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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4651

    寄諸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여러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명휴를 뜻밖에 고성에서 만났던 일, 이곳 향교의 상황, 그리고 고을에서 처신하는 도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52

    答兒明休(175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아들 명휴에게 보낸 편지이다. 몸을 유지하고 사물에 대응하는 도리에 대해 설명하고, 향음주례를 시행한 것에 대해 설명하였다. 독서하는 여가에 글씨를 쓰는 것도 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음을 전일하게 가지고 한 점 한 획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53

    寄兒日休(175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아들 일휴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람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반드시 뜻을 확고히 세우는 것을 주로 해야 한다. 그리고 庶婦의 喪을 치르는 예법에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54

    寄諸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여러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통천군수로 있다가 부교리에 제수되었기 때문에 도성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55

    寄諸兒(176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여러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통천에 있을 때 유생들이 스승으로 모셨는데, 스승으로 자처하기 어려운 상황 등을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56

    寄諸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여러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學課에 힘쓰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그리고 정무를 보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57

    答諸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여러 아들에게 답한 편지이다. 申光德, 申光益 형제와 각별하게 지낸다고 들었는데, 풍골이 우뚝하고 언어가 곧고 마음에 사특한 마음이 없어 평소에도 아끼고 믿던 사람이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지키는데 확고해야 하고 재화에 물들어서는 안 되고, 세력 때문에 마음이 쏠려
    출처 : 유교넷
  • 354658

    易序疑義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易序」의 篇目이 「二程全書」의 遺文에 실려 있는데, 性理群書에 보인다고 하였다. 대개 이정문집은 주자가 편정한 것이고, 유문은 후인들이 미루어 기록한 것이다. 성리군서에 오류가 많으니 아마도 이것은 신빙성이 없고 반드시 程子가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59

    安城劉氏右旋說辨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역술가들이 해와 달이 오른 쪽으로 돈다는 견해에 대해 변론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60

    春坊日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1754년 8월 9일 侍講院 弼善에 제수된 이후 8월 29일에 충주에 와서 사직소를 돌아간 일에서부터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직하고 돌아갈 때까지의 상황을 날짜별로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61

    通川諭一邑諸生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통천군수로 있을 때 학교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해 유생들에게 절목을 만들어 보인 것이다. 이 고을은 대관령과 바다 사이에 있으면서 선비가 매우 적고 문학도 거친 것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이 재주를 내릴 때 그 가운데 다름이 없으니 아름다운 자질을 타고나서 진작함이
    출처 : 유교넷
  • 354662

    雲巖精舍小樓重建勸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선성의 남쪽 낙동강 가에 御廩山이 있는데, 그 산허리에 운암암이 있다. 이 암자가 바위에 의지하고 있는데 바위가 구름 속에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이 산은 퇴계선생이 일찍이 ‘小淸凉山’이라고 할 정도로 기이한 볼거리와 그윽한 경치가 있다. 이 암자 앞에 작은 누대가
    출처 : 유교넷
  • 354663

    遊金剛山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1753년(영조 29) 9월에서 10월에 걸쳐 金剛山을 유람하고 날짜별로 유람한 곳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64

    鳥嶺山城設鎭議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조령은 우리나라 남도의 요충지이고 천연의 요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보루를 설치하여 군사들을 주둔시킨 적이 없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곧 험한 곳이 평지가 되어서 왜놈이 쉽게 지나갔다. 이곳에 보루를 설치하는 것은 暴擧에 대비하고 외적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 10가
    출처 : 유교넷
  • 354665

    李孝子呈文(代儒生作)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李昌葉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아뢰어 다시 조정에 고하여 旌閭를 받을 수 있도록 청한 글이다. 이창섭은 농암선생의 후손이다. 집안이 매우 가난했으나 타고난 효성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모시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삼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모친을 뵙는
    출처 : 유교넷
  • 354666

    權孝子呈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權흡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아뢰어 다시 조정에 올려 旌閭를 내려 주기를 청한 글이다. 권흡은 타고난 효성으로 모친이 시창을 앓고 있을 때, 발이 썩고 다리에 까지 번졌는데 효자가 20여 일 동안 종기를 빨아서 결국 완쾌하게 하였다. 부친이 70이 되어 천식을 앓게 되었
    출처 : 유교넷
  • 354667

    延安李氏族譜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연안 이씨 족보의 첫머리에 붙인 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68

    易解參攷篇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易에는 천지자연의 역, 복희씨의 역, 문왕·주공·공자·정자·주자의 역이 있다. 복희씨 이상은 象畫뿐이니 깊이 연구하여야 역의 본원을 알 수 있다. 문왕이 하는 문자가 있으니 읽은 사람이 마땅히 본문에서 消息을 취해야 한데 편리하지 않아 공자의 역을 문왕의 역으로 삼고
    출처 : 유교넷
  • 354669

    枕磵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岐山의 남쪽에 瓢洞이 있는데, 동의 가운데에 시내가 있다. 이 시내에 재종숙이 살고 있다. 재종숙이 이 시내의 머리맡에 작은 정자를 짓고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기에 그 내력을 기록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70

    賜鼎夢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1749년 8월 28일 꿈에 임금을 모시고 어떤 궁궐에 갔는데 그곳에는 오래된 기물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서 임금이 오래된 솥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꿈을 깼다. 무릇 솥이란 그 빛은 어둑하고, 그 몸은 둔하고, 그 모습은 고요하니 정직함을 붙인 것이다. 귀신은 멀
    출처 : 유교넷
  • 354671

    書福州書堂題名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1742년(영조 18) 임술년 7월 旣望(16일)에 廬山의 五老峯 아래에서 어른들 모시고 유람하였는데, 소동파의 적벽 고사를 잇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복주서당에 이르렀다. 18명이 여기에 모여서 흉금을 털어 놓고 상쾌하게 유람하였다. 모임을 파할 때
    출처 : 유교넷
  • 354672

    書裴子度齋居卷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배자도의 책에 序文을 쓴 사람은 매우 많다. 내가 또 서문을 쓰려고 하는 것은 이날 단란했던 즐거움을 기록하여 훗날 잊지 않을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73

    河洛指要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苑洛韓氏는 諸圖는 전적으로 攻玉齋가 만든 것이라고 하여 하나의 입론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 보니 미진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미진한 부분을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그 자세한 것은 수편에 있으니 보는 사람이 참고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74

    大殿誕日賀箋(1750,代方伯作)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임금의 생일날 관찰사를 대신해 지어 올린 것이다. 임금의 탄신일을 맞아 종사에 복이 넘치고 백성들에 기쁨이 넘친다. 어짊과 검소함으로 보위를 지키고, 만수를 누리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75

    小朝正朝賀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정월 초하루가 되어 세자에게 축하를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76

    大殿正朝賀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정월 초하루가 되어 임금에게 축하를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77

    巡察使遠行狀(175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순찰사가 멀리 행차했다는 말을 듣고 빨리 와서 은택을 골고루 펴달라고 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78

    巡察使近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순찰사가 가까이 행차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 고을에 와서 백성을 위로해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4679

    易傳八則陽生說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역전의 八則陽生에 관해 쓴 논설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0

    兒駒說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집에 망아지가 있는데 풀을 물어서 어미 말에게 먹였다. 손이 와서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연유를 설명한다고 하였다. 父子君臣이 있음을 아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까마귀가 어미 새를 먹이고, 양이 꿇어앉아 젖을 먹이는 것과 같이 천리의 당연한 것이고 이상
    출처 : 유교넷
  • 354681

    井田說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정전법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백성의 생산을 다스리는데 문장에 의거해서 근본을 살펴서 행한다면 정전법만한 것이 없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2

    金博山祈雨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한발이 심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니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려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3

    奉旨祭癘鬼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왕명을 받들어 역병을 몰아내 달라고 제를 올리면서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4

    祭霽山金公(聖鐸)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제산 김성탁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5

    祭裴丈(行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배행검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6

    祭外舅李公(曦)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외숙인 이희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7

    祭叔祖磨泉公(大時)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숙조인 유대시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8

    祭族祖壺窩公(顯時)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족조인 유현시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89

    祭再從叔慵窩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재종숙인 유승현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90

    祭兒震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아들 진휴의 제사에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91

    祭第三子婦金恭人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셋째 며느리 공인 김씨의 제사에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4692

    七代祖考贈通訓大夫司僕寺正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7대조인 柳城의 墓誌이다. 자는 子固이다. 선대 가계와 행적, 그리고 자손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354693

    육대조인 柳復起의 묘지이다. 자는 聖瑞, 호는 岐峯이다. 선대 가계와 행적, 그리고 자손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354694

    五代祖考陶軒處士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5대조 柳友潛의 墓誌이다. 자는 尙之, 호는 陶軒이다. 선대 가계와 행적, 그리고 자손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354695

    高祖考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고조부 柳橚의 墓誌이다. 자는 廷秀이다. 선대 가계와 행적, 그리고 자손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354696

    ○ 年譜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1702년 安東府 臨河縣 三山里에서 출생하였다. 17세(1719년) 寧海에 치른 增廣東堂試에 참여하였다. 27세(1729년) 生員 會試에 1등 3인으로 합격하였다. 31세(1733년) : 廷試에 참여하였다. 32세(1734년) 式年東堂試에서 對策文이 1
    출처 : 유교넷
  • 354697

    ○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趙葵陽, 李守貞, 李世師, 金光憲, 李龜應, 權濂, 李龜星, 李野淳, 李秉運의 만사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54698

    ○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金, 李象靖, 李萬宏, 李象辰, 金江漢, 琴東烈, 族叔 台齊, 族弟 弘源, 三從弟 道源, 三從弟 長源, 李頤淳, 金永運, 李秉夏, 族孫 鼎文의 제문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54699

    ○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李象靖이 쓴 저자의 행장이다. 유정원의 字는 淳伯, 號는 三山, 本貫은 全州이다. 錫龜와 延安 李氏 사이에서 1702년(숙종 28)에 安東府 臨河縣 三山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호걸스런 기량이 있었고, 6세에 능히 문장을 지을 수 있었다. 1729년(영조 5)에
    출처 : 유교넷
  • 354700

    ○ 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蔡濟恭이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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