란스러움은 말
    출처 : 유교넷
  • 354429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3월 24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비가 개인 후라 봄 햇볕이 화창하다. 나는 예전처럼 지낸다. 공부 열심히 하여 내년 가을 과거를 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0

    答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에 아들 晩燾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네가 보낸 편지로 너희 형제 모두 편안함을 알았다. 며칠 전에 임금께서 직접 仁政殿에 납시어 ‘삼정(三政: 전정·군정·환곡)의 폐단에 대해 구제할 방책’이란 제목을 내어 모든 신하들은 글을 지어 올리라고 했다는
    출처 : 유교넷
  • 354431

    寄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에 6월 16일에 아들 晩燾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여름 더위가 심하다. 너의 형(晩嶠)은 돌아왔을 듯하고, 동생(晩煃)은 아직 산에 있는지 걱정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2

    寄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에 7월 8일에 아들 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근래 장마 비 내리는 형편이 어떠하냐? 四書는 다 읽은 듯한데 三經은 어디까지 읽었느냐? 나는 예전처럼 지낸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3

    寄嶠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8월 11일에 아들 晩嶠·晩燾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만도의 편지를 보고 온 집안이 편안함을 알겠다. 殿試는 다음 달 16일로 미루어졌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4

    寄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윤8월 16일에 아들 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오랫동안 너의 소식을 듣지 못해 우울하다. 濟甫는 會試에 떨어지고, 春室이는 별 탈 없이 딸을 낳았다고 한다. 돈 二錢을 보내니 생선이라도 사서 반찬으로 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35

    寄嶠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윤8월 28일에 아들 晩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온 집안은 편안하겠지. 만도는 여름 내내 공부가 어떠하냐? 나는 예전처럼 지낸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6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9월 14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서리가 내리고 날씨가 추운데 온 집안은 편안하느냐? 나는 예전처럼 지낸다. 北布(함경도에서 나는 고운 삼베) 한 필을 보낸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7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10월 19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과거에서 午人(사색당파 중 南人을 말함)으로는 서울에서 兪貞煥·李源珪, 영남에서는 張錫駿·李啓魯가 합격되었다. 그런데 公茂가 낙방하여 안타깝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38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10월 13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성균관 대사성이 내일 과거장에 참석할 것이라고 들었다. 春湖가 보내준 옷은 얇아서 새로 수리하여 입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39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2년(철종 13) 12월 21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두루 집안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 과거 공부에 힘을 기울이라고 하였으며 자신은 이번 달에 修撰에 임명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40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3년(철종 14) 3월 5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소식 듣지 못한 지도 몇 달 되었다. 봄도 어느덧 저물고 있다. 식년시는 8월 19일, 감시는 9월 4일로 잡혔으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41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3년(철종 14) 4월 2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가을에 과거가 있을 터이니 공부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42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3년(철종 14) 7월 8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지난 달 1일에 通政大夫가 되었다. 입을 冠服이 없어 돈을 빌려 黑團領 한 벌을 구입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43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3년(철종 14) 10월 4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예전과 비슷하지만 감기에 걸려 밤새 기침이 심하다. 노인이라 그런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종이는 아껴서 사용하고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44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3년(철종 14) 12월 4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지난달에 승정원 승지에서 교체되었다. 너희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어찌 좋지 않겠느냐? 내가 늙기 전에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45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3년(철종 14) 12월 15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로, 哲宗이 승하하고 高宗이 왕위에 올랐다. 가을에 慶科가 있을 터이니 공부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46

    答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4년(고종 1) 2월 9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답장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金德錘가 일전에 올린 상소로 죄를 받아 古今島로 유배갔다. 庭試가 5월에, 增廣試가 가을에 있을 듯하다. 姜時永이 예문관 提學, 李承補가 吏曹參判이 되었다. 우리 南人들이 예전에 비
    출처 : 유교넷
  • 354447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4년(고종 1) 2월 23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金鎭衡이 유배갔다는 소식을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庭試가 5월 13일에 있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448

    答嶠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4년(고종 1) 3월 13일에 아들 晩嶠·晩燾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안히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과거 날짜가 다가오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49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4년(고종 1) 5월 1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집안은 모두들 평안하겠지. 나는 예전과 별 다름없이 지낸다. 우리 南人들이 예전 보다는 회복될 희망이 있지만 영남 출신은 등용될 기미가 없으니 이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450

    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
    1864년(고종 1) 6월 7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德老가 敎理에 임명되었고, 溪南이 충추목사로 옮겼고, 舜弼 兄이 동부승지가 되었음은 모두 축하할 일이라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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