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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1월 30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집안의 일상적인 안부를 물은 다음에 나는 예전처럼 지낸다. 溪南의 일은 온 집안이 걱정하고 있는데 운명을 기다릴 뿐이라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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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3월 18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집안의 일상적인 안부를 묻고 초상을 치르는 집안에서 춘궁기에 어떻게 장례비용을 마련하느냐? 걱정된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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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4월 1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근래 내가 보낸 편지는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형님도 건강하시고 온 집안도 다 잘 지내리라 생각한다. 樊南의 과거 급제는 기쁨을 견디지 못하겠지만 떨어진 다른 사람들은 안타깝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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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4월 11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근래 濟甫가 보낸 편지를 보고 근래 형편을 알았다. 斗谷에 사는 삼촌은 과연 건강이 회복되었느냐? 그리운 생각이 간절하다. 경복궁 건립과 관련된 願納錢의 폐해를 말함이 주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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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5월 9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날씨가 점차 더워진다. 온 집안은 다 잘 지내고 있느냐? 溪南은 다행히 석방되었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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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5월 22일에 막내아들인 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봄 과거에는 무엇 때문에 응시하지 않았느냐? 누이가 부탁한 두 건의 일은 이미 편지를 써서 현풍 관아에 말해두었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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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5년(고종 2) 5월 25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궁궐 짓는 일이 나날이 계속된다. 일꾼만 하더라도 1만 여 명이 된다. 實錄은 다음달에 완성된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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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봄 날씨가 아직 차다. 너희들이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서양인 5·6명의 목을 베었다고 하였는데 서양인 신부를 처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편지 쓴 연대는 없지만 1866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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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嶠燾孝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6년(고종 3) 7월 17일에 아들 晩嶠·晩燾·晩煃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해서 우울하다. 異樣船이 도처에서 출몰하여 도성이 흉흉하다. 재상가 집안에서는 밤에 도주하고 남촌·북촌에는 빈집이 많다. 너희들은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음이 좋겠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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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寄嶠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6년(고종 3) 9월 9일에 장남인 晩嶠에게 답장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異樣船 큰 배 7척, 작은 배 15척이 강화도로 와서 정박하였다. 과거도 또 13일로 미루어 졌다. 서양인이 어제 강화도를 점령하여 서울이 매우 시끄럽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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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6년(고종 3) 12월 5일에 차남인 晩燾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雲亭과 松亭 양쪽 사돈 부인의 忌日이 모두 13일이다. 生雉·소고기·魴魚·곶감 등을 구입하여 두 곳으로 똑 같이 보내도록 하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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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6년(고종 3) 12월 20일에 차남인 晩燾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 길을 떠나는데 별탈이 없는지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산소는 간신히 두 곳을 정했고 내년 정월 초에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네가 돌아온 후에 상세히 논의하자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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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燾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7년(고종 4) 1월 27일에 차남인 晩燾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 길을 떠난 지가 여러 날 되었는데 모두들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조심하고 조심하거라. 이곳은 다른 일은 없고 너의 형수가 24일에 딸을 낳았다. 섭섭하지만 큰 탈이 없으니 위로된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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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法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경전을 읽을 때는 단정히 靜坐하여 정신을 모으고 성현을 마주보는 듯이 한다. 그런 후에 엄숙히 책을 펼친다. 자신의 능력을 헤아려 학습 진도를 간략히 하며 탐욕스럽게 많이 읽고 빨리 끝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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斥邪通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성현의 서적을 읽고 선왕의 도를 수행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異端邪說에 현혹되지 않음이 우리 영남의 5백년 전통이다. 사설이 성행함은 道學이 분명하지 못하고 儒風이 점차 쇠약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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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政策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2년(철종 13)에 당시의 가장 큰 폐단인 三政의 대책에 대해 논한 글이다. 삼정은 軍政, 田政, 糴政을 뜻한다. 糴政은 還穀과 관련된 일이다. 특히 죽은 사람을 생존 해 있는 것처럼 명부에 등록해 놓고 강제로 軍布를 징수한 白骨徵布가 가장 큰 폐단이었다. 삼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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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館月課兵政策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성균관에서 매달 글을 지어 올려야 하는 과제물을 月課라고 한다. 월과로서 1866년(고종 3)에 군사행정에 관련된 대응책에 대해 올린 글이다.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 당, 오대, 원, 명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무기란 흉기이다. 전쟁이란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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弊靴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銘이란 文體의 하나로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는 뜻을 적은 글, 혹은 사람의 공덕을 찬양한 글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전자에 속한다. 다 떨어진 신발에 대한 명이다. 燥濕不憚, 夷險不避. 由義而行, 弊而後已(마른 자리와 진 자리를 꺼려하지 않고, 평탄한 땅과 험한 땅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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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東全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溪東 全慶昌(1532~1585) 문집의 서문이다. 지금 남아 있는 글이 있어서 다행이며 대대로 이 책이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계동집』은 1859년에 2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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睡足堂全公遺稿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문장으로 나라를 빛내고 무예로서 혼란한 나라를 구제함은 선비의 뜻이다. 睡足堂 全雨가 바로 그런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고 칭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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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陽洪氏派譜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남양 홍씨 派譜에 대한 서문이다. 파보란 같은 종파 속의 한 파의 족보를 말한다. 洪基燮의 부탁으로 서문을 쓴다고 하였는데 어느 파인지는 알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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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堂石假山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홍문관에 石假山[산 모양을 이룬 돌]이 둘 있다. 높이가 수 척이지만 깎아지른 듯이 가파르고 기화요초들이 많이 피어 참으로 산 모습을 이룬다. 문인과 시인들이 보물처럼 아끼고 완상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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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巖亭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용암정은 搜勝亭과 쌍벽을 이루는 영남의 뛰어난 정자이다. 龍巖公의 증손인 林景輯은 나와 친한 친구인데 記를 지어주기를 부탁하였다. 여러 번 사양하였지만 결국 기를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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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鄭夫人黃氏孝烈錄後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圃隱 鄭夢周의 후손인 鄭氏의 부인 黃氏의 효성과 곧은 정조에 대한 발문으로 황씨 부인이 없었다면 포은의 후사가 끊어졌을 것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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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山書院廟宇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一庵 辛夢參(1648~1711)을 모신 도산서원의 상량문이다. 1859년(철종 10)에 세워졌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경남 창녕군 마산리에 그 터만 남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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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修理時移安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告由文이란 큰 일을 치른 뒤에 그 까닭을 사당이나 神明에게 알리는 글이다. 종묘를 수리하느라고 신주를 잠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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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安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수리가 끝났으므로 신주를 다시 가져와 모신다는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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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府鄕校聖殿移安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강화도 향교의 대성전이 낡아서 수리를 해야 하므로 잠시 신주를 옮겨야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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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安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수리가 끝나 새롭게 단장했으므로 다시 모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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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告由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종묘에 올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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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慕宮告由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경묘궁에 올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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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陵告由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온릉에 올리는 고유문이다. 온릉은 中宗 妣인 端敬王后 愼氏의 능으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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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陵告由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태릉에 올리는 고유문이다. 태릉은 中宗 계비인 文定王后의 능으로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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穆陵告由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목릉에 올리는 고유문이다. 목릉은 宣祖의 능으로 지금의 경기도 양주군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동구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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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一齋柳文穆公焚紅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문목공 진일재 柳崇祖(1452~1512)에게 올리는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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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彦君墓所致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861년(철종 12) 5월 30일 은언군(1755~1801)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정조와 우애가 남달랐다고 하였다. 은언군은 정조의 이복동생으로 철종의 할아버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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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穆公柳崇祖賜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문목공 유숭조를 위해 나라에서 내린 제문이다. 학문에 뛰어나 많은 제자를 길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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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松西姜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아버지의 친구이며 자신에게는 장인이 되는 松西 姜橒(1773~1834)을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忠烈公 姜渭聘의 후손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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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甕城吳將軍紀績碑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1354년(고려 공민왕 3)에 북쪽 여진족이 갑자기 침입하자 寧邊 옆에 있는 철옹성에서 용감하게 싸우며 적을 물리친 오장군의 공로를 기록한 기적비이다. 오장군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백성이 편안히 살고 나라가 태평함은 오장군의 공로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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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姜公墓碣銘(並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임진왜란 때 忘憂堂 郭再祐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공을 세운 姜彦龍(1545~?)을 위해 지은 묘갈명이다. 공의 자는 汝文, 호는 艸亭이다. 나라를 위해 공훈을 세웠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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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用監僉正卞公墓碣銘(並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임진왜란 때 거창에서 私財를 털어 명나라 군인과 우리나라 관군에게 곡식을 제공한 卞淸(1567~1617)을 위해 지은 묘갈명이다. 공의 자는 淨叔으로 본관은 草溪이다. 형 卞渾과 함께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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葛川林先生諡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林薰(1500~1584)을 위해 지은 諡狀이다. 자는 仲成, 호는 自怡堂. 세상에서는 葛川先生이라 부르는데 本貫은 恩津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이 높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다시 시호를 내려 유학을 숭상하는 도를 높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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瞻慕堂林先生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林芸(1517~1602)을 위해 지은 行狀이다. 자는 彦成, 호는 瞻慕堂. 薰의 동생이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퇴계 선생이 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하기를 “安義에 사는 선비 임모가 나에게 와서 수 개월을 머물렀는데 학식이 있었다. 그가 떠나고 나니 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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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金(1728~1801)을 위해 지은 행장이다. 자는 長仲, 본관은 光州. 공의 후손이 나에게 행장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였다. 두세 번 사양하였으나 부탁이 더욱 간절하였다. 또 10代를 교유하였고 한 마을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의리상 거절할 수 없어 행장을 짓는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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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李氏雙烈婦傳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전주 이씨에게 시집가 남편을 따라 죽은 두 사람의 열녀에 관련된 傳이다. 한 사람은 종실인 李廷友의 부인인 礪山 宋氏, 다른 한 사람은 정우의 아우인 廷及의 부인인 경주 李氏이다. 모두 남편을 따라 죽어 雙烈婦라 부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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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輓詞(權大奎)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권대규가 이휘준을 위하여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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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權承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권승하가 이휘준을 위하여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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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權大紳)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권대신이 이휘준을 위하여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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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琴翼明)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금익명이 이휘준을 위하여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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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姜晉奎)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준강진규가 이휘준을 위하여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