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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공의 죽음을 애도한 글로 鄭經世, 睦長欽, 李埈, 全湜, 黃, 金應祖, 琴憬, 李光胤, 金潗, 李詠道, 金是樞, 沈諿, 朴漉, 姜絪, 金坽, 金確, 金得硏, 門人 李汝翊, 金烋, 金益禧, 金光輔, 裴尙益, 金友益, 朴璥, 睦性善, 柳潁, 朴한, 金鍌, 李규, 權好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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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공의 제사에 올린 글로 門人 成屹, 門人 金廷哲, 門人 盧克亨 등이 세 편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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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書院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佐郞 郭壽龜가 지은 것으로 공이 임진왜란에 나라를 위해 헌시하고, 의범은 후세의 모범이 되므로 연암서원에 위패를 모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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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縣監 權斗寅)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공의 덕업과 학업이 후학들에게 끼친 공로가 많기 때문에 연암서원에 위패를 모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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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書院奉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연암서원에 봉향할 때 축문으로 "先哲에게 가르침을 받아 후학을 가르치고, 백세의 모범이 된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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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書院祠廟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손자인 參奉 成文夏이 연암서원 사당의 상량식에 지은 글로 천지가 보호하여 제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훌륭한 인재가 이어지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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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廟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趙述道가 지은 것으로 "학문에는 연원이 있고 국가에 공을 세웠으니, 실정과 문장을 헤아려서 길이 보답하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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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溪書院追享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6대손 成彦根이 지은 것으로 한강 정구의 적전으로 국가에 공을 세우고 고을에서는 훌륭한 선비이고, 집안에서는 효도하였으며 그리고 국가에 淸白으로 보답하였던 공을 좋은 날을 잡아 물계서원에 봉안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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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參議 柳台佐가 지은 것으로 "덕을 쌓은 재주와 효도를 미룬 충성으로 연원을 수립하고 세상의 풍속을 아름답게 하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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芙蓉齋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蔡濟恭이 기록한 것으로, 부용당은 창녕의 蓮花峯 아래 자리하고 있는데 정구가 짓고, 그 고제 성안의가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공의 현손 成祖寅이 문중과 의논하여 퇴락한 강당을 다시 보수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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芙蓉池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李性淳이 기록한 것으로, 공의 현손 成祖寅이 문중과 의논하여 퇴락한 강당을 보수할 때 함께 보수한 것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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芙蓉齋事蹟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燕巖誌』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정구가 처음으로 창건하고 그 고제 성안의가 학문을 강론하다가 죽은 후에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퇴락하게 된 것을 다시 중수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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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공의 외숙인 盧沈이, 공과 한강선생이 관련된 問答을 손수 기록해 놓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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調度使成安義非緣厭避職事狀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懲毖錄』에 실려 있는 글로, 尹承勳이 직무를 저버리고 직책을 소홀히 했다고 공을 무고하자 柳成龍이 그렇지 않고 공이 밤낮으로 애쓴 노고를 들어 변론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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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八月左監司狀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召募官을 차출할 때 성안의가 자원하여 왜적을 물리친 일, 調度使로 활약한 일, 공의 행적 등을 여러 문적에서 찾아 기록해 놓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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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遺詩 / 기록자료>고도서 / 성안의친구나 문인들이 성안의에게 보낸 시를 모아 기록해 놓았다. 시를 지은 사람으로는 趙穆, 鄭蘊, 申之悌, 鄭士誠, 金盖國, 宋光啓, 李汝빈, 洪瑋, 宋光廷, 楊許國, 형 熟甫가 있다. 그리고, 楊許國이 쓴 門人同榻錄序, 李東汲이 쓴 芙蓉亭重修上樑文, 跋文이 붙어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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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삼산집(三山集) 三山 柳正源의 문집. 8권 4책. 이 문집은 1817년(순조 17)에 柳致黙에 의해 원고가 모아졌다. 그러나 가세가 여러 차례 변하여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후에 후손 柳炳文·柳徽文·柳箕鎭·柳衡鎭이 편차를 정하여 문집을 완성하였다. 원집 6권 3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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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自警(1725), 元日偶吟(1726), 題畵屛山寺暮鐘, 題畵竹, 題扇面, 漢江舟上呼韻(1733), 奉同陽坡從叔(觀鉉)棲黃山次韻五首(1736), 又次觀書貪多戱吟, 玄寺夜吟, 戱次再從弟善長(景源)雞雛强韻(1743), 遊淸凉山七首, 東朝端午帖(1749), 南山觀花柳次人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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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司憲府持平書(175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사헌부 지평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한미한 집안의 어리석은 사람으로 과거에 급제한 것만 해도 요행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임금의 총애를 탐내서 직책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이것은 일신의 영광일 뿐 직분을 더럽히고 조정에 수치를 끼치는 일이니 속히 제수의 명을 거두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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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弘文館修撰書(175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論思의 직책이 막중하여 經術에 밝고 명실상부하여 믿음을 주는 사람도 맡기 어려운 직책인데 저자처럼 한미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성은을 입은 의리상 반드시 대궐로 나가서 이 간절함을 진달해야 하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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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辭修撰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두 번째 상소이다. 지난 번 손발의 마비 증세를 앓고 난 이후로 병이 심장으로 번져서 가슴이 막히고 찌르는 듯한 통증을 앓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누워도 허리를 펼 수 없고 앉아도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 발짝도 움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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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辭修撰書(175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세 번째 상소이다. 두 번이나 사직 상소를 올렸는데, 뜻밖에도 옛날의 관직을 그대로 제수한다는 명을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성은을 입은 의리상 반드시 대궐로 나가서 이 간절함을 진달해야 하는데 지난봄부터 손발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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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辭修撰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네 번째 상소이다. 관직을 맡을 수 없는 정황과 병을 얻어 길에 오를 수도 없는 실정은 이미 상달하였으나 빨리 올라와 직무를 수행하라는 批答을 내리니 몸 둘 바를 모겠다고 하였다. 아래에서 立身하고 자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廉恥가 있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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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侍講院弼善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시강원 필선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파직해 달라고 몇 차례 상소하였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시강원 필선에 제수하니 빨리 상경하여 직무를 수행하라고 하니 곧바로 달려가고자 하나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수찬의 관직을 물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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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辭弼善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시강원 필선의 관직을 사양하는 두 번째 상소이다. 지난 번 玉堂과 春坊의 용서를 받을 때 저자의 이름도 그 안에 들어가 있었고, 진달한 승지는 파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듭 사직을 청한 것이다. 저자 때문에 承宣도 파직되었으니 벌을 내려도 할 말이 없으니, 빨리 관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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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辭弼善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시강원 필선의 관직을 사양하는 세 번째 상소이다. 저자가 죽어도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실상은 전날에 이미 상소하여 진달했고, 비천한 몸으로 직무를 감당할 수 없음도 진달했으나 파직을 윤허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그 마음을 바꿀 수가 없으며,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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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弘文館副修撰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부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春坊에 죄를 얻은 것도 다 갚을 길이 없는데 특별히 제수하는 명이 갑자기 이르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실상은 온 조정이 알고 있는 일이다. 임금을 섬기는 일은 염치를 중요함으로 삼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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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辭副修撰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부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실상은 이미 여러 차례의 상소를 통해 온 조정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뜻밖에 다시 부수찬에 제수한다는 명이 내리니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사람의 四端이요, 염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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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司諫院司諫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사간원 사간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홍문관 수찬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였는데, 다시 사간원 사간에 제수한다는 명이 내리니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저자와 같이 나약하고 혼미한 사람이 맑은 조정의 耳目이 되는 직책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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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弘文館副校理書(175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부교리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지난 번 제수의 명을 따르지 않아 엄명을 회피한 죄를 피할 길이 없는데, 다시 옛날의 관직을 그대로 제수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마땅히 절름거리는 발을 이끌고 올라가 사은해야 할 겨를이 없고, 物議를 무릅쓰고 私議를 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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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弘文館修撰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홍문관 수찬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관직에 제수한다는 명이 내린 3, 4년이 지나도록 엄명을 회피하였으니 용서받지 못할 경우인데, 임금의 어진 덕으로 용서를 받게 되었다. 금년 봄에 파면된 후 전리에서 성은을 송축하면서 살고 있는데, 뜻밖에 옛 관직인 校理를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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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承政院同副承旨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승정원 동부승지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한미하고 어눌한 사람이 막중한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3, 4년 동안 관직을 제수한다는 왕명을 회피한 죄도 용서받지 못할 것인데, 특별히 용서를 받았고 또 간절히 사양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것을 무릅쓰고 나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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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刑曹參議書(176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형조참의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형조참의의 직위는 간사함을 힐문하고 사나움을 다스리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니, 총명함은 사정을 파헤치고 재주는 번잡함을 잘라 낼만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저자처럼 우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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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掌隸院判決事書(176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장예원 판결사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병이 깊어서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비천한 재주로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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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戶曹參議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호조참의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한미한 사람으로 작은 재주도 없고 조금의 공적도 없는데, 몇 달 사이에 제수의 명이 거듭 내리니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몸에 병이 깊어 사은할 수도 없으니 파직시켜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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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司諫院大司諫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사간원 대사간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諫官의 책임이 막중하고 사간원의 우두머리는 지위와 명망이 특별하다. 풍모와 재량이 단정하며 의론이 강직하여 평소에 조정의 관리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위로는 임금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아래로는 관리의 사악함을 바로 잡을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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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筵講義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1754년(영조 30)10월 14일 初更(밤 7~9시) 임금이 崇文堂에 행차하여 대신들과 중신, 그리고 동궁의 입직 신하들을 모두 참여하도록 하였다. 저자는 당시에 弼善으로 그날 上番으로 있다가 참석하였다. 임금이 “그대는 집에 있을 때 무슨 공부를 하였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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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筵講義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1754년(영조 30) 10월 25일 『시경』의「秦風·權輿」에 대해 현자가 그 나라에 있으면서 자기의 말이 실행되면 머물고 실행되지 않으면 떠나니, 그 몸이 떠나지 머무르는 것은 그 말이 행해지고 행해지지 않은데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10월 27일 10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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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方伯(泰良)別紙(17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관찰사 남태량에게 답한 편지의 별지이다. 李守淵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아뢰어 정려비를 세워주기를 청한 글이다. 翊贊 이수연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행실이 있었고 부모의 가르침을 조금도 어기지 않았다. 8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통곡을 하여 기절했다가 소생하였다. 조문하러 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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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趙方伯(載浩,175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관찰사 조재호에게 올린 글이다. 조정의 부름을 받은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소임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 재주가 부족한 사람이 감당할 수도 없고, 병세가 심하여 길에 오를 수도 없으니 조정에 아뢰어 관직을 파직시켜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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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韓方伯(光肇,175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通川郡守로 있으면서 관찰사 한광조에게 올린 편지이다. 본군에서 소금을 굽는데 백성을 동원하여 나무를 베어 나르고 세금도 많이 거두고 있으니, 이것은 백성들을 학대하여 이익을 취하는 경우이니 다른 지역 백성들을 구휼하기에 급하더라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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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통천군의 還穀의 원래 정해진 수량이 너무 적어서 백성들의 입을 하나하나 세어서 주더라도 부족하니, 바다를 끼고 있어서 농경지가 적은 점을 감안하여 양을 조치해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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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韓方伯(175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관찰사 한광조에게 답한 글이다. 현재 백성들의 굶주림이 날로 급박하여 구휼할 계책을 잃어버렸기에 그 사정을 아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빨리 이들을 구제할 수단을 강구해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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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沈方伯(,175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관찰사 심숙에게 올린 글이다. 본 현에 배정된 板木의 가격이 100緡인데, 관청의 창고가 비어서 그것을 마련할 계책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본 현 향교의 大聖殿, 兩廡, 講堂, 齋室이 모두 허물어져서 봄에 수리할 계획을 세웠으니, 5,60緡은 위로 올리고, 나머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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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參判(之億,175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참판 이지억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으나 분수에 넘쳐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했으니, 이참판이 대신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을 듯하니 번거롭더라도 그들에게 말을 잘해서 사직을 윤허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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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承旨(翼元)金承旨(孝大,175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승지 이익원과 승지 김효대에게 답한 편지이다.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병이 심하여 길에 오를 수도 없고 고을에 마마가 창궐하여 문밖을 나설 수도 없다.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했으니, 두 분께서 이러한 실정을 잘 말씀드려 파직을 윤허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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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久叔(175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통천군수로 있을 때, 조구숙에게 답한 편지이다. 평생의 동지인 季溫과의 정분과 능력, 그리고 재주의 차이에 대해 열거하였다. 친구인 계온이 저자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임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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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伯規(濟恭,175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채제공에게 답한 편지이다. 원편지가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편지를 보내준데 대해 감사하고 근황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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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季溫(175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조계온에게 보낸 편지이다. 廉隅에 대한 의미를 김성일과 유성룡의 의논에서 취하여 설명하였다. 염치는 욕심이 없는 것이 최상이다. 陰陽少長의 기미와 吉凶禍福의 조짐은 괘효에 나타나 있으니 학자가 현상을 보고 점을 쳐서 때에 맞게 나가고 물러난다면 천하의 변화에 통달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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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季溫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조계온에게 답한 편지이다. 천하 이치가 반드시 자기는 다 옳고 남은 다 그른 것이 아니다. 이치에 당연함이 있으면 부녀자나 젖먹이의 말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선후를 자기 자신이 확립하여야 의혹이 없고 취사선택하는데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 강론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