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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4701

    ○ 墓誌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원
    鄭宗魯가 쓴 저자의 묘지명이다.
    출처 : 유교넷
  • 354702

    갈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葛川 金熙周의 문집. 10권 5책. 목판본. 序文과 跋文이 없어 간행시기와 경위를 알 수 없다. 그가 사망한 지 5년만인 1835년(헌종 1) 俛齋 李秉運이 行狀을 지은 점으로 미루어 이때부터 문집 간행이 추진되어 멀지 않은 시기에 발간된 것으로 짐작된다. 詩는 1
    출처 : 유교넷
  • 354703

    和歸去來辭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820년(순조 20) 永興府使를 사직하고 귀향하면서 陶淵明의 歸去來辭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관직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의 심정을 술회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470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有感, 奉敎敬次慈宮周甲韻, 宸章原韻, 奉敎敬和內賜中和尺御製韻, 宸章原韻, 皇壇親享日下御製承命賡進, 宸章原韻, 宿樓院(丁巳北評事赴任時), 鐵嶺, 咸關嶺, 摩雲嶺, 月波軒次樊巖蔡相公(濟恭)韻, 大學應製時宣醞諸生自上特下銀盃一坐盃心刻我有嘉賓四字使之藏于大學以爲日後宣醞旅酬之用命
    출처 : 유교넷
  • 35470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丙辰至月夜入侍自上宣饌奎章銀臺玉署諸臣出聯句親爲之序製首聯以次得王字韻製進(出弘齋全書), 葛川亭(亭在葛山九曲上戊辰卜築此下四十五首皆亭居作), 亭居偶吟, 次雲谷雜詠韻(登山·玩月·謝客·勞農·講道·懷人·倦遊·修書·宴坐·出山·還家),亭居卽事, 亭居酬友人,次武夷雜詠(洞口·松塢·長峴·花
    출처 : 유교넷
  • 354706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惠慶宮輓詞(5首),正宗大王輓詞(辛巳,健陵遷奉時),樊巖蔡文肅公輓(3首),輓李尙書(鼎運)(3首),輓權進士(履度),輓金鎭岑(衍吉)(3首),輓權同樞(昌益)(2首),輓權處士(火典), 輓姜同樞(宅一)(2首),輓鶴林權公(訪)(3首), 輓趙進士(居善)(2首),輓李景瞻(周楨)(2首)
    출처 : 유교넷
  • 354707

    辭司諫院獻納兼言事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司諫院 獻納을 사직하면서 언관으로서 현안에 대한 소신을 밝힌 상소이다. 義理가 어두워지고 堤防이 무너지는 작금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왕의 『明義錄』을 정면 비판한 成德雨를 유배했다가 곧바로 석방한 것은 의리에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公議에도 어긋나는 것이자 특정세력
    출처 : 유교넷
  • 354708

    乞養疏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왕의 호의적인 조치로 4년 동안 講製한 이후 三司에 발탁되는 등 은혜를 입으며 관직생활을 영위해오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친의 나이가 69세로 연로한데다 병까지 잦고 모친마저 병이 들었는데 봉양할 자식이 자
    출처 : 유교넷
  • 354709

    辭右尹摠管仍辨吳瑛誣嶺人疏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儒生 金升淵이 成均館에다 邪道(西學)에 물든 兩湖의 무리들이 靑松의 老萊山에 들어가 사람들을 모아 소굴을 만드는 사실을 알린 通文을 보내자 吳瑛이 그것을 내동댕이치며 “영남의 사족들도 그 가운데 渾入되어 있다”고 주장한데 대해 비판한 내용의 상소이다. 선왕인 정조가
    출처 : 유교넷
  • 354710

    辭工曹參判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영남의 벽지에서 살다 兩朝의 분에 넘치는 은총을 받아 講製의 반열에 참여하고 言官職에 발탁된 것에 만족하며 향촌으로 돌아가 田野에 묻혀 살고자 했는데, 뜻하지 않게 공조참판으로 임명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감당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에
    출처 : 유교넷
  • 354711

    辭刑曹參判因陳時弊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모처럼 고향에서 省墓를 한 다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일을 하지 않아도 땀이 나는 오랜 지병을 치유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형조참판에 임명한 것은 자신의 건강과 능력에 비추어 적절하지 않은 처사이니 철회해줄 것을 요청함과 동시에 형조의 법집행과 관련한 폐해를
    출처 : 유교넷
  • 354712

    論惠慶宮服制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章憲(思悼)世子의 부인이자 正祖의 어머니인 惠慶宮 洪氏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대두한 服制에 대해 각종 사례를 제시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의 상소이다. 나라의 莫重한 일이 祀典이고 莫大한 일이 服制라는 점을 전제로, 혜경궁은 14년간 代理聽政을 담당했던 大君의 小
    출처 : 유교넷
  • 354713

    蔡樊巖伸理疏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邪學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유배된 蔡濟恭(1720~1799)의 아들 蔡弘遠(1762~?)이 석방된 것을 계기로 채제공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으로, 영남유생들의 연명상소이다. 채제공을 邪學을 전파한 邪魁로 규정한 姜浚欽·李基慶은 그의 媒孼이며 洪義浩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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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14

    辭西樞仍陳六條因請先師爵諡疏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同中樞府使를 사직하면서 時務에 관한 六條를 제시함과 동시에 스승인 大山 李象靖(1711~1781)에게 官爵과 諡號를 내려줄 것을 청원한 상소로, 1820년(순조 20)에 쓴 것이다. 職事는 없으면서 厚祿을 받는 직함을 받는 것은 시골의 용렬한 존재일 뿐인 데다 별다른
    출처 : 유교넷
  • 354715

    玉堂入直時箚子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왕이 저술한 『明義錄』을 비판한 成德雨(1752~1827)를 유배하고 崔進吉을 수감하도록 했다가 곧바로 풀어준 것은 義理에 배치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公議에도 어긋나는 것이라 주장하며 왕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런 번복된 조치의 부당성을 제기한 내용의 箚子이다. 弘文館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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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16

    筵說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815년(순조 15) 3월 23일 모친상을 끝내고 承政院 假注書로서 入侍했을 때 誠正閣에서 왕과 나눈 대화내용이다. 그의 나이와 친·인척 등 제반 사항을 물은 다음 왕은 그가 三策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筵席에서 답한 내용도 학문적 순수성과 성숙성이 인정된다면서 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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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17

    經筵講義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正祖가 사망하고 어린 나이의 純祖가 즉위한 것을 계기로 經筵에서 經典을 강독하며 군주의 학문방향과 국가경영 방안에 대한 자신의 所懷를 진달한 내용이다. 1800년(순조 즉위) 7월 次對; 弘文館校理로서 入侍해 왕에게 遠大한 포부를 기약하면서 立志를 견고하게 하고 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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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18

    上韓相國(用龜)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左議政 韓用龜(1747~1828)에게 보낸 편지로, 1816년(순조 16)에 쓴 것이다. 大山 李象靖의 贈職과 追諡를 위해 도움을 요청한 내용이다. 이미 증직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근래 宰臣들이 다시 그것을 제기한 것은 公議에서 나온 것으로 결코 사사로운 아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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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19

    答尹侯(魯東)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安東府使 蓉西 尹魯東(1753~ ?)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817년(순조 17)에 쓴 것이다. 鄕飮酒禮의 시행과 관련한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근래의 향음주례의 儀禮節次가 과거에 비해 축소된 부분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開元禮』나 『大明集禮』가 자신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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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0

    答尹侯(魯東)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蓉西 尹魯東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옅은 구름이 걷혀지고 달빛이 정원을 가득 채운 가운데 술 한통을 마신 다음 주위를 배회하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심정을 시로 읊으며 살다보니, 그동안 관직생활에서 얻은 고질병도 점차 사라지고 가슴 가득 쌓여있던 먼지도 제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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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1

    與立齋鄭公(宗魯)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立齋 鄭宗魯((1738~1816)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七情도 역시 理가 발한 것이다”고 했던 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내용이다. 자신의 견해로는 四端과 七情은 모두 균등한 情으로서 理를 위주로 할 경우 ‘理發’이라 하고 氣를 위주로 할 경우 ‘氣發
    출처 : 유교넷
  • 354722

    答立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立齋 鄭宗魯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理氣說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渾淪說은 순수한 性이 감응하여 발하는 것이 情으로 性은 不善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면 善이 된다고 하여 사람의 칠정도 ‘性發’이라 주장하지만, 退溪의 分開說은 『聖學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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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3

    答立齋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立齋 鄭宗魯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理氣說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性에 不善함이 없고 性이 발하여 情이 되니 정 역시 불선함이 없다는 논리는 『孟子』에 “情도 善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에 논리적 근거를 두고 있으며, 천하에는 性 외에는 없고 七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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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4

    答立齋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立齋 鄭宗魯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교훈으로 가득 찬 편지에 감격한 나머지 몇 차례나 반복해서 읽었음을 전하면서, 義理의 근원을 찾으려는 자신의 욕심만 앞서 좋지 않은 건강을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근래 旅軒 張顯光의 四端·七情 및 人心·道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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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5

    答立齋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立齋 鄭宗魯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先祖의 祠版 매장과 관련한 문중사람들의 질의에 정중한 답변을 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설명하면서 조언을 요청했다. 곧 甲論은 庶人이 高祖를 제사지낼 수 있는 것은 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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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6

    答權信天齋(思潤)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信天齋 權思潤(1732~1804)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心性發處不同之說’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性이 발하여 情이 되고 心이 발하여 意가 된다면서 心·性은 一理이지만 그것들이 발할 때는 情과 意의 不同이 있게 되었다는 설명은 의혹의 여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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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7

    與柳象遠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柳象遠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이 건립한 葛川精舍 上樑文의 작성을 요청한 내용이다. 오래전부터 산 높고 물 맑은 곳에서 고기 잡고 농사지으면서 살기를 원하여 築室을 계획하고 있다가 비로소 소원을 이루게 되었음을 전했다. 집 앞에 흐르는 물이 맑아 달빛이 각인된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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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8

    與柳象遠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柳象遠에게 보낸 편지로, 講論을 부탁한 내용이다. 자신의 평생소원이 先生들과 長者들을 따라 다니면서 학문의 요체를 배우는 것이었지만, 과거에 들었던 것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새로이 듣는 것도 모두 산만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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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29

    與柳邇叔(相祚)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逸愚 柳相祚(1763~1838)에게 보낸 편지로, 江院事(屛虎是非)를 조속히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촉구한 내용이다. 是非에 대해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들리는 바로는 사리에서 벗어난 주장들이 날마다 人心을 혼란스럽게 하고 유언비어들이 난무함으로써 爭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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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0

    答柳士鉉(台佐)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鶴棲 柳台佐(1763~1837)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屛虎是非의 종식방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영남 전체가 분열하게 된 것은 작게 보면 子孫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고 크게 보면 장차 국가의 우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탄식만하고 있을 뿐이라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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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1

    與李際可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李際可에게 보낸 편지로, 1816년(순조 16)에 쓴 것이다. 愚山선생에 이어 龜湖선생마저 사망하는 등 후진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장자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大山 李象靖을 비롯한 그들에 대한 각종 추존사업이 사림의 소망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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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2

    答姜擎厦(橒)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松西 姜橒(1773~1834)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828년(순조 28)에 쓴 것이다. 항상 안부를 묻는 일에 소홀했던 점을 사과하면서, 부탁한 孫子의 공부를 단계적으로 지도해줄 것을 부탁했다. 편지에서 손자의 공부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는 칭찬은 지나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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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3

    答姜擎厦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松西 姜橒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未發의 境界와 性의 本體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고사하는 내용이다. 편지를 받고도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못한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면서, 자신은 나이가 70줄에 든 데다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처지라 義理의 본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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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4

    與洪承旨(時濟)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海邊으로 유배된 承旨 洪時濟에게 보낸 편지이다. 외로운 처지에 있으면서 장벽이 없는 탓이기는 하지만 義理를 자임하여 조금도 두려움 없이 상소를 올려 항의한 일은 대장부의 용기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일로 유배되었어도 餘恨은 없겠지만, 풍토가 척박하여 해마다 흉년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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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5

    與沈君實(英錫)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沈英錫에게 보낸 편지로, 1830년(순조 30)에 쓴 것이다. 1년의 세월동안 물맛 좋고 비옥한 땅에 살면서 각종 질병을 떨쳐버리고 정신을 맑게 한 다음 六仙의 반열에 들기 위해 유람을 즐기고 있음을 전했다. 지난해에는 남쪽지방의 方丈界를 유람하다 바다를 건너가 瀛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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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6

    答洪誠之(永觀)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洪永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血氣가 쇠약한 나머지 여름에 더위를 먹은 것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전하면서, 질문한 ‘天理人欲同行異情’에 대해 心의 자취는 혹 다를 수도 있고 公私의 분별이 있기 마련이지만 君子가 어디로 향하는가가 관건이라 설명했다. 자신도 이 부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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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7

    與韓大逌(鎭㦿)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韓鎭㦿에게 보낸 편지로, 1830년(순조 30)에 쓴 것이다. 근래 是非가 없어 적적하다시피 한 것은 차라리 일거양득에 해당한다며 정직한 행동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관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은 근래 여러 가지 병에다 말마저 어둔하고 팔다리가 마비되는 등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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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8

    答趙仲德(秉相)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趙秉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와 함께 보내준 주옥같은 글을 읽으니 학문적 능력이 점차 증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며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자신이 수족이 마비되고 정신이 혼미해져 공부한 것조차 황폐한 단계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글에 대한 제목을 붙여줄 수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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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39

    答李景圓(蓍秀)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慕亭 李蓍秀(1790~1849)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別紙에서 설명한 내용에 대한 생각을 해본지가 오래된 탓으로 그것을 읽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아지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논리의 정연함과 분명한 설명을 읽으면서 등에 땀이 흐를 지경이었음을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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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0

    答李景圓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慕亭 李蓍秀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818년(순조 18)에 쓴 것이다. 보내준 두 통의 편지의 내용은 모두가 보고 얻은 것이 정밀하고 세밀하며 생각하여 얻은 것이 긴밀하고 절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전제한 다음, 虛靈을 이미 本體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體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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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1

    答李景圓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慕亭 李蓍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惡氣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빨리 쾌차하기를 기원하면서, 자신은 작년 겨울 葛川精舍로 들어가 사람들과 교류를 끊은 채 몸을 조리하고 있지만 병의 기복이 심해 고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간행하여 보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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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2

    答李景圓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慕亭 李蓍秀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慕亭集』의 내용으로 미루어 1823년(순조 23)에 쓴 것으로 보인다. 『中庸』의 「鬼神章」에서 설명하는 鬼神에 대해 朱子·退溪는 ‘實理’라고 보았는데 大山 李象靖이 ‘實氣’라고 해석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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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3

    答吳瑛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吳瑛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儒生 金升淵이 成均館에다 洋學에 물든 兩湖의 무리들이 靑松의 老萊山에 들어가 사람들을 모아 소굴을 만드는 사실을 알린 通文을 보내자, 吳瑛이 “영남의 사족들도 그 가운데 渾入되어 있다”고 주장한데 대해 직접 변호한 내용이다. 한양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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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4

    與孫壻李始能(敦禹)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孫壻인肯庵李敦禹(1807~1884)에게 보낸 편지로, 1828년(순조 28)에 쓴 것이다. 보고 싶던 차에 편지를 받고 한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데 대해 반가움을 표시하면서도, 冬至가 지나도록 課講이 반 밖에 진척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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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5

    答李始能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肯庵 李敦禹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830년(순조 30)에 쓴 것이다. 좋은 가정에서 생장한데다 높은 안목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立志가 확고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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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6

    與外孫李彙徹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外孫 李彙徹에게 보낸 편지이다. 친구들과 함께 山房에서 독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왕이면 淸凉山에서 글을 읽을 것을 권유했다. 退溪도 일찍이 이 산을 吾家山이라 불렀음을 상기시키면서 산에서 노는 과정에서도 날을 정해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山靈에게 부끄럽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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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7

    答琴璣瑞(僖圭)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琴僖圭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제시한 질문의 내용을 충분히 읽었음을 전하면서, 정력이 거의 소진되어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견해를 제시하니 양해해 줄 것을 희망했다. 別紙의 내용은 ① 『中庸』 序文의 ‘虛靈知覺’에 대해 註에서는 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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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8

    答琴璣瑞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琴僖圭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講說하는 내용이 비록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서로 왕복하며 변론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법이라며 질문에 대해 다시 답변했다. 別紙에서는 『中庸』의 天道·人道의 사이 및 絜矩의 道에 대한 異論 제기에 자신의 견해를 반복하여 밝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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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49

    答族弟舜叟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族弟인 白山 金熙奮(1760~1822)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體用에 대한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體用은 道理를 취하는 것이라 보는데, 事物을 취하는 것이라든가 形而上이라든가 形而下라든가 陰陽을 통합하고 나누는 것이라든가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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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50

    答舜叟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白山 金熙奮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집안 別廟의 移奉과 관련한 내용이다. 집안의 長兄들이 別廟는 중요한 만큼 가문의 서차에 있어 가장 높은 선조를 移奉할 수 없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祠宇를 세울 때 不遷位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私房과 別廟를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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